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188화 (188/892)

188화. 오래전 이야기

저녁 시간이 가까워지자, 주위의 행인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거나 유람선을 타러 갔다.

계연은 시간이 늦은 것을 보고, 종일 한 마리도 잡지 못한 낚싯대를 거둔 다음 윤청에게 말했다.

“잘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계연이 이렇게 말하자, 윤청의 책 읽는 소리가 뚝 끊겼다.

“계 선생님, 오늘 제가 잘 읽었나요?”

윤청은 약간 망설이며 계연에게 물었다. 그리고서 주위에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 그는 수면을 향해서도 질문을 던졌다.

“강청어야, 이 책이 조금 이해가 됐어?”

그의 모습을 보고 낚싯대를 정리한 계연이 가까이 다가와 윤청의 오른쪽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아주 잘했다. 네 아버지가 와서 읽었어도 너보다 잘했을 것 같진 않구나. 나는 더 그렇고 말이야.”

계연의 과찬을 듣고 윤청은 조금 겸연쩍은 듯 말했다.

“계 선생님, 칭찬이 너무 과하세요. 선생님과 저희 아버지가 얼마나 대단한 분들인지 제가 모르는 것도 아닌데요. 호운,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윤청은 한쪽에 있던 여우에게 물었다. 호운은 눈을 굴리며 한동안 대답하지 않다가, 잠시 뒤에야 그의 말에 답했다.

“만약 누군가에게 읽어주는 것뿐이라면, 나도 계 선생님께서 하신 말씀이 맞는 것 같아.”

호운이 드물게도 제 생각이 담긴 진지한 발언을 하자, 윤청은 잠시 놀란 듯했다. 그러나 어쨌든 칭찬을 받은 윤청은 아주 기뻐했다.

계연은 새로 만든 초록색의 대나무 낚싯대에 낚싯줄을 칭칭 감고는, 멀리 성문을 바라보며 말했다.

“한 시간 정도만 더 있으면 성문이 곧 닫히겠구나.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이야. 아, 돌아가기 전에 서로 인사들 나누렴.”

윤청은 계연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바라보았다. 수면 위에서는 강청어가 지느러미를 모을 수 없어 대신 아래위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거품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그리고 강청의 곁에서 검은 돌인 줄 알았던 것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그것은 거대한 검은 거북이었다.

“이…… 이렇게 큰 거북이 있었군요?”

윤청은 놀라 펄쩍 뛰었고, 검은 거북은 몸의 반 정도를 수면 위로 드러낸 뒤 앞발을 가지런히 모아 읍했다.

“늙은 거북 오숭이 윤 선생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당치 않은 말씀입니다. 제 이름은 윤청이고, 혜원 서원에서 공부하고 있어요.”

윤청도 그를 향해 읍하며 대답했다. 그러나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선생’이라고 불리니 기분이 신기했다.

“참, 이 강청어는 앞으로 나벽청이라고 부르면 된단다.”

계연의 말이 떨어지자, 강변의 강청어가 마치 그 말에 동의하는 듯이 수면 위로 연신 뻐끔대며 거품을 만들었다.

윤청도 웃으며 나벽청에게 공수했고, 서책을 잘 정리한 뒤 아쉬운 얼굴로 계연에게 말했다.

“그럼 계 선생님, 저는 이만 돌아가면 되나요?”

그는 자신이 성으로 들어가면, 계 선생님과 호운도 곧 춘혜부를 떠나리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 가보렴.”

계연은 일부러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윤청은 몸을 돌려 몇 걸음 걷다가 계연이 속으로 셋까지 세었을 때 돌연 몸을 돌려세웠다.

“계 선생님, 제가 혜원 서원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학생들과 선생님들과는 잘 지내고 있는지 왜 안 물으세요?”

계연은 그를 골리려고 일부러 장난을 쳤다.

“아, 하마터면 잊을 뻔했구나. 거기서 잘 지내니?”

“계 선생님, 정말 너무 하시는 거 아니에요?”

“하하하……. 춘혜부는 수운(水運)이 발달했으니, 영안현으로 서신을 보내면 열흘밖에 안 걸릴 거야. 게다가 주부(州府)가 있는 곳이니, 거쳐야 할 역참이나 분류 업무도 줄어들어 완주로 보내는 서신도 더 빠를 거란다. 그러니 시간 나면 꼭 서신 보내렴!”

윤청은 그제야 얼굴을 활짝 펴고 웃더니, 고개를 끄덕인 뒤 성문을 향해 떠나갔다. 한참 멀어질 때까지 그는 몇 걸음마다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다 곧 성문 근처에 다다르자, 그는 가볍게 뛰어 안으로 사라졌다.

윤청이 떠난 후, 계연은 그에게서 시선을 거둬들인 뒤 강기슭에 앉아 거북에게 말했다.

“오숭, 지난번에 당신에게 말했듯이 평생 만난 사람 중, 인상 깊었던 일이 있었다면 내게 말해주세요. 아무래도 오늘이 이야기를 나누기 적당할 것 같네요.”

계연은 이미 한참 전에 <외도전>을 다 읽었으므로, 아주 오랫동안 ‘소설’을 읽은 적이 없었다. 그러니 오숭이 직접 겪었던 이야기를 들려주면 분명 아주 재미있을 것이다.

“선생의 명에 따르겠습니다!”

늙은 거북은 물속에서 예를 행했다. 계 선생님과 윤청의 대화를 통해 그는 계 선생이 곧 떠나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슨 이야기를 할지 깊게 생각해본 뒤, 그는 아주 오래전에 있었던 옛일을 하나 골랐다.

그의 몸체가 점점 물속으로 가라앉고, 거북은 머리만 수면 밖으로 내놓고서 개탄하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분명 170년에서 180년 전의 일일 겁니다. 대정국이 건국된 지 2, 30년이 지났을 때였으니까요. 구체적으로 몇 년도였는지는 기억이 안 납니다. 아주 많은 일이 기억 속에서 희미해졌거든요…….”

늙은 거북은 계연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안심하고서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해는 제가 횡골을 녹인 지 오십몇 년째가 되는 해였습니다. 춘혜부 근방에는 소(蕭)씨 성을 가진 서생 하나가 살았는데, 그자는 복이 있을 관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놀잇배에 탄 그 서생은 술에 취한 사내가 강제로 가기(歌妓) 한 명을 추행하는 것을 보고서 그 여인을 도우려고 나섰습니다.”

늙은 거북은 잠시 웃었다가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술 취한 남자에게 발로 차여 강물에 떨어졌습니다. 그 놀잇배의 관리인과 일꾼들에 의해 곧바로 구해졌지만, 그는 꽤 의기소침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때 저는 그 일을 지켜보며 그 사람이 참 정직한 자라고 생각했습니다.”

늙은 거북은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거북은 그 서생을 놀라게 하지 않으려 적당한 방식을 찾아 그와 ‘우연히 만났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다 친해졌으며, 곧 그를 도와 점을 쳐주었다. 또한, 중요한 일을 처리할 적당한 시기에 관해서도 조언해주었다.

“원래 저는 그저 제 수행에 도움이 될 선연(善緣)을 맺으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어디에서 무엇을 급히 필요로 하는지와 적당한 시기를 알려주며 재물을 좀 벌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다만 그의 집안이 조금 풍족해진 다음에는 그는 여전히 관리가 되고 싶어 했습니다. 그것도 높은 관직을 얻고 싶어 했었지요.

하하, 왕조의 기운과 누군가에게 관운이 있는지는 모두 점치기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게다가 누군가의 점괘에 관리가 될 수 있다고 나와도, 결과는 반드시 그자의 재능과 실력을 봐야 합니다. 그는 재능이 조금 있는 편이었지만, 그것으로는 충분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에게 사실대로 말하며, 만약 이보다 더 열심히 공부하지 않는다면 절대 관리가 될 수 없다고도 말해주었습니다. 게다가 요괴나 다른 삿된 것들의 힘을 빌리는 것은 큰 금기이니까요. 그 후 아주 오랫동안, 소정(蕭靖)은 다시는 저를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계연은 조용히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이야기는 당연히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제가 다시 한번 소정에 관한 소식을 들었을 때, 어찌 된 일인지 몰라도 그자는 6, 7년 만에 어사중승(*御史中丞: 백관을 감찰·탄핵하던 어사대(御史臺)의 장관)의 자리에 앉아있었습니다…….”

이에 계연은 눈썹을 찡그리며 거북을 바라보았다. 늙은 거북은 눈을 가늘게 뜬 채 강물을 주시하고 있었는데, 마치 그 일을 떠올리며 개탄하는 듯 보였다.

이렇게 이 일을 털어놓자, 잊고 있던 작은 부분들도 모두 기억이 나기 시작해 늙은 거북은 좀 더 자세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때는 입원(*立元: 연호(年號)) 32년, 대정국 초대 황제는 노년에 접어들었고 정복 전쟁 중에 얻은 고질병이 더욱 심해져, 태자에게 양위해야 할 시기가 되었습니다. 태자는 일찌감치 성년의 나이었지만, 황제보다 그 위엄과 덕망이 얕았습니다. 게다가 조정의 개국 원로들 대부분은 건재한 상태였습니다. 초대 황제를 옹립하고 대정국을 건국한 그들의 무훈(武勳)이 어느덧 태자를 뛰어넘어 천하를 압도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늙은 거북은 이렇게 말을 하며 무언가 생각하듯 눈을 가늘게 떴다. 한편 계연은 이야기의 이 대목에 이르자 곧 피비린내 나는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직감했다.

“휴우……. 저도 참 재수가 없다고 할 수 있지요. 일찍이 소정에게 베푼 도움에 보답을 받기는커녕, 어사대가 피로 물들 때 그 악업(惡業)이 저를 덮쳐왔습니다!”

아직 구체적인 상황을 말하지 않았는데도, 그의 이 한마디로 계연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대강 추측할 수 있었다. 공신(功臣)을 죽이는 것은 봉건왕조의 역대 개국 황제들이 모두 해왔던 일이었다.

그리고 소정은 어사중승으로서 조정을 감찰하고 백관을 탄핵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이 일의 소용돌이에서 그가 맡은 역할은 무척 중요했을 것이다. 황제를 옹립하여 나라를 건국한 이들 노신(老臣)과 충신들을 그렇게 죽였으니, 그에 따라오는 악업은 늙은 거북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계연은 오른손으로 무릎을 짚고는 가볍게 두드렸다. 그는 늙은 거북과 그 일에 휘말린 무고한 노신들에게 동정심이 들었고, 동시에 다른 생각이 들었다.

‘소 씨라고?’

계연은 예전에 용왕의 생일 연회에 참석한 후, 통천강을 따라 엄동설한에 배를 저어갔던 것을 기억했다. 그때, 계연은 ‘소씨 가문’이라고 적힌 큰 누선과 속도 경쟁을 한 적이 있었다.

늙은 거북이 악업을 돌려받아 수행에 큰 지장이 생긴 것과 달리, 소씨 집안의 사람들은 관직 생활이 조금 힘들고 어려워진 정도였다. 그들은 수선자나 어떤 술법과도 관련이 없었으므로, 오히려 그들이 받은 영향은 늙은 거북에 비하면 크지 않았다.

게다가 본디 관원들의 힘은 황권에서 나오므로, 대정국의 황좌에는 대대로 적지 않은 악업이 쌓여 내려오는 법이다. 개국 공신들을 죽였던 이 사건으로 인해 소씨 가문뿐만 아니라, 이에 관련된 조야(朝野)의 크고 작은 관원들까지 모두 얽히지 않았던가. 소정은 사는 내내 병을 앓았고 결국 단명했으니, 죽은 후에는 오히려 통쾌했을 것이다.

비록 거북의 이야기는 이미 180년 정도가 지난 일이었지만, 만약 소씨 집안이 처신을 잘해 그 후로 어떤 보복도 당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조정에 관직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을 것이었다.

계연이 이렇게 생각하는 동안, 늙은 거북은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그 개국 공신 중에는 분명 오만하고 버릇없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초대 황제가 있을 때는 그나마 그들을 누를 수 있었지만, 일단 황제가 붕어(*崩御: 임금이 세상을 떠남)하고 나면 새 황제가 조정을 장악하기 어려울 것이 분명한 상황이었습니다. 이에 황제는 황권과 조정을 안정시키기 위해, 후환을 없애려는 결단을 내렸습니다…….”

이때 늙은 거북은 고개를 들어 계연을 바라보았는데, 계연이 생각에 잠긴 듯이 보이자 계연이 자신을 볼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말을 이어 나갔다.

“저는 춘목강에 틀어박혀 사는 한낱 요물일 뿐이라, 조정의 일은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그 사건의 시작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입원 32년, 나이 든 황제의 명을 받아 소정은 황궁에서 섣달그믐날에 연회를 열었습니다. 그 후 오래된 신하들 가운데 오만하고 버릇없는 무신(武臣)들이 태자 및 황자들과 주량 대결을 하도록 꾸몄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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