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187화 (187/892)

187화. 맑고 바른 기운

계연은 계속해서 걸으며 여우를 향해 말했다.

“용들에게 있어 비늘이 떨어지는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 아니?”

호운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계연은 이어 말했다.

“손톱을 뽑는 고통에 너의 혼조차 함께 뽑혀 나가는 듯한 통증이란다!”

비늘을 잃는 것은 상처를 입는 것과 달라, 새로운 비늘이 돋아나는 것이 아니었다. 한번 비늘이 떨어지면 다시는 자라나지 않는 것이다.

붉은 여우는 목을 움츠리고 발을 꼭 쥐었다. 이전에 딱딱한 것을 너무 세게 쥐었다가, 발톱이 부러진 적이 있었는데, 그 후로도 얼마간은 계속 통증을 느꼈었다. 그런데 발톱이 뽑혀 나간다면 얼마나 아플지 그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

호운은 계 선생님이 수행의 어려움을 그에게 말하고 있음을 이해했다. 이전이라면 그리 귀담아듣지 않았을 수도 있었겠지만, 이제 선생의 말씀을 깊이 이해하고 항상 이 점을 기억할 것이다.

“자, 부두 근처로 야식이나 먹으러 가자. 구운 닭이 있으면 오늘 너에게 상으로 한 마리 사주마!”

계연이 이렇게 말하며 웃자, 여우는 오늘 밤 긴장이 다 풀리는 것 같았다. 구운 닭을 사주겠다는 말을 듣고 환하게 웃은 호운은 벌써 군침이 흐르는 것 같았다.

춘혜부 밖의 부두는 규모나 화물량으로 비교하자면 경기부의 부두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지만, 이 항구의 다채롭고 북적이는 야경은 대정국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유명했다.

특히 문인(文人)들 사이에서는 이곳의 아름다움을 일컬어 ‘화항(花港)’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리고 점점 그 이름은 시정의 백성들 사이에도 퍼졌다. 일반 백성들은 아직도 이곳을 성 동쪽의 부두라고 부르지만, 화항이라고 해도 못 알아듣는 사람은 없었다.

이 성 동쪽의 부두가 가장 북적이는 시간은 일몰 전이었다. 그때는 배에서 화물을 내리는 이들과 강가를 유람하러 오는 이들이 뒤섞이는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유람선을 타러 오는 인파들도 성에서 이곳까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러나 지금은 장사가 가장 잘되는 시간은 지난 시각이었기 때문에, 유람선 대부분은 이미 출발한 상태였다. 그러나 아직도 부두에 정박한 채 손님을 받는 배도 있었다.

계연은 호운을 데리고 적당한 규모의 주점을 찾아 야식으로 먹을 요리를 조금 주문했다.

주점에 준비된 요리는 많지 않았지만, 원하는 요리 대부분을 시킬 수 있었다. 왜냐면 주점의 점원이 근처의 가게로 가서 손님이 원하는 음식을 주문해 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식사를 마치면 주점에서 다른 가게의 것까지 한 번에 계산할 수 있었다. 현대와 비슷하게 매우 발전된 합작(合作) 방식이었다.

계연과 호운이 부둣가에서 야식과 술을 즐기던 시각, 혜원 서원에 있던 윤청은 마음이 뒤숭숭하여 잠을 이루지 못했다.

처음으로 먼 길을 나선 데다, 앞으로 이 낯선 곳에서 홀로 생활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고향의 이웃들과 친구들도 곁에 없고, 계 선생님과 호운도 곧 영안현으로 돌아갈 테니 말이다.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으로, 방 안으로 풍경이 어렴풋이 보였다. 이곳은 네 명이 함께 묵는 방으로, 다른 세 사람은 이미 고른 숨소리를 내며 잠이 들어있었다. 사실 이중 누구도 코를 골지 않는 것만으로 이미 좋은 시작이라고 할 수 있었다.

‘휴우, 계 선생님과 호운은 이미 잠이 들었겠지. 더는 생각하지 말자. 나도 얼른 자야 해.’

윤청은 이런 생각을 하며 눈을 감고 천천히 호흡했다. 그러더니 곧이어 깊은 꿈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가장 늦게 잠이 들었지만, 가장 먼저 일어난 것은 윤청이었다. 아침이 되어 윤청이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갖춰 입고 방에서 나오자, 얼마 안 있어 바로 기상종이 쳤다. 다른 이들은 그제야 눈을 비비며 잠에서 깼다.

윤청이 돌아왔을 때, 같은 방을 쓰는 세 사람은 마침 옷을 입고 있었다.

“좋은 아침이야!”

“아, 좋은 아침!”

“안녕!”

“난 아까 일어나서 이미 나갔다 왔어. 오는 길에 뜨거운 차를 한 주전자 가져왔으니, 모두 한 잔씩 마셔. 오늘 식사에 고기만두가 있대서 미리 주문하고 왔어. 우리가 갈 때쯤이면 아마 준비되어 있을 거야.”

윤청은 한 손으로 찻주전자를 들어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이를 보고 다른 세 사람은 모두 미소 지으며 새로 들어온 사우(*舍友: 룸메이트)가 과연 윤 공의 아들이라더니, 참 성격이 좋고 예의 바르다고 생각했다.

윤청이 사람이나 일을 대하는 자세는 윤재성과 계연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서원의 서생들과 훈장들로부터 쉽게 호감을 살 수 있었다. 게다가 그의 타고난 됨됨이가 근면하고 쾌활했기 때문에, 매우 빨리 서원의 환경에 적응할 수 있었다. 4, 5일 후에는 혜원 서원의 모든 서생이며 훈장과 아는 사이가 되었고, 윤청은 곧 화기애애한 날들을 보내게 되었다.

8월 20일, 이날은 혜원 서원에서 수업이 없는 날이었다. 이날이 되자 서원의 서생들은 일찍부터 들뜬 얼굴로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갑(甲) 6호의 기숙사 방에서 윤청은 침상 곁에 앉아 서책을 정리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위에 놓인 것은 자신의 부친이 쓴 대작(大作)인 <위지의>였다.

이때, 윤청의 사우 두 명이 세수와 양치질을 마치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중 뇌옥생(雷玉生)이라는 이름의 서생은 방에 있던 윤청과 다른 한 사람에게 이렇게 물었다.

“윤청, 흠걸(鑫杰), 우리가 오던 길에 들어보니 오늘 사람들이 모두 공원(貢院)에 간다더라. 너희도 갈래?”

“그래, 맞아. 곧 추위(*秋闈: 향시(鄕試) 또는 해시(解試)를 일컫는 말)잖아. 공원 부근에 계주의 명사(名士)들이 아주 많이 와 있어. 나중에는 우리도 해시에 참가해야 하니까, 가서 한번 보는 게 어때?”

“좋아, 그럼 우리 오늘 수험생들이 먹는다는 도시락도 먹어 보자!”

임흠걸이 그들의 말에 동의하며 이렇게 덧붙였다.

그러나 윤청은 머리를 긁적이며 거절했다.

“재미있을 것 같긴 한데, 오늘은 일이 있어서 함께 못 갈 것 같아.”

“어? 무슨 일인데? 우리가 도와줄까?”

윤청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별일 아니야. 너희 먼저 가봐. 만약 필요하면 꼭 도와 달라고 할게.”

그들은 서로 작별 인사를 나눴고, 혜원 서원의 2백여 명의 서생들은 모두 각자 원하는 곳으로 향했다. 과거 시험장으로 가는 이들도 있었고, 경치를 감상하러 가는 무리도 있었다. 또는 바로 주루(酒樓)로 향하거나, 성 동쪽의 부둣가로 가기도 했다.

그러나 윤청은 홀로 성 남쪽으로 향했다. 그는 시장과 거리를 지나 성문을 통해 밖으로 나간 후, 서남쪽의 강변으로 걸어갔다.

가는 도중에 윤청은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삼삼오오 모여 떠들며 지나가는 일들이 대부분이었고, 어떤 이들은 강변 근처에서 연을 날리기도 했다. 강에는 이미 적지 않은 수의 유람선이 떠다니고 있었다.

‘사람이 정말 많네…….’

이런 걱정을 하며 걷던 그는 마침내 강을 향해 구부러진 버드나무들 근처에 도착했다. 계연은 마침 그중 한 그루의 버드나무 위에 앉았고, 호운은 나무뿌리 근처에 누워 있었다. 계연은 손에 낚싯대를 들었는데, 멀지 않은 기슭에는 다른 이들도 있었다.

윤청은 서책을 품에 안고 빠르게 걸어가 계연에게 인사했다.

“계 선생님, 일찍 오셨네요!”

이렇게 인사하며 윤청은 호운에게도 눈인사를 보냈다.

“왔니? 여기 기슭에 앉으렴. 주위 사람들은 신경 쓸 필요 없어. 어떤 책이든 네가 읽고 싶은 걸 읽으면 된다.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걸 읽어도 돼.”

윤청은 주위를 둘러보고는 기슭에서 가까운 강물을 바라보았다. 수면 아래 깊은 곳에는 거대한 검은 돌처럼 보이는 것이 보였는데, 그 근처에서 은은한 청색의 무언가가 움직였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발견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게다가 호운도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피해 이렇게 누워 있을 정도면, 수면 아래의 강청어도 문제없을 것 같았다.

윤청은 먼저 책을 내려놓고, 적당한 크기의 돌을 옮겨와 옷자락을 뒤로 빼낸 다음 돌 위에 앉았다. 그 후 다시 <위지의>를 들어 올린 후 계 선생님을 바라보니, 그에게 무언가 더 할 말이 있지는 않은 듯했다. 이에 그는 목을 가다듬고 책을 읽어 내려갔다.

“서생으로서 마땅히 예절을 지키고 분수를 깨닫고, 이치에 밝으며 도의를 알아야 한다. 그러나 예절이든 도의든 어떤 사람이 어느 곳에 치우치지 않는지, 그것은 분명치 않다…….”

물 아래에서 눈을 감고 있던 늙은 거북은 천천히 눈을 떴다. 이 서생이 책을 낭송하는 방법은 다른 서생들과 달랐다. 마치 구절마다 자신의 감정을 담아 읽는 듯했다. 단순하게 책의 내용을 읽는 것이 아니라, 자신도 책에서 해답을 구하려는 느낌이었다. 그래서인지 듣는 이도 책의 내용에 깊이 집중하게 되었다.

이런 종류의 감화능력은 사람들에게 깊이 와 닿아서, 예전의 외팔 협객인 두형이 그랬듯이 늙은 거북도 그것을 체험하고 있었다.

늙은 거북은 참지 못하고 고개를 들어 기슭을 올려다보았다. 모호한 물의 장막을 지나쳐 윤청의 얼굴이 언뜻 물결에 흔들려 보였다.

그러나 서생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모호하지 않았고, 오히려 서생의 몸을 감싼 기운은 이상스레 청명했다. 서생의 외양도 그의 심성을 드러내듯 그대로여서, 영험한 기운이 맑고도 눈부시게 빛났다.

이렇듯 청명한 기운으로 밝게 빛나는 모습을 보니, 늙은 거북은 분명 읽을 수 없을 것을 알면서도 참지 못하고 그 서생의 인생을 점쳐 보았다.

그러나 결과는 거북의 예상을 벗어났다. 이 서생의 운명은 뜻밖에도 모호하지 않았다. 서생은 깊고 두툼한 복덕(福德)의 기운을 지니고 있었다. 다만 아무리 해도 그의 인생 기복을 읽어낼 수가 없었다.

이 서생이 보통 사람이었다면, 거북도 그리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 평범하고 단조로운 일생을 살고 가는 사람들도 분명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서생의 미래는 분명 평범하지 않을 것이다. 이에 거북은 더 관찰하기를 멈추고, 자신이 이곳에 온 목적을 되새기며 그가 읽는 책의 내용에 집중했다.

윤청은 <위지의>를 읽으며, 자신의 부친이 책을 썼을 당시의 상황과 기분을 그려보았다. 그는 책을 읽는 동시에 자신이 느낀 감상을 말하기도 했다.

이 책이 아버지가 쓴 책이라 더욱 많은 감상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는 모든 책을 읽을 때 이렇게 했다. 이는 마치 책의 저자가 이 글을 썼을 때의 생각과 맥락을 짚어 나가는 것과 같았다. 이렇게 읽으면 그는 저자의 심경을 더욱 잘 느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사실 많은 서생이 책의 내용에 따라 그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기도 했다. 어떤 책은 사실만을 기술할 뿐 감정이 들어가 있지 않았고, 또 어떤 책은 저자의 사상을 기술하며 동시에 그의 격앙된 감정이 드러나기도 했다.

그러나 윤청이 느끼는 것은 다른 서생들이 단순히 책 속의 의의를 찾는 것과 달랐다. 이것은 마치 그의 영기(靈氣)가 또 다른 감각처럼 저자의 감정을 느낄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상대방의 성격이 고고한 자인지, 열의로 충만한 자인지 아니면 허장성세(虛張聲勢)하는 부류의 사람인지를 모두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윤청에게 있어 어떤 책들은, 비록 그것이 반드시 읽어야 하는 경전(經典)일지라도 읽기가 아주 힘들었다. 서원에서 보는 시험에 통과하기 위해 억지로 외우고는 있지만, 결코 좋아하는 책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윤청이 가장 좋아하는 글은 자신의 부친인 윤재성과 같은 사람들이 쓴 문장이었다. 바로 저자가 의관을 바르게 하고 앉아, 펼치고자 하는 이념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써 내려간 것이 느껴지는 글이었다. 언행이 일치하는 선비가 붓으로 뿜어낸, 더럽고 불결한 것들을 쫓아내는 기세는 윤청을 편안하게 했다.

그래서 윤청이 글을 읽는 동안 그가 느끼는 감정은 자연스레 목소리에 담겨 나왔다. 그는 듣는 이가 요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때로 자신의 말로 서책의 구절을 해석해 주기도 했다. 그래서 강청어와 늙은 거북은 자신들도 모르게 그의 이야기에 점차 빠져들었다.

심지어 한쪽에서 계연이 낚시하는 것을 보던 몇 사람도 윤청의 낭독에 빠져들어 유심히 듣기도 했다. 그들은 이 젊은 서생의 학문이 범상치 않다 느끼고서 그를 찬찬히 살폈다. 이때 윤청은 혜원 서원의 서생들이 입는 옷을 입고 있었는데, 이를 본 사람들은 ‘과연 그렇군’이라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윤청이 홀로 책을 읽고 이해하는 속도는 아주 빨랐지만, 이렇게 다른 이에게 들려줄 때는 글에서 표현한 것 말고도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 아주 많았다. 게다가 그 책이 <위지의>라면, 그는 하루가 모자랄 정도로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동안 계연은 두 사람과 여우가 점심으로 먹을 만한 요깃거리를 사 왔고, 최대한 윤청의 낭독을 방해하지 않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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