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화. 진화(眞火)를 끌어낼 방법
계연이 보기에도 저 늙은 거북의 수행길은 참으로 순탄치 못했다. 하지만 그중 어떤 일들은 그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행하여 자초한 것이기는 했다. 그의 행실이 만약 강청어와 같았더라면, 그런 일들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저 늙은 거북의 수행에 대한 마음가짐이 참으로 성실했고 간절했다. 수많은 세월이 쌓여 거북은 무언가를 소중히 여기는 법을 이해하고 있었는데, 이 점은 요괴들이 몹시 얻기 힘든 것이었다.
최근 이틀 사이 거북에게 벌어진 일들을 생각해보면, 드디어 거북의 운세가 뒤바뀌어 대운이 도래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계연이 유유히 나는 용처럼 한가롭게 걷는 반면, 그가 걸음을 뗄 때마다 그가 밟는 땅은 몇 배로 줄어드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걷는 계연의 옷자락이 밤바람에 펄럭였는데, 만약 누군가 그 모습을 본다면 표표히 걷는 신선과 같은 모습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만 그가 어깨에 지고 있는 푸른 낚싯대가 그 분위기를 망치는지 아니면 오히려 신선 같은 느낌을 더 해주는지는 알 수 없었다.
계연은 비록 멀리 떨어진 상태였지만, 여전히 거북이 뒤에서 소리치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이에 그는 어느새 깊은 생각에 잠겼다.
계연은 그동안 적지 않은 일들을 겪으며 평범한 백성부터 왕족까지 만나보았다. 그러는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나도록 상황을 부채질한 적도 있고, 의도를 가지고 행동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 그 스스로는 그저 방관자로서 상황을 지켜보는 것을 더 좋아했다. 왜냐면 이 세상의 수많은 생명체에게는 각자 살아가는 방식이 있었고, 그중 바둑돌이 될 만한 자질이 있는 이들도 아주 많았기 때문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요괴들에게 주어진 선택들은 인간들보다 훨씬 적었다. 수행하는 것만이 그들 대부분에게는 유일한 길이었다. 다만 삿되고 올바르지 못한 길로 접어드는 요괴들이 대부분이었다. 자신이 보기에 바둑돌이 될 정도의 자질을 가진 이들은 매우 적었다. 그래서 적당한 요괴들을 만나면 이렇듯 한 번 도와주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계연은 경공을 이용해 가볍게 성벽을 넘었다. 춘혜부 부성 안으로 들어온 계연은 혜원 서원이 있는 방향으로 향하는 동안 여전히 다른 생각에 잠겨 있었다.
가끔 계연은 ‘인연’이라는 게 그리 쉽게 쓸 수 없는 말이라고 느껴졌다. 특히 사람들이 기연(機緣)이라고 일컫는 것은 더욱 그러했다. 연(緣)이 가장 중했고, 기(機)는 그다음이었다. 하지만 시기(時期)와 인연(因緣) 중 어느 하나도 부족해서는 안 되었다.
그리고 계연이 보기에 이에 가장 들어맞는 예시는 바로 맹호(猛虎)인 육 산군이었다.
계연이 막 이 세계에 왔을 때, 그는 육 산군을 만나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 놓였었다. 심오하고 알아듣기 힘든 말로 가까스로 위기를 넘기긴 했지만, 한동안 계연은 육 산군을 두려워하는 동시에 싫어했다.
후에 육 산군이 자신에게 보낸 검의첩으로 인해 그런 감정이 적지 않게 사라졌지만 말이다.
그 후 몇 년간, 계연도 자신의 능력을 갈고닦으며 천천히 육 산군이 자신의 가르침대로 착실히 따라 발전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또한, 수행에 대해 육 산군이 가진 진지하고 성실한 태도, 자신을 사부로 대하는 육 산군의 존경심도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육 산군은 흑돌로서 가진 힘이 무척 강했다. 계연에게는 육 산군이 분명 앞으로의 수행에 더욱 발전이 있을 것이고, 이전에 쌓은 악업을 크게 메꿀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만난 것이 그때가 아니라, 현재 계연이 산신당 앞에서 사람을 잡아먹는 맹호를 만난 것이었더라면, 아마도 일격에 그를 베어버렸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기연(*機緣: 시기와 인연)이라는 것이 참으로 현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저 늙은 거북이 이제야 계연을 만나 도연(道緣)을 얻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지난 수백 년간 고행한 것이 손해였다고 볼 수 있을까? 그 시기를 지나 지금에서야 만난 것이 복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계연이 막 혜원 서원 밖에 도착했을 때, 마침 호운이 담장을 넘어 나오고 있었다.
계연은 원래 호운이 떠나기 아쉬워 미적대고 있을 것으로 생각했기에, 직접 호운을 부르러 여기까지 온 것이었다. 하지만 인제 보니 저 붉은 여우가 드디어 조금 철이 든 것 같았다.
계연은 서원 안으로 들어가 윤청과 인사를 나눌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로 호운을 데리고는 구름을 타고 춘혜부를 떠났다. 춘혜부를 벗어났을 때, 계연은 저 멀리 성황당이 있는 방향을 향해 공수한 후에 영안현으로 향했다.
영안현으로 돌아온 후 계연에게는 달라진 점이 없었다. 원래대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술법을 연마하고 수행을 쌓았다. 다만 호운은 계속 영안현에 머물지 않고 우규산을 오가며 시간 대부분을 보냈다.
들어보니 그 원인에는 육 산군이 있는 듯했다. 계연도 그들의 생활을 일일이 관리할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요괴들의 수행에 있어서는 육 산군이 아마 자신보다 아는 것이 많을 것이다. 그러니 육 산군이 수행하다가 가끔 시간을 내어 ‘가르침’을 좀 준다면 호운에게도 좋은 일일 터였다.
수행 중인 사람과 요괴에게 있어, 시간이란 항상 쏜살같이 흐르는 것처럼 느껴지는 법이었다. 그리하여 계절은 어느새 이미 겨울에 접어들어 있었다.
거안소각 안에서 계연은 죽간 하나를 다 읽고 내려놓았다. 그 죽간은 예전에 선도를 닦는 이들을 위한 두 권의 <도기결> 중 하나였다.
그동안 계연은 이 <도기결>을 몇 번이나 반복해 읽었는지 셀 수 없을 정도였다. 때로는 자세히 생각이 잠겨 읽기도 하고, 때로는 순수하게 읽기만 하기도 했다.
계연이 이렇게 반복해서 읽은 이유는 시간이 남아돌아서가 아니라, 자신이 고안한 색다르고 기이한 술법을 어떻게 하면 실행할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기결에는 많은 종류가 있었지만, 모든 도기결에는 영기(靈氣)를 흡수해 자신의 몸에 받아들이는 수련법이 담겨있었다. 대체로 선도를 닦는 이들은 책의 이름을 거창하게 짓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 화려한 이름 없이 내용이 어떻든 전부 <도기결>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만약 권마다 이름을 붙여줘야만 한다면, 그가 지금 들고 있는 것은 <천지화생하는 방법(天地化生之法)>, 좀 더 멋들어지게 짓는다면 <천지화생대법(天地化生大法)>일 것이다.
뭐라도 있는 것처럼 들리지만, 읽고 나면 그저 도기결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마치 고동현광법(*孤洞懸光法: 어두운 동굴에서 빛을 띄우는 법)이나 화수목접광법(*化樹木接光法: 나무로 화해 빛을 받는 법) 같은 술법처럼 말이다.
계연은 비록 자신의 법력이 강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이제 영기를 체내로 받아들이려고 일부러 도기결을 운용해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다만 계연은 의식 세계를 통해 이 천지화생의 술법에서 새로운 의의를 발견했다.
천지화생의 원리는 현실 세계의 천지(天地)를 신체 안의 천지와 한데 잇는다고 가정한 후에 영기를 체내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계연이 현재 연구하고 있는 것은 그 술법의 반대로, 신체 안의 천지를 외부 세계와 결합하여 바깥으로 내보이는 것이었다.
술법을 반대로 구사하는 것 자체가 매우 희귀한 일인 데다, 보통 수선자들은 자신의 의식 세계를 밖으로 드러낸다고 해도 단로(丹爐)가 있는 일부분만을 내보일 뿐이었다. 게다가 자기 자신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그것을 느낄 수도 없으니, 외부 세계에 끼치는 영향력이 그야말로 너무나 작았다.
계연이 자신의 의식 세계를 현실 밖으로 드러내 보이는 것 자체도 비범하고 대단한 일이기는 했다. 그러나 대부분은 가르침을 줄 때 유용하거나 때로 자신의 위엄을 드러낼 때 약간 도움이 되는 정도였다.
그러나 계연이 어떤 사람인가? 그의 사고의 범위와 상상력은 이 세계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신령이나 요괴들조차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이는 누가 더 똑똑하거나 지혜로운가의 문제가 아니라, 단순히 보고 들은 것들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신령이든 마귀든 오랜 기간 수행을 한 후에야 천천히 어떤 가능성을 깨닫게 되는 법이었다. 하지만 계연은 무언가를 보거나 알게 되면, 쉽게 또 다른 생각이 연상할 수 있었다.
지금이 바로 그런 순간이었다. 의식 세계를 몸 밖으로 내보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을 떠올리니, 계연에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바로 삼매진화였다.
예전에 딱 한 번 그 위력을 내보인 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계연은 그것을 잊지 못하고 있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예전에 삼매진화를 쓴 것은 무슨 위력을 드러내 보인 것도 아니었다. 그 홍 부인이라는 요괴는 삼매진화의 하늘을 뒤덮는 열기의 아주 작은 끝자락에 살짝 데었을 뿐이었다. 진짜 불길에는 닿지도 않은 것이다. 만약 그때 윤재성의 바둑돌이 특수한 상태가 아니었다면, 진화(眞火)의 열기를 내뿜지도 못했을 것이다.
지난번과 같은 방식을 쓰자니 계연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지금 그는 천지화생의 술법을 반대로 구현하고자 하였는데, 과연 단로 안의 삼매진화를 끌어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었다.
“흐음……. 의식 속의 단로는 너무 크고 견고해서 움직일 수 없어. 그러니 현실 세계에 이를 어떻게 드러내야 할지도 문제지만, 둘째는 삼매진화가 너무 위험하다는 거야.”
엄밀히 말해 단로는 진화를 통제하고 다스리는 용도였다. 의식 세계 안의 단로는 매우 무거웠고, 그 안의 진화는 더욱더 그러했다. 대부분은 단로가 일단 만들어지면 다시는 움직일 수 없었다.
계연이 대강 짐작해본 바로는 진화를 일부분 단로에서 끌어낼 수는 있겠지만, 그것을 완전히 밖으로 드러낼 수는 없었다. 이미 그 힘을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심신의 소모가 엄청나기 때문이었다.
어느새 하늘에는 가는 눈송이가 흩날리고 있었고, 대추나무도 바람에 따라 가지를 흔들고 있었다. 나뭇가지 위로 차가운 눈송이가 잇따라 쌓이며 계연의 머리 위와 이마에도 떨어졌다. 그 희미한 냉기가 계연에게 벼락같은 깨달음을 주었다.
‘단실(丹室)과 이어지는 금교(金橋)가 있었지!’
그러나 계연의 눈썹이 곧바로 찌푸려졌다.
금교는 단로와 단실의 잇는 유일한 연결 통로인 동시에, 단기를 법력으로 바뀌도록 하는 중요한 지점이었다. 존재하지만 실체는 없는 다리이며, 수행하는 이들의 현묘함을 끌어내는 근본이었다. 금교라면 계연이 구현하려는 방식대로 진화를 충분히 받아낼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단실의 금교를 지나면 이 삼매진화는 곧바로 계연의 신체 안으로 들어온다는 것이었다.
‘나 자신을 불태워 죽이는 건 아니겠지?’
이는 절대로 계연이 헛된 걱정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삼매진화는 분명 계연의 의식 세계 속에 존재하는, 계연이 몸 안에 품고 있는 불이었다. 그러나 예전에 실체화된 바둑돌이 진화에 닿은 후에 하마터면 불에 타서 부서질 뻔하지 않았던가? 그러니 계연도 진화로 인해 불에 스스로 타죽을 수도 있는 법이었다.
“늙은 용에게서 적지 않은 술을 얻어 마셨을 때 얻은, 열기를 누르는 데 좋다는 용연향도 있으니 그리 단번에 죽지는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