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200화 (200/892)

200화. 안심하고 잘 수 있겠습니다

산신은 북쪽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오늘 선검의 검세가 어떠했는지 일단 소문이 퍼지면, 저 노인같이 우매한 이들은 감히 나타나지 않을 겁니다.”

산신은 이 선장에게 본보기를 보여주려는 의도가 있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산신인 그가 조금 전 먼 곳에서 느껴지던 기운을 발견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하하,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확실히 있어요. 이전에 저와 통천강 용왕이 함께 쫓아낸 진마가 하나 있는데, 대정국에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낼 엄두는 내지 못하겠지만, 그 성격으로 보아 아마 앙심을 품고 있을 거예요. 사술을 닦은 저 노인의 뒤에 그 진마의 손이 닿았을 수도 있어요.”

계연의 얘기에는 듣는 이가 궁금해할 만한 생략된 부분이 매우 많았지만, 계연은 그쯤에서 더 말하지 않았다.

사람도 귀신도 아니었던 그 여인은 높은 확률로 이곳에서 나고 자란 대정국 사람일 것이다. 여인의 배후는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자신이 심어 놓은 이들이 대정국의 국경 지역에서 사술을 닦고 연구하게 한 다음, 이들이 성공하여 일정 실력을 갖추게 될 때 대정국 깊숙이 숨겨 놓으면, 언제든 편히 이들을 부릴 수 있다고 말이다.

이는 확실히 진마 자신이 한 맹세를 거스르지 않을 방법이었다. 하지만 시간대가 잘 들어맞지 않았다. 왜냐면 그 여인에게는 이미 일곱 명의 아이들이 있었고, 그녀의 배 안에는 한 명이 더 있었다. 고작 몇 년 정도의 수행으로는 이런 수준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다. 다만 최근 들어 여인이 사람의 심장을 파먹은 사건이 발각되었을 뿐일 것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는 그저 우연일 확률이 높았다. 노인은 사술이 적힌 책을 얻고 나서, 자신에게 유리한 지역에서 그것을 연구해보려 했을 것이다. 그런데 올해 후반기 즈음 어떤 일로 인해 이 과정을 서둘렀거나, 아니면 단순히 그 여인이 우둔하고 성질이 급해 일을 크게 만든 것일 수도 있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두형과 그의 일행이 사정을 듣고 이곳에 왔고 뒤이어 계연도 이 산에 오게 된 것이다.

다만 이런 생각들을 계연은 산신에게 자세히 말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연추산 산신은 계연의 말에 따라 어떻게 그런 이들을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었다.

산신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곧 사태가 심각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고 계연의 말을 승낙했다.

“선장께서 친히 부탁하신 일이니, 앞으로는 잠을 좀 적게 자고 평소에 틈틈이 주의를 기울이겠습니다.”

이는 어쨌든 입으로만 체결된 약속이니, 계연도 이 산신에게 그리 많은 기대를 걸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렇게 말을 해 놓는 것이 아무 말도 남기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그 후, 계연과 산신은 사술을 닦은 노인에 관한 이야기를 좀 더 나누다가 헤어졌다. 산신은 산 깊은 곳으로 사라졌고, 계연은 정신이 혼미한 상태인 노인과 정신법에 당해 뻣뻣이 굳은 여인을 데리고 정수현으로 향했다.

정수현의 객잔 안에서 협객들은 모두 근심 어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두형조차 걱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미 며칠이 지났는데도 계 선생님이 돌아오지 않으신 데다, 선생이 뒤쫓아간 것은 괴이한 요물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는 나쁜 소식이 곧 들려올까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객잔의 깨진 지붕과 벽은 눈이 내리지 않았던 며칠간 이들이 힘을 합쳐 대부분 수리해 놓았다.

정수현의 관아에서도 이미 관리가 나와서 객잔에서 사람이 죽은 사건을 조사하고 갔다. 객잔의 점소이가 관리들에게 그 끔찍했던 상황을 증언해주었지만, 이 사건은 결국 강호의 무뢰한들이 벌인 짓이라고 결론 나게 되었고, 관리는 보고서 끝자락에 겨우 한마디를 이렇게 덧붙였을 뿐이었다.

‘객잔 안에 있던 증인들의 말로 미루어보면 사악한 요물이 벌인 짓으로 의심된다.’

게다가 용의자는 공격당해 도망쳤고, 이미 용의자를 뒤쫓는 이가 있다는 말을 들은 관리들은 이 추운 날에 어디를 더 가기도 싫고 그렇다고 이 불길한 객잔에 머무르기도 싫었으므로 서둘러 떠나갔다.

그래서 이제 객잔에는 원래 머무르던 손님들과 재수 없이 목숨을 잃은 점소이 하나를 뺀 이곳의 점원들만이 남게 되었다.

어느 날 밤, 두형과 그의 일행들은 객잔의 주인과 점원들과 함께 일 층의 대청에서 다 함께 식사하고 있었다. 며칠 동안 이들은 다 함께 먹고 자며 생활했는데, 누구도 혼자 남겨지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지금은 밤이 아니라 황혼에 가까워질 무렵이었다. 그러나 계절도 겨울인 데다 이 북쪽 지방에서는 하늘이 빨리 어두워졌다. 게다가 며칠간 그쳤던 눈이 다시 내리니 바깥은 이미 눈앞의 손가락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깜깜해졌다.

식탁 앞에 앉은 이들은 먹는 둥 마는 둥 건성으로 젓가락질을 하고 있었다. 바깥에서는 눈보라가 불어치는 소리가 났는데, 아마도 오늘 밤 내내 그치지 않을 것 같았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자 안에 있던 이들은 깜짝 놀랐고, 몇몇 무인들은 조건반사적으로 무기를 손에 쥐었다.

“두 대협, 저 계연입니다!”

계연의 평온한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객잔 안에 있던 이들은 조금 한숨을 돌렸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방심하지는 않았다.

“이 형, 저희가 가서 문을 엽시다!”

이통주는 고개를 끄덕인 뒤, 두형과 함께 문 앞으로 걸어가 빗장 몇 개를 열었다. 그러자 객잔의 대문이 활짝 열리며 순식간에 눈보라가 불어 닥쳤다.

휘이…… 휘이이…!

광풍이 눈발과 함께 객잔 안으로 들이닥쳤고, 계연은 전처럼 하얀 옷을 입은 문아한 모습 그대로 입구에 서 있었다. 그의 양쪽 발밑에는 투명한 실로 몸이 꽁꽁 묶인 사람이 둘 누워있었는데, 그중 한 사람은 바로 그 여인이었다.

“계 선생님! 다행히 무탈하셨군요. 어서 들어와서 몸 좀 녹이세요!”

계연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니요, 안 들어가도 됩니다. 여기에 온 것도 여러분께 이 요사스러운 것들을 보여주고 이제 안심해도 된다고 알려주려고 온 거예요. 이 여인은 여러분들도 알 것이고, 여기 이자가 바로 저 여인의 스승이더군요. 이자 말고는 다른 무리는 없었어요.”

말을 마치고 계연은 안쪽에 차려진 음식을 보며 코를 킁킁댔다.

두형은 계 선생님이 정말로 들어오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재빨리 식탁으로 가서 술 한 병과 아직 건드리지 않은 구운 닭 하나를 그릇 통째로 들고 왔다.

“계 선생님, 이 술은 정수현의 도소(刀燒)입니다. 명주라고 불릴 만한 정도는 못 되지만, 몸을 따뜻하게 데워주지요. 그리고 여기 이 구운 닭도 가져가십시오. 방금 나온 겁니다!”

그는 위씨 집안과 서신을 주고받으며, 계 선생께서 술 중독까지는 아니지만 꽤 술을 즐겨 마시고 그리 입맛이 까다롭지도 않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계연도 사양하지 않고 웃으며 구운 닭 요리를 그릇째로 받아 든 다음, 도소주도 병째로 그릇 위에 올려놓았다. 만약 계연이 차림새를 좀 바꾼다면, 영락없이 음식을 날라오는 점원처럼 보일 것이다.

“그럼 좋아요.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또 만나겠지요.”

이렇게 말하며 계연이 문 옆에 있던 초록색 대나무 장대를 집어 들자, 바닥에 누워있던 사람들의 머리 두 개가 동시에 들렸다. 계연이 장대를 어깨에 메자 가느다란 장대가 그들의 무게에 잔뜩 구부러졌다. 그러나 아슬아슬해 보이긴 해도 부러지진 않았다.

한 손에는 술병과 닭 요리가 놓인 접시를 들고, 한 손으로는 장대를 고쳐 맨 다음 계연은 눈보라 치는 밤 풍경 속으로 사라졌다.

객잔의 입구는 몹시 추웠지만, 모여든 이들은 계연이 떠난 후에도 서둘러 흩어지지 않았다.

“낚싯대구나!”

“예?”

“틀림없이 낚싯대였어, 사람들을 묶었던 것도 분명 낚싯줄이야!”

두형은 이렇게 알쏭달쏭한 말을 하고는 다른 이들을 향해 웃었다.

“어이쿠, 추워 죽겠네요. 어서 문을 닫읍시다. 오늘 밤은 드디어 안심하고 잘 수 있겠습니다!”

그러자 다른 이들도 드디어 근심과 두려움을 내려놓았다. 계 선생과 같은 신비로운 사람이 이 눈보라 치는 밤에 어떻게 길을 떠날 것인가에 대해서는 굳이 자신들이 걱정할 필요가 없을 테니 말이다.

꽉 조여들었던 신경줄이 느슨해지자, 대청의 분위기는 곧 뜨겁게 달아올랐다.

정수현에는 객잔이 단 하나뿐이어서, 사람들은 이름과 달리 그곳을 그냥 정수객잔이라고 불렸다.

이때 정수객잔의 대청 안에서는 근심을 내려놓은 무인들이 두형에게 그동안 궁금했던 것을 캐묻고 있었다. 이통주는 두형에게 술을 한 잔 따라준 뒤, 은근슬쩍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두 형, 저 계 선생이란 분은 도대체 어떤 분입니까? 우리는 그동안 함께 생사의 고비를 뛰어넘고 목숨을 내걸고 난관을 헤쳐 나간 사이니, 환난지교(患難之交)라고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제 이야기를 좀 해주시지요!”

“그렇습니다, 두 대협!”

“맞아요, 맞아. 이야기 좀 해주십시오, 두 대협. 계 선생께서 이렇게 후…….”

목청이 큰 남자 하나가 계연의 모습을 흉내 내며 입김을 부는 시늉을 했다. 계연의 모습과 그리 비슷하지는 않았지만, 모두 그가 무엇을 묻는지 알고 있었다.

“……하고 불었더니 그 동자들이 전부 재가 되어 사라졌지 않습니까? 저는 그런 능력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못 해봤습니다! 계 선생님은 혹시 신선인 게 아닐까요?”

“일전에 제 부친께서는 우리 무인들은 되지도 않는 귀신이나 탐관오리 같은 걸 믿는 것보다 손에 쥔 칼 한 자루를 믿는 것이 더 낫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도 무슨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는 말을 들으면 모두 헛된 소문이라고만 생각했었지요. 하지만 이번에 그런 것들이 실재한다는 것을 두 눈으로 보게 되지 않았습니까!”

“맞습니다! 최(崔) 씨, 얼른 주방에 가서 요리 좀 몇 개 더 내오게. 여러 대협들께 드려야 하니까.”

객잔의 주인도 흥이 올라 크게 떠들어댔다.

두형도 기분이 좋았기 때문에, 원래도 거절할 생각은 없었지만 더는 빼지 않았다. 예전에 함께 의기투합하여 호랑이를 잡으러 모였던 이들과 지금 이 일행은 그에게 있어 큰 차이가 있었다.

두형은 이들과 지난 몇 년 동안, 대정국 곳곳을 오가며 산적을 토벌하고 나쁜 짓을 일삼는 이들을 잡아 넘기고, 심지어 복면을 쓰고 탐관오리를 처리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인간이 아닌 요괴와 같은 것을 상대하면서도, 끝까지 서로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았으니 진정한 생사지교(*生死之交: 생사를 함께할 정도로 깊은 우정)라 할 수 있었다.

“좋습니다, 하지만 이건 미리 말해두는 게 좋겠습니다. 어떤 일들은 제가 말하면 계 선생님께서 언짢아하실 수도 있으니, 자세하게 말하지는 않을 겁니다. 대신 이야기할 수 있는 것들은 저도 숨김없이 털어놓겠습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그럼요, 그럼요!”

“좋습니다!”

“자자, 어서 말씀해 주세요, 두 대협. 여기 술 한 잔 드시고요!”

“크흠!”

두형은 헛기침한 다음, 몸을 낮게 숙여 이야기를 시작했다.

“제가 겨울이 되기 전에 계 선생님께 서신을 보내 이곳의 상황을 말씀드린 건 다들 알고 계시지요?”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사정을 모르는 객잔의 주인마저도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여러분이 한번 대답해 보십시오. 금주에서 계주까지 서신이 가려면 얼마나 걸리는 지 말입니다. 계주의 덕승부 말입니다!”

“계주요?”

“흐음, 몇 달은 걸리겠지요!”

얘기를 들고 있던 객잔의 주인장도 한마디 거들었다.

“한번은 제가 경기부의 한 상인에게 서신을 보낸 적이 있었는데, 반년이 걸렸었지요!”

그러자 두형은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제 말은, 제 서신은 얼마 전에야 계주에 도착하여 고작 며칠 전에 계 선생께서 받아보신 거란 말입니다.”

그 목청이 큰 남자는 좌우를 두리번거리다가, 참지 못하고 껴들었다.

“이렇게 먼 거리를 겨우 며칠 만에 어찌 오셨단 말입니까? 날아온 게 아닌 이상!”

“크흠……. 분명 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두형이 목을 가다듬으며 비밀스럽게 당부했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이들은 그제야 무언가를 깨닫게 되었다. 그에 더해 며칠 전에 그들이 직접 목격한 일도 있었으니, 그들은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추측이 옳다는 것을 알았다.

다만 두형은 자신이 아는 모든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계 선생님이 어디에 사는지는 절대로 알려주지 않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