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화. 진자주를 다시 만나다
계연이 담을 넘어 가까이 다가가자, 마당에 있던 귀신들이 모두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중 저승의 관리 하나가 자리를 옮겨 방 앞을 막아섰다.
“실례지만, 귀하는 누구십니까?”
계연은 그를 향해 공손한 태도로 공수했다.
“저는 계씨 성을 가진 객입니다. 진 의원님과는 연이 있다 할 수 있는데, 조금 전 그분의 수명이 끊어진 것을 느껴 서둘러 만나러 왔지요. 부디 토지신님과 여러 관리께서는 저를 들여보내 주세요.”
계연은 이렇게 말하며, 고의로 내보냈던 영기와 법력의 파동을 순식간에 거둬들였다. 심지어 일부러 허술하게 했던 장안법도 걷어냈다. 그러나 마당의 범인(凡人)들은 여전히 그를 볼 수 없었다.
귀신들은 그의 변화를 보며 몸을 바짝 긴장시켰다. 이로써 그가 일부러 그들에게 모습을 보이고자 이렇게 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만약 저자가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다면, 귀신도 사람도 모르게 들어갈 수 있었다는 뜻이었다.
“선장께서는 어느 곳에서 오신 분입니까? 진자주의 수명은 이미 다했는데, 무슨 이유로 찾아오셨지요? 저희는 그를 위해 연 굿판이 끝나면 바로 덕승부 저승으로 데려갈 예정입니다.”
한 주간 순시관이 용기 내어 물었다.
“주간 순시관님과 다른 분들 모두 안심하세요. 저는 요괴나 어떤 사악한 것도 아닙니다. 나눌 이야기도 비밀이 아니니, 여러분께서 같이 들어가셔도 되고요. 만약 먼저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면, 제가 덕승부로 함께 가겠습니다. 절대 여러분이 난처할 일은 없을 거예요.”
이제 계연은 저승에도 법도가 있지만,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마치 진자주와 같은 선인(善人)을 위해 저승의 관리들이 모두 굿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처럼 말이다.
토지신조차 그 스스로 신당에서 이곳으로 걸음을 한 것이다. 이치대로라면, 이왕 저승에서 보낸 관리들도 도착했으니 그는 그저 신당에 있다가 진자주의 가족들이 영구를 묘지로 보낼 때 한 번 가보면 끝나는 일이었다.
덕이 높으면 귀신도 흠모한다더니, 오늘 이 풍경은 그 말 그대로였다.
계연의 요구는 비록 저승의 규율에 어긋나지만, 그는 분명 도력이 높은 수선인일 것이 틀림없고 그들에게 정중한 예를 차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보다 중요한 점은 만약 이 사람이 들어가고자 한다면, 그들은 막지 못할 것이라는 데에 있었다.
저승의 관리들이 모두 나이 든 향신처럼 보이는 토지신을 바라보자, 토지신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맥과 연결된 토지신은 비록 계연이 어디서 온 어떤 자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계연이 이곳에 들어온 후 맑은 기운이 감돌고 먼지와 더러운 것이 흩어지는 것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이에 근거해 볼 때, 계연이 요괴나 다른 사악한 것일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토지신의 반응을 본 관리들은 마음을 정했다. 조금 전의 그 주간 순시관이 다시 입을 열었다.
“선장께서 진자주를 만나길 원하신다니 그럼 그렇게 하시지요. 다만 저희도 해야 할 일이 있으니, 먼저 들어가서 진자주에게 죽은 후의 일을 설명하겠습니다. 지금쯤 그의 혼은 분명 어찌 된 일인지 모르고 있을 것입니다.”
계연이 법안을 열어 방 안을 바라보자, 진자주의 혼백이 이미 시신을 떠나 있는 것이 보였다. 이에 계연은 귀신들에게 다시 한번 공수하며 말했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여러분께서 먼저 들어가세요. 때가 되면 저를 불러주시고요.”
“네, 선장께서는 여기에서 잠시 기다리십시오!”
관리들도 그에게 함께 공수해 보인 후, 음기가 섞인 바람을 타고서 진자주가 있는 방으로 향했다.
토지신은 계연에게 다가와 서로 정중히 인사를 한 후, 몇 마디 한담을 나누며 같이 그들을 기다렸다.
진자주의 집은 주방과 창고를 빼면 모두 8칸짜리의 건물로, 앞마당과 후원의 구분이 없었다. 그리고 그 건물의 중간 가장 큰 방에 진자주가 있었다.
이때 진씨 집안의 자손들과 생전에 진자주가 아꼈던 제자 몇이 침상 곁으로 다가가, 시신이 아직 굳지 않은 틈을 타 수의를 갈아입혔다. 울음소리는 전보다 많이 줄어들긴 했지만, 아직도 가끔 들려오고 있었다.
동선은 진자주가 생전 가장 아끼던 제자로, 진자주는 마치 그를 친자식처럼 대했다. 진 의원의 장자는 이미 세상을 떠나, 그의 둘째 아들이 동선과 함께 진 의원의 시신에 수의를 입히고 있었다. 다른 이들은 곁에서 거들어주고 있었다.
“흑흑……. 아버지, 한평생 사람들을 치료하고 사셨으니, 저승에서는 푹 쉬세요!”
“오늘 사부님께서 비록 영면에 드셨으나, 그 연세가 이미 백 세를 넘으셨습니다. 이 세상에 또 몇 사람이 사부님처럼 장수하실 수 있겠습니까? 하늘이 스승님을 아껴 생전 많은 복을 누리다 가셨으니, 돌아가신 뒤에도 분명 좋은 일이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이때 실내에 음기가 담긴 바람이 불어 닥쳐, 많은 이들이 돌연 오한을 느꼈다. 나이가 조금 있는 이들은 보고 들은 바가 있어, 이것이 무엇인지 알고서 젊은 사람들을 끌어당겨 한쪽에 섰다.
그들은 윗세대에게서 사람이 세상을 뜨기 직전이나 그 후에 실내에 돌연 찬 바람이 느껴지면, 저승의 관리가 온 것이라고 전해 들었었다.
이 시각, 진자주의 혼백은 시신의 곁에 서 있었다. 그는 멍하니 제자와 아들이 자신에게 수의를 입히는 것과 주위 사람들이 울고 있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를 보는 귀신들도 정신이 어지러웠다.
“진자주, 당신의 수명이 다하여 우리가 특별히 데리러 왔습니다!”
귀에 이런 소리가 들려오자, 진자주는 순간 정신이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이에 그 목소리를 향해 돌아보자, 검은옷과 흰옷을 입은 관리 여섯 명이 서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진자주는 약간의 두려움을 느끼고, 조심스럽게 한마디 물었다.
“여러분은, 저승 사자십니까?”
두 주간 순시관이 진자주를 향해 공수하며 말했다.
“저는 덕승부 성황신 밑에서 일하는 주간 순시 우사(右使)이고, 제 옆에 있는 이는 좌사(左使)입니다. 뒤로는 저승사자 두 분과 음피산을 든 관리들입니다. 명을 받아 당신을 데리러 왔으니, 가족들이 준비한 굿이 끝나면 저희와 함께 출발합시다!”
진자주는 급히 그들을 향해 인사했다. 그 후 그의 혼백이 끌어당겨지더니 그의 혼백이 맞은편을 향해 날아갔다. 진자주의 정신이 돌아왔을 때, 그는 이미 두 저승사자의 곁에 서 있었다.
“진 공(公), 이승에서의 삶은 이미 끝났으니, 더는 육친과 접촉해서도 안 되고 옛 육신에 미련을 가져서도 안 됩니다. 오늘로부터 7일 후에는 한 번 더 집으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굿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저희 곁에서 기다리십시오!”
“예, 알겠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자주는 불안한 와중에도 약간의 두려움을 느꼈으므로, 관리가 뭐라고 하든 그대로 따를 뿐 다른 생각은 하지 못했다.
음피산 두 개가 활짝 펴지자, 관리들과 진자주의 혼백이 그 안에 갇혀 이승과 단절되었다. 그러자 주간 순시관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입을 열었던 관리가 진자주에게 물었다.
“진 공, 생전에 혹시 선인(仙人)을 만난 적이 있습니까?”
진자주는 높은 모자를 쓰고 흰 장포를 입은 관리를 쳐다보았다.
“선인이요?”
“네. 아니면 인상에 남은 기이한 사람이나 사건이 있습니까? 꼭 신통한 능력을 보이지 않았더라도 상대는 신선과 비슷한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진자주는 깊이 생각해보았다. 그 자신이 사람들에게 ‘살아있는 신선’이라고 불린 적은 셀 수 없이 많지만, 진짜 신선과 같은 사람을 만난 적은 없는 것 같았다.
‘잠깐, 그러고 보니 그 사람이 있었군.’
“그러고 보니, 어떤 도장(道長)한 분이 오신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제 약방에 도착했을 때는 기가 매우 약해져서, 목숨이 위태로웠습니다. 다행히 강호의 한 고수께서 저를 도와 함께 그를 치료했습니다. 그렇게 겨우 목숨을 붙여 놓았었지요.”
그러자 주간 순시관뿐만 아니라 다른 냉엄한 표정의 다른 관리들도 의아해했다.
‘목숨이 위태로웠었다고?’
그들의 머릿속에는 이미 그 선인이 요괴와 겨루는 모습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 도장에게 무언가 특이한 부분이 있었습니까?”
주간 순시관이 좀 더 캐물었다.
“있었지요. 그 도장께서는 점괘를 정확하게 잘 보시는데, 요양하던 기간에 사람들에게 쳐주는 점이 모두 들어맞았었어요. 약방에 정기적으로 진료를 받으러 올 때마다 그렇게 다른 환자들에게 점을 쳐주곤 했었는데,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진자주는 잠시 망설였지만 계속해서 말했다.
“어느 날 안색이 누르스름한 남자가 진료를 받으러 왔었는데, 마침 그 도장께서도 저희 약방에 계셨었어요. 제가 아직 맥을 짚기도 전에, 도장께서 그 환자를 향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안 돼, 안 돼. 지금부터라도 좋은 일 좀 하고 덕을 베풀어도 일 년 반 살까 말까 해. 그냥 맛있고 좋은 것 원 없이 먹다가 가는 게 좋겠구려. 이건 신의(神醫)도 못 살리겠군. 신선이 온다 해도 살까 말까 해……. 그 후에는 약방에서 큰 싸움이 일어날 뻔했지요.”
혼백이 됐을지라도 진자주는 그 이후를 떠올리면 조금 두려운 듯했다.
“당시 진맥해 보니, 과연 그자의 병이 깊어 되돌릴 수 없는 지경이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믿지 않고 전력을 다해 구해보려 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두 달 후에 목숨을 잃었지요.”
관리들은 그의 말에 의혹을 느꼈다. 원래 진자주가 점이 모두 들어맞았다고 할 때까지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이와 같은 사람을 말하는 줄로 알았는데, 약방에서 싸움이 일어날 뻔했다는 말을 듣자 아무래도 바깥에 있는 그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더는 시간을 오래 끌 수 없어, 그들은 진자주에게 사실대로 알려주었다.
“진 공, 사실 당신을 보러 오신 선장 한 분이 밖에 계십니다. 그분의 말로는 생전에 알던 사이라고 했는데, 아무래도 여기로 모셔 오는 게 좋겠습니다.”
이렇게 말을 마치고, 주간 순시관은 진자주의 의혹에 찬 눈길을 받으며 나갔다. 잠시 후, 그는 흰옷을 입은 남자를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왔다.
계연이 방에 들어와 가장 먼저 본 것은 진자주의 시신이었다.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마른 몸을 보아하니, 임종 전까지 오랫동안 무언가를 씹어 삼키지 못한 듯했다.
그리고는 곧 저승 관리들 사이에 서 있던 진자주의 혼백을 바라보았다. 예전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지만, 놀랍게도 그에게서는 귀기(鬼氣)가 별로 느껴지지 않아 마치 살아있는 사람 같았다.
관리들과 토지신이 보기에는 그의 혼백이 조금 특이하다고 여길 뿐이겠지만, 계연은 이것이 절대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가장 특이한 점은 진자주가 범상치 않은 깨끗한 기운을 품고 있다는 것이었다. 마치 몸 안에 신령을 가진 자들과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확실히 몹시 보기 드문 종류였다.
게다가 더욱 기이한 것은, 진자주가 분명 이미 죽었음에도 그 깨끗한 기운이 흩어지지 않은 점이었다. 만약 몸속에 신령이 있는데 어떤 고인(高人)도 돕지 않는 상황에서 사람이 죽으면, 그것은 즉시 사라지거나 바깥세상으로 숨어들었다.
계연은 마음이 크게 요동쳤다. 돌연 예전에 읽은 <통명책>에서 저자마저 황당하다고 여겼던 가설이 떠올랐다. 진자주를 보고서야 자신이 원래 가지고 있던 생각이 변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