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193화 (193/892)

193화. 좋지 않은 상황에 놓인 협객들

계연은 종이를 다시 한번 살피며 자신이 놓친 부분이 있는지 확인하고서, 다시 서신을 접어 봉투 안에 넣었다.

‘글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더니, 두형은 이제 왼손으로도 이렇게 유려하고 힘 있는 글자를 쓸 수 있게 되었구나. 분명 그 사람이 무공을 닦는 모습과 다르지 않겠지. 비록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힘찬 기세가 느껴지는 서체야.’

두형의 서신을 갈무리하고서 계연은 윤청과 윤재성의 서신을 다시 꺼내어 들었다. 윤청이 쓴 서신의 내용은 그가 예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부분은 자신의 근황을 담고 있었고, 강변에서 책을 읽어주는 일과에 대해서도 쓰여 있었다. 무슨 책을 읽었고 강물에서는 어떤 반응이 있었는지 등등……. 그러나 윤청은 ‘강청어’라거나 ‘늙은 거북’과 같은 단어는 쓰지 않았다. 그러니 분명 2주 전쯤 가장 처음으로 써 보낸 서신일 것이다.

윤재성의 서신에는 깊은 고뇌가 담겨있었다. 사실 완주와 금주 각각에서 이곳까지의 거리는 서로 그다지 차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두형의 서신은 한 달도 전에 쓰인 것이었다. 이는 도로가 발달한 정도가 지역마다 달랐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윤재성이 그 지역의 지부(知府)였기 때문에 이토록 서신이 오는 속도가 차이 난 것이다.

윤재성은 보기 드물게도 계연에게 자신의 번뇌를 털어놓고 있었다. 비록 일찍이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관직에 몸을 담고 보니 그가 상상했던 것보다 더욱 상황이 복잡했기 때문이었다. 위부터 아래에 이르기까지 한 부의 관아에서는 온갖 더러운 일이 횡행했다. 그에 비하면 겉으로만 공손한 체하는 것은 그다지 큰 문제도 아니었다. 어떤 이들은 그야말로 식충이라고밖에 표현할 수가 없었다. 먹고 마시는 것 외에는 어떤 일도 하지 않는데, 그렇다고 가만히 몸을 사리지도 않았다. 그러나 지난 2년간 이제 그도 경험이 쌓여 능숙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게 되었고, 곧 순탄하게 부를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는 내용이었다.

윤재성도 한가한 사람이 아니었으므로, 당연히 서신을 쓴 가장 중요한 목적은 계연을 향한 토로가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소식은 바로 그의 부인이 회임했다는 것이었다. 처음 회임했다는 맥이 잡혔을 때로부터 이미 시간이 꽤 지나 있었으므로, 특별히 계연과 윤청에게 이를 알리러 서신을 보낸 것이었다. 좋은 벗이 보낸 서신을 다 읽고서 계연의 표정은 약간 오묘하게 변하였다.

“이것 참……. 윤청이 윤 훈장님의 서신을 받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과연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네.”

서신 세 통을 모두 확인한 뒤, 계연은 한동안 후원에 서서 생각에 잠겨 있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눈 쌓인 대추나무 가지를 바라보다가, 손을 뻗으며 대추나무를 향해 말했다.

“새로 열린 대추 한 알만 주렴.”

그의 말이 떨어지자, 타는 듯이 붉은 대추 한 알이 가지에서 계연의 손바닥 안으로 떨어졌다.

이전에 돌가루에서도 느꼈듯이 이 화조(火棗)에서도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 안에는 똑같이 영기(靈氣)가 담긴 불의 기운을 품고 있었는데, 다만 그 돌에서 느껴졌던 것보다는 비교적 부드러운 기운이었다.

화조를 들고 계연은 빠른 걸음으로 방으로 돌아와, 자물쇠 두 개를 찾아냈다. 먼저 방문을 걸어 잠그고, 담장을 나와 대문도 잠갔다. 비록 누군가 자신을 찾아올 확률은 거의 없었지만, 이렇게 하면 누군가 왔을 때 자신이 먼 길을 떠났다는 것을 알고 오래 기다리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 후 계연은 문밖에 선 채로 품 안에서 비단 주머니를 꺼냈다. 손으로 한 번 툭 쳐서 말을 남긴 후, 거안소각의 후원 안으로 던졌다. ‘휙’하고 날아간 주머니는 그 끈이 정확히 방문 위에 걸렸다.

비단 주머니가 여전히 이리저리 흔들리는 동안, 입구에서는 자그마한 흰색 종이학이 머리를 내밀어 밖을 살피다가 다시 안으로 몸을 숨겼다.

밖에 선 계연은 사방을 살핀 후, 장안법을 사용한 다음 경공을 이용해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는 불어오는 맑은 바람을 타고 고공으로 높이 오른 뒤에, 구름을 타고서 영안현을 떠났다.

금주는 계주의 서북쪽, 경기부의 정북방(正北方)에 있었다. 직선거리로 보면 계주에서 경기부까지의 거리보다는 가까웠지만, 보통 사람들이 계주에서 금주를 간다면 경기부까지 가는 데보다 더 많은 시간이 들었다. 교통 조건이 너무나 열악했기 때문인데, 육로로 가는 길도 험악했지만, 딱히 이용할 만한 수로도 없었다.

계연은 하늘을 날아서 갔으므로 육로로 갈 때 받는 제약을 무시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고 순풍을 타고 편안히 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서너 시진 정도를 날고 나자 불어오는 바람이 거세져 마치 아래로 추락할 것 같았던 것이다. 이에 계연은 신중을 기해 조심히 하늘을 날았다. 만약 속도를 위해서가 아니었다면, 두 다리로 뛰어가는 것이 훨씬 편했을 법한 구간도 있었다.

대략 일몰 후 한 시진 남짓이 지났을 때, 계연은 어두운 상공에서 내려와 금주의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이곳은 계주보다 확연히 기온이 낮은 게 느껴졌다.

이곳은 대정국의 북쪽 국경 지역에 있는 주(州)로서, 번화한 정도를 따지자면 대정국에서 가장 낙후된 곳 중 하나였다. 인구가 비교적 적다는 것이 그 주된 이유였지만, 오히려 자연재해가 자주 발생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러나 겨울과 초봄의 날씨가 너무 추워 사람이 견디기 어려운 데다,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기간도 무척 짧았다.

계연이 내려선 곳은 그가 아직 이름을 모르는 마을이었다. 그는 다른 이들에게 물어보고 할 필요 없이, 바둑돌과의 감응을 통해 단번에 이곳까지 찾아온 것이었다.

계연이 법안을 크게 뜨고 이곳의 상황을 살펴보니, 대충 살피긴 했으나 겉으로는 어떤 요사스러운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사람이 사는 기운이 그다지 왕성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이 겨울에 땔감을 태우는 불의 기운이 왕성하지 않은 느낌이 들어, 계연은 좀 더 주의하기로 했다.

이는 이곳에 사는 백성의 수가 적기 때문은 아니었다. 사실 어느 곳에 단 한 사람이 머문다고 해도, 사람이 사는 기운은 때에 따라 왕성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했다.

정수현(庭水懸)에는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객잔이 하나 있을 뿐이었다. 이곳은 비록 현으로 불리지만, 아무래도 계연이 보기에는 조금 큰 소도시에 지나지 않았다.

영객루(迎客樓)라는 이름의 객잔 안에는 상방(上房) 몇 개에 2주 정도 머무르고 있는 손님들이 있었다. 바로 두형과 다른 협객들이었다.

상방은 중간에 있는 방의 양측 나무 벽이 뚫려 방 세 개가 이어져 있는 모양이었다. 이곳에는 아홉 개의 침상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몇 개의 난로에서는 숯이 타고 있어서 방안에는 따뜻한 기운이 감돌았다.

방 세 개가 이어진 중간에서 두형은 늠름한 모습으로 앉아있었다. 그는 검집에서 빼낸 긴 칼을 왼손으로 쥐고서 땅을 짚고 있었다. 그의 두 눈은 비록 굳게 닫혔지만, 그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면 언제든 칼을 휘두를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의 곁에는 강호의 협객 세 사람이 자리해 있었는데, 그들은 탁자 앞에 앉거나 가부좌를 틀고 바닥에 앉아 내공(內攻)을 연마하는 중이었다. 가까이 붙은 침상 위에 누운 사람들은 모두 잠들어 있었다. 그중 세 사람은 상태가 괜찮아 보였고, 다른 네 사람은 안색이 창백했다. 그들은 잠을 자면서도 식은땀을 흘렸고, 몸을 한껏 웅크리고 있어 마치 추위를 느끼는 듯했다.

쿵쿵쿵!

“누구시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자 두형은 눈을 부릅떴다. 탁자에 앉아있던 협객 하나가 문밖을 향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손님, 뜨거운 물을 가져왔습니다. 제가 안으로 옮겨 드릴까요?”

점소이(店小二)의 목소리를 듣고, 두형은 또 다른 협객 한 명을 향해 눈짓했다. 이에 상대방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문을 열고서 점소이를 자세히 살펴본 후 대답했다.

“안으로 옮겨 주시오. 참, 무슨 소식은 없었소?”

점소이는 하품을 하더니, 안쪽을 한번 살펴보고서 대답했다.

“이렇게 추운 날에 무슨 소식이 벌써 왔겠어요. 겨울이 된 후 큰 눈이 내려 길도 다 막혔습니다. 이제 밖에 나돌아다니는 사람도 많지 않아요.”

“음, 알겠소. 인제 그만 가봐도 좋소.”

“네!”

점소이가 떠나는 것을 보고서 그 협객은 다시 문을 닫았다.

“두 대협, 우리가 이 현에 온 지도 꽤 되었는데 아직도 조용한 것을 보니, 잘 떨쳐낸 것 같습니다.”

두형은 그의 동료를 바라보며, 눈썹을 찡그린 채 고개를 저었다.

“아닐 수도 있습니다. 경계를 놓으면 안 돼요. 우리가 이번에 상대하는 것은 강호의 그저 그런 나부랭이가 아닙니다. 조금만 방심했다간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저도 그리 생각합니다!”

그들은 이렇게 두형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근심 어린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하필 겨울이라 이렇게 발이 묶였네요. 그게 아니었더라면 우리 모두 진작에 부성(府城)으로 갔을 텐데.”

“어쩔 수 없지요. 금주는 땅이 넓고 사람이 적어, 도로가 다른 곳보다 더욱 열악한 상태입니다. 이곳이 비록 현성(縣城)이라지만, 사실 다른 주에 있는 커다란 진(鎭)보다도 못한 곳이지요. 성황당조차 없으니 말 다 했지요!”

분위기를 완화하고자, 이야기를 듣던 다른 한 사람이 농담을 던졌다.

“이런 일을 겪었으니, 이후에 강호에 돌아간 후에도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겠습니다. 두 대협, 일전에 두씨 집안의 한 고수가 술을 마신 후 귀신을 베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우리도 그보다 못해서는 안 되겠죠?”

두욱천이 술을 마신 후 귀신을 베었다는 이야기는 강호에서는 비밀도 아니었다. 물론 이전의 두형을 비롯해 이 이야기를 믿는 이들은 몇 명 없었지만, 이곳에 있는 이들은 모두 그 이야기를 믿고 싶어 했다.

두형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다른 한 사람이 자조하듯 한마디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우리가 그 괴이한 것을 죽이지 못한 듯합니다!”

이렇게 말하자 방금 두욱천의 이야기를 꺼냈던 사람은 다시금 두려움을 느낀 것인지 아니면 화가 난 것인지 이렇게 대답했다.

“세상에, 분명 그 요물의 머리를 베었는데 죽지도 않고 다시 찾아오다니요. 그 무서운 어린 애들도 보아하니 그대로인 것 같더군요. 두 대협이 검기를 이용해 그중 한 아이를 베자마자, 그것이 불에 타올랐지요. 이 일은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면 누구도 믿지 못할 겁니다!”

“가장 악독한 점은 바로 이 독입니다. 이통주(李通州)처럼 무공이 높은 이조차 독소를 몰아내지 못하다니……. 약을 쓰면 쓸수록 오히려 몸은 약해지기만 하고요. 저 사람과 두 대협이 함께 자리를 굳건히 지켰더라면, 우리가 어찌 그리……. 어휴!”

두형은 한 곳에 앉아 칼로 땅을 짚은 채, 다른 이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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