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176화 (176/892)

176화. 음이 양으로 변하고, 허(虛)가 실(實)이 되다

계연은 또 다른 질문으로 그의 질문에 답했다. 동시에 계연은 법안을 최대로 열었다.

“진 의원님께서는 평생 의술을 펼치며 살아오셨는데,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으세요?”

진자주는 이를 듣고 잠시 어리둥절했다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당연히 병을 고치고 사람을 살리려는 목적이죠!”

진자주의 대답은 그의 본심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를 감싼 깨끗한 기운은 부드럽게 흐르며, 어떤 파동도 없이 자연스러운 모습 그대로였다.

이는 그의 말이 진심 그대로라는 뜻이었다. 수십 년간, 진자주에게는 이것이 밥을 먹고 물을 마시는 것처럼 간단하기 그지없는 인생의 의의(意義)였다.

그의 말은 아주 쉽고 간단한 것처럼 들리지만, 사실 이토록 사심 없이 진심만이 담긴 대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아주 드물었다.

“제가 바라는 것은 진 의원님께서 신도(神道)를 닦아 생전처럼 많은 이들을 구원하실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다만 수백, 수천 또는 한두 지방의 사람들이 아니라, 천하의 모든 백성과 만물을 이르는 거예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

진자주가 망설이는 것은, 질문에 대답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계연의 말에 담긴 내용을 자신은 상상해 본 적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여 계연의 뜻을 이루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제 계연이 원하는 바가 대의(大義)에 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계연은 이에 웃으며 말했다.

“계유신은 신비롭고 비범한 신령으로, 분명히 계유신이 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늘도 인의(仁義)로운 마음을 갖지 못한 자가 계유신이 되게끔 놔두지 않을 겁니다. 진 의원님, 천하에 당신과 같은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생각하세요?”

계연은 진자주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제가 지금까지 수행하는 동안, 의원님 단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그러자 자리에 있던 늙은 용과 높은 도력을 가진 자들이 모두 진자주를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 계 선생 같은 사람에게 이런 평가를 들을 수 있는 자라면, 진자주는 분명 대단한 사람일 테니 말이다.

귀신들의 반응을 보고 진자주는 더욱 압박감을 느꼈지만, 동시에 자신에게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인간, 귀신, 요괴, 신령, 신선, 승려, 마귀 그리고 벌레, 물고기, 새, 짐승, 산천초목(山川草木), 강과 바다에 이르기까지 천지 간 모든 만물에는 영혼과 감정이 있어요. 저는 진 의원님께서 세상의 만물과 중생(衆生) 모두를 돕고 구원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의 어조는 평온했지만, 말에 담긴 뜻에서는 세상사의 온갖 변천이 느껴졌다. 그의 말을 들은 자들의 마음에는 천지만물이 역동하는 모습이 생생히 떠올랐다. 진자주는 놀라움과 함께 충격을 받아, 우두커니 서 있었다.

이에 계연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의 의식 세계 속의 산과 하천을 드러나게 하여 천지만물이 태어나 자라며 순환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는 얼마 전 계연이 거안소각에서 구풍에게 질문을 받을 때 처음으로 느끼게 된 것으로, 그때 계연은 자신이 저도 모르게 드러낸 ‘감상’이 자신이 쌓아왔던 수행의 성과를 나타내는 것임을 깨달았다. 비록 그때와 같은 경지를 드러낼 수는 없었지만, 계연이 보여주는 ‘감상’은 여전히 신비롭고 비범했다.

“자신이 이 일을 할 수 있는지 그 여부와 그리 살기를 원하느냐는 다른 문제예요. 계유신이 되기 위해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은 너무나 적고, 그 과정도 쉽지 않지요. 마치 수선자들 중에서 진정으로 득도한 사람이 아주 적은 것처럼 말이에요.”

계연은 여기까지 말하고서, 돌연 중후하고 위엄 있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리하여 진자주, 당신은 천하의 모든 중생과 만물을 위해 수행하겠습니까?”

그의 목소리는 급류처럼 순식간에 퍼져 나가 도력이 얕은 주위의 귀신들을 뒤흔들며 바짝 긴장하게 했다. 가벼운 술법이 담긴 목소리에 이제 막 죽어 혼백이 된 진자주는 놀라 정신을 차렸고, 깊게 가라앉은 회백색의 두 눈을 마주 보았다.

진자주는 마치 자신의 시선이 억지로 끌어당겨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진자주는 계연의 두 눈 속에서 하늘과 땅, 산과 하천을 볼 수 있었다.

잠시 후, 진자주가 가진 깨끗한 기운이 밖으로 드러났다. 선장의 눈에서 세상의 진실을 엿본 그는, 아득할 정도로 거대한 세상과 비교하면 자신의 생각이나 걱정이 너무나 하찮고 가소롭게 느껴졌다.

“저 진자주가 선장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지 모르겠으나, 그래도 계유신이 되는 길을 걷고 싶습니다!”

그의 목소리가 떨어지자마자, 계연의 소매 안쪽에서는 바둑돌이 생겨났다. 진자주의 혼백이 내뿜는 귀기(鬼氣)는 이미 거의 사라지고 있었고, 대신에 맑은 기운이 요동치며 생기가 흘러나와 진자주는 살아있는 사람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그의 이러한 변화는 지켜보는 귀신들을 경악하게 했다. 그들은 계연이 이미 진자주에게 술법을 부렸다고 생각했다. 늙은 용마저도 그렇게 생각할 정도였는데, 사실은 계연도 속으로 몹시 놀라고 있었다. 다만 계연은 다른 사람들보다 느끼는 바가 깊어, 이것이 진자주가 타고난 영험함에 스스로가 원하는 바가 감응하여 나타난 결과임을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진자주가 정중하게 예를 올리는 것을 보고 계연도 그를 향해 몸을 굽히고 읍했다.

“진 공은 참으로 의로우시군요!”

진자주가 이 최적의 상태를 오래 유지하지 못할까 봐, 계연은 즉시 덕승부 성황신을 향해 물었다.

“저승에서 음기가 가장 강한 곳을 잠시 빌려 쓸 수 있을까요?”

성황신도 자리에서 일어나 대답했다.

“선장께서 편하신 대로 하십시오. 만약 괜찮으시다면, 저와 저승의 관리들이 곁에서 보아도 되겠습니까?”

“위험한 술법이 아니니, 9장(*약 27m) 밖 거리에서 보시면 괜찮을 거예요.”

이 일은 극비로 벌어지는 큰 사건이었다. 계연이 성황당 밖에서는 알지 못하게 하라고 따로 언질을 주지 않았는데도, 저승 전체가 긴장하고 있었다. 그래서 24개 기관장과 소수의 관리를 제외하고, 저승의 다른 이들은 이 일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다만 저승의 관리들은 강신 두 명이 방문했다는 것만 알았다.

음기가 가장 강한 곳은 벌악사에 있는 감옥으로, 원래 여기에 갇혀있던 혼령들은 모두 관리들에 의해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심지어 매목(*埋木: 홍수나 지진 등으로 오랜 시간 땅 밑에 묻혔던 나무. 삿된 것을 쫓아낸다는 속설이 있고, 목재로서의 가치가 뛰어남)으로 만든 벌악사 감옥조차 벌악사 기관장의 술법으로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

그리하여 벌악사의 감옥은 여전히 싸늘한 음기를 내뿜었지만, 이제 신령한 빛에 뒤덮인 상태였다.

진자주는 감옥 가운데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의 좌측에는 마찬가지로 가부좌를 틀고 앉은 춘혜부 강신 백제가 있었고, 우측에는 통천강 강신인 응약리가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늙은 용과 계연은 각각 그들의 뒤와 앞에 앉았다. 성황신과 토지신, 24곳의 기관장들은 감옥 주위를 둘러싼 형태로 서 있었다.

문판관(文判官)은 손에 종이를 들고 바쁘게 붓을 놀리고 있었다. 추상적이지만 사실감이 섞인, 구름이나 안개 사이로 지켜보는 듯 아련한 풍광이 종이 위에 나타났다. 그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자신의 작품에 만족했다. 그는 그림 위쪽에는 낙관을 찍으며 이렇게 적었다.

‘점화계유신(*點化界遊神: 술법을 부려 혼백을 계유신으로 변화시키다)’.

계연은 엄숙한 태도로 진자주 앞에 서서, 공중으로 손을 몇 번 휘둘렀다. 그러자 ‘칙(敕)’이라는 글자가 진자주가 앉은 지면에 나타났다.

“두 분 강신 모두 잘 부탁드립니다!”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계 숙부님!”

“당치 않습니다, 계 선생님!”

응약리와 백제는 이렇게 대답하고서 손을 사용해 술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물기를 가득 담은 기운이 서서히 피어올라, 이곳의 음기가 더욱 짙어졌다.

뒤에 서 있던 응굉이 소매를 휘두르자, 그의 법력이 솟구치며 이곳의 음기와 물기를 합쳐 한 가닥 샘물로 만들었고, 이는 진자주의 혼백을 감싸 휘돌았다.

응약리와 백제가 내뿜는 빛이 더욱 강해지며 그들의 등 뒤로 오색 찬란한 빛무리가 떠올랐다. 이 빛무리는 그들이 술법을 부림과 동시에 샘물과 합쳐졌다. 이에 들릴 듯 말 듯 만민이 절하며 기도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고, 향불 연기가 휘감아 도는 것이 보이는 듯했다.

그 얇은 한 줄기가 얼마나 많은 사람이 향불을 올리고 기도하여 쌓은 원력(愿力)인지는 감히 짐작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 강신들은 그것을 바깥으로 흘려보내고 있었다.

그들이 내뿜는 빛이 점점 더 강해지자, 감옥이었던 곳은 이미 완전히 빛에 뒤덮였다. 바깥의 귀신들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더는 볼 수 없었다. 그러나 어떤 이들도 소리를 내거나 말하지 않았고, 그저 긴장과 흥분을 누르며 법안을 열어 이곳을 살필 뿐이었다.

계연도 법안을 모두 열고서야 이곳의 상황을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합쳐진 영험한 샘물이 조금씩 진자주의 혼백에 스며들었고, 깨끗한 기운이 진자주의 온몸에 흘러넘치며 신체 내의 음기가 마침내 그 경계에 부딪혔다.

“칙령(勅令), 바뀌어라(轉)!”

계연이 입에 한참 머금고 있던 칙령음을 소리 내어 뱉자, 하늘과 땅의 기운이 그의 목소리와 함께 크게 울리는 종소리처럼 널리 퍼져 나갔다.

진자주가 앉은 지면에 뜬 ‘칙’ 자가 밝게 빛나더니, 동시에 그의 몸 안에서 무궁한 향불의 원력과 우주의 기운이 융합했다. 그리고 그것이 진자주가 가지고 있던 깨끗한 기운과 합쳐졌다.

먼저 몸 안에 열기를 뿜는 신장이 만들어지고, 그에 따라 진자주의 몸에 양기(陽氣)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 후 작은 불씨가 들판을 태우듯, 그의 모든 신체가 음에서 양으로, 허(虛)에서 실(實)로 변하기 시작했다.

진자주의 혼백이 변하는 과정에서 가장 큰 변화를 느낀 이들은 그를 둘러싼 네 사람이었다. 진자주 본인은 오히려 큰 차이점을 느끼지 못했다. 다만 차갑던 몸에서 온기가 느껴지고, 새롭게 태어나기라도 한 듯이 온몸에서 산뜻한 기운이 감돌았다.

응굉이 음기가 섞인 샘을 만들며 친히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두 강신은 그저 결인(結印)한 후 향불로 쌓은 원력을 계속 내보내기만 하면 되었다.

계연은 칙령음으로 진자주의 몸을 변화시킨 후에도 입으로 계속해서 칙령을 멈추지 않고 외었다.

“햇빛에도 타지 않고, 추위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비록 육신은 화했으나, 이제 실체를 얻었다. 땅은 더는 그를 속박하지 못하니, 드넓은 하늘을 끝없이 날 수 있을 것이다. 영험하고 깨끗한 기운을 타고났으나, 이제는 신도(神道)를 닦아 수행을 쌓게 될 것이다!”

그가 문장을 내뱉을 때마다 세상의 기운이 글자에 모여들었고, 이는 진자주의 머리 위에서 금빛으로 번쩍이다가 하나씩 그의 몸 안으로 스며들었다.

응굉은 마치 해괴한 것을 보기라도 한 듯이 몹시 놀랐다. 이 기운은 마치 공덕(功德)에서 느껴지는 빛과 비슷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한 차례 직접 겪었던 백제를 제외하고 이 정도라도 알아볼 수 있었던 이는 늙은 용 하나뿐이었다. 다른 신령이나 귀신들은 이것이 계연이 부리는 술법에서 나오는 영험한 빛이라고만 여겼다.

‘공덕의 힘을 끌어내는 사람이 있다니! 이와 같은 일을 진선(眞仙)이 할 수 있었는데 내가 몰랐던 것인가? 아니면……?’

늙은 용은 당시의 백제처럼 놀라 어리둥절했다. 하늘과 땅의 기운으로 창조해내는 힘을 부릴 수 있다니, 이는 계유신의 능력과 비슷하게 전설 속에나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는 예전에 자신의 생일 연회에서 백제가 계연이 남긴 말을 듣고 기뻐하며 떠났던 것을 떠올렸다. 그 당시에는 백제가 했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어쩐지 수행에 몹시 손해 보는 일을 백제가 이리 쉽게 승낙하다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여기까지 떠올린 응굉은 눈앞의 진자주를 바라보았다. 그는 눈을 가늘게 뜨며 점점 깊은 생각에 잠겼다.

‘계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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