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203화 (203/892)

203화. 버려진 역참의 비 내리는 밤

“벌집이 어디에 있으려나?”

이 소리를 듣고 계연의 품에 있는 비단 주머니에서 종이학이 작은 머리를 쏙 내밀었다. 종이학이 고개를 들어 주인을 바라보자, 계연은 그 시선을 느끼고 아래를 바라보았다.

“네가 아니?”

계연이 이렇게 물었더니 종이학이 퍼덕거리며 아주 능숙하게 비단 주머니에서 나와 날개를 펼쳤다.

“어어, 아니야. 멈춰, 멈춰!”

계연은 흥분에 차서 자신을 안내하려던 종이학을 바라보며, 어찌해야 할 바 모르는 얼굴로 말했다.

“이 대추꽃은 방금 피었어. 꿀을 만드는 것도 그렇게 금방 되는 게 아니야. 그러니 다음에 하자!”

사실 꿀벌들이 날아가는 방향을 따라가면 계연도 벌집이 있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방금 던진 말은 그저 한번 해본 말일 뿐이었다.

거안소각의 문은 반년간 열린 적이 없어서, 현에 사는 백성들은 모두 계연이 집에 없다고 생각했다. 윤씨 집안의 둘째 아이가 곧 태어날 때가 되었으니, 윤 훈장님께서 분명 서신을 써서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이 집에 없다고 생각했으니, 그 서신은 높은 확률로 관아에서 보관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계연은 관아로 가서 서신 세 장을 찾아왔는데, 두 개는 윤청이 보낸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윤재성에게서 온 것이었다.

그는 거안소각으로 오는 길에 식사를 한 다음, 집에 와서 서신 세 개를 모두 펼쳤다.

윤청이 보낸 첫 번째 서신에는 서원 생활이 어떤지와 뜬금없이 자신의 아직 태어나지 않은 여동생 또는 남동생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행간에는 그의 복잡한 심경이 조금 엿보였고, 말미에 계연에게 완주에 가는지, 또 간다면 언제 가는지 묻고 있었다.

두 번째 서신은 대략 두 달 전에 쓴 것으로, 보아하니 윤청은 영안현에 사는 친우로부터 서신을 통해 계연이 ‘먼 길을 나섰다’는 것을 알게 된 것 같았다. 그래서 그 서신에는 자신은 서원의 친우 셋과 함께 완주로 떠나기로 했으니, 부디 계 선생님께서도 올 수 있기를 바란다는 윤청의 글이 적혀 있었다.

윤재성이 보낸 서신에는 아주 직설적으로 계연을 완주로 초대한다고 적혀 있었다. 만약 계연이 일찍 온다면 함께 만월주(滿月酒)를 마시고, 늦게 온다면 아이의 백일잔치에서 보자는 내용이었다. 그의 서신에는 계연이 와줬으면 하는 뜻이 그보다 더 명확하게 적혀 있을 수가 없었다.

“내가 만약 가지 않는다고 해도, 윤 훈장님께서 나와 절교하시진 않겠지?”

윤재성은 호연정기를 가지고 있어 그와 아침저녁으로 함께하는 부인도 태기(胎氣)가 안정적일 테니, 분명 열 달을 모두 채우고 아이를 낳게 될 터였다. 계연이 손가락을 접어 계산해 보니,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는 아직 한 달여가 남아있었다.

이에 계연도 더 꾸물대지 않고, 물건을 챙기기 시작했다. 가져갈 것들은 그다지 많지 않아서 서책을 빼면 붓, 먹, 종이와 벼루 그리고 남은 옷 두 벌뿐이었다.

몇 년간 쌓은 수행이 헛되지 않아, 그는 건곤납물술을 조금 더 발전시킬 수 있었다. 비록 언제가 되어야, ‘물건을 직물에 담으면 천 가지 변화가 가능하고 구멍이 나면 원래대로 돌아가는 경지’에 이를지는 모르겠지만, 최소한 ‘변화’의 도리는 깨닫게 되었다. 형체를 변하게 할 수 있다면, 단순히 물건을 보관만 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당연히 수행에도 진전이 있어, 넣을 수 있는 물건의 양도 늘어났다. 그래서 가져가고자 했던 물건들을 모두 넣을 수 있었다.

계연은 그 후에 종이학을 집에 남기지 않고, 바로 거안소각을 떠났다. 이번에는 호운과 육 산군에게 자신이 떠난다는 말을 특별히 남기지 않기로 했다. 그 둘은 어차피 산에서 조용히 수행하고 있을 터였다.

* * *

<백부통감>에는 완주의 여순부(麗順府)가 풍광이 빼어나고 물자가 풍부하다고 쓰여 있었다. 특히 완주는 좋은 견직물이 생산되는 것으로 유명했고, 최소한 이 책이 쓰일 당시의 완주 땅은 평안하여 살기 좋은 곳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만약 어떤 설서선생이 완주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면, 그 말을 시작하기 전에 분명 ‘예전에는’이라는 말을 덧붙일 것이다.

완주에서 생산되는 견직물에서 발생하는 거대한 이윤은 완주의 경제를 떠받치고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는 커다란 문제를 일으켰는데, 간단하게 말하자면 탐욕과 이익 이 두 가지로 인해 빚어진 것이었다.

부호(富戶)와 상단은 관원들과 결탁하여 이익을 위해 땅에 죄다 뽕나무를 심어 댔고, 땅을 잃은 농민들에게는 어떤 이익도 돌아가지 않았다. 이에 완주 대부분에서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했는데, 원망하는 민심이 오래되면 쉬이 삿된 기운이 섞여들어 온갖 요괴를 끌어당기게 된다. 역사상 난세(亂世)일 때마다 요괴들이 말썽을 부린다는 이야기가 꼭 있는 데에는 이런 원인이 있었다.

* * *

서생 네 사람은 서책이 든 상자를 짊어지고 산길을 걷고 있었다. 그들은 두건으로 된 관을 쓰고 흙먼지가 묻은 푸른색 장포를 입고 있었다. 이 네 사람은 모두 혜원서원의 서생들로, 각각 윤청, 임흠걸, 뇌옥생 그리고 막휴(莫休)였다.

윤재성이 둘째 아이를 얻게 되어 연회를 열 계획이었기 때문에, 윤청은 겉치레로라도 다른 이들에게 참석할지 의사를 물어보는 것이 맞았다. 이에 윤청은 정중하게 그들을 초대했는데, 세 사람이 그 자리에서 즉시 승낙해버린 것이다.

이들은 서원의 원장과 선생들에게 유학(*遊學: 배움의 길을 떠나는 것)을 신청했고, 이는 당연히 통과되었다. 그래서 한 방에 묵는 이 네 사람은 함께 길을 떠나게 된 것이다.

“아이고, 길이 왜 이리 험하지? 막휴(*莫休: ‘莫’은 ~하지 않다,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을 가짐. ‘休’는 쉬다 라는 뜻), 너는 네 이름처럼 정말 우리를 쉬지 못하게 하려는 거냐? 골라도 이런 길을 고르다니!”

임흠걸은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원망의 말을 쏟아냈다.

이름이 불린 막휴는 억울해하며 그에게 반박했다.

“내가 대통산(大通山)을 넘어가자고 말했을 때는 너도 좋아하면서 찬성했잖아. 뭐라고 했더라? 산에 올라 봄나들이를 하며, 숲속의 봄꽃을 감상하겠다고 하지 않았어? 이제 와 전부 내 탓이라는 거야?”

“아이, 됐어, 이제 그만해. 우리 모두 동의한 일이잖아. 이렇게 가면 훨씬 빠르니까.”

이에 임흠걸이 즉시 공격의 방향을 바꿨다.

“옥생, 너는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어. 네가 마부에게 방향을 바꿔 벼루 만드는 공방에 가자고 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이렇게 먼 길을 돌아서 시간을 낭비하지도 않았을 거야. 그래서 서두르고자 결국 이 산을 넘어가게 된 거지!”

“맞아, 나도 굳이 이 길로 가고 싶던 건 아니었어. 이 길로 가지 않으면 우리는 한 달이 지난 후에야 여순부에 도착하게 될 거야!”

“너희들…….”

뇌옥생은 두 사람에게 원망을 듣자 화가 나 말을 잃었다. 이에 윤청이 급히 나서 분위기를 바꾸려 애썼다.

“이제 그만해. 이미 일이 이렇게 된 데다가, 우리 중 누구도 대통산의 길이 마차가 가지 못할 만큼 험할 줄은 몰랐잖아. 그게 아니었으면 벼루 공방에 간 것도, 산에 올라 꽃을 감상한 것도 모두 좋은 추억이 되었을 거야!”

“맞아, 맞아. 나도 네 말에 동의해!”

뇌옥생은 급히 그의 말에 찬성했다.

“에잇……! 이건 천재지변 같은 거야.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게 아니었어.”

“그래, 옥생의 잘못은 아니지.”

윤청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웃었다.

“가자, 가자. 그만 불평하고! 말을 많이 하면 나중에 걸을 힘이 없어. 우리가 준비해 온 것도 적지 않으니, 대통산만 나가면 곧 좋아질 거야. 이 산길만 따라 걸어가면 7, 8일이면 산에서 벗어날 수 있어.”

대통산은 비록 황무지에 가까웠지만, 그래도 그리 넓다고 할 수는 없는 길이 하나 나 있었다. 이는 일찍이 완주의 직조업이 번성하기 시작했을 때 생겼던 길이었다. 이제 완주에서는 비단이나 다른 직물을 옮길 때 모두 물길이나 다른 대로를 이용해 운송했다. 그래서 이 길은 점차 버려져 이제는 사람도 잘 오가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길은 그대로 나 있으니, 따라서 걷기만 하면 길을 잃을 염려는 없었다. 게다가 일정 거리마다 산을 등진 역참이 세워져 있었는데, 이미 문을 닫고 운영을 중단했지만 여행자들이 잠깐 쉬어 갈 수 있는 장소가 되었다.

네 사람은 길을 따라 걷다가 전방의 산비탈에 버려진 역참 하나가 세워진 것을 발견했다. 그것은 비탈에 박혀 있는 모양새로, 희미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는데 안에서 누군가 불을 지피고 있는 듯했다.

“가자, 가자. 피곤해 죽겠어. 오늘 밤은 저곳에서 자자!”

“어서 가자. 저기에 다른 이들이 이미 있는 것 같으니, 가서 뜨거운 물이라도 한잔 얻을 수 있을지 보자!”

“그래!”

네 사람은 기력이 조금 솟아 빠른 걸음으로 버려진 역참을 향해 걸어갔다. 그들의 발걸음 소리를 들었는지, 땔나무를 패는 칼을 등에 진 남자 두 명이 걸어 나왔다. 그들은 경계하는 모습으로 윤청 일행을 잠시 관찰하다가, 그들이 서생임을 확인하고서 조금 마음을 놓은 얼굴로 역참 안으로 들어갔다.

버려진 역참 안에는 아직도 탁자며 의자가 남아있었는데 그래도 안은 텅 빈 것처럼 느껴졌다. 대략 5장(*약 15m) 정도 너비의 정사각형 모양의 공간에는 열 몇 명의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한쪽 구석에 등에 지는 보따리들을 쌓아 놓고, 그 위를 갈옷과 두립 등의 물건으로 덮어 놓고 있었다. 이들은 상단으로 무리 지어 다니는 행상인들이었다.

“육(陸) 어르신, 바깥에 서생처럼 보이는 사람이 네 명 왔습니다. 장삼을 입고 등에 책 상자를 짊어지고 있는데, 입술이 붉고 치아가 깨끗한 것을 보니 정말로 서생인 것 같습니다.”

들어온 두 사람은 안에 앉은 사람을 향해 이렇게 보고했다.

“알겠다, 이제 앉거라.”

얼마 지나지 않아, 윤청의 일행은 역참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안에 있는 열 몇 명의 사람들이 모두 손에 땔감용 칼을 쥐고서 자신들을 쳐다보자 즉시 경계심이 들어 긴장하기 시작했다.

윤청은 친우들을 한번 살폈다가 자신이 한 발 앞으로 나서서 말했다.

“저희는 유학(*遊學: 배움의 길을 떠나는 것)하는 서생들입니다. 산길이 험난하여 이곳에서 잠시 쉬어 가고자 하는데, 여러분들께서 부디 양해해 주시겠습니까?”

이에 머리에 하얗게 센 연장자가 윤청을 잠시 살펴보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역참이 넓어 우리 열 몇 명 정도는 그리 큰 공간을 차지하지도 않소이다. 그러니 공자들도 편히 쓰시지요!”

“정말 감사합니다!”

윤청이 공수하자, 다른 세 사람도 급히 예를 올렸다.

“감사합니다!”

쿠르릉……!

별안간 밖에서 천둥소리가 들려오자, 바깥쪽에 서 있던 두 서생은 ‘아이고!’ 하며 펄쩍 놀랐고 이를 본 행상인들은 헛웃음을 터뜨리며 즐거워했다.

“비가 오려는 모양이구먼!”

행상인들의 우두머리가 이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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