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화. 바로 너였구나!
배를 타고 춘혜부로 오는 동안, 계연과 윤청은 나중에 윤청이 휴무일에 와서 강청어와 쉽게 만날 수 있도록 강변에서 만날 위치를 미리 정해 두었다.
그리고 호운은 은밀히 오늘 밤 강청어와 그곳에서 만나기로 약속한 상태였다. 그는 윤청과 헤어지면 계 선생이 바로 자신을 데리고 구름을 타고서 영안현으로 향할 것이라고 여겼기에, 오늘 밤에 이 새로 사귄 친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눠야겠다고 다짐했던 차였다.
강청어를 만나러 간다는 기대감에 낯선 환경에 대한 긴장감이 사라졌다. 호운은 성벽까지 뛰어간 뒤 도마뱀처럼 성벽에 붙어 오르다가 꼭대기에서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그 후 남쪽 강기슭을 향해 곧장 뛰어갔다.
채 일각(*15분)도 안 되어, 호운은 만나기로 약속했던 위치를 찾아냈다. 수양버들나무 몇 그루가 강을 향해 기울어져 있는 곳이었다. 이전에 위씨 집안 사람들이 늙은 거북을 만난 위치이기도 했다.
강물을 향해 기울어진 버드나무 몇 그루를 보자마자 호운의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 찼다. 호운은 서둘러 그중 한 그루의 나무 위로 올라탔다.
깜깜한 강 표면을 바라보며 호운은 작은 목소리로 몇 번 불렀다.
“청어야, 청어야……. 너 거기 있니?”
철썩!
버드나무 아래의 수면이 넘실거리더니, 커다란 강청어 한 마리가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뻐끔…… 뻐끔……!
“하하하, 거기 있었구나. 오늘 계 선생님이 나를 아주 큰 다과점에 데려갔어. 영안현의 묘외루보다 훨씬 크고 예쁘더라. 안에서 파는 것도 전부 맛있었어. 이리 와봐, 이 호 형님이 널 챙겨주러 왔지. 계 선생님이 윤청에게는 가면 안 된다고 하셨으니, 전부 너한테 줄게.”
호운은 커다란 꼬리를 앞으로 당겨 앞발 두 개로 기다란 털 속을 헤집었다. 그러자 안쪽에서 연잎 덩어리 두 개가 나왔다.
이 장면을 보고 어느새 이미 멀지 않은 버드나무 밑에 몸을 숨기고 있던 계연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그는 호운이 간식 몇 가지를 숨긴 것을 알았지만, 일부러 보고도 못 본 척해준 것이었다. 다만 그가 이렇게 많이 숨겼을 줄은 몰랐다. 이는 호운의 식탐 많은 성격으로 볼 때 쉽지 않은 일이었다.
붉은 여우가 천천히 연잎을 열자, 안에 있던 간식이 하나씩 수면으로 떨어졌다. 강청어는 아래에서 입을 벌려 받아내고 있었다.
“하하하……. 내게도 그 간식 맛을 좀 보여줄 수 있겠느냐?”
이때, 멀지 않은 곳의 수면에 커다란 파문이 생기더니, 약간 나이 든 목소리가 들려왔다. 강청어는 본능적으로 그곳으로부터 거리를 벌렸다. 강기슭에서도 꽤 멀어졌으나, 그보다 더 멀리 떠나려 하진 않았다. 호운이 아직도 버드나무 위에 있기 때문이었다.
촤르르…….
등이 검은 늙은 거북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버드나무가 수면 가까이 구부러져 있던 탓에, 거대한 거북의 두 눈이 여우의 눈과 1미터도 안 되는 거리에 솟아올랐다.
‘거북이 이렇게나 크다니……. 육 산군의 머리통보다 더 큰 것 같아…….’
호운은 호기심에 일찍이 도망치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가, 이제는 놀라 겁을 먹은 상태였다.
“이걸 드시고 싶으세요?”
붉은 여우는 버드나무 가지 위에 놓인 연잎 묶음을 바라보았다. 늙은 거북이 말하는 간식이 이것인지 아니면 자기 자신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본능적으로 간식 몇 가지를 집어 아래로 떨어트렸다.
늙은 거북은 목을 길게 늘여, 한 입 거리도 안 되는 간식을 받아 천천히 씹어 먹었다.
“음……. 맛이 괜찮구나.”
늙은 거북은 나무 위의 붉은 여우와 분명 자신을 두려워하면서도 저쪽 2, 3장(*약 6~9m) 거리에서 싸울 준비를 마친 강청어를 바라보았다.
“오늘 홍(紅) 야차 대인께서 일이 있어 내게 대신 이쪽 부근의 순찰을 명하셨다. 그런데 너희 둘을 만날 줄은 몰랐구나. 이도 인연이라면 인연이겠지. 수족(水族)이 강에서 헤엄치다가 이곳에 오는 것은 이상하지 않지만, 여우인 너는 이 춘혜부 부성에 어쩐 일로 나타난 것이냐? 저승의 관리들에게 잡혀갈까 두렵지도 않으냐?”
“저, 저는 이게 있어서…… 두렵지 않습니다!”
호운은 발톱으로 가슴 앞 털을 헤집어 매목으로 만들어진 목패를 드러냈다.
“오……. 어쩐지 네 기운이 특이하여 알아보기 힘들더라니, 이걸 가지고 있었구나. 너는 춘혜부에 머물 수 있을지 몰라도, 저 강청어는 이곳에 머물 수 없겠다.”
늙은 거북이 발로 물을 한번 젓자, 강청어는 자신을 둘러싼 물살이 거대한 소용돌이처럼 변한 것을 느꼈다. 이는 그를 다른 방향으로 헤엄치지 못하도록 했고, 곧이어 물살은 그를 늙은 거북의 앞으로 데려갔다.
“어어, 잠깐만요! 뭐 하시는 거예요? 청어를 놓아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계 선생님을 불러오겠어요!”
늙은 거북은 웃으며 물고기와 육지 요괴 간에 이렇듯 우정이 깊은 것은 확실히 보기 드물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하는 게 어떻겠느냐? 오늘 내가 드물게도 육지 요괴를 만났는데, 마침 횡골도 없고 그 발음도 분명한 걸 보아하니, 그간 보고 들은 것이 적지 않다는 뜻이겠지? 그러니 내게 재미있는 이야기나 좀 해주거라. 만약 네 이야기가 마음에 들면, 야차 대인과 강신께 가서 이 강청어가 이곳 강변에 머물 수 있도록 대신 허락을 받아 주지.”
늙은 거북은 스스로가 대단한 자이고 강신과 잘 아는 사이인 것처럼 거들먹거렸다. 사실 그는 야차에게나 부탁 한번 드려볼 수 있는 위치였는데, 어쨌든 이 정도의 일은 야차에게 부탁하면 되는 것이었으니 상관없었다.
“무슨 이야기를 하면 되는데요?”
“당연히 육지 위에서 일어난 일이지!”
그 정도의 요구는 호운도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강청어도 그들 곁에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시험 삼아 산에서 살던 이야기와 영안현 이야기를 시작했다. 늙은 거북은 때때로 그의 말에 질문도 하고 호응도 해주었기 때문에, 호운은 점차 흥이 올라 이야기보따리를 잔뜩 풀어냈다.
이렇게 다른 요괴와 이야기를 나누며 인정받는 것은 윤청과 이야기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게다가 늙은 거북은 육 산군과 달리 훨씬 온화한 성격처럼 보였으므로, 호운은 점차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모두 늘어놓았다.
마침내 그가 하산하여 상처를 입은 대목에 이르렀는데, 호운은 무언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늙은 거북이 오랫동안 아무 반응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 분위기는 무언가 이상했다.
이에 고개를 숙여 수면을 바라보니, 그에게 거대한 거북의 입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콰직!
늙은 거북은 한입에 버드나무 가지를 꺾은 후 씹기 시작했다. 놀라 굳어버린 여우의 머리는 거북의 입에서 겨우 1척(*尺: 약 30cm) 정도 떨어져 있었다.
호운은 나무 조각이 된 것처럼 느릿느릿 고개를 돌려 바로 옆의 나뭇가지를 바라보았다. 그곳은 거북에게 한입에 뜯겨 나가 텅 비어 있었다. 만약 상대가 나뭇가지를 물지 않고 자신을 물었다면…….
“허……. 허……!”
늙은 거북은 소름 끼치는 소리를 내며 나무 부스러기를 씹다가 꿀꺽 삼켰다.
“그 빌어먹을 여우가 너였구나!”
호운은 너무 놀라 뻣뻣하게 굳은 상태였다. 눈앞의 거북은 조금 전의 온화한 태도는 온데간데없이, 육 산군보다도 더 두렵게 변했다. 게다가 중요한 것은 그의 이 분노에 찬 기세가 전부 자신을 향해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머리를 쥐어 짜내어 보아도 자신이 도대체 언제 이 늙은 거북에게 미움을 샀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설마 계 선생님께서 이 거북에게 무언가 잘못한 게 있나?’
호운은 이렇게밖에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는 태어난 이래로 우규산에서 살아왔고, 누군가의 원한을 산 일도 없었다. 게다가 거북의 태도가 변한 것은 계 선생과 관계있는 일을 말하기 시작한 이후였다.
‘계 선생님, 저 지금 죽게 생겼어요!’
호운은 심장이 두근거려 말하는 목소리에도 떨림이 묻어났다. 그는 앞발을 공손히 모으고서 바로 지척에 다가온 거북에게 용서를 구하듯 말했다.
“거, 거북 대인, 저는 그저 여우일 뿐이에요……. 만약 계 선생님이 대인을 곤란하게 했다면, 그, 그건 저와는 상관없는 일이에요……!”
수십 미터 떨어진 곳에 있던 계연은 이 말을 듣고 무척 억울했다. 늙은 거북조차 그의 말을 듣고 잠시 어리둥절했다.
“허허허……. 너 이 여우 놈! 운도 참 좋구나……. 까드득…….”
뒤에 들려온 소리는 입안에 남은 버드나무 껍질을 가루로 만드는 소리였다. 거북은 비록 이빨이 없었지만, 사람들이 말하는 ‘이를 간다’는 상황이 어떤 건지 오늘 제대로 알게 되었다.
늙은 거북의 말을 듣고 호운은 그제야 이게 계 선생님과 연관된 일이 아니라 자신과 관련된 일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거북이라는 동물은 평소 느릿느릿하고 호흡도 그리 자주 하지 않았는데, 요괴가 된 늙은 거북은 더욱더 그랬다. 그러나 지금 늙은 거북은 빠르고 거친 호흡을 내쉬고 있었으며, 한 쌍의 냉혈 동물 특유의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게다가 호운을 더욱 겁에 질리게 하는 요기(妖氣)가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있었다. 육 산군도 아주 두렵긴 했지만, 그는 호운의 앞에서 이런 모습을 보인 적은 없었다.
다행히 늙은 거북이 내뿜는 요기는 강물 주변에만 머물러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진작에 야간 순시관이 눈치채고 나타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호운에게는 충분히 무서운 상황이었고, 심지어 계 선생님이 와도 이 거북 요괴를 누를 수 없을 거라는 착각마저 들 정도였다.
“내 너에게 묻겠다. 흐리멍덩한 감각에서 벗어나 스스로 또렷하게 사고하게 된 지 얼마나 되었느냐?”
늙은 거북의 목소리는 차갑고 탁하게 갈라져 있었다. 그러나 전보다는 많이 가라앉은 듯한 모습이라 호운은 남몰래 안심했다.
“약 15년 정도 되었어요…….”
“15년? 겨우 15년이라고! 하하하, 15년이라니……. 보아하니 산짐승의 상태에서 벗어난 처음 9년간도 보통 여우랑 비슷하게 살았겠지?”
늙은 거북은 약간 처량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눈으로는 여우를 죽일 듯이 노려보았는데, 호운은 차마 그 눈을 마주할 수 없어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어떻게 아셨어요?”
늙은 거북은 다시 한번 냉소를 지었다.
“6년, 횡골을 녹이는 데 6년밖에 안 걸렸다고? 몸의 영기나 요기가 그리 얕은 데다 법력 또한 보잘것없는데, 6년 만에 횡골을 녹였다니 과연 선인(仙人)의 도움이 대단하긴 하구나! 여우야, 이 늙은 거북이 횡골을 녹여 말을 할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걸렸는지 한번 맞혀보겠느냐?”
호운도 바보가 아니어서, 거북이 이렇게 묻는 모습을 보고 그가 적지 않은 시간을 들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게다가 육 산군이 말한 적은 없었지만, 이전에 호운이 횡골을 녹이고 나서 처음 육 산군을 만났을 때도 그 호랑이가 놀라워하는 것을 느꼈었다.
“어르신은 아마도…… 수십 년이요?”
“하하, 나를 높이 사줘서 고맙긴 한데 나 같은 거북들은 원래 수행을 쌓기가 무척 어렵다. 게다가 아무 데도 기댈 곳 없이 홀로 수행하였으니, 횡골을 녹이는 데에 230년쯤 걸렸지. 너처럼 ‘하늘에서 내린 재능’을 타고나 6년밖에 안 걸린 여우와는 함께 두고 논할 수도 없을 정도지.”
거북이 세월의 덧없음이 한껏 묻어나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하자, 물살 안에 갇힌 강청어조차도 침묵을 지켰다. 사실 그 자신도 이미 수십 년간 횡골을 녹이기 위해 수행하는 중이었다.
호운은 그가 수행한 시간이 너무나 길어 자신은 상상도 하지 못할 정도라, 그만 멍하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육 산군조차도 아직 2백 살이 안 되었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