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167화 (167/892)

167화. 영특한 종이학

“참! 임(任) 사숙, 배 사숙의 옥패에는 뭐라고 쓰여 있었습니까? 천기각에서 무언가 확실한 소식을 들었다고 합니까?”

청색 옷을 입은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그의 표정이 약간 미묘해졌다.

“천기각은 동천(洞天)을 폐쇄한 뒤, 오랫동안 점괘를 분석했으나 어떤 소득도 없었다는구나. 배 사형은 그들을 도와 대정의 산천과 지세, 물길과 땅의 기운을 분석하고 있다고 한다. 대정 왕조(王朝)의 기운도 포함해서 말이다. 그들은 힘을 합쳐 한 번 더 점을 치려 한다고 적혀 있었다. 짧은 시일 내에 결과를 얻기는 불가능할 것 같다.”

“알겠습니다. 이 일은 어찌 될지 알 수 없으니, 다른 이들의 수행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일단 우리끼리만 알기로 합시다. 제가 점을 쳐보니, 대정의 기운에는 아직 이질적인 움직임이 없고, 각 주와 각 부는 신령들이 지키고 있어 오랫동안 사악한 것들이 힘을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 왕조에도 부패한 모습이 있긴 하나, 큰 전란이나 재해는 없습니다. 비록 외딴 동토인 운주에 자리 잡고 있긴 하지만, 아직까지는 살기 좋은 곳이지요. 그러니대정국 바깥의 수선자들은 이곳에서 감히 말썽을 부리지 못할 것입니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세상은 아직도 정도(正道)가 우세를 점하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중생, 특히 인간들은 원력(愿力)으로 수많은 신령을 만들어냈다. 이들의 힘은 결코 작다고 볼 수 없었다.

특히 대정과 같은 평화로운 세태에는 안정이야말로 하늘의 뜻이었다. 그러니 도력이 일정 수준에 오른 이들도 함부로 날뛰지 못할 것이다. 최소한 남의 눈에 띄도록 큰일을 벌이고 다니지는 않을 것이다. 요괴나 삿된 것들이 마음껏 휘젓고 다니는 곳들은 대부분 세태가 불안정하고 온갖 재해가 일어나는 곳이었다.

청색 옷을 입은 남자는 당분간 어떤 결과를 얻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모여든 사람들을 물렸고, 이들은 각자 수행하러 흩어졌다.

구풍과 양명진인이 함께 사숙의 방을 나왔을 때, 돌연 이상한 종이 새 한 마리가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왔다.

구풍과 그의 사형이 그 종이 새를 발견하자, 종이 새는 속도를 더욱 높여 가까이 다가오더니 구풍의 주위를 빙빙 돌며 날아다녔다.

“이건 종이 새잖아? 옥회산에 있는 어느 분의 술법이 이렇게 오묘하지? 법력이나 영기의 파동도 느껴지지 않다니!”

양명진인은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손을 뻗어 종이 새를 잡으려 했다. 그러나 작은 새는 속도를 높여 그 손을 피하고서, 구풍에게서 1척(*尺: 약 30cm)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멈춰 섰다.

다른 쪽에 있던 세 사람도 호기심에 이쪽을 바라보았다. 종이 새가 이토록 영특하다니! 누군가 조종하고 있다고 하기에는 어떤 법력의 파동도 느껴지지 않았다. 게다가 볼수록 무슨 특별한 기관이 달린 것 같지도 않았다.

구풍은 사형을 보다가 다시 종이 새를 바라보았다. 그는 시험하듯이 손을 뻗어 손바닥을 펼쳤다.

과연 종이 새는 두어 번 날개를 퍼덕이더니 구풍의 손바닥에 내려앉았다. 그 후 목을 뻗어 종이로 된 부리로 그의 손바닥을 몇 번 두드렸다.

그러자 순간 이물전신의 술법으로 그 안에 담긴 내용이 구풍의 머릿속에 흘러들어왔다. 이를 들은 그는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그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손바닥의 종이 새는 보통의 종이로 돌아간 듯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사형, 이전에 제가 노화산에서 만났다던 그 고인에 관한 이야기를 아직 기억하십니까?”

“당연히 기억하지. 왜, 그 종이 새와 고인이 관련이 있느냐?”

양명진인은 의아한 듯이 구풍의 손에서 종이 새를 꼬리를 들어 올려 자세히 살펴보았다. 어떻게 보아도 그냥 종이였다.

“네, 이 종이 새가 바로 계씨 성을 가진 그 고인께서 접으신 겁니다. 이물전신의 방식으로 제게 소식을 전하셨습니다. 어서 사숙께 가서 말씀드려야겠어요. 병주에서 진마를 물리쳤다는 그 수행자가 아마 이분인 것 같습니다!”

말을 마치고 구풍은 사형의 손에서 종이 새를 가져와 다시 그 방으로 향했다. 다른 네 사람도 망설이다가 그의 뒤를 따라갔다.

몇 분 후, 임 사숙의 방에는 구풍을 비롯한 다섯 사람뿐만 아니라, 위원생을 안고 있는 선학과 갈색 옷의 수사도 함께 자리해 있었다.

청색 옷을 입은 남자는 호기심이 들어 종이 새의 꼬리를 들어 아래위로 자세히 살펴보았다. 이렇게 한참을 살핀 후에도, 그는 보통의 종이라는 것밖에 알아내지 못했다.

이에 그들은 종이 새를 펴보려고 했는데, 이것이 새를 놀라게 한 것인지 죽은 것처럼 가만히 있던 종이 새가 다시 날개를 퍼덕였다. 종이 새는 청색 옷을 입은 남자의 손에서 벗어나 위원생의 품으로 도망쳐왔다.

“오……. 정말로 살아있는 건가?”

“사숙, 이 종이가 영지라도 얻은 것입니까?”

청색 옷의 남자는 미소 지었다.

“아니다, 이건 어느 고인이 스스로 만들어낸 특별한 술법인 것 같구나. 하지만 이 종이 새는…….”

“종이학이에요!”

위원생은 들릴 듯 말 듯 한 소리로 투덜댔고, 이를 들은 청색 옷의 남자가 잠시 말을 멈추더니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음, 이건 신묘한 술법이 종이학을 이토록 영특하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이 술법이 끊어지지 않고, 오랜 세월 영기(靈氣)를 쐬고 심오한 도(道)를 경청한다면 언젠가 정말로 영지를 얻을 날이 있을지도 모르지.”

“겨우 종이 한 장도 영지를 얻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까?”

갈색 옷의 수사는 놀라워하며 물었고, 청색 옷을 입은 남자가 웃으며 그 말에 반박했다.

“영지를 얻은 돌도 있는데, 종이라고 안 될 게 뭐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말하며 청색 옷의 남자가 손을 뻗어 당기자, 위원생의 품 안에 있던 종이학이 마치 빨려 들어가듯이 그의 손바닥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지금의 종이학은 다시 ‘죽은 척’이나 ‘수면’ 상태에 들어간 듯했다.

청색 옷을 입은 남자가 손안에 작은 불길을 만들어내 종이학에 가까이 대자, 종이학은 또다시 놀란 듯이 날아올라 이번에는 구풍의 곁으로 도망쳤다.

“이것 봐라, 이미 화를 피하고 안전한 곳을 찾을 줄 아는구나!”

위원생은 긴장한 채로 선학의 옷을 그러쥐었다. 아이는 그녀의 귓가에 작은 소리로 물었다.

“학 아주머니, 우리 아버지는 어떻게 된 건가요?”

구풍은 마치 그 말을 들은 듯, 아이를 바라보고서 몸을 일으킨 뒤 청색 옷을 입은 남자에게 공수했다.

“사숙, 제가 직접 가서 위무외라는 자를 데려오겠습니다.”

“그래, 가보거라!”

위무외가 함께 옥회산에 드는 것은 이미 결정된 일이었다. 그에게서 계 선생이 어디에 있는지만 알아내면, 옥회산에서는 사람을 보내어 계 선생을 직접 만날 생각이었다. 옥회산은 그 내막을 알아보려 했다.

* * *

선문은 역시 선문이었다. 위무외는 그동안 아름다운 것을 적지 않게 보았다고 자부했는데도, 옥회산에 들어온 후 전율을 느꼈다.

처음 옥회산에 들어오면 청록색의 봉우리와 골짜기만 보일 것이다. 그러나 천천히 둘러보면 약초의 향기가 느껴지며, 산을 뒤덮은 꽃에서 내뿜어지는 깨끗하고 편안한 향기가 폐부로 들어왔다. 깊은 골짜기에는 샘물이 솟고, 봉우리에는 언제나 안개가 끼어 사계절 내내 운치가 있었다. 시시때때로 춘풍이 불어왔으며 밤에는 별이, 낮에는 오색구름과 노을이 모여들었다. 높은 봉우리를 자세히 살펴보면 도장(道場)이 자리해 있었는데, 꼭대기에는 구름 속에 세워진 건물과 정자, 누각이 늘어서 있었다. 그중에는 초가집이며 대나무로 지은 소박한 건물들도 있었다. 경건한 분위기에 자리한 높은 누각들과 작은 다리 밑으로 흐르는 물길이 한데 어우러져, 신선이 사는 듯한 분위기가 완연했다. 이를 옥회산의 성경(*聖境: 선인들이 사는 신성한 곳)이라 일렀다.

구풍은 위무외와 위원생 부자를 데리고 친히 옥회산 곳곳의 아름다운 풍경을 소개해주었다. 다른 수행자들이 없는 상황에서, 이들은 신기한 풍경도 스스럼없이 다가가 구경할 수 있었다. 이는 두 사람의 호기심을 충족시켰다.

그동안 그들은 선학이 날아다니는 것을 보고, 안개 낀 노을이 실처럼 손바닥 안의 병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도 보았다. 때때로 수행하는 동자며 엄숙하고 위엄이 넘치거나 온화하고 친절한 선장들도 만났다.

어떤 이들은 도저히 인간 세상의 음식을 먹고 사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고, 또 어떤 이들은 바깥의 일반 백성들처럼 생기가 넘치는 이들도 있었다.

학고(鶴姑)는 20여 년간 옥회산을 지킨 선수(仙獸)로서, 그녀의 책임은 옥회산 경내가 아니라 바깥의 운무가 잔뜩 낀 산맥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비록 이들 부자와 함께하지 못했지만, 구풍이 이들에게 마음 써 주는 것을 보고 안심할 수 있었다. 그 후 그녀는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던 위무외의 일행들에게 이만 돌아가도 된다고 말을 전했다.

들어갈 수 없는 금지된 구역이 몇 있긴 했지만, 부자가 간략히 옥회산의 풍경을 돌아보고 나니 며칠의 시간이 지나 있었다. 이는 구풍이 바람을 타고 그들 부자를 데리고 다닌 것보다 직접 두 발로 걸어 다닌 곳이 많기 때문이었다.

이후 옥회산에서의 수행 생활 중에는 누구도 이들을 데리고 날아다니지 않을 것이었다. 그러니 아주 오랫동안 이들은 두 다리에 의지해 돌아다녀야 할 테고, 이를 대비해 길을 알아 두면 좋을 것이다.

위무외와 위원생은 구풍이 평소에 한가롭게 머무는 대나무집 앞에 도착하여, 대나무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원생아, 되도록 다른 선장들을 귀찮게 하면 안 된다. 만약 길을 잃거나 혼자서는 나오지 못할 곳에 들어가게 된다면, 큰 소리로 학 도우(道友)들을 부르면 그들이 도우러 올 것이다.”

“알겠습니다, 사부님!”

위원생은 일찍이 있었던 불안함이 이제 완전히 사라진 뒤였다. 며칠이 지난 데다가, 사부인 구풍도 그에게 따뜻하게 대해 주었기 때문에 왕성한 활력이 아이에게서 다시 솟아오르고 있었다.

구풍은 원생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위원생은 2백 년에 가깝게 수행해 온 이래, 그가 처음으로 받은 제자였다.

수선자들이 대부분의 일에 담담한 것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마음이란 때때로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이전에 구풍도 자주 자신의 사형들을 도와 그들의 제자에게 가르침을 준 적이 있었지만, 한 번도 자신의 제자를 받아들이겠다는 생각은 든 적이 없었다.

그러나 위원생을 처음 본 순간, 그는 이 아이가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계연과도 관계가 닿아 있는 아이이니, 위무외에게 원생을 제자로 받아들이고 싶다고 전한 후 위원생에게도 본인의 생각을 물어보았다.

이는 당연히 위씨 부자가 바라 마지않는 일이었다. 계 선생과 알고 지내는 선장이시니 분명 출중한 능력을 지니고 계실 것이고, 그들과 가장 친밀하기도 했다. 게다가 구 선장은 원생 하나만을 제자로 삼았으니, 연령대가 다양한 제자를 거느린 선장의 밑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훨씬 총애를 받을 것이란 생각도 있었다.

구풍은 이렇게 위원생에게 일러준 후, 위무외에게 말했다.

“위 선생, 원생의 부친으로서 부디 이 아이를 자주 돌보아 주십시오. 원생과 함께 옥회소련(玉懷小練)을 수행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선생이 속세의 먼지 속에 살아온 지 수십 년이 되었으니, 사념과 욕망이 강하고 영이 깨끗하지 못해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선장님. 제 아들과 함께 수행할 수 있는 것만 해도 제게는 이미 커다란 복입니다!”

위무외는 진심을 담아 감사하며 공수했다. 이곳에 온 후 그는 자신이 옥회산의 제자로 들어온 것은 아니지만, 함께 수행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구풍 선장의 말처럼 성취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고 해도, 돌파구만 찾을 수 있다면 지금보다 진일보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사실 위무외처럼 제자는 아니지만, 함께 수행하도록 허락받은 이들이 옥회산 역사에서는 드물지 않았다. 다만 수행으로 좋은 결과를 얻은 이들이 많지 않을 뿐이었다.

위무외가 함께 수행하는 것을 허락받게 된 데에는 가장 먼저 계연의 체면을 보아준 덕이 컸고, 둘째로는 위무외의 사주가 흐릿하다는 이유가 있었다. 보통 범인(凡人)이 선인에게 거둬져 입문하게 되면, 그의 사주가 모호해진다. 그런데 아무 이유 없이 보통 사람이 이런 사주를 갖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은 일이었다. 이에 그들도 위무외에게 기회를 주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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