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170화 (170/892)

170화. 무어라 말할 수 없는 느낌

구풍이 떠나자 거안소각의 윤청과 호운은 그제야 편히 긴장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계연은 입구에 서서 아직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윤청은 고개를 돌려 훈장이 학생을 꾸짖듯 호운에게 말했다.

“너는 정말! 여우가 온종일 그렇게 큰 소리를 내고 다니면 어떻게 해! 계 선생이 여기 있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다른 곳이었어 봐. 다른 사람이 여우가 두 다리로 걷고 뛰며 말까지 하는 걸 보게 되면 놀라 까무러칠걸! 그 후에는 호미며 쇠갈퀴며 전부 가지고 마을 사람들을 불러 모은 뒤에 널 때려죽일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 마! 게다가 내가 그자들을 두려워하겠어? 내 발톱과 이빨은 꽤 날카롭다고!”

호운은 허세를 부릴 요량으로 날카로운 발톱을 휘두르며 윤청에게 맞섰다.

“오, 네가 그렇게 대단하단 말이지? 그럼 왜 길에서 개를 만날 때마다, 내 등 뒤에 그렇게 숨는 거야?”

윤청을 입을 삐죽이며 무시하는 눈빛으로 붉은 여우를 바라보았다. 이에 호운은 고양이처럼 털을 빳빳이 세우고, 입을 벌려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낸 뒤 한 번 붙자는 태도를 보였다.

“쯧쯧…….”

혀를 차던 윤청도 소매를 걷어 올리며 튼실한 팔을 드러냈다.

“와 봐, 누가 누굴 때리겠다고!”

사람과 여우는 이렇게 한참을 대치했지만, 누구도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자, 그들은 점차 버티기 힘들어졌다. 윤청이 그들을 지나 바둑판 앞에 돌아가 앉은 계연을 바라보자, 계 선생님께서는 인간과 여우의 대전(大戰)을 말릴 생각이 조금도 없는 듯했다.

“됐다, 됐어. 내가 너처럼 막 입을 뗀 여우랑 뭘 다투겠어. 어쨌든 나는 글 읽는 서생이니까!”

윤청은 흥 콧소리를 내며, 걷은 소매를 다시 내렸다.

“됐어! 내가 너보다 나이도 많은 데다 이제 글도 읽으니, 너 같은 어린애와 다툴 순 없지!”

호운도 나는 너와 다르다는 듯이 이렇게 말했다.

계연은 그 둘을 잠시 바라보다가, 고개를 젓고는 다시 바둑돌을 내려놓기 시작했다.

이전 세대의 바둑 고수들의 대국을 공부하는 것은 다른 이들에게는 바둑 기술을 닦고 기르는 데에 도움이 되는 일이겠지만, 계연에게 이는 일종의 수행이었다.

경기부에서 대국을 관람했던 것처럼, 두 돌이 세력을 맞설 때마다 음양의 변화가 드러나 보였다. 흑과 백이 서로 뺏고 뺏기는 과정에서도 상생의 법칙을 볼 수 있었다.

고수들의 대국일수록 계연은 더욱 강한 느낌을 받았다. 현장에서 관람하는 것이 가장 좋지만, 진정한 바둑 고수는 신선만큼 찾기 어렵기도 했다. 그래서 이렇게 전해지는 서적으로나마 시공을 뛰어넘어 대국을 느껴보는 것이고, 이는 또한 아주 좋은 수행법이기도 했다.

윤청과 호운은 서로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탁자 곁으로 가서 앉았다.

“계 선생님, 방금 그분은 누구세요? 호운도 그분이 선생님 댁에 있는 걸 알아채지 못했어요. 게다가 만약 보통 사람이라면, 여우가 말하는 것을 보고 놀라 쓰러졌을 텐데요!”

“음음!”

호운이 한쪽에 서서 고개를 끄덕였다.

계연은 약간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알면 되었다. 그러니 다음에는 조심하렴. 특히 너 말이야.”

계연은 고개를 돌려 여우를 바라보았다.

초점이 없는 흐릿한 눈을 마주하자, 여우는 온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내가 여기에 있을 때는 괜찮아. 그러나 바깥에서는 안 돼. 이 세계에는 선량한 요괴가 아주 적고, 자신이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 요괴는 더욱 적지. 아까 윤청이 한 말이 맞단다. 네게 어느 정도 능력이 생기기 전에는 밖에서는 자중하는 것이 좋겠다.”

여우가 대답할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것을 보고, 계연도 더는 말하지 않았다.

“하하, 그…… 계 선생님. 저희는 먼저 가서 식사를 준비할게요. 다 되면 여기로 가져올 테니 함께 드세요. 이만 가보겠습니다!”

윤청은 오늘 계 선생님의 기분이 어쩐지 좋지 않은 듯하여, 호운에게 눈짓을 하고는 함께 나갔다.

계연은 손에 쥐고 있던 돌을 내려놓고, 사람과 여우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몰라도, 그렇게 오래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 * *

대략 한 시진 정도 후에 구풍은 옥회산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는 돌아오자마자 자신의 제자를 보러 갈 새도 없이, 사형과 함께 서운루의 임 사숙을 찾아갔다.

서운루는 옥회산의 한 특수한 건물로, 내부에 수많은 법진(法陳)을 설치하여 수사들이 마음을 비우고 정신을 수련하도록 도왔다. 이곳은 옥회산 제자들이 폐관(閉關)하여 입정(*入靜: 마음을 한 경계에 정하고, 고요히 생각하는 것)하는 장소였다.

옥회산에서는 20년마다 두 명의 대진인(大眞人)이 돌아가며 서운루를 지키게 했다. 수사들이 폐관하여 입정하다가 주화입마(*走火入魔: 심리적인 원인 등으로 인해 몸속의 기가 뒤틀려 통제할 수 없는 상태)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부차적인 목적이고, 더욱 중요한 것은 20년간 옥회산의 일들을 나서서 처리하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서 선문들은 어떤 서책에 근거를 두지 않고, 크게 두 분류로 나뉘었다. 첫째는 종파(宗派)처럼 운영되는 종문(宗門)으로, 맨 위에 장교(掌敎)를 두어 선문의 모든 일을 관장했다. 옥회산은 두 번째 종류에 속하는 선문으로, 장교와 같은 직위는 없고 도력이 일정 수준에 오른 이들이 순서대로 옥회산을 관리하는 식이었다.

이번 20년 동안은 마침 구풍과 양명의 사부와 사숙이 서운루를 지키고 있었다. 이들은 그동안 폐관 수련을 할 수 없고 마음대로 옥회산 밖으로 나갈 수 없으며, 무슨 일이 생기면 다른 고인(高人)들이 신경 쓰지 않도록 솔선하여 처리해야 했다.

‘대진인’이라는 말은 그들의 수행이나 법력의 힘에 따라 주어지는 이름은 아니었다. 법력은 여러 기준 중의 하나일 뿐, 그보다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수행을 쌓으며 그 심오한 이치에서 진의(眞意)를 얻었는지였다. ‘진(眞)’자가 의미하는 바가 깊고 중하기 때문에, ‘진인’이라고 불리는 이들도 그들이 가진 힘이 강하고 약함에 따라 나뉘기보다는, 수행의 진의를 얻었는지를 더욱 중요하게 보았다.

그렇기에 항렬이 아주 높은 고인들이라도, 대부분은 그저 ‘대진인’이라 불릴 뿐이었다.

물론 그 ‘대진인’이라는 것도 옥회산 안에서만 부르는 명칭이었다. 정통 수선계(修仙界)에서는 수행에 어느 정도 성과가 있는 자들만이 ‘진인’이라고 불릴 수 있었다.

이번 대의 두 대진인은 이전 사람들만큼 한가하지 않았다. 퍼진 천기각의 소문이 사실인지 아닌지도 아직 판별하지 못하였기에, 배 진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구풍이 오늘 계 선생을 뵙고 돌아온 일도 절대 사소한 일이 아니었다.

서운루의 꼭대기 층에서는 청색 옷을 입은 임 사숙이 구풍이 오늘 일을 간략히 보고하는 것을 듣고 있었다. 깊은 생각에 잠긴 임 사숙의 주름진 눈썹이 펴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구풍과 양명은 아래쪽에 앉아 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일은 가벼이 볼 만한 사안이 아니다. 이는 나 혼자 결정할 수 없는 일이니, 옥주봉의 도우(道友)와 사장(師長)분들과 함께 상의해 봐야겠다!”

청색 옷의 남자가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너희도 함께 가자.”

세 사람은 함께 서운루를 나와 옥회산 동쪽의 구름과 노을빛이 둘러싼 곳으로 날아갔는데, 그곳은 옥회산의 금지 구역 중 하나였다.

자욱한 노을빛 속에서 강풍(*罡風: 도가에서 말하는 하늘 가장 높은 곳에서 부는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지나, 마침내 빛을 뚫고 꼭대기는 희게 빛나고 아래로 내려갈수록 신록이 뒤덮인 거대한 산봉우리가 나타났다. 바로 옥회산의 옥주봉이었다.

이곳은 구풍과 양명도 몇 번 와보지 않은 곳이었다. 그마저도 사부와 사숙이 이곳에서 수행할 때에 몇 번 급한 일로 인해 들른 것이었다.

옥주봉에는 옥(玉)으로 된 전각 여러 채가 곳곳에 분포되어 있었고, 그 꼭대기에는 정전(正殿)이 세워져 있었다. 보통 이 정전에는 아무도 머무르지 않지만, 지금은 임불동(任不同)이 자신의 두 사질(師侄)을 데리고 그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전체가 백옥(白玉)으로 지어진 대전(大殿)의 주위는 눈처럼 새하얀 기둥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대전의 꼭대기에는 금색으로 빛나는 커다란 종이 걸려있었다.

임불동은 결인(*結印: 수행자가 손가락을 여러 모양으로 구부려 힘이나 깨달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하여 주문을 외우고는, 검지로 연이어 꼭대기의 금종을 향해 법광(法光)을 쏘아 보냈다.

댕…… 댕…… 댕…….

종소리가 울리는 순간 안개나 그물처럼 빛이 퍼져 나갔고, 종소리도 옥주봉 전체로 울려 퍼졌다.

구풍과 양명은 뒤에 서서 서로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들처럼 오래 수행을 쌓고 사부가 된 이들도, 이 시각 서로의 눈에서 감출 수 없는 긴장감을 읽었다.

종소리는 총 6번 울렸는데, 이는 폐관하여 수행하는 이들을 제외하면 모두 옥궁전(玉穹殿)으로 와서 중요한 일을 논의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만약 종이 9번 울리면, 이는 옥회산의 존망이 걸린 중요한 일이라는 뜻이었다.

잠시 후, 대전의 각 방향에서부터 빛무리가 날아왔다. 어느새 주위에 남녀 몇이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들의 연령은 청년부터 노인까지 다양했다. 임불동은 두 사질을 거느리고 일일이 그들에게 공수하며 인사했다.

도착한 이들은 모두 열 한 명으로, 이들 중 가장 높은 이는 임불동의 사조(師祖)와 같은 항렬인 ‘거원자(居元子)’라는 호를 가진 노인이었다. 그는 8백 살이 넘은 나이로, 그간 닦아온 수행이나 법력이 어느 정도인지 누구도 짐작할 수 없었다. 적어도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옥회산에서 득도하여 진선(眞仙)이 되기에 가장 가까운 자였다. 다만 진정한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본인만이 알 것이었다.

그보다 더 나이 든 이는 없었는데, 보통 사람들 눈에 ‘선인’으로 보이는 이들도 사실은 자연스러운 생로병사의 흐름을 거스를 수 없기 때문이었다.

“임 도우께서 뭔가 결정하기 어려운 일이라도 생기셨습니까?”

“상대하기 어려운 강적이라도 나타난 겁니까?”

“어찌 임 도우 한 분만 있습니까? 배 도우께서는요?”

대전에 도착한 이들은 자리에 앉으며, 각자 질문을 던졌다.

“최근에 큰일이 몇 번 생겼는데, 그것이 모두 우리 옥회산과 관련되어 있어 어쩔 수 없이 여러분을 놀라게 했습니다.”

임불동은 천천히 천기각의 소문에서부터 병주에 나타난 진마와, 구풍이 오늘 영안현에 갔던 일들을 모두 알려주었다. 계연이 산악 칙봉 부적을 보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그 외 다른 것들은 구풍이 나서서 설명했다.

갑자기 알게 된 소식이 적지 않아, 전달이 끝나자 모인 사람들은 모두 참지 못하고 제각기 할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 용왕이 정말로 예전의 일을 덮겠다고 했다는 말입니까?”

“그 계 선생은 도대체 어디서 나타난 분입니까? 우리 대정국에 그런 진선(眞仙)이 숨겨져 있었다니요?”

“성은 계이고, 이름은 연이라……. 어찌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을꼬? 가명(假名)인가?”

“그런 것 같지는 않습니다.”

“진선의 말대로라면, 그 용왕이 정말 그 일을 지나간 일로 여긴다는 말이군요.”

“하지만 진선의 말이 전부 진실이란 법이 어디 있소?”

“그건…….”

“그럼 천기각의 일은요? 마귀가 감히 옥회산 수사를 습격하다니!”

“이 일은 잠시 진위를 판별할 수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산악 부적입니다. 그래서 그분께 보여주는 겁니까?”

“그것은 우리 산문(山門)의 보물인데, 어찌 그리 가볍게 다른 이에게 보여줄 수 있단 말이오!”

“맞는 말이오. 아무리 진선이라 해도 그리 쉽게 보여줘선 안 된다고 생각하오!”

“나는 동의하지 않소. 그 계 선생은 구 도우께 자신이 칙령에 정통하다고 했다 하니, 어쩌면 그 부적을 어찌 운용하는지 알고 계실지도 모르오. 만약 그분이 그것을 우리 옥회산에 가르쳐 주시기만 한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요. 술법은 절대 쉽게 전해지지 않소. 그분이 부적을 어찌 사용하는지 안다고 해도,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바쳐 그 대가를 치른다는 말이오?”

모두가 한 마디씩 던지며 토론을 시작하니, 때때로 말다툼도 일어났다. 구풍과 양명은 사숙의 곁에 가부좌를 틀고 조용히 앉아 있었다.

“구풍 도우께서 보기에 그 진선이라는 분의 행동거지가 진실하고 소박하다는 점 빼고 또 어떤 특이한 점이 있었소?”

계속 침묵하고 있던 거원자가 돌연 구풍에게 물었다. 그의 노쇠한 목소리에 실내에 자리한 이들이 모두 말을 멈췄다.

사실 구풍은 계연이 ‘감상에 젖었던’ 그 일을 별로 얘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잠시 망설였다. 그래서 처음에 사숙에게 이야기할 때도 간단히 언급만 했던 일이었다. 그리고 지금 거원자처럼 태사조(太師祖)의 항렬에 속하는 이가 알고 싶어 하는 것은, 바로 그 일과 같은 특별한 일을 일컫는 것이었다.

“거원자 도우께 아룁니다. 사실 제가 오늘 특이한 경험을 했습니다…….”

구풍은 이를 꽉 깨물고, 계 선생에 관한 일을 좀 더 알고 싶어 일부러 자신이 어릴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이야기를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계연이 그의 말에 답하여 지나간 시간에 대한 감상에 빠졌을 때에 관한 대목에 이르자, 긴장한 기색이 드러났다.

“그 순간 저는 그분의 거처가 천지 바깥의 아득한 우주 안을 떠도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천지 만물이 지척에 있는 듯하며, 대도(大道)가 변하는 것이 마치 창해상전(*滄海桑田: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가 되었다는 뜻으로, 세상이 몰라볼 정도로 바뀐 모습을 이르는 말)과 같았고, 더욱 머나먼 곳은…… 차마 볼 엄두가 나지 않아…….”

구풍이 이렇게 말하는 동안, 그의 몸에서는 땀이 흐르기 시작하며 기운이 불안정하게 변했고, 그의 법력이 어지러워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우웅……. 웅……!

옥궁전의 꼭대기에 있는 금종이 돌연 흔들리며, 미약하게 떨리는 소리가 났다.

“이런, 더는 말하지 마시오! 도심(道心)을 진정하는 것이 우선이오!”

“영을 잘 붙잡고, 구 도우(道友)는 어서 입정(入靜)하도록 하게!”

그의 곁에 있던 임불동과 다른 수사들은 모두 나서 법력을 쏟아부었고, 어떤 이는 옥궁전이 바깥 세계와 이어진 기운을 끊어냈다.

구풍과 같은 도력을 가진 자에게 이런 증상이 나타난 것은 아주 좋지 않은 일이었다. 이에 주변 수사들은 모두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었고, 당시 구풍이 보고 느낀 것이 무엇인지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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