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183화 (183/892)

183화. 윤 훈장

다음 날 아침, 하늘이 밝아오자 배 후미의 선창에서 잠이 들었던 뱃사공이 잠에서 깼다.

“흐아암!”

하품하고 기지개를 켜던 그는 자신에게서 정기가 흘러넘치고 원기도 회복되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온몸의 진기(眞氣)는 더욱 원활하게 흘렀고, 며칠간 쌓였던 피로도 말끔히 사라져 있었다.

“그 계 선생께서 주신 생선탕이 정말로 대단한 보양식이었던 모양이야. 이렇게나 효과가 좋은 건 처음이네. 산삼도 이 정도는 아닐 것 같은데, 그 생선이 도대체 얼마나 특별한 것이길래…….”

그가 일어나 양치하고 세수를 한 후, 배 앞쪽으로 향하니 선창의 문이 두 쪽 다 굳게 닫혀 있었다. 보아하니 두 손님은 아직도 자는 듯했다.

뱃사공은 선창을 지나쳐 화로를 가지러 갔다가, 질솥이 깨끗한 것을 발견했다. 심지어 어제 사용한 그릇들과 젓가락도 모두 깨끗이 씻겨 바깥에 놓여있었다.

‘과연 글 읽는 사람은 뭔가 다르구나!’

남자는 이런 생각을 하며, 한 손으로 화로를 들어 그 위에 질솥과 젓가락, 숟가락을 올려놓고, 다른 한 손으로는 높이 쌓인 그릇들을 들어 선창을 지나 배 후미로 향했다.

그는 화력이 좀 더 센 도기 화로에 불을 붙인 다음, 그 위에 죽을 한 솥 끓였다. 그리고는 대쪽(竹片)과 마른 잎을 한 움큼 챙겨서 후미에 앉아 바지를 내리고 앉았다.

‘퐁당’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수면 아래로 쏙 들어갔다. 이에 물 밑에 있던 푸른 그림자가 놀란 듯이 저 멀리 헤엄쳐갔다.

반 시진쯤 지나 계연과 윤청도 잠에서 깼다. 뱃사공은 그들과 인사를 나눈 후, 항아리에서 방금 내온 절임 채소를 곁들여 다 함께 죽을 먹었다.

식사를 마친 뱃사공은 다시 노를 잡고 춘혜부로 부지런히 배를 몰았다.

기분이 무척 좋았던 뱃사공은 “어허~ 허어어~” 하며 콧노래를 부르기 시작했고, 그에 맞춰 계연은 속으로 ‘서호미경삼월천(*西湖美景三月天: 드라마 <신백낭자전기(新白娘子傳奇)>에 나오는 노래)’을 따라 불렀다.

대략 이틀하고 반나절이 지난 오후에 그들이 탄 배는 목적지에 다다랐다. 춘혜부 밖 큰 나루터에 배를 대자, 계연은 이곳의 번화한 풍경을 다시 한번 볼 수 있게 되었다. 경기부 밖 통천강에 비하면 좀 더 작고 덜 번잡했지만, 오히려 더욱 생기가 있어 이름 그대로 봄기운이 느껴졌다.

뱃사공은 계연과 윤청이 내는 뱃삯을 받지 않으려 했다. 그날 밤 마셨던 천일춘은 모른 척할 수 있을지 몰라도, 다음에 먹은 생선탕은 어디에서도 얻을 수 없는 희귀한 것이었기에 자신이 받을 뱃삯보다도 비쌀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계연도 그가 이처럼 고집을 꺾지 않자, 다시 한번 서로 고맙다고 인사를 나눈 후 윤청과 함께 춘혜부 부성으로 들어갔다.

전과 달리 두 번째 방문이라고 해서 길이 익숙하진 않았지만, 혜원 서원은 춘혜부에서 유명했기 때문에 찾기 어렵지 않았다.

윤청이 이곳에 익숙해지도록, 셋은 번화한 부성의 거리를 구경하며 걸었다.

호운이 성에서 불필요하게 이목을 끄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계연은 춘혜부 성황신이 윤 훈장을 통해 자신에게 전해주었던 매목으로 만든 목패를 호운의 목에 걸어주었다. 이렇게 하면 주간 순시관들이 호운이 요괴라는 것을 알아보더라도, 보자마자 다짜고짜 공격하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계연은 속으로 심술궂은 계획을 하나 생각해 냈다. 호운이 제 분수를 알도록, 등이 검은 거북이나 다른 요괴들이 얼마나 힘들게 수행하는지 알려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혜원 서원은 춘혜부 부성의 비교적 조용한 동남쪽에 있었다. 서원의 면적은 작지 않았는데, 그 안에는 층이 높고 낮은 여러 건물이 세워져 있었고 곳곳마다 매란국죽(*梅蘭菊竹: 절개와 지조를 상징하는 사군자. 매화, 난초, 국화, 대나무)이 심겨 있었다.

수업하는 선생들은 대부분 주에서 열리는 해시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던 이들이었다. 그중 두 명은 조정의 관리로 일하다가 퇴직하여 고향에 내려온 자들이었다.

계연이 살았던 현대의 말을 빌리자면 학습 환경이 좋고, 교사의 자질이 뛰어난 A급 교육기관이라고 할 수 있었다. 과연 계주 전체에서 첫 손에 꼽히는 대서원다웠다.

비록 혜원 서원에서 공부하는 다른 대갓집 자제들이 적지 않았지만, 윤 문곡(*文曲: 문곡성(文曲星)을 뜻하는 말. 학문과 재물을 관장하는 별로, 윤재성과 같은 저명한 문인을 이르기도 함)의 아들은 당연히 그중에서도 특별한 경우였다. 서원에서는 윤청이 오기를 일찍이 기대하고 있었다. 일전에 윤 문곡의 서신을 받고 이미 윤청이 며칠 내에 온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서원의 문지기들은 최근 각별하게 신경을 기울이고 있었다.

혜원 서원에서는 학생들을 서원 안에서 숙식하도록 관리했다. 설령 집이 춘혜부 부성에 있는 학생들이라 해도, 허락 없이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휴무일이 아니면 서원에 출입할 때는 모두 선생의 허락이 담긴 종이가 필요했다. 이런 점은 계연의 전생에 있던 기숙 학교와 매우 비슷했다.

그러나 다른 점도 있었는데, 서원의 공부는 주로 자습을 위주로 했다. 학생들은 다 함께 수업을 들은 후, 스스로 공부하게끔 되어있었다. 또한, 일정한 기간마다 수준을 평가하는 시험을 치기는 하지만, 과제를 내주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게다가 선생들도 대부분 서원에서 학생들과 함께 숙식하기 때문에, 학문을 배우는 것뿐만 아니라 나중에 어떤 사람이 되고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지도 배울 수 있었다. 그래서 계연의 이전 생에서보다 이곳의 사제 관계는 훨씬 친밀했다.

혜원 서원의 문지기는 다른 곳의 문지기와 달리 눈치가 빠르고 보는 눈이 있어, 최근 휴무일이 아닌 날에 서생같이 보이는 사람이 다가오면 윤청인가 싶어서 눈여겨보기도 했다.

그러니 계연과 윤청에 서원에 다가갔을 때, 문지기는 바로 윤청이 장원랑의 아들임을 알아보았던 것이다. 멀리서부터 문지기는 단정한 윤청의 용모에서 풍겨 나오는 학문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는데, 그 곁에 선 계연은 서생의 표본처럼 보이지는 않았으나 내뿜는 기운이 비범했다.

윤청과 계연이 가까이 다가오자, 문지기의 예상대로 윤청은 홀로 책가방을 지고 걸어와 그에게 읍하며 말했다.

“저는 덕승부 영안현에서 온 윤청이라 합니다. 혜원 서원에서 공부하고자 왔습니다!”

“신분을 증명할 서신이 있소이까?”

문지기가 묻자 윤청은 책가방을 내려놓고, 안에서 서신 두 개를 꺼냈다. 하나는 윤청의 부친인 윤재성이 쓴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영안현 현학(縣學)의 훈장님이 써 주신 서신이었다.

“이것은 제 부친과 훈장님께서 써 주신 서신들입니다. 부디 읽어주세요.”

문지기는 윤청의 서신을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들고, 잠시만 기다리라고 말하더니 급히 서원 안쪽으로 뛰어갔다.

계연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법안을 열어, 탐화랑 3명과 방안 1명을 배출했다는 세워진 지 40여 년이 된 혜원 서원을 살펴보고 있었다. 과연 이곳은 남다른 문기(文氣)가 넘쳐흐르고 있었다.

잠시 후, 나이가 각기 다른 선생으로 보이는 사람 몇 명이 문지기와 함께 돌아왔다. 그들이 입구에 도착하자, 윤청은 선생들에게 공손하게 제자의 예인 장읍례를 올렸다.

“훈장님들을 뵙습니다!”

“되었소, 되었소. 윤 공의 아들은 과연 비범한 기운을 지녔구려!”

“그러게나 말이오. 윤 공자가 우리 혜원 서원에서 공부하게 되었다니, 아무래도 장래에 우리 서원에 장원랑이 더해질 모양입니다. 하하하….”

윤청은 연이어 당치도 않다며 손사래를 치고는 겸손한 태도를 보였다.

가벼운 인사말이 오가고, 나이 든 선생 하나가 곁에 선 계연에게 공수하며 물었다.

“선생께서는 윤 공자와 어떤 사입니까?”

이 노인은 인생 경험이 꽤 풍부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는 계연이 묵옥 비녀로 아무렇게나 머리를 반만 틀어 올린 모습이 정통 서생의 모습은 아니어도 꽤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이 소탈하고 호쾌한 모습을 보니 아마 강호에서 온 사람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이에 계연도 공수하며 그에게 대답했다.

“제 성은 계 씨이고, 이름은 연이라고 합니다. 윤씨 집안과는 가까운 이웃이었습니다. 윤 훈장님은 저의 좋은 벗이니, 윤청이 처음 먼 길을 나서는 것을 배웅하고자 함께 왔습니다.”

“아, 계 선생이시군요. 실례했습니다!”

윤재성이 원래 현학에서 훈장을 했었다는 사실은 이제 전국에 퍼져 비밀도 아니었다. 그러나 계주와 대정국의 서생들은 모두 존경을 담아 그를 ‘윤 문곡’이라거나 ‘윤 공’이라고 불렀다. 그런데도 이렇게 ‘윤 훈장’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아하니, 오래된 사이라 습관으로 굳은 듯했다.

“계 선생, 그리고 윤 공자, 어서 들어오시지요!”

선생이 그들을 맞이하자, 계연과 윤청은 함께 서원 안으로 들어갔다.

가족들을 데리고 서원을 참관하는 것은 혜원 서원의 전통이었다. 다른 선생들은 모두 일이 있어, 진(陳)씨 성을 가진 선생 한 명이 그들을 데리고 이곳저곳을 보여주었다.

그러는 동안 소식이 빠른 서원의 모든 학생이 윤청을 보러 나왔다. 그들은 모두 전설 속 인물과 같은 윤 문곡의 아들이 도대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했다. 다행히 윤청의 외모가 아버지를 부끄럽게 하지 않을 정도는 되었다. 비록 사람을 외모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지만, 준수한 외모가 큰 도움이 되는 것만은 사실이었다.

윤청이 머물 숙소에 도착한 후 계연은 윤청이 바로 입주할 수 있도록 모든 처리를 완료한 뒤 윤청과 헤어졌다. 계연은 떠나기 전에 이틀 후, 혜원 서원의 휴무일이 지난 다음에 영안현으로 돌아가겠다고 윤청과 약속했다.

호운은 자연히 계연과 함께 객잔으로 향했다.

* * *

그날 밤, 성안의 한 객잔에서 계연은 침상에 누워 눈을 감은 채 규칙적인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호운이 보아하니 이미 깊게 잠이 든 듯했다.

바닥에 누워 있던 호운은 귀를 한 번 움직이더니, 슬그머니 눈을 떴다. 호운이 사람처럼 두 발로 일어나 침상 곁으로 다가간 후 계연을 몇 번 찔러보니, 정말로 자는 듯 미동이 없었다. 이에 호운은 살금살금 창문으로 향했다.

호운은 침상 곁에 놓인 나무 막대를 잡더니, 조심스럽게 창문을 열어젖혔다.

끼익…….

오래된 창문이 열리며 약간 소리를 냈다. 붉은 여우는 식은땀이 다 나는 듯했으나, 조심스레 고개를 돌려 계연이 자는 것을 본 후 안심했다. 그는 자신이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면 계연이 등 뒤에 서 있을 것 같아 두려워하고 있었다.

계연이 꿈쩍하지도 않고 자는 것을 보고, 호운은 창문을 막대로 잘 지지한 뒤 창문을 가볍게 통과해 2층 높이에서 객잔의 후원으로 뛰어내렸다. 그 모든 과정에서 약간의 소리도 나지 않았다. 호운의 풍성한 꼬리는 마치 다람쥐 꼬리와 비슷하게 보였다.

‘헤헤!’

그는 속으로 마음껏 기뻐하며, 나는 듯이 달려 성 밖으로 향했다.

이때, 계연의 침상 옆에 기대서 있던 넝쿨검이 천천히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침상에 누운 계연은 눈조차 뜨지 않고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게 이미 계획이 있으니, 가도록 놔두렴.”

주인의 말을 듣고 넝쿨검은 다시 천천히 고요한 침상에 내려앉았다.

그러나 잠시 후 계연은 돌연 침상에서 몸을 일으켜 세워 앉았다.

“이렇게 재미있는 일을 직접 가서 보지 않으면 아깝겠지. 아무래도 가야겠다!”

그래서 계연은 서둘러 옷을 걸치고 신발을 신은 후, 넝쿨검을 데리고 호운처럼 창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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