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186화 (186/892)

186화. 선인지로(仙人指路)

강청어는 이미 강기슭 근처로 다가와 입으로 끊임없이 물방울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호운은 긴장한 모습으로 계연과 거북을 지켜보다가, 망설이며 자신이 먼저 입을 열기로 했다.

“계 선생님, 이 늙은 거북이 수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대요, 혹시…….”

예전이었다면 호운은 아마 바로 그날 밤 우규산에서의 가르침을 다시 청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는 차마 그럴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소요유>의 내용을 잊어버려 계 선생님께 꾸중을 들을까 두려웠던 탓이었다. 계연은 고개를 돌려 여우를 바라보았다.

“이 거북을 돕자고 말하고 싶은 거야? 호선(狐仙) 호운 대인께서 그렇게 대단하시다 들었는데, 어찌 스스로 이 거북을 돕지 않고요?”

이에 호운은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이전에 자신이 철이 없었을 때도, 호운은 계 선생님의 면전에서 편하게 무언가를 요청하지 못했었다. 이번에 이렇게 입을 연 것은, 이 거북의 사연이 너무나 가련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계연은 말을 마치고 계속 늙은 거북을 살폈다. 법안을 크게 열어보니, 거북의 기운이 그의 눈앞에 낱낱이 드러났다. 예전에 봤을 때보다 물의 기운이 더욱 왕성해졌는데, 특히 새카만 등판 위에 숨겨진 점을 칠 때 사용하는 팔궁괘(*八宮卦: <주역(周易)>에 나오는 점을 치기 위해 사용하는 표) 무늬도 그러했다.

“수행이 정말로 쉽지 않았겠네요. 세월이 지나며 오히려 집념이 더욱 강해졌고요. 자신의 신통함을 믿고 갖은 방법을 써 봤으나, 수백 년을 허송세월했군요. 법력은 점차 깊어졌지만 수행은 그 자리에 멈춰 발전이 없었고, 죄업을 짓지 않으려 했으나 악한 기운을 피할 수도 없었고요. 이에 영이 흐려져 심성에 나쁜 영향을 끼쳤으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에요!”

여기까지 말하고서, 계연은 이전에 백제에게 물었던 일을 떠올리고는 늙은 거북에게 말했다.

“백 강신께서 가르쳐 준 자오 연결(自悟煉訣)은 잘 연습하고 있나요?”

늙은 거북은 그가 자신에 대해 평가하는 것을 듣고 계속 초조해하고 있었는데, 방금 이 물음을 듣고는 몹시 놀랐다.

‘이 일을 계 선생님이 어떻게 아시지?’

그러나 선생께서 물었으므로 거짓을 말할 수는 없었다.

“선생께 아룁니다. 강신 나리께서 주신 연결을 성실하게 수행하였으나, 6년 동안 근골(*筋骨: 근육과 뼈)이 따뜻해지는 느낌만 받았을 뿐 그 외에 다른 결과는 얻지 못했습니다.”

수명이 긴 거북으로서 그에게 가장 부족하지 않은 것이 바로 인내심이었다. 그 수련법은 비록 효과가 미미했으나 언젠가는 자신도 좋은 결과를 얻게 되리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두려운 것은, 자신의 수명이 다할 때까지 수련을 통해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것이었다.

계연은 다시 한번 거북의 기운을 살폈다. 그동안 거북은 조심스럽게 계연의 흐릿한 두 눈을 살폈는데, 한 번도 자신과 눈이 마주치지 않았음에도 그는 계연이 자신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것 같다고 느꼈다.

계연은 거북을 여러 차례 살폈다. 거북과 호운, 강청어가 이런 자신을 보고 긴장한 듯 보이자 그는 활짝 웃었다. 계연이 이렇게 웃자, 마치 바람이 불어와 그들 사이에 있던 압박감이 단번에 사라진 것 같았다.

“거북 오숭, 당신은 나중에 자신에게 도움을 주기를 바라며 많은 범인(凡人)들을 도왔는데, 왜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나요? 당신에게 묻은 악하고 더러운 기운이 이 일과 관련이 있나요?”

이를 듣고 거북은 약간 낙담한 기색이었으나 피하지 않고 대답했다.

“점을 치는 건 쉽지만, 사람의 마음을 예측하기는 어렵습니다. 저는 비록 점괘를 그럭저럭 잘 보지만, 강물을 일으켜 바다를 뒤덮을 힘이 있거나 돌을 금덩이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가진 법력도 강에서만 그 신통력을 조금 발휘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욕심은 끝도 없었고, 저는 운이 나빠 사람을 보는 눈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도움을 주면 안 되는 이들에게 도움을 주니,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악과(惡果)가 제게 돌아오기 시작했습니다. 휴우…….”

늙은 거북은 이렇게 탄식하며 계속해서 말했다.

“이제는 그런 생각은 아예 접었습니다.”

어떤 사람이나 어떤 요괴의 운이 좋은지 나쁜지에 대해 거북은 누구보다 잘 꿰뚫어 볼 수 있었다. 특히 호운을 만난 뒤 특별히 그렇게 느꼈는데, 그에 비해 반면에 자신은 바로 운이 나쁜 편이었다.

계연은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잠시 뒤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그럼 이렇게 하도록 하죠. 혜원 서원의 휴무일마다 윤씨 성을 가진 서생이 이곳에 와서 이 대청어에게 글을 읽어주기로 했어요. 그 서생의 학식이 얕다고 싫어하지만 않다면, 같이 와서 듣는 게 어떠세요?”

늙은 거북의 눈이 환희로 물들었다. 자신이 그의 제안을 싫어하거나 거절할 리가 있겠는가!

그는 이것이 쉽게 만날 수 없는 기연임을 알았다. 어쩌면 자기 생각보다 훨씬 더 큰 기회일 수도 있었다. 이것이 바로 전설 속에 나오는 ‘선인지로(*仙人指路: 선인이 길을 가르쳐 주다. 선인의 도움을 얻는다는 뜻)’인 것이다.

‘드디어 내 운이 바뀌려나 보구나!’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떠오르자 그는 기쁨을 주체하기가 힘들었다.

호운처럼 아무것도 모르는 여우와 달리 자신은 모든 기회를 꽉 잡고 절대 손에서 놓지 않을 작정이었다. 오숭은 기쁨에 넘쳐 재차 계연에게 읍을 올렸다.

“제게 도움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계 선생님!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공짜로 주는 건 아니에요.”

계연의 말을 듣고 거북은 주춤했으나, 그래도 자신이 받은 큰 은혜에 감사해했다. 그래서 오숭은 자신이 선인에게 도움이 되고,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 분부만 해달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무슨 불바다에 뛰어들라는 요청 같은 건 아니에요. 오랜 세월 동안 당신이 도왔던 이들 중에 느낌이나 인상이 깊게 남았던 이야기가 있다면, 시간 날 때 내게 들려주세요.”

계연은 이렇게 웃으며 말하고서 강변으로 천천히 다가가 강청어를 바라보았다.

강청어는 계연이 자신에게 가까이 다가오자, 지느러미를 더욱 빨리 휘저으며 입으로는 ‘뻐끔뻐끔’하고 기포를 만들어냈다. 그 모습은 마치 계연에게 인사를 하는 듯했는데, 지느러미가 조금만 더 길어 서로 닿을 수 있었다면 그에게 읍을 했을 것 같았다.

“너는 비록 아직 횡골을 녹이지 못했지만, 예전부터 나는 네가 참 마음에 들었었지. 마침 네게 이름이 없으니, 내 앞으로 너를 나벽청(羅碧靑)이라고 부르면 어떻겠느냐?”

계연은 이 강청어가 수놈인지 암놈인지 몰랐고, 물고기의 성별을 구별하는 방법도 알지 못했다. 다른 동물들은 그 음양의 기운으로 구분을 했는데, 수족(水族)들은 대부분 음기가 더 강했다. 암놈과 수놈이 같이 있다면 구분해 볼 수도 있겠지만, 지금 그에게는 이 강청어와 비교할 만한 다른 물고기가 없었다.

나벽청이라는 이름은 남자든 여자든 쓸 수 있는 이름이었기 때문에, 만약 어느 날 이 강청어가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게 되면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이다.

철썩! 철썩!

강청어는 강기슭 근처의 수면에서 기쁨에 차 몇 바퀴나 빙빙 돌았다. 주둥이는 끊임없이 뻐끔대며 거품을 만들어냈다.

이전에 늙은 거북이 한 말을 강청어도 들었기 때문에, 이제는 강청어도 계연과 같은 고인(高人)에게 이름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거북은 마음이 두근거리며 긴장되기 시작했다. 커다란 거북의 눈 한 쌍이 기대에 가득 차 계연을 바라보았는데, 눈치 없는 호운이라도 그 강렬한 눈빛에서 ‘나도 이름을 주세요’라는 말을 읽어낼 수 있을 정도였다.

계연도 이에 할 말을 잃고, 오래된 우물처럼 침잠한 두 눈으로 거북을 바라보았다.

“당신도 이름이 없나요?”

늙은 거북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곧 풀 죽은 듯 대답했다.

“저…… 있습니다…….”

늙은 거북은 마음속으로 수천 번 저 자신을 욕했다.

‘내가 왜 이름을 지어서는……! 무슨 속세 문인들이 하듯 이상한 것을 배워 이름을 짓다니! 이름이 없으면 죽는 것도 아닌데. 어차피 긴 세월 동안 사람이든 요괴든 전부 자신을 ‘늙은 거북’이라 불러온 것을…….’

그러니 이름이 있으나 없으나 사실 별 차이도 없었다.

‘어휴……. 부러워하면 안 돼. 이쯤에서 만족할 줄 알아야지!’

계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다가 멀리 수면 아래에 보일 듯 말 듯 하얗고 거대한 몸체가 구불거리는 것을 발견했다. 계연은 그 방향을 향해 공수한 후, 부두가 있는 방향을 향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그러자 호운은 잠시 망설이다가 급히 그의 뒤를 따라갔다. 반면 늙은 거북과 강청어는 자신들이 쫓아가는 것이 적절치 못하다고 생각하고는 따라가지 않았다.

계연이 그곳을 향해 다가가는 동안, 먼 곳의 부두는 더는 소란스럽지 않았고 오히려 조용한 편이었다. 다만 춘혜부 부성 안쪽이 점차 불을 끄고 휴식을 취하는 반면, 이곳에는 아직도 등불을 환하게 켜 놓은 곳이 적지 않았다. 마치 계연이 전생에서 거닐던 대도시의 밤거리 같았다.

계연과 호운은 성 남쪽의 강변에 있었는데, 현재는 강을 따라 동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부두로 가려면 성의 동남쪽에서 북쪽으로 올라와야 했는데, 그렇게 되면 강신의 사당을 지나 성의 동쪽 성벽을 반 넘게 걸어가야 했다. 이는 짧지 않은 거리였다.

그래서 호운은 도대체 계 선생이 산책하시려는 것인지 부두로 가시려는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선생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 그도 먼저 묻지 못하고 조용히 따라갔다.

오늘 계 선생님이 비록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호운은 그래도 무언의 압박감을 느꼈다. 어쩌면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낸 죄책감일지도 몰랐다.

강바람이 불어와 계연의 옷자락과 머리카락이 바람을 따라 휘날렸다. 강신 사당은 이미 저 앞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늦은 밤이라 문을 닫고 사당 안쪽에 장명등(長明燈)을 밝혀 두었을 뿐이었다.

“호운아, 저 앞에 있는 건물이 무엇인지 아느냐?”

계 선생이 이렇게 묻자, 여우는 잠시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앞쪽에 있는 건물은 작지 않은 규모의 강신 사당이었다. 비록 와본 적은 없지만, 며칠 전에 뱃사공이 몇 번이고 말했었기 때문에 알고 있었다.

“춘목강 강신을 모시는 사당이요. 그 뱃사공 말로는 저 사당이 춘목강에서 가장 유명하다고 했어요.”

“음, 그랬구나.”

계연은 발걸음을 멈추지 않고, 고개를 끄덕인 뒤 계속 말했다.

“지금의 춘목강 정신(正神)은 수행한 세월이 오래된 흰 교룡이다. 법력으로 보나 쌓은 수행으로 보나, 또 그의 신통력 또한 너와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지. 굉장하지 않으냐?”

호운은 곧바로 대답했다.

“굉장해요!”

“그래, 아주 대단하지. 이 세상에 음양(陰陽)과 오행(五行)에 속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고, 그러니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이들도 없지. 그렇게 대단한 신령이라 할지라도, 수행은 고난으로 가득 찬 길이지. 그는 진룡으로 거듭나기 위해 시도하다 두 번 실패한 후, 몸의 모든 비늘이 전부 떨어지는 고통을 겪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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