소설리스트

난가기연-166화 (166/892)

166화. 선학(仙鶴)과 종이학

“알겠으니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습니다. 최선을 다해 돕겠지만, 당신들도 알다시피, 저는…… 음, 제가 누구인지는 알고 있는 거죠?”

“알아요, 알아요! 아주머니는 옥회산에 사시는 선고(仙姑)시잖아요!”

여인은 왼팔로 오른팔을 꽉 움켜쥐었다.

“아니, 제 말은 그게 아니고, 휴……. 저는 선문의 선학에 불과합니다. 당신들의 부탁을 결정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에요.”

‘아, 그 말이었구나.’

위무외는 다시 한번 예를 올렸다.

“선고께서 저희 위씨 집안을 돕겠다고 말해주신 것만으로도 이미 큰 은혜를 입었습니다. 선학의 신분이신 것은 저희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이번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선고께 간청하러 온 것이나, 선뜻 도움을 주겠다 말씀해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위원생도 급히 작은 손을 모아 읍했다.

“감사합니다, 선고님!”

여인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보아하니 이들은 죽어도 고집을 꺾지 않는 범인(凡人)들은 아닌 듯했다.

‘음, 게다가 내가 인간이 아닌데도 두려워하지 않는군.’

“이렇게 하죠. 원생은 일단 저와 함께 돌아가고, 선생은 이곳에서 기다리세요. 저와 가까운 선사(仙師)나 선장(仙長)들께 최선을 다해 부탁해 볼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이리 오랜 세월 옥회산에 있으면서 한 번도 무언가를 부탁해본 적은 없지만, 오늘 당신들을 위해 선례를 깨겠네요!”

여인은 진지하게 말하고서, 온화한 표정으로 위원생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자, 이리 오렴.”

위원생이 자신의 부친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서 조심스럽게 여인을 향해 다가가자, 상대방은 아이를 끌어안았다.

“위 선생, 여기에서 저를 기다리시면 됩니다. 빠르면 반나절, 느리면 하루 정도 걸릴 거예요.”

“선고께서는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여인이 떠나려는 것을 보고 위무외는 급히 그녀를 불러 세웠다.

“음?”

여인은 의혹에 찬 표정으로 위무외를 바라보았다. 그는 무언가 중요한 할 말이 있는 모습이었다.

“선고께 고할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일찍이 제가 한 선생님을 알게 되었는데, 학식이 깊고 재능이 비범하신 분입니다. 그래서 예를 다해 그분을 모셨는데, 얼마 전 그 선생께서 저희 가문에 방문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그분을 위해 연회를 열었습니다.”

“그자가 이곳에 와서 선연(仙緣)을 구하는 법을 알려준 사람이군요?”

여인은 이야기를 듣다가 한 마디 물었다. 위무외는 고개를 저으며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사실, 저희 집안에 얽힌 일로 이전에 위기를 한 차례 넘긴 적이 있습니다. 다행히 전화위복이 되어 저를 습격하려던 자에게서 옥회산에 관한 소식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선생께서는 모르시는 일입니다.”

위무외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며칠 전 연회 자리에서, 이 일에 대해 아무것도 몰라야 할 그 선생께서 돌연 제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약 옥회산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면, 산을 지키는 선학에게 이렇게 말하라 하셨습니다. 제 친우가 옥회산의 구풍 선장과 아는 사이입니다, 라고요.”

여인으로 변한 모습의 선학은 이를 듣고 깜짝 놀랐다.

“그 선생이 구풍 선장을 안다는 말씀입니까? 그분은 누구시죠?”

위무외는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며 공수했다.

“선고께 아룁니다. 선생님께서는 주변 사람들이 그분에 관한 일을 이야기하고 다니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니 저도 선고께 그분의 성이 계 씨라는 것만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계략(計略)의 계(計) 자입니다. 그분의 말씀으로는, 구풍 선장께 아뢰면 자신이 누군지 알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여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얼굴에는 희색이 만연했다.

“그 말이 있으니 더욱 확신이 드는군요. 좋은 소식 기다리세요!”

그녀는 공중으로 솟구쳐 위원생을 안은 채로 학으로 변신하여 날아올랐고,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진 후 학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위무외는 여인이 원생을 데리고 날아가는 것을 지켜본 후에야 마음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아직도 여전히 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다시 한번 비단 주머니를 만지작거리다가 끈을 풀었다.

손을 뻗어 주머니를 확인한 그는 곧이어 어리둥절했다. 당황하여 주머니를 끌러보니, 안이 텅 빈 듯 홀쭉한 모양이었다. 이에 조심스럽게 주머니를 열어 보니, 과연 종이학이 사라져 있었다.

“어찌 이런 일이! 오는 길에 잃어버린 건 아니겠지? 이를 어쩌지!”

위무외는 조급한 마음에 식은땀이 났다. 주위를 샅샅이 뒤져보던 그는 한참 후 낙담한 기색으로 한쪽의 바위 위에 앉았다. 그의 표정은 매우 불안해 보였다.

* * *

옥회산 산문(山門)의 공중에서 별안간 하늘을 날게 되어 몹시 놀란 위원생은 여인을 꼭 붙잡고 있었다. 그들은 마침내 한 산봉우리에 천천히 내려왔다. 위원생에게 가장 먼저 보인 풍경은 안개 낀 산과 골짜기에 점점이 자리한 옥회산의 누각들이었다.

위원생의 긴장과 불안감이 주위의 선경에 씻겨 내려갔다.

선학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당연히 구풍 선장을 찾아가는 것이었다. 구풍이 자신과 함께 대진인(大眞人)을 뵈러 가준다면, 틀림없이 승낙을 받아낼 것이다.

그들은 바람을 타고 미끄러지듯 날아 산봉우리에서 깊은 골짜기로 내려갔다.

선학은 원생을 안고 구풍이 머무는 골짜기 안의 대나무집에 내려섰을 때, 안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때, 위원생의 품 안에서 돌연 종이학 한 마리가 날아올라서는 날개를 퍼덕이며 앞으로 날아갔다.

“저게 뭐지?”

“어! 저건 아버지가 갖고 있던 종이학이잖아?”

위원생이 외친 말에 손을 뻗어 그것을 잡으려던 여인은 동작을 멈추고 호기심에 차서, 날아가는 종이학을 바라보았다.

‘분명 종이로 접은 새에 불과한 데다 어떤 법력의 파동도 느껴지지 않는데 어찌 혼자서 날아갈 수 있지? 이 종이 새가 혹 영지를 얻었나?’

황당무계한 생각이 그녀의 마음에 떠올랐다가 바로 사라졌다.

‘내가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고 있담!’

이때 종이학은 대나무집을 한 바퀴 돈 후에 산을 향해 날아갔다. 놀랍게도 속도가 꽤 빨라서, 선학이 잠시 눈치채지 못한 사이 종이학은 그들에게서 거리가 멀어졌다.

선학은 서둘러 원생을 품에 안고 더욱더 속도를 내는 종이 새를 따라 날아갔다. 그녀는 속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저게 정말 종이로 만들어졌다고?’

이 종이학은 단번에 서운루로 날아가더니, 건물 바깥에 둘러쳐진 금제(禁制)에 부딪혔다. 날개를 몇 번 퍼덕인 종이학은 들어갈 구멍이라도 찾는 듯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마침 공교롭게도, 선장 하나가 서운루에서 나오고 있었다. 게다가 그 선장은 이 작은 종이학을 발견하지 못했고, 이에 기회를 포착한 종이학은 재빨리 날개를 움직여 휙 하고 서운루 안쪽으로 날아 들어갔다.

“헉……!”

막 땅에 내려선 선학은 이 장면을 보고 놀라 헛숨을 들이켰다. 만일 저게 종이학이 아니고 무언가 사악한 것이었으면 어떻게 됐겠는가!

막 서운루에서 나온 수사(修士)는 여인으로 변한 선학을 발견하고서 호기심에 이렇게 물었다.

“학고(鶴姑), 여기에서 무엇 하십니까? 이 아이는 누구 밑에 있는 동자(童子)입니까?”

그는 갈색 장포를 입은 대략 5, 60세 정도로 보이는 남자였다. 그는 의혹에 찬 얼굴로 선학이 안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그 아이의 생김새가 낯설었기 때문이었다.

“아, 황(黃) 선장(仙長)께 아룁니다. 이 아이는 예전에 제 은인이었던 위씨 집안의 자손입니다. 날 때부터 영성(靈性)을 타고나, 곧 옥회산에 들어올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참, 방금 무언가 날아간 것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음?”

갈색 옷을 입은 수사는 어리둥절하여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모습으로 보아 그는 종이학을 발견하지 못한 듯했다.

서운루는 폐관루(閉關樓)라고도 불렸는데, 그 주위는 하얀 안개로 둘러싸여 있었다. 그런 데다가 종이학의 몸체는 하얀색이고, 법력의 파동이나 특별한 기운도 내뿜지 않았다. 게다가 방금 금제가 열린 순간 바로 안으로 날아 들어갔으니, 이런 이유로 황 선장도 아예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황 선장, 방금 종이 새 하나가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저는 그것을 따라 여기에 온 것이고요.”

선학은 이런 일은 숨기면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사실대로 말했다.

“종이학이에요…….”

위원생이 선학의 품 안에서 작은 소리로 바로잡았다.

“종이학?”

갈색 옷의 수사는 위원생과 선학을 쳐다보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손을 휘둘러 다시 금제를 열었다.

“갑시다, 가서 한번 보지요!”

이렇게 말하고 그는 서운루로 향했고, 선학은 위원생을 안고서 그 뒤를 따라갔다. 그녀는 원래부터 이곳에 오려고 했었는데, 보아하니 지금은 구풍 선장도 이 안에 있는 듯했다.

서운루는 크고 높은 건물로 내부는 깊고 넓었다. 안개에 숨겨진 면적은 생각보다 작지 않아서, 안에는 서각과 수행할 수 있는 많은 빈방이 있었다. 지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지만, 어떤 방들은 문이 닫힌 채 표식이 걸려있었다. 그런 방은 안에 사람이 있는 것이었다.

선학은 수사에게 간단히 위씨 집안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위원생은 종이학에 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선학의 예측대로 이는 계 선생이 보낸 것이었다.

이 시각 서운루의 꼭대기에서는, 구풍과 그의 사형(師兄)인 양명진인(陽明眞人)이 다른 세 수사와 함께 방석 위에 일렬로 나란히 앉아 있었다. 세 사람 중 하나는 이전에 의식을 잃었던 그 ‘조 사제(師弟)’였고, 날개옷을 입은 다른 두 명은 당시의 그 선학 두 마리였다.

다섯 사람의 맞은편에는 방석이 하나 놓였고, 그 위에는 나이가 마흔이 넘어 보이는 청색 옷을 입은 중년 남자가 앉아 있었다. 그는 검은 수염을 가슴팍까지 기르고 있었는데, 지금은 옥패 하나를 들고 자세히 관찰하는 중이었다.

“조 사질(*師侄: 사숙(師叔)의 아들), 그러니까 배 사형(師兄)께서 사질과 두 선학에게 옥패를 가져가라고 맡겼을 때는 습격을 받지 않았다가, 대정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귀를 만났다는 말인가?”

청색 옷을 입은 남자는 옥패 위에 적힌 것을 모두 읽은 듯 아래에 앉은 남자에게 물었다.

“그렇습니다, 저와 일행은 하마터면 크게 당할 뻔했습니다. 만약 두 선학 도우(道友)께서 법력이 높아 제때 피하지 못했다면, 옥회산에 돌아왔더라도 큰 대가를 치러야 했을 겁니다.”

날개옷을 입은 남자 중 한 명이 의아한 목소리로 말을 넘겨받았다.

“이상한 것은, 그날 법력을 아끼지 않고 바람을 타고 도망쳤는데, 대정국의 국경선을 넘자마자 그 마귀가 더는 쫓아오지 않았다는 겁니다. 그 점괘에 나온 기운이나 연을 어지럽힐까 저어했던 것이라면, 공중에서 일어나는 일은 대정국의 세상살이에 어떤 영향도 주지 않을 텐데 말입니다.”

구풍 옆에 앉은 양명진인이 말했다.

“이 일은 정말 이상합니다. 옥회산은 다른 이들과 어떤 원한 관계도 만든 적이 없고, 이번 천기각의 일도 근거 없는 소문에 불과한데…….”

“사형께서 모르시는 일이 있습니다. 일전에 병주에서 한 고인(高人)이 나타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곳 저승의 관리 말에 따르면, 통천강의 용왕도 자리에 있었다 합니다. 용왕과 그 고인이 함께 진마 하나를 몰아내 동토(東土)의 운주 바깥으로 쫓아냈다고 합니다. 다른 곳에 있는 이들은 이 소식을 모를 테지만, 이는 장천부 저승의 관리가 직접 겪은 일입니다.”

다섯 사람의 맞은편에 앉은 청색 옷을 입은 남자도 눈썹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 통천강 용왕은 성정이 괴팍하여 행동을 예측하기 어려운데, 그때 나서서 일을 해결했다니……. 진마 말고 다른 한 사람은 도대체 누구지? 그자도 진룡인가?”

그들은 대정국이 어느새 낯설게 느껴졌다. 진룡 한 마리가 큰 강에 자리 잡는 것도 이미 보기 드문 일인데, 형세를 보아하니 자신들도 모르던 때에 많이 복잡해진 것 같았다. 그들 옥회산은 이 일을 전혀 모르고 있다가 뒤늦게서야 알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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