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화. 감탄
자리한 여러 명의 수사는 함께 힘을 모아 구풍의 신체 안팎의 기운을 진정시켰다. 다른 수사들은 옥궁전의 진법을 이용해 바깥 세계와 이어지는 기운을 끊어냈다.
그러자 ‘우웅’ 떨리던, 건물 위에 달린 금종의 소리가 점차 줄어들어, 잠시 후에는 완전히 조용해졌다. 이와 동시에 구풍의 기운도 평온을 되찾아, 그의 신체는 입정 상태에 접어들었다. 법광(法光)에 뒤덮인 그의 몸은 잠시 바깥 세계와 단절되어 있었다.
방금 상황은 마음에 심마(*心魔: 마음속의 미움, 두려움 등 부정적인 생각을 잘 다스리지 못해 생기는 것)가 생긴 것도 아니고, 이리 많은 옥회산 수사가 함께 있는 옥주봉의 옥궁전 안이었으니 외마(*外魔: 외부에서 온 원인을 알 수 없는 힘. 심신의 안정을 방해하거나 침범함)의 침입도 아니었다.
자리에 있던 수사들은 모두 긴장과 걱정으로 눈썹을 찌푸렸다. 임불동은 곁에 있던 양명을 보다가 다시 법광에 둘러싸여 세상과 단절된 구풍을 바라보았다.
“진선의 능력이 정녕 이토록 경이로울 정도라는 말인가?”
다른 수사들도 놀란 와중에도 호기심을 숨길 수 없었다.
“계 선생이 세상일의 변화에 잠시 슬퍼했던 것이, 그런 기이한 현상을 일으키다니……. 그분의 의식 세계가 자신도 모르게 드러나 보인 것이 아니겠습니까?”
“대도가 변하는 것이 마치 창해상전과 같았다라…….”
임불동이 말했던 것처럼, 현재 이곳에 모인 이들은 모두 경외심을 느끼고 있었다.
구풍이 그분의 곁에 앉아 느꼈던 자신의 감상을 이야기했을 뿐인데, 마치 수행이 깊지 않은 자가 강제로 천기(天機)를 누설한 듯한 위험한 상황이 닥쳐왔다. 하지만 그와는 확실히 다른 상황인 것이, 구풍이 그간 쌓은 수행으로는 그 정도의 상황이 닥칠 것을 알고 있었어야 했다. 게다가 바깥의 금종이 울린 것도 기이하기 짝이 없었다.
거원자는 오른손으로 수염을 쓰다듬으며 왼손으로는 손가락을 접으며 점을 쳐 보았다. 그의 눈빛은 이리저리 불안하게 흔들렸다. 여러 번 시도해보아도 어떤 것도 알아낼 수 없었다. 그리고 이때 다른 도우의 말이 끝나자, 그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이상해, 뭔가 이상해. 진선 정도의 고인(高人)이면 확실히 그 신묘함이 남다르고 어떤 것도 예측할 수 없을 정도이긴 하오. 그러나 이 늙은이도 어느 정도 보고 들은 것이 있소. 그러나 계 선생 정도의 이런…… 이건 상식을 너무 벗어나지 않는가? 이건 마치…….”
거원자는 법광에 싸인 구풍과 옥궁전 주위를 둘러보더니 더는 말을 잇지 않았다.
옥회산 수사들은 이미 그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있었다.
“도묘진선(道妙眞仙)에 대한 것은 함부로 추측해선 안 되오! 게다가 진선에 든 이들에게는 어떤 고하(高下)도 나누지 않소!”
“맞는 말이오. 계 선생께서 옥회산을 괜찮게 보고 계시고, 우리와 용왕의 묵은 원한을 풀어주기까지 하셨으니, 이는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오.”
이 말을 듣고 다른 수사들은 어떤 반박도 하지 않았다. 옥회산 수사들은 아무래도 개인적인 원한이 섞여 있으니 용왕이 스스로 마음 넓게 이 일을 놓았다고 믿기보다는, 계연이 이 일에서 어떤 작용을 했다는 쪽을 더 믿고 있었다.
“음, 동의하는 바요. 산악 부적은 보여줄 수 없으니, 내 생각에는 우리 옥회산에서 그간 부적에 관해 연구해온 것을 계 선생께 보여주는 것이 좋을 것 같소!”
“그것도 그리 타당하지 않은 듯하오. 칙령만 연구해 온 진선이 그것을 알아볼 수 있겠습니까?”
“이는 계 선생이 구 도우에게 말했다시피, 개인적으로 한 번 물어본 것에 불과합니다. 이는 곧 우리에게 그분의 마음을 드러낸 것입니다. 자고로 예를 차리는 것보다 그 뜻이 더 중요하다 했습니다. 계 선생께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이 어떻습니까? 저희가 이미 진지하게 토론을 했지만, 원하시는 대로 부적을 보여 드리긴 어렵고 다만 이것으로 저희의 성의를 보이는 것이라고요.”
“음, 일리 있는 말입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합시다!”
* * *
구풍이 깨어났을 때는 이미 한 달가량이 지나 있었다. 그동안 그의 사형인 양명진인은 그를 돌보느라 옥궁전에 자리를 잡았고, 다른 수사들은 이미 떠난 뒤였다. 임불동도 해야 할 직무가 많아 이미 서운루에 돌아간 후였다.
아직 바깥의 형세가 좋지 않지만, 그동안 옥회산에 벌어진 일이 많아 몇몇 대진인이 옥주봉을 떠나 산문으로 돌아와 원래의 거처에 자리를 잡았다. 만약 무슨 일이 일어나면 재빨리 반응하기 위해서였다.
일전에 계연이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길 원치 않는다고 명확히 말한 바 있기에, 옥회산에서는 어떻게 다시 계연과 접촉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계연과 구면인 구풍이 다시 방문하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았다. 이후 양쪽이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좀 더 알게 된 후에는, 계연을 옥회산에 초대하여 옥회산 수사들이 진선을 만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게다가 사실 옥회산 사람들은 딱 잘라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자부심 같은 것을 갖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거안소각으로 옥간(玉簡)을 전하러 가는 것은 다시 구풍의 일이 되었다.
사실 입정하여 의식이 혼미했던 구풍은, 거안소각에서 났던 그 명쾌한 바둑돌 놓는 소리를 다시 한번 듣고 깨어난 것이었다.
다른 이들이 우려하던 후유증은 다행히 나타나지 않았다. 원래는 거안소각에서 일어났던 일을 다시 생각해보기도 두려웠으나, 옥궁전에서 억지로 그때의 기억을 되새겨 보다가 예상치 못한 수확을 얻었다. 분명 위험하긴 했으나, 마음을 진정시킨 후에는 깨달음이 한층 더 깊어졌으니 전화위복이라 할 수 있었다.
거원자는 그간 산악 부적에 관해 연구해 온 서적을 직접 골라, 구풍에게 영안현으로 가져가도록 했다.
그리하여 7월 말, 계연은 옥회산에서 보내온 선물을 받게 되었다.
구풍은 옥간 세 개를 남긴 뒤, 계연과 간단히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갔다. 계연과 교류하기 싫었던 것이 아니라, 그의 수행에 진전이 보여 얼른 산으로 돌아가 수행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계연은 사실 옥회산에서 자신에게 산악 부적을 보도록 허락해주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하지만 보아하니, 자신의 기대가 너무 컸던 듯했다. 하긴 그들이 몇 차례나 보았다고 벌써 자신을 믿고 옥회산의 보물을 보여주겠는가?
그러나 이 옥간들은 계연의 생각보다 더욱 신묘했다. 한 옥간 위에 적힌 칙령에 관한 연구는 비록 약간 난해하고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그 오묘한 깊은 뜻을 숨길 수는 없었다.
또 다른 두 옥간은 한 번 보자마자 천서(*天書: 알아볼 수 없는 문자로 적힌 책이나, 특수한 조건에서만 글이 보이는 책)처럼 어지러웠다. 자세히 생각해보지 않으면 이해할 수도 없을 정도였다. 계연이 현재 가진 선법에 대한 지식으로는, 자세히 생각해본다 해도 아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이것들은 예전에 그가 보았던 잡서나 수행에 대한 법결서처럼 가르침의 성질을 담은 서적이 아니었다. 그 둘의 난이도가 마치 교과서와 연구 논문 정도의 차이였다.
‘보아하니 진정한 칙령법과 내가 쓰는 칙령음은 큰 차이가 있는 것 같네. 수행의 난이도가 늙은 용의 그 탈인간적인 선술을 고치거나 따라 하는 것보다 어렵겠어.’
이로써 계연은 자신이 예전에 너무나 쉽게 생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산악 칙봉 부적을 이대로 보게 되었다면, 어찌할 바를 몰라 허둥지둥하다가 기회를 날렸을 것이다.
눈앞의 옥간은 진정으로 신묘한 술법이었다. 비록 난해하고 이해하기 어렵지만, 억지로라도 지식을 외우고 흡수하게 된다면 빠르게 자신을 발전시킬 수 있는 보물이나 다름없었다.
이때 후원의 돌 탁자 위에는 백옥으로 만들어진 옥간 세 개가 대추나무 가지 사이로 비쳐 들어오는 햇빛에 투명한 빛을 반사하고 있었다.
옥간은 한 권마다 손가락 두 개의 길이에 손가락 하나 정도의 너비로 이루어진 16개의 옥 서표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중간을 잇는 금실은 마치 옥 위에서 저절로 자라난 것처럼, 옥에 어떤 구멍도 뚫지 않은 채 서표들을 잇고 있었다.
이 옥 서표 하나마다 빼곡하게 작은 글씨로 천록문(天籙文)이 적혀 있었다. 만약 능력이 부족한 자가 본다면, 이는 그저 깨끗하게 빛나는 백옥 서표일 것이다. 옥 서표마다 완성된 천록문의 내용이 들어가 있었는데, 이물전신의 술법으로 읽는 이들은 그 뜻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몇 마디 단어와 문장으로 연구의 본질을 전하다니, 과연 정교하고 오묘하구나!”
이런 술법은 계연조차 감탄하게 했다. 동시에 저자가 쌓은 수행과 그 도력이 상당히 높고 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에 비하면, 늙은 용이 대단하긴 하지만 그의 연구의 대부분은 유희성이 짙어서, 이런 장인정신을 보여주는 옥회산의 술법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계연은 혼잣말로 찬탄을 늘어놓으며, 그중 한 옥간의 천록문자를 손으로 만져 보았다.
다른 잡서들과 달리, 이 옥간에는 저자의 이름이 있었다.
“옥회산 거원자.”
세 옥간 중에서 거원자가 쓴 책은 두 권이었고, 남은 하나는 원완아(苑婉兒)라고 적혀 있었다. 이들은 분명 옥회산의 고인(高人)들일 것이다.
‘옥회산에는 진정한 도묘진선이 있을 수도 있겠어!’
계연은 속으로 이렇게 추측했다. 거원자와 원완아의 옥간이 비슷했고, 최소한 그 두 사람은 법령(*法令: 글자로 남기는 술법)을 부릴 수 있는 것이 확실했다.
계연의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찼다. 그가 얻은 옥간 세 개는 마치 지난 삶에서 최신 휴대폰을 손에 쥐었을 때와 같이 소중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이것들을 소매 안에 넣고, 평소처럼 아침 식사를 하러 집을 나섰다. 걷는 걸음마저 경쾌하였고, 기분 좋은 웃음이 계연의 얼굴에 온통 번져 있었다.
골목에서는 이웃 한 사람이 물통을 들고 지나가다가, 계연을 보고 정답게 인사했다.
“계 선생님, 좋은 아침입니다. 오늘 기분이 좋아 보이시네요!”
“좋은 아침입니다, 하하. 그럭저럭 좋네요!”
계연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 인사했다. 그는 손기의 국수 가게에 도착하여, 마찬가지로 웃는 얼굴로 손기 할아범에게 인사한 뒤 훈툰(*餛飩: 얇은 밀가루피에 고기로 된 소를 넣고 싼 만두를 찌거나 끓여서 먹는 음식)을 한 그릇 주문했다.
자리에 앉은 지 얼마 안 되어, 손기 영감은 금방 커다란 그릇에 훈툰을 담아 가져왔다.
“계 선생님, 여기 훈툰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계연은 공수한 뒤 숟가락을 들어 식사를 시작했다. 기분이 좋으니 훈툰도 더 맛있는 것 같았다.
“손 영감님, 훈툰 한 그릇이랑 만두 두 개 주세요.”
손님 하나가 자리에 앉으며 주인장에게 소리쳤다.
“네, 금방 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