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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기연-172화 (172/892)

172화. 진자주를 떠올리다

잠시 후, 음식이 준비되어 손기는 훈툰을 담은 사발과 만두 두 개를 얹은 작은 접시를 그 손님의 식탁 위에 놓았다. 음식이 나왔는데도 손님의 표정은 근심에 잠긴 듯했다.

“류(劉) 씨, 도대체 무슨 일이길래 이렇게 한숨을 쉬는가?”

“휴……. 제 마누라가 풍한이 들었는데 며칠이 지나도 낫지가 않습니다. 의원이 써준 처방도 쓸모가 없는 듯하니 걱정이 되어서요.”

손기 할아범은 남자와 잘 아는 사이인 듯, 그의 식탁에 함께 앉았다.

“동 의원은 찾아가 보았는가?”

“말도 마십시오. 동 의원이 계시면 제가 이러고 있겠습니까, 진작 그분을 집에 모셨겠지요!”

“음? 동 의원이 아직 안 돌아왔나 보군? 떠난 지 한 달도 더 지났지?”

“네, 그렇습니다!”

조용히 훈툰을 먹던 계연은 그들의 대화를 듣고 식사를 멈췄다. 돌연 이상한 느낌이 들어 그는 곁의 식탁을 쳐다보며 물었다.

“동 의원께서 어디 가셨습니까?”

손기 영감은 계연이 묻는 것을 보고 이렇게 대답했다.

“지난달에 덕원현으로 가셨다고 들었는데, 아직도 돌아오지 않으신 모양입니다.”

“덕원현?”

계연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곧 신의(神醫) 진자주를 떠올렸다.

‘설마…….’

이렇게 생각이 들자, 어떤 감각이 더욱 강렬해졌다. 이에 계연은 참지 못하고 진자주의 이름을 이용해 소매에 숨긴 왼손으로 재빨리 점괘를 쳤다.

잠시 후 계연은 소매 중의 손가락을 멈췄다.

“이런……. 아무리 신의라도 생로병사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구나!”

“네?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손씨 영감은 계연의 혼잣말을 들었지만, 내용을 정확히 듣지 못해 이렇게 물었다.

“아, 아닙니다. 계산할게요.”

계연은 두 세입 만에 훈툰과 국물을 다 비운 뒤, 돈을 식탁에 남기고 떠났다. 방금까지 들떴던 기분이 이 소식을 알고 나서 싹 가라앉았다.

솔직히 말해서, 계연이 그동안 만났던 사람 중에서는 덕원현의 신의 진자주가 가장 존경스럽고 탄복할 만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 낙관적인 태도, 끊임없이 의술을 연구하는 정신, 뛰어난 의술과 고상한 도덕심, 그리고 이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장수한다는 사실 전부가 계연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만약 오늘 계연이 옥간을 보다가 조금만 늦었다면, 류씨 성의 남자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진자주의 상황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진 의원은 존경할 만한 사람이므로, 계연은 지금이라도 한 번 찾아가 볼 생각이었다.

계연은 천우방 쪽으로 가지 않고, 서둘러 성 밖으로 나왔다. 계연은 대략 일 각(*15분)쯤 후에는 영안현성을 나올 수 있었다.

성 밖의 한 길목에서 계연이 종이학을 꺼내어 날개를 다시 잘 접자 종이학은 다시 ‘살아’났다.

“가거라!”

하늘을 향해 던지며 이렇게 말하자, 종이학이 날아올라 영안현으로 돌아갔다. 종이학은 호운에게 향하는 것으로, 후에 호운과 윤청이 돌아와 자신을 찾지 못해 걱정할까 봐 보내는 것이었다.

종이학이 성으로 날아가는 것을 확인한 후, 계연의 모습이 점차 흐릿해졌다. 그와 동시에 운무(雲霧)가 솟아오르더니, 한 줄기 흰색 실처럼 공중으로 올라가 먼 곳으로 날아갔다.

대략 일 각 후, 계연은 덕원현 상공에 다다랐다.

그가 법안을 열어 아래쪽을 내려다보자, 곧 덕원현의 대략적인 기운을 살필 수 있었다. 신령한 빛이 그다지 규모가 크지 않은 한 사당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는데, 성황당은 아니었다.

진자주의 품성에 평생 수많은 음덕(*陰德: 아무도 모르게 행하는 선행)과 양덕(*陽德: 널리 드러내며 행하는 선행)을 쌓았으니, 분명 그가 받을 음수(*陰壽: 죽은 이가 저승에서 누리는 수명)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덕원현은 규모가 작은 현이라 성황당은 없고 토지신당이 하나 있었다. 만약 진자주가 세상을 떠났다면, 앞으로 두 가지 가능성이 있었다.

첫째는 덕승부 저승에서 관리를 파견하여 그를 맞이하러 오는 것이고, 둘째는 진자주의 가족들이 그를 위해 굿을 한 후에 상주가 조기(*弔旗: 죽음을 슬퍼하는 뜻을 나타내기 위하여 검은 헝겊을 달거나 검은 선을 두른 기)를 들고 토지신당에 가서 절을 올리는 것이다. 이 경우 진자주의 영혼은 덕원현 토지신이 이끌고 덕승부 저승으로 데려가게 된다.

계연은 진자주의 수명이 이미 끝났다는 점괘를 얻었다. 만약 저승에서 그의 집으로 관리를 보내지 않았다면, 그의 혼백은 아직 시신 속에 머물러 있을 것이다.

만약 덕승부 저승에서 관리를 보냈다면 또 두 가지 상황이 있을 수 있었다. 하나는 그의 혼백을 바로 덕승부로 데려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관리가 혼백을 돌보며 그의 가족들이 준비한 굿판이 끝날 때까지 함께 기다린 후 데려가는 것이었다. 구체적인 상황은 죽은 자가 어떤 사람인지와 그 관리의 융통성에 따라 달라졌다.

만약 진 의원 같은 사람에게 저승에서 좋은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다면, 계연은 덕승부 저승과 이야기를 나누어 그의 혼백을 데려와 다른 길을 마련해줄 수 있었다.

구름에서 내려와 덕원현에 내려선 후, 계연은 두 팔을 흔들어 넓은 소매를 팔에 돌돌 감아 끝자락을 손에 쥐었다. 이렇게 달리기 편한 형태로 옷을 매만진 후, 계연은 안인약방이 있는 방향으로 질주했다.

진 의원의 일에도 불구하고 안인약방은 오늘도 영업 중이었다. 계산대에 앉은 사람은 한 중년 남자로, 계연이 약방에 들어가 살펴보니 얼굴에 어떤 특색도 없어 이자가 의원인지 아닌지 종잡을 수 없었다.

일하고 있는 점원은 한 사람으로, 맥없는 모습으로 약초를 찧으며 쿵쿵, 소리를 내고 있었다.

“손님, 약을 지으러 오셨습니까 아니면 진맥을 보러 오셨습니까? 진맥을 보시든 의원을 청하시든, 한동안 저희는 의원이 없어서요. 만약 급한 상황이라면 다른 곳의 의원을 알아봐 드리겠습니다.”

남자는 계연이 서둘러 들어오는 모습과 그 행색을 보고 집안에 병자가 있구나 하고 짐작했다. 그가 이렇게 묻자, 계연은 이자가 의원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이에 계연은 계산대 뒤의 남자에게 공수하며 물었다.

“의원을 청하거나 약을 지으러 온 게 아니라, 물을 것이 있어서 왔어요. 진자주 의원님께서는 어디에 사시나요?”

안인약방에는 별실도 있고 준비된 침상도 있었지만, 이곳이 진 의원이 머무는 곳은 아니었다. 이 시각 진자주는 이승에 속하지 않지만, 저승에서도 새로운 생을 얻지 못하여 이승과 저승 사이를 헤매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계연의 점괘로는 정확히 그의 집을 알아낼 수 없었다.

또 오늘 덕원현에 상갓집이 하나뿐이 아닌 듯하여, 아무래도 물어보는 게 낫다고 여겼다.

계연이 진자주에 관해 묻자, 주인장은 즉시 관심을 보였다.

“선생도 진 의원님의 제자입니까? 멀리서 오셨겠군요?”

계연은 생각을 가다듬은 후 대답했다.

“주인장께서 오해하셨군요. 저는 진 의원님의 제자는 아니지만, 예전에 알던 사이예요. 소식을 받고 멀리서 왔는데, 예전에 의원님과 알게 된 곳이 이 약방이라 그분의 자택은 몰라서요. 혹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벌써 소식을 받고 오셨다면 분명 가까운 사이겠군요. 육자(六子)야, 어서 여기…….”

“성은 계산하다의 그 계씨이고, 이름은 인연의 연 자입니다.”

“아, 그렇군요. 계 선생님을 진 의원님 댁으로 모셔다드려라. 어쩌면 마지막 모습은 보실 수 있을지도 모르니.”

“네!”

점원은 하던 일을 멈추고 바깥으로 나가 계연을 데리고 길을 이끌었다.

“저를 따라오세요, 선생님!”

“네, 안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계연은 주인장을 향해 공수한 후, 점원을 따라 서둘러 걸었다. 보아하니 주인장은 진 의원이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걸 아직 모르는 듯했다.

약방 점원의 안내에 따라, 계연은 일각도 채 안 되어 덕원현 동쪽 진 의원의 자택에 도착했다.

진씨 집안이 무슨 명문 대갓집은 아니지만, 그래도 넉넉한 저택 한 채는 있었다. 이 시각 그의 집 안에는 그의 가족이며 가까운 이들을 비롯해 그가 가르쳤던 제자 중에서 올 수 있는 이들은 모두 와 있었다. 거기에 더해 며칠 전 미리 청해 온 법사(法師)들까지 와있어, 넓은 저택이 지금은 사람으로 북적거릴 정도였다.

진자주는 고명한 의술을 갖춘 적지 않은 제자를 길러냈다. 그 모든 제자가 올 수는 없었지만, 자리한 제자들만 해도 12명이라 적지 않은 수였다. 그런 이들이 모여 있었으니, 객들은 자연히 진 의원에게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미리 알아차렸다. 게다가 진 의원 그 자신도 스스로 느끼는 바가 있어, 가족들에게 상을 치를 준비를 하도록 며칠 전부터 말해 두었다.

계연이 도착했을 때, 그의 자택 앞에는 이미 하얀 깃발이 걸려있었다. 안에서는 사람들이 우는 소리가 들려오고, 입구에 서 있는 사람마저 울고 있었다.

이를 보고 점원의 걸음이 느려지기 시작했는데, 아마 어찌해야 할지 모르는 것 같았다. 심지어 그의 얼굴은 약간 당황한 듯 보이기도 했다.

“고맙습니다. 이제 약방으로 돌아가 보세요. 제가 알아서 들어갈게요!”

계연은 그가 더는 앞으로 갈 엄두를 못 내는 것을 보고, 이렇게 말한 뒤 홀로 진 의원의 집 앞으로 걸어갔다. 그는 이미 멀리서부터 진자주의 집 상공에 있는 향불의 신비한 빛과 저승의 관리들이 내뿜는 귀기(鬼氣)를 눈치채고 있었다. 이를 보니, 토지신과 부성의 저승 관리들도 이제 막 도착한 듯했다. 또한, 저승에서 진 의원에 대한 대접이 아주 정중하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문 앞에서는 나이 차이가 좀 나는 두 사람이 울며 서 있었다. 계연이 그 앞으로 다가갔을 때, 두 사람은 안쪽에서 날라 온 하얀 천을 대문 위에 걸고 있었다.

계연이 입구에 온 것을 보고, 둘 중 나이가 좀 더 든 남자가 소매로 눈가를 훔친 뒤 그에게 물었다.

“선생께서는 누구십니까?”

계연은 이미 법안으로 문 안쪽을 살피고 있었는데, 진 의원의 유족과 친지, 조문객들을 제외하고 방 앞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서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은 원외모(*員外帽: 옛날 향신이나 지방의 유력자가 쓰는 네모꼴의 모자)를 쓴 신령한 빛이 나는 노인이었는데, 그는 분명 토지신일 터였다.

그 외에 주간 순시관 두 명, 저승사자 두 명, 그리고 음피산을 받쳐 든 저승 관리 두 명이 있었다. 그들은 아직 우는 사람들로 가득 찬 방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바깥에 서 있었다.

입구에 선 남자가 묻는 목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린 계연은 그를 향해 인사했다.

“예전에 진 의원님께 은혜를 입은 적이 있는데, 소식을 듣고 혹시 제가 도울 것이 있나 해서 와 보았습니다.”

“아……. 조금 늦으셨습니다. 어르신께서는 방금 세상을 뜨셨고, 집 안에 따로 선생께서 도울 만한 일은 없군요. 일손은 이미 집안사람들만으로 충분하니, 선생의 호의만 받겠습니다. 만약 원하신다면 빈소가 차려진 후 조문하러 오세요. 지금은 이만 돌아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남자는 계연에게 공손하게 인사하며 그의 호의를 완곡하게 거절했다. 진 의원이 약 80년 동안 의술을 행하며 살린 이만 해도 셀 수 없으니, 은혜를 입은 사람은 부지기수일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계연과 같은 이들이 많이 찾아왔었다.

‘빈소가 차려진 후에 오면 너무 늦지.’

계연은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린 후, 남자에게 공수하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더는 방해하지 않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서 그는 저택 앞을 떠났다. 그는 작은 골목으로 꺾어 들어간 뒤, 몸을 투명하게 만든 뒤 진자주의 집으로 다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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