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화. 현재의 방식과 옛 방식
이렇게나 많은 글자에 세상의 기운을 담아 한 번에 칙령을 외운 계연은, 신체 안의 오행(五行)의 기운을 이용해 어지러움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그러나 피곤한 내색을 감출 수 없었다.
다행히 그동안 수행을 열심히 하여 도력이 전보다 몹시 늘어났기 때문에, 이 순간 추태를 보이지 않을 수 있었다. 몇 년 전이었다면, 이 자리에서 당장 쓰러졌을 것이다.
다른 이들은 어떤 이상도 발견하지 못했지만, 계연의 맞은편에서 그를 살피던 늙은 용은 눈썹을 찌푸리며 생각했다.
‘계유신이 되는 것이 과연 그리 쉬운 게 아니었군. 계유신이 될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주는 것뿐일 이 과정에 계 선생이 이렇게나 피로를 감추지 못하다니.’
그는 계연이 피곤해하는 모습을 오늘에서야 처음 보게 되었다.
향 하나가 탈 정도의 시간이 흐른 후, 벌악사 감옥이 자리했던 곳을 뒤덮은 빛이 약해졌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것이 모두 진자주의 몸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이제 진자주는 더는 귀신의 몸이라 할 수 없었다. 진자주의 몸이 천천히 빛나기 시작했다. 어느새 벌악사 감옥이 있던 곳은 조금 전처럼 음기를 내뿜고 찬 기운이 가득 찬 모습으로 돌아왔다. 오직 진자주만이 온몸에서 환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의 머리카락마저도 눈이 부시지 않는 정도의 옅은 빛을 내뿜었다.
강신 둘은 여전히 그의 곁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이들이 쌓은 신도(神道)의 근본까지 닿을 정도로 소모된 힘이 컸지만, 둘은 모두 진룡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기에 수행에는 큰 영향이 없었다.
이제 이곳에 있던 모든 이들의 시선은 진자주에게 집중되었다. 그의 몸에서 내뿜어지던 빛이 점차 약해지며, 진자주는 보통 사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저건 금신(*金身: 또는 법신(法身). 수행을 쌓아 도달하는 영원불멸의 신체)인가?”
“그런 것 같진 않군!”
“그럼 설마 육신인가? 다시 살아난 거야?”
“그, 그것도 아닌 듯한데…….”
“이미 계유신이 된 건가?”
“그렇게 빠를 순 없지 않겠어? 계 선장께서도 처음부터 수행을 쌓아야 한다고 하셨잖아!”
“외모도 조금 변했군!”
이제 의식이 끝난 듯 보이자, 밖에 서 있던 귀신들은 작은 소리로 의견을 나누었다. 그러나 여전히 어찌 된 일인지 알 수 없었다. 방금 진자주에게서 빛이 날 때는 약간의 신령스러운 모습이 보이는 듯했지만, 지금은 또 완전히 살아있는 보통 사람 같았다. 만약 방금 그 장면을 두 눈으로 지켜보지 않았다면, 성황신조차 저승에 살아있는 사람이 들어왔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게다가 진자주는 원래 회백색 머리에 짧은 턱수염이 달린 약간 마른 얼굴형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 그의 머리는 온통 하얀색이 되었고, 수염은 가슴까지 내려오는 길이가 되었다. 얼굴에는 살집이 오르고 안색도 혈기가 좋아 보였다. 기다란 눈썹 털은 눈가까지 내려와 있었다.
이 모든 과정에서 진자주는 어떤 고통도 느끼지 못했고, 기껏해야 온도 변화를 느낀 정도였다. 그러나 이때 그는 슬슬 다른 점을 느끼기 시작했다. 죽기 직전처럼 감각이 둔하지 않았고, 감옥의 음기 가득한 썰렁함, 주변에 감도는 물기, 은은한 신광(神光) 모두 느낄 수 있었다. 이런 변화는 크게 주목할 정도는 아니지만, 원래 작은 것에서 그 진가를 볼 수 있다고들 하지 않는가.
진자주는 몸을 일으켜 제 몸을 살펴보았다. 손을 뻗어 자신의 팔을 더듬자 온기가 느껴졌다. 그는 의원의 본능으로 자신도 모르게 바로 맥을 짚어 보았다.
계연은 호흡을 갈무리한 후 점차 원래 상태를 회복했다. 그는 진자주의 호기심과 흥분이 섞인 표정에 약간의 망연함이 깃든 것을 보고 그를 향해 공수했다.
“진 도우(道友), 영구(靈軀)를 갖게 된 것을 축하합니다!”
늙은 용은 한쪽에 서서, 그로서는 드물게도 진자주를 향해 공수했다.
“축하합니다, 진 도우!”
비록 진자주는 아직 어떤 도력도 없지만, 그가 될 계유신은 몹시 보기 드문 존재였다. 그래서 진자주가 이제 막 수행을 쌓아야 하는 단계인데도, 늙은 용은 그를 정중하게 대했다.
진자주도 서둘러 공수하며 두 사람에게 인사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장! 감사합니다, 용왕님!”
그 후, 진자주는 호흡을 가다듬은 백제와 응약리에게 읍하며 감사 인사를 올렸다.
“강의 신 두 분께도 감사 인사 드립니다!”
두 신에게 감사 인사를 올린 뒤, 진자주는 다시 한번 몸을 돌려 다른 귀신들을 향해 인사했다.
“성황신 나리와 각 기관장분들, 그리고 토지신께도 정말 감사드립니다. 여러 관리분도 감사합니다!”
“이런, 당치 않소!”
“진 공, 어서 예를 거두세요!”
“저희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걸요!”
“축하드립니다, 진 공!”
“축하드립니다!”
저승의 수많은 귀신이 그를 둘러싸고 인사했고, 진자주는 더는 저승의 혼백이 아니게 되었다.
* * *
진자주가 이승을 떠난 지 7일째 되는 날, 그는 다른 혼백들과 달리 저승 관리들의 동행 없이 홀로 집으로 향했다.
비록 아직 정식으로 수행을 시작하진 않았지만, 새로이 몸을 얻은 진자주는 그와 동시에 신통함을 몸에 지니게 되었다. 신도(神道)를 닦은 이들처럼 범인(凡人)들의 눈에는 그가 보이지 않았는데, 이 정도는 그가 따로 배울 필요도 없는 수준이었다.
그날 밤, 진자주의 집에서는 진자주를 위해 풍성한 제사상을 차렸다. 그리고 집안사람들은 모두 자리에 누워 잠을 청했다. 잠이 오지 않는 사람도 침대에 누워 이불을 덮고 있었다.
사실 민간의 풍속에 따르면, 아주 소수의 사람만이 혼백을 피해야 했다.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안 된다는 규칙은 없으나, 세상을 떠난 혼백이 가족들이 우는 모습을 보면 절대 안 된다고 여겼다. 그렇지 않으면 혼백이 미련이 남아 떠나지 못한다고들 알려져 있었다. 이에 진씨 집안 사람들도 다른 마을 사람들처럼 제사상에 음식을 올린 후, 모두 침상으로 돌아가 잠을 청한 것이다.
자시(*子時: 23시에서 01시 사이)에서 일각(*一刻: 15분)쯤 지났을 무렵, 진자주는 생전의 습관대로 정문을 통해 집으로 들어가, 정원을 지난 후 천천히 정청(正廳)으로 들어갔다.
갓을 씌운 유등 몇 개가 그 안을 환히 밝히고 있었다.
네모난 모양의 커다란 식탁에는 풍성한 제사상이 차려져 있었는데, 생선과 고기를 비롯한 육류와 채소 요리가 모두 있었다. 이는 진자주에게만 바치는 것이 아니라, 혼백을 관리하고 집으로 데려와 주는 저승의 관리들을 위해 준비한 것이기도 했다.
민간의 속설에 의하면, 저승 관리들을 잘 대접하면 죽은 이들을 각박하게 대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덜 고생하도록 돕는다고 했다.
진자주가 생전 좋아했던 요리가 네다섯 가지 정도 차려져 있었는데, 이는 모두 가장 중간에 놓여 있었다.
“오, 신경 좀 썼구나!”
진자주는 단번에 비름나물과 찐 두부를 발견해냈다.
이것은 진자주가 생전에 가장 좋아했던 요리로, 그리 특별한 점은 없지만 그래도 그는 이것들을 좋아했다. 계절은 이미 입추에 접어들어, 계주의 비름나물은 이미 다 들어갔을 철이었다. 이 근처에는 비름나물을 심은 사람도 없고, 아마 덕원현 전체로 보아도 없을 것이다. 그러니 이 간단한 요리를 차리기 위해 그의 가족들이 얼마나 큰 노력을 쏟아부었는지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그는 참지 못하고 제사상에 놓인 젓가락을 들어 조심스럽게 두부를 베어 물었다. 입에 넣자마자 녹는 그 신선한 맛은 여전히 진자주를 행복하게 했다.
그는 사람도 혼백도 아니고, 평범한 귀신도 아니었지만, 실체 있는 몸을 가졌으므로 오곡(五谷)을 먹을 수 있었다.
“쩝쩝……. 정말 맛있군. 이 몸을 얻게 되고서 미각이 더 발달한 건가?”
진자주는 혼잣말을 하고는 곧이어 실소했다. 어느 정도 먹고 나서 습관대로 젓가락을 놓은 그는 가족들을 보러 건물 한쪽의 방으로 향했다. 그를 막을 관리들도 없는 데다, 이제는 막 죽은 혼백처럼 미련이 남아 떠나지 못할 지경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의 부인은 일찍이 세상을 떠났는데, 저승에 있을 때 알아보니 이미 저승에서도 수명을 채워 혼백이 사라진 상태였다. 이승에 남은 가족들이라고는 진자주의 자식들과 제자들뿐이었다.
진자주는 그들 모두를 보러 갈 생각은 없었으므로, 바로 둘째 아들의 방으로 향했다.
둘째 아들은 이미 그의 아내와 함께 깊게 잠이 든 상태였다. 진자주는 가만히 아들의 침상 곁에 서서 고른 숨소리를 듣고 있었다.
“에고, 이놈. 기가 흐르는 길이 막혀 기혈이 원활하지 못하니, 아무래도 신체 단련을 게을리한 모양이구나. 하여간 어릴 때부터 내 말을 안 듣더니!”
이렇게 혼잣말을 하며 그는 손을 뻗어 아들의 머리에 올렸다.
한창 잠을 자던 진언(秦彦)은 꿈에서 자신이 다시 어려진 것을 보았다. 주위 사람들은 모두 큰데, 자신의 손은 아주 작았다.
그가 있는 곳은 안인 약방의 바깥채로, 그는 다른 점원들과 함께 약재를 빻고 있었다. 점원들은 현재 약방에서 일을 돕는 이들과 같은 사람들이었다. 진언처럼 더 어려진 모습도 아니고, 그가 어렸을 당시 있던 사람들도 아니었다. 그러나 꿈속의 진언은 어떤 위화감도 느끼지 못했다. 꿈에서 진자주는 계산대에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
별안간 진언을 비추던 빛이 가려져 진언이 고개를 들어보니, 그의 부친이 근처에 다가와 있었다.
“아버지?”
“언아, 네 큰 형이 요절한 후로 집안에는 이제 믿을 게 너밖에 없다. 내가 하는 말을 평소 네가 잘 듣지는 않았지만, 이 안인 약방은 앞으로 계속 이어져 내려갔으면 좋겠구나. 만약 자손 중에서 의술을 배우고자 하는 이가 없다면 그만두어도 좋다.”
진언은 빛을 등지고 선 탓에 잘 보이지 않는 부친의 얼굴을 바라보며 네, 하고 대답했다.
진언의 침상 곁에 서 있던 진자주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문을 나섰다.
문밖에서는 계연과 늙은 용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 공, 좀 더 계시지 않고요?”
계연이 웃으며 묻자, 늙은 용도 한마디 말을 보탰다.
“한 사람이 득세하면 주변 사람도 그 덕을 본다고 하지 않소? 가족들을 좀 챙겨 준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을 텐데 말이오.”
진자주는 손을 휘휘 저었다.
“아니요, 괜찮습니다. 제가 고리타분한 게 아니라 자손들은 자신들만의 인생이 있겠지요. 제가 계속 이 집안을 지키고 있을 수도 없지 않습니까?”
늙은 용은 혀를 쯧쯧 차더니, 고개를 돌려 계연에게 물었다.
“계 선생, 진 도우의 속세에서의 일도 마무리되었으니 이제 슬슬 계획을 말씀해 주셔야지요?”
이 며칠간 늙은 용이 몇 차례나 물었으나, 계연은 그를 살짝 놀리고 싶어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 덕분에 오히려 계연의 신비함만 더해가는 중이었다.
늙은 용의 말을 듣고, 진자주도 호기심과 기대에 차 계연을 바라보았다. 모두 계유신이 좋고 대단하다고들 했지만, 그는 아직 어떤 것도 배우지 못했고 일반적인 신령들이 모두 타고난 것들만 할 수 있었다.
<외도전>에 담긴 대강의 추측에는 계유신이 되기 위해 양기가 흐르는 신체를 가져야 한다는 것만 언급했을 뿐, 그 외에는 수행하는 방법이나 다른 어떤 것도 쓰여 있지 않았다.
계연은 여전히 바로 대답하지 않고서, 고개를 들어 하늘에 뜬 별을 한참 보다가 입을 열었다.
“갈 곳이 있어요. 병주 운산에 있는…….”
늙은 용은 계연의 시선을 따라 별을 바라보다가 이렇게 물었다.
“운산관? 별자리 그림?”
“맞아요!”
계연과 늙은 용은 이제 서로의 마음을 쉽게 읽을 수 있었다.
“비록 계유신에게 전해 내려오는 진법(眞法)이 없다지만, 그 진법에도 시작이 있었을 거예요. 그러나 그 시작이 꼭 옛날이어야 하고, 지금이 아니란 법은 없지요!”
응굉의 눈이 반짝 빛나더니,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계연을 바라보았다.
“음, 재미있군, 재미있어. 그런데…… 계 선생이 말하는 것이 정말로 옛 방식(古法)이 아니오?”
계연은 하늘을 바라보던 시선을 거두고 뜻을 짐작할 수 없는 눈빛으로 응굉을 쳐다보며 말했다.
“하하하……. 농담이에요, 농담!”
이에 응굉도 따라 웃으며 고개를 돌려 한쪽에서 영문을 모르고 선 진자주를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