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화. 하늘이 내려준 신통함
넝쿨검의 날카로운 공명음이 울리자, 선검의 1장(*丈: 약 3m) 주위의 눈송이가 모두 가루가 되어 떨어졌고 곧이어 검신이 떨리기 시작했다.
챙-!
검집에서 반 정도 나온 검신이 1척 6촌(*약 50cm) 정도의 길이를 드러냈다. 이는 이전보다 6촌이 더 길었다. 곧이어 은빛이 폭포처럼 떨어져 내렸다.
산맥 아래에서 숨어들고 있던 노인은 불길한 징조를 느꼈고, 뒤이어 일종의 죽음을 목전에 둔 기분에 휩싸였다.
‘이렇게 죽겠구나!’
그가 이런 생각을 하던 도중, 변수가 나타났다.
쿠르릉……!
노인의 머리 위에 있던 산봉우리의 중심이 산산이 금이 가더니, 산허리에서 돌로 만들어진 거대한 손이 튀어나왔다. 그 손은 공중을 휘젓다가 마침 떨어지는 넝쿨검의 공격을 막아냈고, 곧이어 법력과 신령한 빛이 부딪혀 폭발했다.
펑!
쿠궁……!
노인은 넋 나간 사람처럼 가만히 서서 위쪽에서 느껴지는 기운의 변화를 관찰하고 있었다. 그에게는 마치 눈보라 속에서 무수한 돌과 초목이 부딪혀 날아다니고, 돌가루와 먼지가 비처럼 쏟아져 내리는 것이 보이는 듯했다. 그때 거대한 무언가가 공기를 짓누르는 압박감이 느껴졌다.
“으윽……!”
쿠당탕!
우르르르……!
돌과 진흙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팔은 검광을 견뎌내지 못하고 그대로 잘리고 말았다. 그것이 옆에 있던 작은 산봉우리에 떨어지는 순간, 지면과 산맥에서 진동이 울려 퍼졌다. 그러자 주위 산봉우리에 쌓였던 눈이 쏟아져 내려, 공중에는 눈송이가 먼지처럼 흩날렸다.
우뚝 솟은 거대한 그림자가 눈송이가 흩날리는 하늘과 땅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잘린 팔은 무수한 돌들이 날아와 다시 만들어졌는데, 산신의 몸은 신령한 빛이 감싸고 있었다. 이는 향불로 얻은 신광(神光)이 아니라, 정통 산신이 가지는 기운이었다.
방금의 고통으로 산신은 분노한 듯이 소리쳤다. 그 목소리는 마치 거대한 종처럼 사방에 울려 퍼졌다.
“나는 연추산 정신(正神)이다! 어디서 온 놈이길래 감히……!”
우웅-!
넝쿨검의 검집에 새겨진 ‘장(*藏: 숨다)’자가 희미해지고 ‘봉(*鋒: 날카롭다)’자가 밝게 빛났다. 검명(劍鳴)이 울려 퍼지는 동시에 검의(劍意)가 흘러나와, 주변의 눈송이가 작게 부서지며 드디어 주변이 또렷하게 보였다. 상공에서 새로 떨어지는 눈송이들도 그 예리한 검의에 모두 갈려 나갔다.
한겨울보다 차갑고 예리한 기세가 하늘과 땅을 온통 뒤덮었다.
이를 본 산신은 하려던 말을 미처 끝내지 못하고, 작은 산봉우리와 비슷한 크기의 몸체로 주변의 눈사태를 견뎌내며, 아래에 선 콩처럼 작게 보이는 노인을 바라보았다. 저자가 산신석을 쓰길래 무언가 큰일이 났다는 것은 일찍이 짐작했지만, 이 정도의 규모일 줄은 몰랐다.
그는 참지 못하고 작은 소리로 노인에게 물었다.
“네 이놈, 도대체 어떤 존재를 건드린 것이냐?”
노인은 이제야 정신이 돌아왔는지 자신의 몸 곳곳을 만져보더니, 잘려나간 부분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다. 자신이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깨달은 그는 산신에게 공수하며 연이어 절을 올리면서 도움을 청했다.
“산신 어르신, 이번 한 번만 제발 저를 좀 살려주십시오!”
계연이 어떤 자인지는 노인도 잘 알지 못했다.
선검이 여전히 머리 위에 뜬 채 매서운 기세를 숨기지 않고 있으니, 아무래도 자세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은 없어 보였다. 방금의 일격으로 보건대, 상대방은 이자를 죽이려는 것이 확실했다.
산신의 몸체는 높이가 수십 장(丈)에 이르렀고, 돌과 진흙으로 만들어진 몸은 산봉우리처럼 보였다. 그는 고개를 조금 들어 올려 백 장 정도 떨어진 곳에 구름을 밟고 선 흰옷의 수선자를 바라보았다. 종소리가 울리듯 무거운 목소리가 다시 한번 주변에 울려 퍼졌다.
“선장(仙長), 나는 이 연추산의 산신이오. 이쪽의 이(李) 선장은 나와 안 지 오래된 사이입니다. 혹시 편의를 조금…….”
“그럼요!”
계연은 구름 위에 서서 초점도 없고 동요도 없는 눈으로 거대한 산신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런 종류의 산신은 처음 봐서 속으로는 조금 놀랐지만, 그것을 겉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계연의 평온한 어조를 듣고 산신은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나 산신과 그 아래쪽의 노인이 기뻐하기도 전에, 계연은 담담하게 이렇게 뱉었다.
“버젓한 한 산의 정신(正神)이 어째서 이런 사도(邪道)를 닦는 자와 연이 있는지는 묻지 않겠습니다. 다만 저자는 쌓은 악업(惡業)이 적지 않고, 심지어 구자귀모와 같은 사악한 술법에도 손을 대었지요. 저는 오늘 절대 저자를 놓아줄 생각이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며 계연은 구름을 몰아 높이 날았다. 그는 넝쿨검보다도 높은 곳에 서서 검지를 뻗으며 공격할 준비를 하는 듯했다.
이는 그들을 위협하기 위해 취한 동작처럼 보이지만, 사실 계연이 일부러 산신과 거리를 벌린 것이었다. 이런 종류의 산신은 분명 실력이 대단할 테니, 계연은 결코 가까이 가려는 생각이 없었다.
같은 순간, 넝쿨검의 기운도 점점 더 강해지기 시작했다. 온 하늘에 흩날리는 눈송이가 그 영향으로 녹기 시작했고, 넝쿨검은 깊고 무거운 검의를 내뿜으며 살기등등하게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계연도 높은 곳에서 이를 내려다보며 검지로 아래를 눌러 선검의 위세를 아래로 향하게 하려던 때에, 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눈송이들이 넝쿨검의 검의를 따라 함께 아래쪽을 내리누르는 것을 느꼈다. 높은 하늘의 하얀 눈송이와 넝쿨검, 그리고 아래쪽의 맑은 기운이 모두 순식간에 결합했다. 검의가 하늘의 힘과 연결된 듯한 느낌이었다.
마치 영험한 기운이 하늘의 뜻과 결합한 것 같았다. 계연은 이 미묘한 변화를 알아챈 후, 과감하게 천지화생의 술법을 반대로 펼쳤다. 주변을 뒤덮은 하늘의 기세와 그의 의식 세계가 허구와 실체의 공간 사이에서 완벽하게 합쳐졌다. 선검은 하늘의 뜻을 품고 공중에 떠 있었고, 다른 이들은 모두 그들을 짓누르는 중압감을 느낄 수 있었다.
검이 아직 검집에서 나오기도 전이었지만, 벌써부터 마치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위세가 느껴졌다.
‘상공에 높이 떠 있는 검에서 하늘을 뒤덮는 기세가 느껴지는구나!’
계연과 연추산 산신, 그리고 사술을 닦는 노인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들과 다른 점은 계연은 이 변화를 직접 느끼면서 마음과 영혼을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을 조정하는 상태였고, 다른 두 사람은 점점 더 강렬해지는 압박감을 바로 아래에서 느끼고 있다는 점이었다.
선검의 위세는 원래부터 무척 특별하고 강했지만, 이렇게 하늘이 무너질 듯한 엄청난 압박감은 전에 한 번도 뿜어낸 적이 없었다.
연추산 산신은 계연이 지금까지 단독으로 상대한 이들 중에 가장 강한 자였다.
자신의 수준은 스스로가 가장 잘 아는 것처럼, 계연은 자신의 장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가 가진 선검의 위세는 비할 데가 없었고, 선도를 수행하는 속도도 빠른 데다 삼매진화와 칙령음, 법령과 정신법 등의 술법을 부릴 수 있었다. 또 소매 안에 숨겨 사용하는 건곤납물술과 변화술, 기운을 꿰뚫어 보는 법안을 갖췄고 천지화생을 반대로 펼쳐 자신의 의식 세계를 바깥에 내보일 수 있었다.
그러나 단점 또한 명확했다. 수행의 세월의 짧고 얕은 데다, 넝쿨검을 제외하고 스스로가 가진 실력은 잠재력은 크지만 충분한 힘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다른 이들을 겁먹게 하는 것은 자신 있었지만, 연추산 산신과 정말로 목숨을 걸고 맞붙는다면 이 작은 몸으로 산신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상대방의 위세와 신통력으로 볼 때, 아무리 선검이라고 해도 쉽게 없애지 못할 것 같았다.
구신술을 쓸 수는 있지만, 현재 계연은 그다지 땅에 내려서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게다가 연추산 산신의 위세를 보면 자신의 법력을 내보인다고 해서 쉽게 굽히고 들어올 것 같지도 않았다.
산신의 어조에서 계연은 그가 약간 위축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는 이참에 자신의 위세를 더욱 높이고자, 선검의 기세를 끌어 올려 자신이 산신과의 거리를 벌린 사실을 감추었다.
그러나 자신이 무의식적으로 한 동작으로 인해, 계연은 순간적으로 검의 기세에 대해 새로운 운용(運用) 방법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 신통한 깨달음은 하늘이 그에게 알려준 것이라는 기묘한 느낌이 들었다.
‘이것은 주심(*誅心: 행동 자체가 아닌 동기의 악함을 규탄하는 것)의 검이야!’
이런 깨달음이 들자, 계연이 가장 먼저 떠올린 생각은 일단 이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저 사술을 닦는 노인을 먼저 처리한 후, 즉시 집으로 돌아가 이 깨달음을 다시 연구해보아야 했다.
이런 마음 상태는 곧 그의 태도에도 드러나서, 계연은 이제 이 상황을 건성으로 대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하늘을 뒤덮는 검세(劍勢) 아래에 놓인 산신과 노인에게 일말의 관심도 없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이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기세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당사자로서, 연추산 산신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압력을 견뎌내고 있었다. 한편 노인은 이미 너무나 큰 압박감으로 인해 땅에 무너져 앉아, 몸조차 곧게 펴지 못하고 있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산신은 이제 더는 바닥에 쓰러져 움직이지 못하는 저 노인을 위해 굳이 나설 생각이 없었다. 현재 산신이 고민 중인 것은 어떻게 이 일에서 무탈하게 빠져나갈 수 있느냐였다.
비록 저 흰옷을 입은 수선자가 자신에게 무슨 사정인지는 묻지 않겠다고 했지만, 방금 자기 스스로 ‘이(李) 선장은 나와 안 지 오래된 사이’라고 말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저자는 지금 자신처럼 버젓한 한 산의 정신이 저 삿된 도를 닦는 수행자와 깊은 관계가 있다고 여길 것이다.
‘내가 왜 그랬을까?’
계연이 살던 전생이었다면 많은 이들이 이 산신을 가리켜, 죽음을 자초한다고 혀를 찼을 것이다.
산신은 지금에서야 깨달았지만 이미 너무 늦은 감이 있었다. 공중에 떠 있는 검은 언제라도 아래로 내려올 기세였고, 이 일은 살을 좀 내어주면 끝날 일이 아니었다. 사실 자신의 본래 몸도 이 거대한 몸체 안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었다.
산의 일부분인 이 몸의 법력과 신령한 빛은 비록 줄어들지 않았지만, 만약 정말로 상대와 맞붙게 된다면, 그때는 상대가 자신의 기세가 꺾였다는 것을 쉽게 알아챌 터였다.
계연은 본래부터 감각이 예민했고 법안도 모두 연 상태였기 때문에, 산신의 기세가 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바로 알아챘다. 이에 계연은 지금은 아직 새로운 깨달음을 깊이 연구할 때가 아니라고 판단하고는 다시 진지한 태도로 임했다.
산신도 대답을 하지 않고 아래의 노인도 온몸에 힘이 풀린 듯 주저앉아 있는 것을 보니, 선검의 기세가 계연이 원하던 효과를 만들어낸 것 같았다. 저 검세를 계속 유지하는 것도 큰 정신력이 소모되었으므로, 계연은 이 기회를 틈타 자신의 의식 세계를 거둬들였다.
역(逆) 천지화생의 술법이 거둬지자, 하늘의 뜻과 합쳐진 선검의 기운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넝쿨검의 검의는 여전히 사람을 숨 막히게 했고, 검세도 전과 다름없이 날카로웠지만, 전처럼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한 공포감은 없어졌다.
“연추산은 넓고 깊은 산이니, 이곳의 정신이 되었다는 것은 수행에 어느 정도 이룬 것이 있다는 뜻이겠지요. 그러니 저는 산신께서 사도를 닦는 이런 자와 꼭 깊은 관계를 맺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저자에게 어떤 약속을 하셨다면, 조금 전 내려치는 검세를 막아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약속을 지킨 거예요.”
선검이 미세하게 검명을 내자, 계연은 손을 뻗어 검의 손잡이를 잡았다. 땅에 널브러진 노인에게 그는 칼끝을 겨누고서, 희뿌연 눈으로 산신의 머리 부분에 뚫린 눈구멍을 바라보았다.
“산신께서는 아직도 이 죽어 마땅한 자의 목숨을 지켜 주실 생각이신가요?”
지금 물러난다고 해도 당신은 떳떳하다는 계연의 말에, 이를 들은 산신은 마음이 편안해졌다.
연추산 산신은 속으로 크게 한숨을 돌렸다. 저자가 이미 자신에게 체면을 잃지 않고 물러설 기회를 주었으니, 여기서 더 버티는 것도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하늘을 뒤덮는 선검의 기세를 보고 나니, 저것과 맞붙는다면 법체(法體)에 중상을 입거나 그보다 더 심각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