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8화. 한 번만 보게 해주십시오
“사부님, 언제 계 선생님을 뵈러 가시나요?”
위원생은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이렇게 물었다.
“너와 네 아버지가 이곳에 적응하고 나면 곧바로 영안현으로 갈 것이다. 네가 잘 지내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떠나면, 만약 계 선생께서 원생이 어떻게 지내냐 물었을 때 내가 어찌 대답하겠느냐! 하하!”
구풍은 이렇게 대답하면서, 머릿속으로는 처음 계 선생을 만났을 때를 떠올리고 있었다.
“참, 네 대사백(*大師伯: 사부(師父)의 형) 밑의 사형과 사저(師姐)도 예전에 계 선생을 뵌 적이 있었다. 특히 네 의의(依依) 사저는 계 선생에게 너처럼 좋은 인상을 남긴 모양이니, 자주 가서 친하게 지내거라.”
“네. 사부님, 저는 언제 하산하여 어머니를 뵈러 갈 수 있습니까?”
구풍은 제자의 말을 듣고 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제 막 입산했는데 벌써부터 나갈 생각을 하다니.
“최소한 네 수행의 기초를 닦은 다음이어야 한다. 게다가 옥회산이 수사들에게 속세와의 연을 끊으라 하지는 않는다지만, 너도 산중에서는 흘러가는 세월을 모른다(山中無歲月)는 말을 기억해야 한다. 언젠가 네 어머니도 노화, 또는 병으로 이 세상을 떠날 것이고, 그 후에는 너도 위씨 집안에 대해 특별한 감정이 들지 않을 것이다.”
“아니에요!”
위원생은 머리를 발랑고(*拔浪鼓: 양옆에 구슬이 달린 줄을 매어 흔들며 노는 작은 북)처럼 흔들었다.
“어쩌면 제가 저희 집안에 대해 잊고 살게 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러나 제 어머니와 유모는 꼭 기억할 거예요. 병이 나면 보러 가고, 나이 들어 세상을 떠나실 때도 임종을 지켜드릴 거예요. 참, 소취도요!”
구풍은 고개를 숙여 자신의 제자를 바라보았다. 아이의 눈은 속세의 잡념 없이 깨끗하기만 했다.
“되긴 된다만, 쌓은 수행이 너무 얕은 자가 속세가 깊이 관여하면 쉽게 미혹되느니라.”
그가 한 말은 다른 이들도 자주 쓰는 가르침을 담은 말이었으나, 위원생은 작은 얼굴을 치켜들고 눈썹을 찌푸리며 반박했다.
“계 선생님께서 제게 수행에 대한 여러 가르침을 주실 때, 이런 저의 생각에 대해 그분도 매우 찬성하셨어요!”
“오? 계 선생님께서는 어떤 고견(高見)을 갖고 계시더냐?”
구풍의 목소리는 담담했으나, 사실 속으로는 크게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자신과 그 선생의 제자를 가르치는 방법을 한 번 비교해보려는 생각도 있었다.
그들의 대화를 들은 위무외는 마음이 답답해졌다. 비록 구풍 선장의 성격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제 아들놈은 어찌 선장의 말에 저리 대놓고 맞선다는 말인가? 만약 그 자신이었다면 좀 더 듣기 좋게 바꿔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위원생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는 맑은 영혼을 가졌기 때문에, 자신의 사부가 이로 인해 자신을 꾸짖지 않으리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어떤 부담감도 없이 그에게 대답했다.
“계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약 효도를 다하여 그것으로 속세에 빠지게 된다면, 애초부터 수선자가 되기에 적합하지 않다. 속세에 발을 들이지 않고 어찌 속세와 연을 끊는단 말이냐? 겨우 그 정도도 두려워하면서 어찌 그 길을 걸으려 하느냐? 세상천지에 불효하는 신선(神仙)은 없다, 라고 하셨어요.”
구풍은 겉으로는 어떤 변화도 보이지 않았지만, 제자가 어른 흉내를 내며 계 선생의 말을 하는 것을 듣고 마음속으로 전율을 느꼈다.
쉽게 이해되어 별것 아닌 듯 보이는 이 몇 마디에는 곳곳에 마음을 두드리는 ‘고심관(叩心關)’에서부터 ‘고심겁(叩心劫)’의 도리가 숨겨져 있었다. 구풍은 제자의 맑은 눈빛에서 이미 이를 완전히 이해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내 제자는 장래에 큰 인물이 되겠구나!’
“대도(大道)일수록 그처럼 간단한 법이지. 계 선생의 말씀이 옳구나!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 기초부터 쌓는 게 먼저다.”
“네…….”
* * *
옥회산 내부에서는 몇 번에 걸쳐 의논한 뒤, 최종적으로 서로 구면인 구풍을 그 신비한 계 선생에게 홀로 보내기로 했다.
비록 계 선생이 어디서 온 사람이고 얼마나 오래 대정국에서 속세를 누볐는지는 모르나, 어찌 됐든 신묘한 진선(眞仙)임이 틀림없었다. 그가 종이학을 구풍에게 보냈을 때 그 안에 비록 구풍 혼자 오라는 말은 없었으나, 옥회산에서는 너무 많은 사람을 보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런 위치에 있는 수행자들은 보통 성격이 괴팍하여 예측하기 어려웠다. 게다가 사물을 보는 눈도 다른 수선자들과는 같은 선상에 있지 않을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풍은 오히려 별 부담감을 느끼지 않고 있었다. 예전에 한 번 만난 적도 있는 데다가, 제자의 말을 듣고 나서 계 선생의 됨됨이에 대해 조금은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 *
6월 중순이 되자, 계주의 날씨는 찌는 듯이 더웠다.
거안소각에서 자란 대추나무의 꽃향기는 이미 약해졌고, 가지에 달린 대추도 얼마 없었다. 예전에 잃어버린 대추의 수를 보충한 정도였다. 연한 붉은 색을 띤 수십 개의 대추가 아직 자라는 중이었고, 이로써 나무에는 총 81개의 대추에 달려 있었다.
이날, 계연은 탁자 위에 윤재성이 선물한 바둑판을 펴고서 후원에서 <구천십육국(九天十六局)>을 보고 있었다. 그는 책에 써진 대로 바둑돌을 놓으며 기국(棋局)을 완성해가고 있었다.
계연이 보고 있는 책 속의 기로(棋路)는 바둑의 두 고수가 겨룬 대국을 복원한 것이라 했다. 흑돌과 백돌을 순서에 따라 놓으며, 그는 당시 바둑을 둔 이들에게 저 자신을 대입하여 생각해보고 있었다.
그때, 구풍은 골목을 지나 거안소각의 문 앞에 이르렀다. 아직 문을 두드리기도 전에, 품에 있던 비단 주머니에서 그 종이학이 다시 ‘살아났다’. 종이학은 스스로 주머니에서 나와 날개를 펼치고서, 재빨리 담장 안으로 날아 들어갔다.
탁자 앞에 앉은 계연은 고개를 들어 웃고는, 손을 뻗어 종이학을 받았다. 이 종이학은 그가 많은 술법을 쏟아 넣어 만든 특별한 것으로, 아무래도 그 영특함이 조금 지나친 것 같았다.
쿵쿵쿵-!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자, 계연은 가벼운 목소리로 “들어오세요.”라고 말했다.
구풍은 숨을 한 번 내쉰 다음, 대문을 밀고 들어갔다. 그가 가장 먼저 본 것은 대추나무였고 이어 그 아래에서 바둑을 두던 사람이었다. 계연은 마치 처음 만났을 때처럼 보통 사람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옥회산 소죽각(小竹閣)의 구풍입니다. 초대를 받고 계 선생님을 뵈러 왔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며 마치 후배가 선배에게 하듯이 공손히 읍했다.
계연은 온 신경이 바둑판 위에 쏠려 미처 눈치채지 못하다가, 목소리를 듣고서야 고개를 들고 그를 보았다. 이후 죽간과 손안의 흰 돌을 내려놓은 그는 몸을 일으켜 같은 예로 화답했다.
“구 선생님, 예를 거두세요. 선생과 저는 인연이 있다고 할 수 있겠네요. 비록 누추하지만, 어서 여기 앉으세요.”
구풍은 인사를 거두고 고개를 끄덕인 뒤 돌탁자 앞에 앉았다. 계연은 그를 위해 쟁반 위에서 찻잔을 가져와 그 안에 친히 차를 따랐다.
“이건 좋은 찻잎이에요. 춘혜부에서 생산한 올해의 우전춘(*雨前春: 녹차의 종류 중 하나로, 이른 봄 가장 먼저 딴 찻잎으로 만든 차)이거든요.”
“감사합니다!”
구풍은 찻잔을 들어 한 입 마셨다. 옥회산의 영차(靈茶)와는 비교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확실히 좋은 차였다. 그는 탁자 위의 바둑판을 바라보았다.
“계 선생께서는 바둑을 좋아하시나요?”
“하하! 예전에는 별 흥미가 없었는데, 어쩔 수 없이 공부하게 되었어요. 이제는 좋아한다고 볼 수 있죠.”
구풍은 호기심이 들었으나 그 이상 더 묻지 않았다. 계연이 기국을 복원하는 것을 잠시 지켜보다가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계 선생께서 저를 이곳에 초대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혹 천기각의 소문과 관련이 있습니까?”
계연은 바둑돌을 하나 들어 죽간 위에 쓰인 위치에 내려놓았다. 이로써 흑돌의 공세를 무찔렀다.
“굳이 추측하려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소문이 사실인지는 저도 모르니까요. 그러나 그 소문이 끼친 영향이 적지 않아요. 몇 년 전에 진마가 하나 나타났는데, 마침 저는 통천강의 용왕과 함께 진마를 만나게 되었죠. 그분과 함께 진마에게 맹세를 받은 후 대정국을 떠나도록 했었지요.”
계연은 검은 돌을 쥐고서 고개를 들어 구풍을 바라보다가, 탐색하듯 한마디 물었다.
“그러나 이번에 선생을 모신 것은, 사실 무리한 부탁을 하나 드릴 것이 있기 때문이에요.”
구풍은 마음속으로 ‘역시 이 사람이었군!’하고 생각한 뒤, 그의 말에 대답했다.
“편히 말씀하십시오, 계 선생님.”
“다름이 아니라, 칙령에 대해 제가 조금 연구해 보았는데, 용왕에게 듣기로 마침 옥회산에 진짜 산악 칙봉 부적이 있다지요? 만약 제가 그것을 한번 보고 싶다면, 무언가 조건이 있습니까?”
구풍의 안색이 약간 변하는 것을 보고 계연은 서둘러 말을 이었다.
“저도 산악 칙봉 부적이 옥회산에 무척 중요한 거라는 걸 알고 있습니다. 만약 오늘 다른 분과 함께 왔다면 저도 묻지 않았을 것이나, 구 선생 혼자 오셨으니 저도 오랜 벗과 사담하는 기분으로 한 번 물어본 것입니다!”
계연이 이렇게 말하자 구풍은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 이에 ‘진선’을 만난 부담감도 점차 줄어들기 시작했다. 그는 대놓고 대답하지 않고, 그가 더 관심 있는 일에 대해 질문했다.
“실례지만 한 가지만 여쭙겠습니다. 계 선생님과 통천강 용왕은 어떤 관계입니까?”
구풍의 도력으로는 옥회산에서도 ‘진인’으로 대접받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옥회산 옥주봉(玉鑄峰)에 ‘항용진(抗龍陳)’이 새겨져 있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 이는 바로 그 진룡을 막아내기 위한 것이었다.
구풍은 그의 사부가 예전에 옥회산과 그 진룡의 관계가 좋지 못하다고 했던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2백여 년 전 자옥 사조(*師祖: 사부의 스승)께서 그 용에게 미움을 산 적이 있었는데, 진룡으로 거듭나고 나서 옥회산에 복수하려 했다는 이야기였다. 이는 옥회산의 역사 중에서도 큰 위기에 속했다.
비록 그 후 오랫동안 아무 일도 없었지만, 옥회산에서는 경계를 완전히 내려놓지 않고 있었다.
이를 들은 계연도 양측의 관계를 원만하게 만들고 싶었다.
“저와 응 선생님은 좋은 친우 사이입니다. 예전에 비를 피한 동굴에서 책을 읽을 때 우연히 만나 알게 되었지요. 얼마 전에도 이곳에 왔었어요. 아, 그러고 보니 지금 앉아 계신 그곳에 앉으셨었어요.”
구풍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내려다보았다. 잠깐 의자를 바꿀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안심하세요, 구 선생님. 진룡이 옥회산에 찾아갔던 것은 이미 끝난 일이에요. 응 선생께서 비록 재고 따지는 걸 좋아하는 성정에, 옥회산을 마음에 들어 하지는 않지만, 그 정도의 도량은 있는 분이세요. 직접 제게 그 일은 이미 끝난 일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이를 들은 구풍은 기뻤으나, 몸을 앞으로 기울이고는 신중하게 한 번 더 물었다.
“계 선생님, 그게 정말입니까?”
계연은 그를 한번 쳐다보고는, 손안의 흑돌을 바둑판 위에 내려놓았다.
“만약 응 선생께서 무료함을 참다못해 할 일이 없어 저를 속이신 것이 아니라면, 정말입니다.”
이 말을 들은 구풍의 눈썹이 긴장을 내려놓은 듯이 펴졌다. 그는 계연을 향해 공수하며 말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계 선생님!”
구풍이 보기에 그의 이 대답은 옥회산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오래 지속된 상황을 드디어 끝낼 수 있게 된 것이다. 믿을 만한 사람에게서 들은 말이니 틀림없을 것이다. 게다가 용왕에게서 그 말이 나오기까지 계 선생이 옥회산을 도와주었을지도 몰랐다.
‘이미 끝난 일’이라는 말을 했다지만 사실 최근에야 끝난 일지도 모르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