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화. 어떻게 아직 살아있는 거지?
“선인의 도움을 얻고, 호운이라는 이름을 하사받은 데다, 상처를 치료할 때부터 지금까지 너조차도 모르는 도움을 많이 받았을 테지. 정말 이름 그대로 청운(靑雲)을 밟고 하늘 높이 올라가는구나. 하하하…….”
늙은 거북은 하늘 높이 뜬 휘어진 초승달을 바라보며 설명할 수 없는 기분을 느끼는 듯 이렇게 혼잣말을 했다. 그러다 돌연 차가운 눈빛으로 여우를 바라보았고, 호운은 깜짝 놀라 부르르 떨었다.
“만약 그뿐이라면 요괴도 각자 타고난 명이 있으니 그렇다고 치겠지만, 네놈은 한번 만나기도 어려운 기연을 얻은 상황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도망쳤다 이 말이지. 얼마나 많은 요괴가 백 년을 넘게 수행하면서도 네가 얻은 그 기회 한번을 못 얻고 있는 줄 아느냐? 또 얼마나 많은 요괴가 선인의 도움을 얻고자 하나, 수선자를 만나는 순간 죽임을 당하는지 아느냐? 너는 연이 닿아 도력이 높은 고인을 만났음에도……. 휴…….”
여기까지 말한 늙은 거북은 무겁게 한숨을 쉬었다.
“이제 와 이런 말을 해도 늦었겠지. 스스로 포기한 기연이니 이후에 다시 만나고자 한다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다행히 호운이라는 이름을 얻었으니, 그분께 봉정(*封正: 수행자들이 요괴에게 내리는 일종의 축복 또는 승낙(承諾)으로, 후에 득도하기가 쉬워짐)을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만약 백 년 전의 나였으면, 질투심에 방금 네 머리를 한입에 집어삼켰을 것이다!”
“아……. 그런 것이군요…….”
호운은 멍하니 중얼거리며 뒤늦게서야 두려워했다.
“하하, 너는 요괴들이 수행을 쌓기가 모두 너처럼 순조로운 줄 아느냐? 참, 그 목패도 계 선생이라는 분께서 주신 것이냐?”
“어……. 맞아요. 어제…… 예전에 계 선…….”
호운은 두렵고 혼란스러운 마음에 그만 사실대로 뱉고 말았다. 그러나 고작 한 글자였을 뿐인데도, 늙은 거북은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챘다.
“음?”
늙은 거북의 콧김이 거세졌다.
“너 방금 어제라고 했느냐?”
붉은 여우는 귀 뒤쪽으로 땀이 삐질 흘렀다. 그는 순간적인 판단으로 강물 뒤편을 가리키며 “계 선생님!”이라고 소리쳤다.
늙은 거북이 자기도 모르게 뒤돌아보던 순간, 여우는 강기슭으로 재빨리 뛰어올랐다. 하지만 곧이어 강물이 파도처럼 그를 뒤덮어 왔다.
쏴아!
2장(*약 6m) 너비의 강물이 기슭을 향해 1장(*3m) 높이로 솟아올랐다. 버드나무의 밑동이 물에 잠겼고, 여우의 머리도 높이 솟은 파도 벽에 부딪힌 후 바로 물에 끌려 들어갔다.
꼬르륵…….
호운은 강청어와 함께 물살에 의해 늙은 거북 근처에 몸이 묶였다. 거대한 거북의 머리통이 여우로부터 주먹 하나 들어갈 거리도 안 되게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호운은 극도의 공포가 지나간 후에 거북의 표정이 전처럼 흉포하게 일그러져 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오히려 이상하게도 안절부절못하는 듯 보였다. 말하는 태도도 전보다 훨씬 조심스러워졌다.
“너, 너 혹시 최근에 계 선생을 다시 뵌 것이냐? 그 목패……. 참, 방금 나 때문에 놀라진 않았고?”
늙은 거북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망설이는 모습을 보자, 호운은 방금까지 거북이 분노에 차 나뭇가지를 씹어 먹던 것을 뇌리에서 지웠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거북이 조금 안타깝게 느껴진 것이다.
거북이 ‘별안간 폭발’하기 전에는, 거북은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듯이 자신의 수행 과정이나 도를 닦았던 경험을 호운에게 이야기하기도 했었다.
주로 그가 얼마나 오랜 시간 홀로 수행했는지, 선업(善業)을 쌓고자 좋은 연을 맺으려 범인(凡人)들을 도와주었지만 좋은 끝을 본 적이 없었다든가, 수선자들에게 다가가려다 오히려 얻어맞고 도망쳤다든가 하는 이야기였는데, 그 후로는 감히 강기슭에 올라올 생각을 못 했다고 했다.
듣던 당시에 호운은 웃기기도 하고 재미있다고 느꼈다. 그 이야기를 하는 늙은 거북 자신도 웃으며 이야기했었다. 그러나 호운이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깨닫게 된 것이다. 거북이 보인 그 웃음에 얼마나 많은 고달픔과 처량함이 담겨있었는지 말이다.
감각이 교차하며 얻은 깨달음은 아주 기묘했지만, 호운은 아주 선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사실은 그에게 많은 말을 하고 싶었으나, 결국 호운의 입에서 나온 것은 한 글자뿐이었다.
“으응…….”
계연은 그들이 있는 곳을 쳐다보지 않고, 약간 떨어진 곳의 나뭇가지 위에 가만히 누워 있었다. 그는 저 멀리 강물에 비친 달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거울 속의 꽃이고, 물속의 달이로다(*鏡中花, 水中月: 중국 청나라 때 조설근(曹雪芹)이 지은 장편 소설 홍루몽(紅樓夢)에 나오는 말. 진실하지 않고 헛된 것을 뜻함)…….’
호운의 대답을 듣고, 늙은 거북은 더욱 흥분에 차 물었다.
“그럼…… 지금 계 선생님이 어디 계신지 알아? 성안에 계셔?”
호운은 자기도 모르게 부성이 있는 쪽을 바라보고는 거북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물살이 움직이더니 호운은 곧 자신의 몸이 위로 솟는 것을 느꼈다. 그는 물길에 둘러싸여 기슭으로 옮겨졌고, 젖은 털에 묻은 물기도 강물이 멀어져가는 동시에 한 방울도 남김없이 함께 사라졌다. 여우의 털은 예전처럼 상쾌하고 건조한 상태로 돌아왔다.
그와 동시에 수중에 묶여 있던 강청어도 속박에서 풀려나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되었다.
늙은 거북은 계 선생님께 자신에 관해 좋은 말을 해달라고 부탁하고 싶었으나, 방금 그에게 한 짓이 있으니 입을 열기가 민망했다. 그래서 그는 좀 더 서로에게 친밀감을 느낄 수 있도록 그에게 다시 이야기를 부탁했다.
“나한테 선생과 다시 만나게 된 이야기를 해줄 수 있어? 그리고 아까 얘기했던 호랑이 요괴 이야기도 말이야.”
붉은 여우는 조용히 강변에 엎드려 강청어와 거북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얼마 전에 산에서 내려와 영안현 근처를 돌아다니다가, 계 선생님이 혹시 돌아오셨는지 궁금해서 보러 갔었어…….”
호운은 그때부터 벌어졌던 일을 차례로 이야기했다. 그러나 몇 가지 중요한 것은 이야기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대추나무가 신비롭다는 이야기는 해도 화조(火棗)가 열린다는 건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차츰 계연이 산의 달빛 아래에서 그와 육 산군에게 가르침을 주었던 대목에 이르렀다.
그러자 늙은 거북의 호흡이 이전보다 거칠어졌다. 동시에 거북이 수면 아래의 발로 물살을 빠르게 휘젓자, 근처에 물보라가 잔뜩 튀어 올랐다.
호운이 우규산의 커다란 돌 위에서 계 선생이 앉았고, 자신과 호랑이 요괴도 함께 그 위에 앉았다고 이야기하자, 늙은 거북은 그래서 도대체 무슨 가르침을 받았는지 너무 궁금하여 이렇게 물었다.
“그래서, 그래서? 무슨 이야기를 해주셨어? 빨리 말해봐.”
호운은 고개를 돌려 하늘에 뜬 초승달을 바라보며 기억을 되살리려 애썼다.
“아주 이상한 이야기를 하나 해주셨어. <소요유>라는 이름이었던 것 같아.”
<소요유> 세 글자가 귀에 들어오자, 늙은 거북은 본능적으로 이것이 범상치 않은 이야기임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더욱 마음이 조급해져, 지켜야 할 규칙이나 예절도 전부 잊고 말았다.
“내용은? 무슨 내용이었는데? 호 도우(道友), 제발 자세히 알려줘. 당장 생각나는 몇 마디라도 괜찮아!”
호운은 앞발로 자신의 얼굴을 벅벅 긁다가, 한참을 생각해도 기억나지 않자 곧 이렇게 말했다.
“내용이 너무 까다롭고…… 너무 길어서, 전부 잊어버렸어…….”
“너! 너……! 너너너…… 아아악!”
솨아아!
강변에서 커다란 파도가 또다시 호운을 향해 덮쳐오자, 호운은 몹시 놀라 펄쩍 뛰고는 뒤로 물러섰다. 강청어도 순식간에 거리를 벌려 멀리 헤엄쳐 도망갔다.
여우와 물고기는 두려움에 떨며 늙은 거북이 파도를 일으켜 소리를 지르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극도로 흥분에 찼지만 풀어낼 곳이 없는 듯한 모습이었다.
‘저 빌어먹을 여우 놈이! 연이어 하늘이 내린 기연(機緣)을 발로 차버리다니! 저런 놈이 어떻게 아직 살아있는 거지?’
초조한 듯 몸을 꿈틀대는 늙은 거북은, 속으로는 답답하여 피를 토할 지경이었다.
파도는 거세게 솟아올랐으나 금세 기세를 누그러뜨리며 잠잠해졌다. 남은 여파는 저 멀리 강 중심으로 파문을 일으키다가 사라졌다.
호운은 성안으로 도망치지는 않았는데, 그가 올라온 이곳이 파도로부터 충분히 안전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거북이 비록 분노해 차 파도를 일으켰지만, 그것이 자신이나 강청어를 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호운도 마음이 씁쓸했다. 그때 우규산 달빛 아래에서 들었던 가르침이 정말로 중요한 것이었음을 이제는 자신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호운은 정말로 몇 가지 기억나는 것이 없었다. 오히려 그 후에 선생과 육 산군이 나눈 대화만을 대략적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화내지 마, 다음에 기회를 봐서 계 선생님께 다시 물어볼게. 알게 되면 꼭 돌아와서 말해줄게!”
호운의 말을 들은 거북은 더욱더 실망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조금 전보다 화가 많이 누그러져서, 곧 고개를 저으며 낙담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술법은 쉽게 전하지 않는 법이야. 세상 모든 것이 기회를 한번 놓치면 다시 얻기는 힘들지. 계 선생님이 아무리 좋은 분이고, 설령 네가 다시 묻는다고 해도, 아마 좋은 답을 얻기는 힘들 거야. 만약 네가 수행하다가 어려움을 겪어, 그때 다시 물어본다면 혹시 모르겠지만…….”
늙은 거북은 고개를 숙여 수면을 바라보며 탄식했다. 이제 그도 점차 냉정함을 되찾았다.
“사실 네가 기억하지 못한 게 내게 나쁜 일인 것만은 아니야. 만약 그날 들은 이야기를 내게 이야기해 줬으면, 그건 곧 내가 선생의 가르침을 훔치는 것이나 다름없어. 큰 금기를 어기는 거지. 너…….”
늙은 거북은 여기까지 말하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그러나 나머지 말은 목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 왜냐면 붉은 여우의 뒤에 사람이 하나 서 있었기 때문이다.
나타난 사람은 길고 얇은 체형에 머리카락이 제멋대로 나부끼고 있었다. 모자도 없이 묵옥 비녀 하나만을 꽂고 있었는데, 멀끔한 얼굴에 수염도 없이 나이를 짐작할 수 없었다. 회백색의 흐릿한 눈으로 그를 보면서, 한 손은 등 뒤에 다른 한 손은 몸 옆에 늘어뜨린 채였다. 그가 입은 흰옷은 달빛을 받아 은은히 빛났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그곳에 서 있었는데, 맑은 바람이 그에게 불어오자 바람에 섞인 먼지가 그에게 닿지 않고 피해 갔다.
거북의 눈빛을 보고 호운도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렸고, 뒤에 서 있던 계연을 볼 수 있었다.
“계 선생님! 언제 오셨어요……?”
붉은 여우는 계연에게 이 모습을 들켜 초조하며 부끄럽기도 했지만, 속으로는 몰래 한숨을 돌렸다. 그래서 첫 마디를 내뱉을 때는 놀라움과 기쁨이 담겨있었으나 뒤로 갈수록 점차 목소리가 약해졌던 것이다.
그러나 계연은 그에게 대답하지 않고, 수면 위에 떠 있는 늙은 거북을 바라보았다.
늙은 거북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서, 서둘러 물을 저어 강기슭에 다가갔다. 물살이 철썩철썩하는 소리와 함께 거북은 느릿느릿 기슭으로 올라왔다.
그 후 거대한 거북은 뒷발 두 개와 꼬리로 몸을 일으켜 세운 다음, 앞발 중 왼발을 오른발보다 높게 두고서 발을 내리며 읍했다.
“늙은 거북 오숭이 계 선생님을 뵙습니다!”
거북은 현재 호운보다 훨씬 더 긴장한 상태였다. 눈앞의 이 사람이 언제 온 건지 몰랐지만, 방금 자신이 호운에게 우규산에서 받은 가르침을 캐물었을 때 이미 와있을 수도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떠올리자 늙은 거북 오숭은 마음이 불안해졌다.
계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거북을 향해 자신도 예의를 지켜 인사했다.
“내 이름은 계연입니다. 나와 관련된 이야기를 이미 들었을 테니, 따로 소개는 필요 없겠지요.”
계연은 거북이 딱딱한 등 껍데기 때문에 허리를 굽히지 못하여 최대한 자신의 목을 아래로 내려 당기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그 모습이 퍽 웃기다고 생각했으나, 계연부터 호운 그리고 강청어까지 모두 웃지 않았다. 하루 전이었다면 호운은 큰 소리로 웃었을 수도 있지만, 이제 그는 그러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거북은 계연이 자신의 인사를 받은 후에야 천천히 발을 내려 땅에 내려섰다. 그 동작도 몹시 조심스러워, 듣는 이가 큰 소리가 나면 싫어할까 걱정하는 듯했다. 그 후 거북은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서 계연이 먼저 말을 할 때까지 가만히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