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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기연-178화 (178/892)

178화. 한 번은 몰라도 영원히 피할 수는 없다

진자주는 계연과 응굉이 나누는 수수께끼 같은 대화를 완전히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저 두 분이 자신을 위해 생각해 놓은 계획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응굉은 농담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진자주에게 말했다.

“진 도우도 분명 무슨 일인지 궁금하겠지만, 우리와 함께 병주로 가면 곧 알게 될 것이오.”

이렇게 말하고서, 늙은 용은 비거술(飛擧術)로 구름을 몰아 계연과 진자주를 데리고 하늘로 솟아올랐다.

* * *

닭 울음소리가 처음 들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덕원현에 여명이 밝았다.

하늘이 점차 밝아오자 진씨 집안 사람들은 하나둘씩 잠에서 깼다.

진언은 하늘이 밝아올 때까지도 꿈을 꾸고 있었는데, 꿈에서 그는 약방에 앉아 약재를 빻고 분류해 넣고 있었다. 점원을 도와 약재를 정리하거나 후원으로 가지고 나가 햇빛에 말리기도 했다. 꿈속의 그의 부친은 당부하는 말을 남긴 후에 갈 곳이 있다며 떠났고,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래서 진언은 꿈속에서 아버지가 다른 마을로 병자를 진찰하러 갔거나, 약초를 캐러 산에 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여보, 여보!”

진언의 부인이 곁에서 몇 차례 그를 부르자, 진언은 단번에 꿈에서 깨어났다. 어리둥절하여 바삐 사방을 살펴보니, 자신의 침실이었다.

“여보, 이제 일어날 시간이에요. 빈소도 정리하고 가서 가게 문도 열어야죠.”

“아……. 그렇지, 이제 일어나겠소!”

진언은 약간 멍하니 생각에 잠겨 있다가 이렇게 대답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걸치는 동안, 어젯밤 꾸었던 꿈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일단 부인에게 아무것도 말하지 않기로 했다. 그가 사는 마을에는 아침밥을 먹기 전에 꿈 이야기를 하지 말라는 소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날씨는 그리 쌀쌀하지 않았고, 진씨 집안 사람들은 일찍 일어나 하루를 준비했다. 그들은 어젯밤 차린 제사상을 정리하고, 제사상에 올린 음식 중 몇 가지는 아침에 죽을 끓여 먹을 요량으로 주방으로 가져갔다. 그런 후에 빈소로 향했다.

“어! 이 두부……. 설마 어젯밤에 아버지가 정말로 오셨었나?”

진언이 막 빈소에 들어서자 그의 여동생이 놀라 이렇게 소리쳤다. 이에 그는 다급히 제사상으로 다가가 접시들을 살폈다.

“오라버니, 이것 좀 보세요.”

그의 부인과 여동생은 그보다 일찍 와서 제사상을 정리하고 있었다. 60이 넘은 그의 여동생은 상에 놓인 접시 하나를 가리켰는데, 바로 비름나물을 얹은 찐 두부 요리가 올려진 접시였다.

원래 요리는 두부 한 덩이를 네 개로 자르고, 여덟 조각으로 자른 두꺼운 비름 줄기를 두부 위에 얹어 놓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잘라 놓은 두부 중 하나가 사라져 세 조각만 남아있었다. 그리고 속을 깔끔히 빨아먹고 남은 두꺼운 줄기 두 개가 상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진자주는 생전에 이 요리를 즐겨 먹었지만, 주로 이렇게 두부 한 조각만 먹었었다. 그런 후에 그는 가족들도 신선한 두부를 맛볼 수 있도록 더 손대지 않고서, 탕에 밥을 적셔 먹고는 했었다.

“아니, 어찌……. 설마 어젯밤에 도둑이 들었나?”

진언의 부인도 이게 어찌 된 일인지 알 수 없어 두려움을 느끼며 이렇게 말했다.

“정말 도둑이 들었다면 이것만 먹고 갈 리가 없소. 옆의 생선이며 고기며 다 있는데, 왜 두부만 한 조각 먹는다는 말이오? 게다가 어젯밤 같은 날에는 정말로 도둑이 들었어도, 빈소를 보고서 다시 담을 넘어 돌아갔을 거요!”

미신이 팽배하던 이 시대에는, 도둑이 들어왔다고 해도 빈소 앞에 차려진 제사상을 보면 놀라 도망칠 게 분명했다. 그들은 잔칫집은 털어도 상갓집은 털지 않았다.

이어서 진언의 아들과 손자뻘 되는 이들이 차례로 도착해 빈소는 말끔히 치워졌다.

아침밥을 먹는 동안 진언은 계속 생각하고 있었던 꿈 내용을 가족들에게 전달했다. 이에 진씨 집안 사람들은 모두 어르신이 저승에 가기 전에 작별 인사를 하러 왔다고 여겼다.

* * *

진자주는 현재 병주 장천부의 운산 상공에 떠 있었다. 지역마다 시차가 조금 달랐기 때문에 이곳은 이제 막 일출이 시작되는 참이었다. 진자주와 계연, 응굉은 구름 위에서 해가 뜨는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세 사람은 구름 위에 서 있었는데, 그 구름은 산을 뒤덮은 운해(雲海)와 합쳐져 다른 구름과 구별이 잘 되지 않았다. 그래서 진자주는 마치 거대한 파도 위에 발을 딛고 서 있는 느낌을 받았다. 곧 태양이 떠올라 서서히 구름을 햇빛으로 물들였다.

“진 도우는 운해 위쪽으로 해가 뜨는 풍경을 처음 보는 것이지요?”

늙은 용이 웃으며 물었다.

진자주는 사실대로 대답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80살 이전까지는 홀로 산에 올라 약초를 캤기 때문에 높은 산봉우리에도 자주 갔었습니다. 그래서 이와 비슷한 광경을 몇 번 보았지요. 하지만 용왕께서 물으시는 것이 구름 위에 서서 일출을 본 적이 있느냐는 뜻이라면, 그것은 처음입니다.”

“그렇겠군요!”

해가 완전히 떠오르자, 운산관 안에서도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세 사람은 구름을 타고 연하봉으로 향했고, 이들은 청송 도인과 제문이 일어나 씻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이어 청송 도인과 제문은 양생공을 연마했고, 그 후에는 제문이 물을 길으러 물통을 들고 산에서 내려갔다.

흥미로웠던 것은, 예전의 그 담비 두 마리가 운산관 안에 숨어있었다는 것이다. 청송 도인이 홀로 남아 권법을 연마하는 동안, 담비 두 마리는 도관의 구석에 숨어 그 모습을 훔쳐보고 있었다.

“허허! 계 선생, 보아하니 저 짐승들이 영지를 얻은 것 같소이다!”

늙은 용은 아래를 내려다보며 흥미로운 듯 말했다. 알에서 깬 새들이 처음 보는 사람을 잘 따르듯이, 영지를 얻은 짐승들 또한 그랬다. 운산관의 두 도사는 비록 진정한 수선자들은 아니지만, 도가(道家)의 깨끗하고 고요한 사상이 두 담비에게는 좋은 영향을 줄 것이었다. 향냄새를 오래 맡으면 삿된 것에 쉽게 빠지지 않았다. 도관뿐만 아니라 부처를 모시는 절도 이와 비슷했다.

“참! 응 선생님께서는 모르시겠지만, 저 담비들은 예전에 저희가 운산관에서 생선 요리를 먹으며 도를 논할 때, 도관 밖 수풀에서 몰래 이야기를 듣고 있었어요. 아마 그때부터 서서히 영지를 얻기 시작한 것 같아요.”

“오호? 그런 일이 있었구려!”

그는 순간 담비 두 마리에 더 큰 흥미가 생겼고, 그들을 바라보는 태도도 좀 더 온화해졌다. 진자주도 담비들을 바라보며 연신 신기해했다.

이때 계연은 진자주를 향해 다시 한번 공수하며 말했다.

“천릿길을 배웅해도 이별의 순간은 있다지요. 청송도인 제선과 그 제자인 제문은 모두 좋은 사람들입니다. 운산관은 풍광도 좋고 영험함도 갖추고 있으니, 진 공께서는 이곳에서 편히 수행하세요. 그동안 스스로 많은 생각을 해보시고, 도가에서 별자리를 받들어 모시는 것에 대해서도 배워보세요. 계유신이 되는 길에 입문할 수 있는 방도를 이곳에서 얻으실 수 있을 겁니다.”

진자주도 더는 길게 감사 인사를 하지 않고, 계연과 응굉을 향해 정중하게 공수했다. 그 후, 이들을 태운 구름은 낙엽이 바람에 떨어지듯 부드럽게 운산관 밖의 비탈길에 내려섰다.

* * *

이 시각, 청송 도인은 양생공 수련을 몇 번 반복한 후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 최근 2, 3년간 그는 점점 더 활력이 솟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이에 사람들에게 점을 쳐줄 때도 더욱 자신감이 붙었다.

쿵쿵쿵!

“도관에 누구 안 계십니까?”

도관 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연로한 이의 것처럼 들리지만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비록 문은 살짝 닫아 놓은 상태에 불과했지만, 바깥에 서 있는 사람은 스스로 열고 들어오려 하지 않았다.

“네네! 열어 드릴게요!”

청송 도인은 급히 뛰어가 문을 열었다. 문밖에는 회색 옷을 입은 노인이 서 있었다.

노인은 머리와 수염이 모두 하얗게 세었고, 안색은 화색이 돌았다. 기다란 눈썹 털이 눈 밑까지 1촌(*寸: 약 3cm)은 내려와 있었고, 보아하니 7, 80세 같기도 하고 90세는 넘은 듯 보이기도 하여 정확한 나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노인은 청송 도인이 나오자 그를 향해 공수하며 인사했다.

청송 도인은 이상하게도 노인을 보자마자 어디서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안녕하시오. 이 늙은이가 출가하여 운산관에서 도사가 되고자 합니다. 도장께서 받아 주시겠습니까?”

자신의 할아버지뻘일 수도 있을 것 같은 노인이 대뜸 이렇게 묻자, 청송 도인은 어리둥절했다.

“저…… 어르신, 연세가 적지 않으실 것 같은데, 도사가 되신다고요? 혼자서 산을 오르셨습니까?”

청송 도인은 노인의 뒤쪽을 살펴보았으나, 그를 데리고 온 청년이나 누구도 보이지 않았다.

“왜 그러시오? 아이는 도사가 되어 도를 닦기에 적합하지 않고, 노인은 나이가 들고 몸이 약하므로 무공을 닦기에 적합하지 않다고들 하지요. 그러니 이 늙은이가 이제 산에 올라 도를 닦고자 하니 마침 잘되지 않았습니까! 늙은 몸을 이끌고 산에 올랐는데, 도장께서도 차 한 잔 정도는 내어주시겠지요?”

진자주는 나이가 많아 세상 사는 요령을 일찍이 터득했고, 그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도 많았다. 계연과 늙은 용, 귀신들 앞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언행을 조심했으나, 그렇다고 그가 말솜씨가 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정말로 말을 하고자 한다면 그는 누구와도 능숙하게 말을 섞을 수 있었다.

“그럼요, 당연하지요. 어서 들어오세요!”

청송 도장은 노인을 도관에 받아 줄 생각이 없었다. 이 노인은 척 봐도 어디에 부딪히거나 넘어지기만 해도 의원을 청해야 하는 나이였다. 그러나 차마 도관 문턱조차 넘지 못하게 할 수는 없어, 잠시 응대해 주다가 노인을 모셔 산에서 내려가기로 결심했다.

그는 노인을 주방으로 안내한 후, 차를 내오며 물었다.

“어르신, 연세가 어찌 됩니까? 댁은 어디세요?”

“음, 어디 보자……. 나이는 백 살일 수도 있고, 한 살일 수도 있소이다. 백 살이라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군! 집은, 흠……. 이미 출가하기로 했으니 속세의 일은 꺼내지 않겠소!”

진자주는 이렇게 말하며 천천히 차를 마셨다. 그의 말을 들은 청송 도인은 말문이 막혔다. 이에 그는 노인을 설득해 돌려보내려던 생각을 접고, 노인의 맞은편에 앉아 세세히 그의 관상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혈색이 좋고 정기가 넘친다고만 여겼는데, 보면 볼수록 상이 모호했다. 심지어 방금 보았던 것이 어땠는지도 잊어버리자, 그는 속으로 몹시 놀랐다.

‘이분도 범인(凡人)이 아니야!’

청송 도인은 아무래도 계 선생님이 이곳에 온 이후로, 운산관이 좀 특이해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노인에게 물었다.

“어르신, 혹시 계 선생님을 아십니까?”

진자주는 웃음을 얼굴에 띠고서, 찻잔을 내려놓고 제선에게 공수했다.

“노부(老夫) 진자주, 계 선생님과 용왕의 말씀에 따라 운산관에 수행하러 왔소이다. 도장께서는 받아 주시겠습니까?”

청송 도인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받…… 받아들이겠습니다!”

그 후 제선은 돌연 그를 기억해냈다.

“어르신은 진 신의(神醫) 님이 아닙니까? 어찌 외모가 이렇게 변하셨는지요?”

그의 기억 속의 진 신의는 회백색의 머리에 짧은 턱수염을 기르고 약간 마른 얼굴형을 가지고 있었다. 지금의 모습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이에 진자주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주방 문 위쪽을 바라보았다. 운산관 상공에 있던 계연과 늙은 용이 서로를 바라보며 씩 웃더니 구름을 몰아 떠나가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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