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179화 (179/892)

179화. 연못

계연과 응굉은 도중에 헤어져 한 사람은 동쪽 계주로 향했고, 다른 한 사람은 서쪽 통천강으로 향했다.

계연은 반나절이 걸려서 거안소각에 돌아올 수 있었다. 오늘은 마침 서당이 쉬는 날이라, 윤청과 호운은 거안소각의 후원에서 휴식을 취하는 중이었다. 마침 상쾌한 바람이 불어와 대추나무 잎이 가볍게 흔들리는 소리를 냈다.

계연은 땅에 내려서며 조금도 소리를 내지 않았다. 탁자 근처에 가보니, 사람과 여우는 한참 달게 잠을 자고 있었다.

돌로 된 탁자 위에는 서신 두 개가 놓여있었는데, 그중 하나에는 ‘내 아들 윤청 보아라’라고 적혀 있었으며 이미 뜯어본 흔적이 있었다. 밀봉된 다른 서신에는 ‘계 선생 친전(*親展: 직접 열어 보세요)’이라고 적혀 있었다.

계연은 겉면의 붓글씨만 보고서도 그것이 친우인 윤재성의 서신임을 알 수 있었다. 그는 깊은 잠에 빠진 윤청을 보고서는 웃으며 혼잣말했다.

“한 번은 피해도 영원히 피할 수는 없다더니, 아무래도 춘혜부로 가야겠구나!”

서신의 내용을 보지 않아도 이미 윤재성의 성격을 알기에, 계연은 뭐라 서신에 쓰여 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자신에게 보낸 서신을 뜯은 후 대략 내용을 훑어보자, 과연 계연에게 윤청을 재촉해 주부(州府)에 있는 혜원서원으로 보내 달라는 내용이었다.

그의 서신을 읽으니 행간과 글자에서 마치 윤재성 본인이 보이는 듯하였다. 과연 몇 년간 관직에 몸을 담은 자답게, 그의 서체에서는 호방하고 드높은 기세가 느껴졌다. 이전에 계연의 글씨를 보며 연습하던 때보다 훨씬 진보하여, 이미 자신만의 풍모를 이루고 있었다.

계연이 한참 서신을 읽고 있을 때, 종이학 한 마리가 비단 주머니를 열고서 온 힘을 다해 윤청의 품 안에서 벗어났다. 그리고는 날개를 바삐 움직여 계연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오, 더 총명해졌구나!”

법령을 알아보지 못하는 한, 다른 사람들은 이 종이학에 숨겨진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종이학이 날지 않는 이상, 사람들은 그저 보통의 종이학이라고 여길 것이다.

계연은 보자마자 종이학의 상태를 알 수 있었다. 이 종이학에서 느껴지는 영기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났다. 게다가 영기 말고도 종이학에 담긴 법력도 조금도 줄어들지 않은 채였다. 그러나 그것이 대추나무 아래 오래 있던 것이 원인인지, 또 다른 무언가가 원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이 종이학에는 영지가 없었지만, 이제는 희미한 영성(靈性)을 띄는 본능을 가지게 되었다. 종이 자체에는 특별한 점이 없었고, 종이학에 영기가 흐르고 하늘을 날 수 있는 이유는 바로 보이지 않는 글자에 있었다.

지난 2년간 종이학은 본능적으로 영기를 모았으나, 한 번도 지금처럼 영기가 늘어난 적은 없었다.

종이학에 손을 대자, 계연은 종이학 위에 적힌 백 십여 개 글자를 ‘느낄’ 수 있었다. 만들 당시 설계했던 대로, 문자가 연결된 형태가 일종의 특수한 통로를 만들고 있었다.

오랫동안 이 종이학만을 사용하며, 시시때때로 생각을 불어넣고 법력을 전하고 영기를 불어넣다 보니, 물이 흐르는 곳에 물기가 남듯 그 통로가 끊기지 않고 유지되고 있었다.

계연이 손을 거두자, 종이학은 자연스럽게 그의 소매 안으로 들어가 자리 잡았다.

계연의 목소리를 들은 탓인지, 예민한 호운이 잠에서 깼다. 그는 귀를 몇 번 털고서 눈을 떴는데, 호운은 곧바로 계연이 탁자 곁에 서서 서신을 읽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계 선생님, 돌아오셨군요!”

“음!”

계연은 짧게 대답하고는 계속해서 서신을 읽었다.

호운은 다급히 손을 뻗어 낮잠에 빠진 윤청을 툭툭 쳐 깨웠다.

“으음……. 왜 그래?”

윤청은 멍하니 잠에서 깨 눈을 비비며 붉은 여우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계 선생님!”

하지만 계연의 손에 들린 서신을 보자 윤청의 얼굴이 곧바로 시무룩해졌다. 굳이 생각해보지 않아도 그 서신에 무어라 적혀 있을지 알기 때문이었다.

“깼니? 네 아버지께서 너를 춘혜부로 보내려 하는 것 알지?”

“알고 있어요…….”

계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다면 오늘 밤부터 짐을 싸는 게 좋겠다. 내일은 훈장님과 서당의 친구들이며 이웃들에게 작별 인사를 한 후, 바로 춘혜부로 가면 되겠구나.”

“네…….”

대답을 마치고 여우와 계연을 바라보는 윤청의 표정이 의기소침했다.

계연은 고개를 저으며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미소 지었다. 그는 몸을 돌려 안으로 들어가면서, 가볍게 한마디를 던졌다.

“내가 호운을 데리고 함께 춘혜부로 바래다주마.”

계연이 자리를 뜨자, 윤청과 호운은 그제야 그의 말을 이해하고서 작게 환호했다.

* * *

다음 날, 윤청은 친구들과 가까운 이웃이며 친척들과 서당의 훈장님께 작별 인사를 하러 다녔다. 그 후 자신의 책가방을 등에 지고 옷과 문방사우, 돈 조금과 여우를 데리고 계연과 함께 춘혜부로 가는 길에 올랐다.

계연은 자신이 윤청의 윗사람이기도 하니, 윤청을 다른 친척에게 맡기거나 홀로 춘혜부로 보내는 것보다는 자신이 직접 바래다주는 것이 낫다고 여겼다.

예전에 계연은 춘혜부까지 두 다리로 걸어갔으나, 이번 배웅에는 견학의 목적도 있어 마차를 한 대 고용했다.

차창에 달린 가리개는 전부 젖힌 상태였고, 윤청은 마부의 곁에 앉아 주변 풍경을 감상하고 있었다. 이는 마치 계연이 전생에서 학교에 다닐 때, 수학여행을 가는 큰 버스 안에 앉아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는 것과 비슷한 모습이었다.

마부는 건장한 체격의 사내로 대략 60세에 가까워 보이는 외모였지만, 사실은 40을 조금 넘은 나이였다. 시골 사람 중에는 남들보다 나이가 빨리 드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마침 그런 유형이었다.

마차가 현을 나오자마자, 마부는 이렇게 알려왔다.

“계 선생님, 오늘 저녁 안으로 무사히 순보현(順寶縣)에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내일 아침에는 천주현(天周縣) 방향으로 향할 것이고, 운이 좋다면 5일 안에 구도구현(九道口縣)에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네, 좋아요!”

계연은 그렇게 대답한 후 다시 손에 들고 있던 옥간(玉簡)을 읽었다. 물론 장안법을 써서 마부의 눈에는 특별할 것 없는 죽간으로 보였다.

계연이 윤청을 데리고 마차를 고용하려 한다고 소문이 나자, 많은 마부가 서로 그 일을 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계연도 그렇지만, 윤 장원랑(壯元郞)의 아들인 윤청이니 그와 좋은 인연을 맺어 두면 나쁠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하다못해 어디 가서 말을 할 때도 체면을 세울 수 있었다.

“윤 공자, 저희 앞에 있는 이 말이 황표마(*黃驃馬: 누런색 바탕에 흰 털이 섞이고 갈기와 꼬리가 흰 말)인데, 비록 나이는 들었지만, 힘이 대단하답니다. 게다가 구도구 노화산 쪽은 제가 매년 열 번은 넘게 가기 때문에, 이놈도 길을 외우고 있지요. 제가 설령 마차를 몰다가 잠이 들더라도, 말이 알아서 길을 찾아간답니다!”

“오, 정말 대단하네요!”

윤청은 이렇게 칭찬하고서 손을 뻗어 몇 번 말을 두드려 주었다. 그와 동시에 발을 뻗어 말 궁둥이를 쓰다듬어 보려던 호운은 윤청에게 한 대 쥐어박히고서 다시 몸을 숨겼다.

“음? 방금 공자님이 때린 것이 무엇입니까? 아무래도 뭐가 있었던 것 같은데…….”

마부는 방금 윤청이 앞으로 몸을 숙여 말을 두드릴 때, 그의 팔 밑에 무언가 그림자가 진 것을 본 것 같았다.

“아아, 모기를 잡았습니다! 말을 물려고 하더라고요!”

“이런, 가을 모기가 독하지요. 그러나 이 황표마는 모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답니다. 윤 공자야말로 피부가 연약하시니, 물리지 않게 조심하세요.”

윤청은 붉은 여우를 한번 째려보고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손을 살폈다.

윤청은 대갓집에서 보살핌을 받고 자란 공자가 아니라 오히려 온갖 궂은일을 하며 자란 소년이었다. 그러나 지난 몇 년 동안은 그럴 일이 없었기 때문에, 남들이 보기에는 정말로 어떤 고생도 겪지 않고 곱게 자란 것처럼 보였다.

계연은 호운의 행동을 놓치지 않고 눈에 담고 있었다. 저 붉은 여우는 심성이 제대로 자리 잡지 않아 천진난만했다. 그러나 조금의 신통력을 얻었다고 스스로가 대단하다고 여겨서는 곤란했다. 보아하니 고생을 좀 해야 할 것 같았다.

왈왈왈!

컹컹!

이때 커다란 개 몇 마리가 나타나 마차를 향해 맹렬하게 짖어 댔다. 성 밖에 있는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기르는 개들인 것 같았다.

개가 짖는 동시에 호운은 마차 안으로 쏙 들어와, 계연의 등 뒤에 숨었다.

마부는 채찍을 휘두르며 마차 주변의 개들을 쫓아냈다.

“훠이! 훠이! 저리 가거라, 가! 안 가면 채찍에 맞는다!”

마부는 이렇게 말하며 계속해서 채찍을 휘둘렀으나, 개들은 몇 걸음 물러났을 뿐 또다시 마차를 둘러싸고 짖어 댔다. 그 상태로 1리(*里: 약 390m)를 더 가고 나서야 주위가 조용해졌다.

“아이고, 저놈의 개들……! 오늘 정말 운수가 나쁘네요, 여기까지 따라오다니!”

호운은 이 모든 소동이 일어날 동안 계연의 옆에서 조금도 떨어지지 않았다. 이를 보던 계연은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한 번 개에 물리더니, 호운은 요괴가 되고 나서도 여전히 개를 두려워했다. 윤청은 마부 곁에 앉아 배를 움켜쥐고 억지로 웃음을 참았다.

* * *

이번 여행은 전과 달라서 길을 잃을 위험은 없었다. 이들은 순보현에서 관도(官道)를 타고 천주현으로 접어들었다. 그리고는 천주현을 통과하여 구도구현으로 향했는데, 다행히 여정 중간에 밤이 될 때마다 적당한 객잔을 찾아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6일째 되는 날 아침, 그들은 구도구현 바깥의 노화산 입구에 다다랐다.

계연은 마부를 노화산까지만 고용하고서, 그 후로는 걸어가기로 했기 때문이다. 물론 마차를 타고 바로 나루터까지 갈 수도 있었지만, 계연은 노화산에 따로 볼 일이 있었으므로 노화산에서 내렸다.

그는 마부에게 값을 치르고 작별 인사를 나눈 뒤, 윤청과 호운을 데리고 노화산에 올랐다.

짐마차들이 지나는 길을 잠시 걷던 윤청은 계연이 자신들을 데리고 다른 길로 접어든 것을 발견했다. 가면 갈수록 산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는 것 같았지만, 두렵기는커녕 호기심이 들었다.

“계 선생님, 우리 나루터로 가는 것 아니었나요? 산에는 왜 들어가시는 거예요?”

계연은 윤청과 그의 등 뒤에 업혀 궁금해하는 호운을 보며 자못 신비롭게 웃어 보였다.

“이 산 안에 연못이 하나 있는데, 가서 물고기가 있는지 없는지 보려고 한다!”

그들은 반 시진 정도 걸어서 관목과 수풀을 해치고, 노화산 중심에 자리 잡은 벽수담에 도착했다. 깊은 청록색이 나는 연못은 보기만 해도 가슴이 섬뜩해졌다.

“계 선생님, 여기에 물고기가 살아요? 보기에는 꼭 커다란 물뱀이 살 것 같은데요.”

“맞아, 맞아…….”

호운도 두려운지 윤청의 등 뒤에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계연은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바로 연못가로 다가가 등 뒤의 넝쿨검을 꺼내 들었다.

그러자 윤청과 호운의 눈이 한순간에 커졌다. 그들이 보기에는 계 선생님이 아무것도 없는 공중에서 검 한 자루를 꺼내어 든 것처럼 보였다.

호운은 그렇다 치더라도, 윤청은 계연이 본인의 비범한 무기를 드러내는 모습을 처음 본 것이었다. 비록 신비로운 대추나무와 호운과 같은 여우 요괴는 보았었지만 말이다.

그 후 계연은 푸르게 빛나는 장검을 수면에서 2촌(*약 6cm) 정도 되는 높이에 띄우고서 가만히 있었다. 그러자 잠시 후, 은빛이 나는 작은 물고기가 하얀 배를 드러낸 채 수면에 둥둥 떠올랐다. 검기(劍氣)에 의해 겁을 먹고 잠시 정신을 잃은 것 같았다.

“하하, 진짜로 있네!”

계연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이보다 조금 더 큰 물고기가 수면에 떠올랐다.

“오! 한 마리 더 있었군! 더 있으려나?”

계연은 조금 더 기다려 보았으나, 세 번째로 떠오르는 물고기는 없었다. 보아하니 2년간 아무도 와서 은규자를 잡아가지 않은 듯했다.

윤청과 여우는 어리둥절하여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걸 낚시라고 할 수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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