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화. 도망치는 실력이 대단하네 (1)
“아아! 으악!”
고통에 찬 비명이 울려 퍼지자, 다른 귀동들은 놀라 얼어붙어 잠시 공격을 멈췄다.
“하하하하……. 이번에는 뼈조차 남지 않게 타버릴 것이다. 네가 과연 또 살아날 수 있는지 한번 보자, 하하하!”
“하하하!”
“통쾌하군요!”
다른 무인들은 이 장면을 보고 모두 기세등등하게 사기가 올랐다.
“내 아이!”
“이 요사한 것! 너도 곧 저것을 따라가게 될 것이다!”
여자가 놀라 소리치자, 두형은 손에 든 칼을 멈추지 않으며 동시에 상대의 정신을 교란하기 위해 힘껏 소리쳤다.
“하하하! 하하하하……!”
그러자 여자는 돌연 웃기 시작했는데, 그 목소리에는 원한이 가득했다.
“내가 너희들을 얕보았구나. 내 꼭 너의 심장을 먹고야 말 것이다!”
여자는 이렇게 말하면서 두형과의 거리를 벌렸고, 두형은 칼을 고쳐 잡고 숨을 가다듬으며 구태여 따라잡으려 하지 않았다.
“하! 그건 네가 그럴 만한 실력이 있는지 먼저 봐야겠지!”
그때, 저쪽의 무인들이 경악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건 또 뭐지?”
“죽지 않았단 말인가?”
그 귀동은 몸에 불이 붙은 후 입고 있던 옷과 신체가 모두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타버렸다. 그런데도 죽지 않고서 오히려 잿빛의 그림자로 변했고, 그 투명한 형체를 통과해 등 뒤의 사물도 보일 정도였다.
그러나 곧 잿빛이 점차 흐릿해지기 시작하더니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었다.
괴이하게도 와앙 우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여전히 들려와, 지켜보는 이들의 모골을 송연하게 했다.
“하하하하……. 겨우 너희 같은 강호 협객들이 감히 연달아 내 수행을 망쳐 놓다니! 이왕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수행이야 다시 닦으면 되겠지만, 오늘 밤 정수현의 모든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다!”
여자는 분노에 찬 목소리로 이를 가는 듯했다. 뒤이어 다른 귀동들의 신체가 금이 가듯 벌어지기 시작하더니, 피가 낭자하고 뼈가 보이는 가운데 스스로 몸을 버리고 나왔다. 이를 지켜보던 무인들은 손발이 차가워질 정도로 소름이 돋았고, 어찌 대응해야 할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이전에는 저것들이 왜 이런 방법을 쓰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만약 상대가 보이지 않으면 도대체 어떻게 공격을 한단 말인가?
바로 그때, 맑고 온화한 바람이 객잔의 복도에 불어 닥쳤다.
“오? 말하는 기세가 대단하구나!”
부드럽지만 힘 있는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곧 한 사람이 객잔의 복도에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는 마침 놀라 오줌을 싸던 점소이의 곁에 서 있었다.
나타난 사람은 흰옷을 입고 긴 머리를 아래로 늘어뜨린 채 머리 위에 묵옥 비녀를 꽂고 있었다. 남들과 달리 희끄무레한 두 눈은 쉽게 다른 이들의 시선을 끌었다.
계연은 고개를 숙여 점소이를 한번 보았다가, 여자와 귀동들을 향해 차례로 시선을 던졌다.
“계 선생님!”
두형의 목소리에는 놀라움과 기쁨이 담겨있었다. 계연을 보자마자 두렵고 조마조마했던 마음이 순식간에 안정되었다.
계연은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후, 무인들의 앞으로 한 발짝 다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소매를 부채처럼 한번 휘둘러 일곱 명의 투명한 아이들을 여인의 곁으로 날려 보냈다. 그와 동시에 여인과 귀동들의 근처로 더 가까이 다가갔다.
“넌 도대체 무엇이지? 사람도 귀신도 마귀도 요괴도 아닌 것이……. 구자귀모(*九子鬼母: 불경에 기록된 매일 아홉 명의 귀동(鬼童)을 낳는다는 여인. 인간 아이들을 죽여 먹는다고 함)? 그것 같지도 않고……. 그 사악한 도술은 누가 가르쳐 준 것이지?”
계연은 제자리에 서서 가만히 여인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저 여인이 몇백 년 묵은 요괴가 아닌 것을 알아보았다.
여인은 계연이 어떻게 왔는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심지어 상대는 눈앞에 서 있지만, 마치 그곳에 없는 듯 어떤 것도 느낄 수 없었다. 그녀는 천천히 뒤로 몸을 물리며 아무래도 고인(高人)을 만난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저자를 죽여라!”
여인은 계연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귀동들을 시켜 계연을 공격하게 한 후, 자신은 몸을 돌려 도망쳤다.
다른 무인들과 두형은 계연에게 조심하라고 막 소리치려다가, 그의 입에서 불그스름한 빛을 띤 회색 연기가 한 줄기 나오는 것을 보았다.
“후우!”
연기가 한번 훑고 지나가자, 일곱 명의 무인들은 다시금 이 귀동들의 형태를 볼 수 있게 되었다. 다만 마치 종이 인형에 불이 붙듯이 귀동들은 회색 재로 변해 비명조차 내지 못하고 사라졌다.
‘무려 삼매진화에 당해 재가 되었으니, 이 정도면 존중해 줬다고 볼 수 있겠지!’
일곱 명의 귀동들이 재로 변해 사라지는 동시에, 커다란 배를 붙잡고 도망치던 여인은 고개를 돌려 이 장면을 보고는 몹시 놀랐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객잔의 벽이 뚫리며 여인은 바깥의 눈보라 속으로 사라졌다.
바깥에서 바람이 윙윙대며 불어와 눈발이 객잔 안에 흩날렸고, 삽시간에 객잔 안의 온도가 내려가더니 곧 추워졌다.
눈보라가 들이치자 아까 부은 기름과 솜방망이에 남은 불씨가 만나, 바닥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이를 본 계연이 소매를 한번 휘두르자, 화로와 등잔을 제외한 모든 불씨가 순식간에 꺼졌고 객잔 내부가 조금 어두워졌다.
계연은 근처에 있던 귀동들의 몸이 타고 남은 재가 흩날리자, 그것을 손으로 받으며 그들의 숫자를 세어 확인했다. 그런 후에 고개를 돌려 등 뒤를 향해 낮은 소리로 말했다.
“가서 저 여인을 지켜봐.”
등 뒤의 넝쿨검이 가볍게 한번 떨리더니, 푸른 그림자가 눈 깜짝할 사이에 객잔의 복도를 지나 눈보라 속으로 사라졌다.
저 사악한 여인에게서는 요기나 마기가 느껴지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사람이나 귀신도 아니었다. 비록 제법 괴이한 술법을 부리기는 하지만, 계연이 보기에는 별로 대단치도 않았다. 저 여인이 머리가 떨어졌는데도 ‘살아났고’, 여인이 부리는 술법과 방금 말한 ‘수행을 쌓겠다’는 말을 보면 누군가에게 전승받은 것이 분명했다.
저런 삿된 것들이 닦는 술법이야 이도 저도 아니긴 하지만, 스스로 그것을 깨우쳤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니 이를 전승한 사람은 사특한 수행을 닦은 자이거나 특수한 목적을 가진 것이 분명했고, 어느 경우이든 간에 계연은 그를 놔줄 생각이 없었다.
이를 가지고 점을 쳐보았더니, 결과는 과연 그의 생각대로였다.
두형은 계연에게 두 발짝 정도 떨어진 곳으로 다가와, 칼을 등 뒤에 갈무리하고 계연을 향해 몸을 굽혀 인사했다.
“계 선생님, 제가 저 요녀를 뒤쫓을까요?”
계연은 고개를 젓고는 푸른빛이 돌 정도로 안색이 창백한 협객 네 명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방금까지 젖 먹던 힘을 짜내어 버티던 중이었는데, 이제 위기가 지나자 긴장이 풀려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이들은 간신히 숨만 쉬고 있는 모습으로, 보아하니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다.
“그건 제가 따로 준비해 둔 바가 있어요. 일단 이분들 먼저 살리고 얘기할게요.”
주위를 둘러보던 계연은 그나마 멀쩡해 보이는 방 하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일단 이분들을 저곳으로 옮기는 게 좋겠어요. 그리고 복도 벽에 뚫린 구멍은 나무판자나 이불을 이용해 조금이라도 막아 보도록 하죠.”
두형은 그렇게 대답하고서 일행을 불렀고, 계연은 그들과 함께 협객들을 부축하여 다른 방으로 옮겼다.
그들 대부분이 방안으로 들어왔을 때, 무인 두 명은 발에 차여 부서진 나뭇조각과 침상에 있던 이불 등을 가져와 복도에 뚫린 구멍을 대충 막았다. 하지만 이를 고정할 못이 없어 임시방편일 따름이었다.
놀라 다리가 풀렸던 점소이는 이때 정신을 차리고서, 덜덜 떠는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그는 못을 찾으러 간다고 말했지만, 그의 행색을 보니 일단 옷부터 갈아입어야 할 듯했다.
객잔의 주인과 다른 점원들은 방금 벌어진 커다란 소동에 놀라 잠에서 깬 상태였다. 그러나 무기들이 부딪치는 소리와 끔찍한 비명이 들려오자, 누구도 방에서 나올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 모든 과정이 너무 빨리 지나가 버려, 관아에 보고할 용기를 내기도 전에 이미 사위가 조용해졌다. 하지만 소동이 가라앉자 그들은 더욱 두려움을 느꼈다.
곧이어 다행히 목숨을 구한 점소이가 아래로 내려와 방금 있었던 일을 전했고, 그들은 그제야 겨우 안심할 수 있었다. 가슴이 뚫린 그 점원에 대해서는 일단 짧은 추모를 하고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위층의 한 방 안에서는 중독된 무인 네 명이 이불이 깔린 바닥 위에 일렬로 누워 있었다.
다른 이들은 곁에 서서 긴장한 채 그들을 지켜보았다. 계연은 한 사람 한 사람 자세히 그들의 기운 변화를 관찰한 후 손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짧고 빠르게 술법을 펼쳐 영기를 끌어모은 다음, 자신의 법력과 결합하여 무형의 불진(*拂塵: 불교와 도교의 법기(法器)로, 먼지떨이처럼 생김)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불진을 이리저리 휘둘렀는데, 영기와 법력의 그의 동작을 따라 용솟음쳤다.
사악한 기운과 독기(毒氣)가 그들의 몸에서 떨어져 나가, 그들 주위에 놓인 화로 안으로 떨어져 ‘치지직’ 타는 소리를 냈다.
다만 남은 독은 이미 신체 깊은 곳에 침투해 있어, 완전히 털어낼 수는 없었다. 이들은 이제 영기를 모으며 긴 시간 천천히 회복하든가, 영험하고 신비로운 영약(靈藥)을 먹어야 했다.
그래서 계연은 소매 안에서 미리 가져온 대추를 꺼내 들었다.
계연이 화조를 꺼내자 두형은 단번에 그것을 알아보았다. 계연은 오른손으로 대추를 쥐고서 왼손으로 무인들의 입을 약간 벌리게 하여 즙을 조금씩 떨어뜨리며 대추 과육을 입안에 넣어주었다. 네 사람 모두에게 이렇게 먹이자, 그가 든 대추는 절반 정도가 남았다.
화조를 입에 넣어주고 나서 계연은 영기를 모아 네 사람의 장기를 따뜻하게 만들어 방금 먹은 것이 최대한 빨리 몸 안에 퍼지도록 도왔다.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상태가 아주 나빴던 이들이 단번에 얼굴에 혈색이 도는 것처럼 보였는데, 중독되었던 이들의 몸에서 곧 은은한 열기가 느껴졌다.
계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일으켰다. 바닥에 누워 있던 네 사람은 눈을 뜨더니 바로 몸을 세워 앉았다. 더는 예전처럼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겁지 않았고, 힘이 솟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통주는 주먹을 꼭 쥐며 다른 세 사람을 쳐다보다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저희는 다 나은 것입니까?”
계연을 그를 향해 고개를 저으며 웃어 보였다.
“나았냐고요? 하하, 아직 일러요. 지금은 화조를 먹고 그 원기(元氣)가 몸 안에 흡수되어 힘이 충만한 듯 느껴지는 거예요. 완전히 회복되려면 한 달은 있어야 해요. 그동안 손실된 공력(功力)은 돌아오지 않을 테니 다시 수련하셔야 하고요. 한 달 동안은 찬물로 목욕하지 마시고 방사(*房事: 부부가 동침하는 것)도 하시면 안 돼요!”
이들의 무공이 뛰어나 닦은 기초가 있어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이때까지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명심하겠습니다!”
“저희를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들은 계연에게 약속하며 감사 인사를 했다. 저승에 발을 하나 걸치고 있었는데 목숨을 구하게 되었으니 천만다행이었다.
몇 마디 더 당부한 후, 계연은 두형에게 말했다.
“저는 그 요녀를 쫓아갈 테니, 여기서 일행을 돌보며 좀 쉬세요. 객잔의 일도 처리해야 하니까요.”
이렇게 말한 계연은 방을 나와 복도에 난 구멍을 메우고 있는 이들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인 다음, 계단을 내려가 객잔을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