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화. 술법으로 맞붙다
계연은 법안을 열어 자신보다 더욱 신선처럼 보이는 노인을 응시했다. 하지만 그자의 몸에서 활력이 왕성하게 느껴지는 것 외에는 어떤 요기나 사악한 기운도 포착할 수 없었다. 법력도 드러내지 않고 신비한 빛이나 영기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니, 꽤 수행을 오래 닦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계연이 법안을 조금 더 크게 뜨자, 상대방의 소매 안에서 약하게 빛나는 부적이 보였다. 은은한 빛이 노인의 몸을 감싸고 있었는데, 보아하니 그의 몸에 달라붙어 있는 부적인 듯했다. 그와 동시에 왼손의 소매 안에서도 또 다른 무언가가 아주 희미하게 반짝이는 것을 보니, 최후의 수단으로 쓰려고 그것의 기척을 숨겨 놓은 것 같았다.
상대가 이러한 준비를 하는 것과 상관없이, 계연은 여전히 노인을 상대할 생각이 없었다. 노인이 느끼던 압박감이 더욱 무거워지던 때에, 다행히 계연이 입을 열었다.
“저 여인의 수행이 얕다고요? 글쎄요. 저 여인은 이미 일곱 명의 귀동(鬼童)을 낳았고, 한 현(懸)의 모든 백성을 죽이려 했습니다. 분명 이를 가르쳐준 스승이 있는 거지요.”
계연은 어떤 감정도 담기지 않은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
“뭐라고요? 이미 일곱 명을 낳았다는 말씀입니까? 게다가 현의 백성들을 모두 죽이겠다고까지 했다니!”
노인은 분노를 감추지 못한 얼굴로 여인을 향해 말했다.
“요녀 주제에 간도 크구나! 어쩐지 악기(惡氣)가 덕지덕지 묻어 있더라니, 이미 악행을 많이도 저지른 모양이구나!”
그의 눈이 반짝이는 동시에 노인의 온몸에 법력이 소용돌이치더니 불길이 솟구쳤다.
“너 같은 요녀를 남겨두어서는 안 되겠다!”
그가 이렇게 고함치며 결인(結印)한 손으로 소매를 한번 휘두르자, 불길이 여인을 향해 덮쳐왔다. 여인은 자신이 스승이라고 믿었던 사람에게서 이런 공격을 당할 줄 몰랐기에, 너무나 당황스러워서 도망도 치지 못했다.
챙……!
이때, 장검이 검집에서 나오는 소리와 함께 여인과 노인의 눈앞에 한 줄기 은빛이 지나갔다. 눈보라나 얼음보다도 더욱 살을 에는 듯한 검기(劍氣)가 훑고 지나가자, 노인이 끌어낸 불길이 반으로 갈라졌다.
노인은 식은땀을 흘리며 한 뼘 너비의 구멍을 바라보았다. 검 한 자루가 나무로 된 바닥을 부수고, 그 아래의 얼음과 진흙층을 베어내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이의 어두컴컴한 골짜기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가 뻣뻣이 굳은 목을 들어 바라보니, 집의 지붕이 앞에서부터 뒤까지 기다랗게 베여 있었다. 그 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자, 푸른빛을 띤 무언가가 고공에 떠 있었다.
‘선검(仙劍)이로구나!’
노인은 이제야 알아차린 듯했다. 계연은 속으로 차갑게 웃음을 지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소매 속에 숨긴 부적을 사용해봐도 좋아요. 어디 당신의 목숨을 그것으로 구할 수 있을지 한번 보죠. 하! 음기와 삿되고 더러운 기운이 가득한 곳에 집을 짓고 수행을 하다니, 보기만 해도 내 법안이 더러워지는 것 같네요.”
계연은 왼팔을 등에 지고, 오른손으로는 날리는 눈송이를 받았다. 노인은 비록 보지 못했지만, 눈송이가 계연의 손바닥에 떨어져 녹으며 생긴 물기가 글자 하나를 만들어냈다.
상대의 온몸에서 법력이 요동치는 것을 보아하니 노인은 이대로 가만히 죽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렇게 자신만만한 말을 내뱉었지만, 의외의 일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려면, 일단 저 노인을 먼저 처리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잔뜩 배가 부른 여인은 현재 두려움과 초조함에 잠식된 상태였다. 그녀가 아무리 우둔하다지만, 방금 자신의 사부가 자기를 죽여 입을 막으려고 한 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게다가 저 흰옷을 입은 남자라고 해서 자신을 놔주지도 않을 것이다. 바로 그때, 그녀의 스승이 이렇게 소리쳤다.
“도망쳐!”
나무로 된 작은 집이 순식간에 무너지더니, 하늘을 뒤덮는 기세로 지면에서 흙으로 된 파도가 솟구쳤다. 그 압박감이 수십 미터 떨어진 계연에게도 느껴질 정도였다. 그때 노인의 몸에서 노란빛이 나더니, 노인은 땅 밑으로 몸을 숨겨 도망쳤다.
쿠르르릉-!
땅이 요동치고 산이 흔들리던 찰나, 계연은 이미 그림자에 완전히 뒤덮인 상태였다.
흙으로 된 파도는 수십 미터의 높이였고, 파도의 양쪽은 협곡의 양 끝 지점이어서 계연에게는 피할 곳이 없었다. 아래에서 뒤덮어 오는 파도는 마치 하늘을 뒤덮으려는 듯했다. 해마저 파도에 가려지는 것 같았다.
계연은 전광석화처럼 뒷걸음질 친 후에, 축지법으로 멀리 떨어졌다.
그는 검지를 앞쪽을 향해 뻗으며 이렇게 말했다.
“참(*斬: 베다)!”
넝쿨검이 다시 한번 검집에서 나왔다. 넝쿨검에서 뿜어진 검광은 조금 전보다 더욱 날카로웠다.
날카로운 은빛이 지나간 자리에는 거대한 규모의 흙으로 된 파도가 두 쪽으로 갈라져 있었다. 검광은 그 후에도 줄어들지 않고, 저 멀리 날아가 아래로 떨어졌다.
“아악!”
짧은 비명이 땅 밑에서 들려왔다.
쿠르르릉……!
파도가 반으로 갈라진 뒤, 검광이 산 양쪽에 떨어지면서 귀가 떨어질 듯한 굉음이 났다. 뒤이어 지면이 가볍게 흔들리더니 희뿌연 먼지가 협곡에 가득 퍼졌다.
계연조차 이 위력에 조금 두려움을 느낄 정도였다. 그때 계연은 그 여인이 협곡 저쪽에서 급히 도망치는 것을 발견해, 코웃음을 치며 입을 열었다.
“정(*定: 멈추다)!”
그러자 계연의 오른손바닥에 물로 그려져 있던. 칙령의 힘이 담긴 ‘정(定)’자가 스르르 사라졌다. 동시에 먼 곳에 있던 여인은 자신의 몸이 갑자기 뻣뻣하게 굳어가는 것을 느꼈다. 뛰어가던 자세 그대로 몸이 굳자, 여인은 콰당하는 소리를 내며 쓰러져 가까운 암석에 머리를 부딪쳤다.
그녀는 손가락 하나 꼼짝하지 못했다. 심지어는 숨을 쉴 수도 없었고, 눈을 깜빡일 수도 없었다. 그녀가 가진 삿된 법력도 이때는 마치 전부 빠져나간 듯했다. 마치 정신만 깨어 있는 시체에 가까운 상태였다.
계연이 막 한숨을 돌렸을 때, 그의 영험한 감각이 무언가를 감지했다. 이에 그는 손가락을 접어 잠시 점을 쳐보았고, 뒤이어 놀란 듯 이렇게 말했다.
“어! 아직 죽지 않았군?”
땅 밑에 있는 참혹한 시신은 피를 흘리고는 있었지만, 이는 사실 가짜 몸이었던 것이다.
“그리 쉽게 도망치게 둘 수 없지!”
계연은 높이 뛰어올라 구름을 타고 급히 날아갔다. 하늘에 떠 있던 넝쿨검도 날카로운 공명음을 낸 후, 검광으로 구름을 베어내면서 따라갔다.
연추산(延秋山) 산맥 깊은 곳에서 노인은 태허(*太虛: 중국 사상의 기본적 개념의 하나로, 우주의 본체 또는 기의 본체) 토둔(*土遁: 도가(道家)의 술법인 오둔(五遁) 중 하나로, 땅속으로 숨어드는 술법) 부적을 들고 미친 듯이 법력을 운용하고 있었다. 그는 이미 너무 놀라 간담이 서늘하다 못해 쪼개질 지경이었다. 그의 다른 소매 안에 들어있던 체명부(*替命符: 목숨을 한 번 대신해주는 부적)는 이미 공격 한 번에 부서진 상태였다.
게다가 수련한 법결 사이의 감응(感應)으로, 그는 자신의 제자가 일종의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닌 괴이한 상태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게다가 고인이 내뱉은 ‘정(定)’이라는 글자를 들었으나, 도대체 상대가 무슨 술법을 부리는 건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안 되겠어, 지금은 아끼면 안 돼! 이걸 쓰지 않았다간 목숨을 잃을 거야!’
노인은 손에 든 노란빛의 돌을 힘주어 부수며 끊임없이 속삭였다.
“연추산 산신께 부탁드립니다, 부디 저를 구해 주십시오! 제발 좀 구해 주십시오!”
연추산은 노인이 머물던 바로 그 산으로, 이때 그는 목숨을 건지기 위해 이미 자신이 가진 모든 수를 다 쓴 상태였다. 태허토둔 부적을 이용해 땅으로 숨어들었고, 진귀한 보물인 체명부로 죽음을 한 번 피한데다, 이제 산신석(山神石)도 써버린 상태였다.
그런데도 이 시각, 노인은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가 도망치던 순간 망설임 없이 체명부를 썼기에 망정이지, 만약 아까워 쓰지 못했다면 그 선검에 이미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아무리 그가 술법을 부리는 수행자라고 해도, 선검의 검광(劍光)보다 빠를 수는 없었다.
과감하게 체명부를 쓰긴 했지만, 노인이 조금의 손상도 입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선검의 검광이 번쩍이던 그 찰나, 조금의 상처도 없이 가짜 몸에서 빠져나갔어야 할 노인은 목이 떨어지는 고통을 모두 느꼈던 것이다. 체명부로는 고통까지 상쇄할 수 없었기 때문에, 노인은 혼이 모두 달아날 듯한 큰 타격을 정신에 입었다. 그 고통을 느끼던 순간 그는 사실 자신이 죽었다고 여겼었다.
간담이 서늘해지는 경험을 하고 나니, 노인은 저 선검에 베이는 순간 그 검의(劍意)와 검기(劍氣)에 의해 자신의 신체와 혼백이 모두 사라질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 원령으로 변해 도망친다던가, 시신을 이용해 육체를 만드는 등등의 사술은 모두 헛된 망상일 따름이었다.
노인은 확실히 선검의 위세에 호되게 놀란 상태였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모든 선기(仙器)에는 신비한 무언가가 있다고들 하는데, 선검은 확실히 그 위세가 매우 비범한 무기였다.
‘이전에 선기를 한 번도 보지 못했을 때는 나도 언젠가 볼 수 있기를 바랐지만, 절대 이런 상황을 바란 것은 아니었는데!’
“산신께 청합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어서 와서 저를 좀 구해 주십시오!”
노인은 연달아 이렇게 중얼거렸고, 뒤로 갈수록 급한 마음에 말이 더욱 빨라졌다. 그는 수선자였으나 지금은 너무나 두려워 마음을 진정할 수 없었고, 온몸에 식은땀이 흐를 지경이었다.
땅 밑에 숨어들어 있던 그는 땅속 더 깊이 숨어들었다. 노인은 높은 봉우리 아래 깊은 곳에 숨어들어 조금이라도 마음에 안정을 얻고자 했다.
그러나 노인은 토둔 부적이 있기는 했지만 토지신이 아니었던 터라, 그가 깊은 곳으로 숨어들수록 소모되는 법력의 양이 어마어마했다.
‘어째서! 어째서 아직도 안 나타나는 거야! 이제 체명부도 없단 말이다!’
노인은 이때 한 가지 사실을 더 깨달았다. 만약 그에게 체명부가 하나 더 있었다고 하더라도, 처음 썼을 때 이미 정신이 무너질 지경이었으니 한 번 더 쓴다면 죽거나 죽은 것과 다름없는 상태가 되리라는 사실이었다. 부적과 자신의 정신이 이어진 상태에서 한 번 더 타격을 입는다면, 죽는 것과 별다를 것이 없었다.
계연은 비거술을 이용해 공중에서 법안을 크게 뜬 채 산맥의 기운을 살피고 있었다. 눈에 들어오는 산천은 모두 흰 눈에 덮여 영험함과 특유의 기상이 느껴졌다. 계연이 이름을 알지 못하는 이 산맥은 기세가 웅장했는데, 아마 대정국과 북쪽의 연량국(延梁國) 사이에서 국경으로 이용되는 산맥인 듯했다.
잠시 후, 계연은 마침내 아주 옅게 느껴지는 노인의 숨겨진 기운을 찾아낼 수 있었다. 노인은 있는 힘을 다해 산세가 높고 땅의 기운이 강한 곳으로 숨어들고 있었다. 아마 자신을 숨기려는 목적에서 이러는 것 같았는데, 그가 사용하는 수단은 확실히 남달랐다.
노인이 넝쿨검의 일격을 받아낸 데다가 검과 이어진 자신의 기운을 끊어낸 것을 보고서, 계연은 일찍부터 그를 얕잡아 보지 않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