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8화. 세 번 쪼다
“제 친우의 말에 따르면, 호랑이 울음소리는 10리를 울린다던데요. 그 소리를 들으면 산짐승들은 모두 날아가 버린다고요. 아저씨가 들은 호랑이 소리도 말씀해 주세요!”
윤청의 말을 듣고 다른 이들은 모두 그의 친우가 허풍을 떤 것이라고 여겼다.
“호랑이 울음소리는 정말 무섭지요. 그런데 우리처럼 열 명이 넘는 일행이 같이 있으면, 설령 호랑이와 마주친다 해도 그것이 먼저 도망갑니다. 도자가는 그냥 부르기만 하는 건 아니거든요.”
“참, 저희가 호랑이 울음소리를 들었을 당시, 저희는 산에서 내려와 사냥꾼에게 이 사실을 알렸었지요. 그러자 다음 날 낮에 스무 명이 넘는 사냥꾼들이 사내들을 잔뜩 데리고 산에 함정을 설치하러 떠났었어요.”
막휴는 멍하니 이렇게 물었다.
“가죽을 얻으려고 목숨을 건다는 말입니까?”
육 노인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때 그 호랑이는 분명 다른 산에서 그곳으로 넘어온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러니 어쩔 수 없지요, 거기서 가까운 곳에 마을이 두 개나 있었거든요. 사냥꾼들이 가죽을 얻으려 했던 게 아니라, 적지 않은 백성들이 그 근처에 살고 있으니 마음을 놓을 수가 있어야지요!”
“그래서 그 호랑이는 잡았나요?”
뇌옥생은 궁금해하며 물었다.
“그때쯤 저희는 이미 그곳을 떠나있었지요. 다시 그곳에 간 건 몇 개월이 지난 뒤였는데, 듣기로 그 호랑이를 잡지 못했다더라고요. 그래서 주변 몇 곳의 마을 사람들이 돈을 모아 토지신당을 하나 세웠지요. 먼저 근처 성황당에 가서 성황신께 기도를 올린 다음, 그곳 묘지기에게 부탁해 법사(法事)를 열어 토지신 한 분을 청해왔다고 합니다. 근데 그게 정말 효과가 있었지 뭡니까…….”
이렇게 또 다른 재미있는 이야기가 시작되었고, 서생들 모두가 푹 빠져 이야기를 흥미롭게 들었다. 상단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이 몇몇도 처음 듣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매우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윤청은 한참 이야기를 듣다가 별안간 목에 간지러움을 느꼈다. 이에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종이학 한 마리가 윤청의 어깨 위에 앉아 작은 부리로 그를 콕콕 쪼고 있었다.
종이학을 보고 윤청은 얼굴에 웃음을 드리웠다. 그는 손으로 종이학이 앉은 어깨를 덮은 뒤, 고개를 살짝 돌려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종이학아, 계 선생님께서 오셨니?”
그는 잠시 무언가를 생각했다가 다시 이렇게 말했다.
“한 번은 오신 거고, 두 번은 안 오신 거야.”
종이학은 머리를 갸우뚱하며 윤청을 보다가, 자신을 덮고 있는 손바닥에 부리를 세 번 쪼았다.
윤청은 눈썹을 찌푸리다가 시험해보듯이 이렇게 물었다.
“오셨는데, 지금은 떠나셨어?”
그러자 종이학은 다시 한번 부리를 쪼았다. 그 후 날개를 파닥이며 한쪽의 수풀 너머로 날아갔고, 윤청은 이를 보고 서둘러 따라갔다.
“어어, 윤청! 너 어디 가?”
“볼일 보러!”
“그럼 내가 같이 갈게!”
막휴는 한참 행상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윤청이 혼자 뛰어가는 것을 보고 서둘러 뒤쫓았다. 그러나 윤청이 너무 빨리 뛰었기 때문에, 그들 사이에는 거리가 꽤 벌어지게 되었다.
윤청은 뒤쫓아오는 막휴를 신경 쓰지 않고, 종이학을 따라 이리저리 수풀을 피하며 산봉우리 하나를 돌다가, 그곳에 서 있던 누군가를 보고 몹시 놀라 헉하고 소리쳤다.
그곳에는 온몸이 털로 뒤덮여 있고 오래된 괘자를 입고서, 흙빛의 피부에 등이 굽은 괴이한 모습의 무언가가 그곳에 서 있었다. 종이학은 그자의 머리 위에서 빙빙 돌고 있었다.
“소, 소신(小神) 윤 공자를 뵙습니다! 소, 소신은 이 대통산, 산신으로, 선장(仙長)의 명을 받아…….”
“윤청!”
막휴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윤청은 고개를 돌려 그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다시 고개를 돌렸을 때, 자신을 산신이라고 칭하던 그 괴이한 생물은 이미 사라져있었다.
“윤청아, 소피 보러 왜 이리 멀리 까지 온 거야? 깊은 곳은 위험하다고!”
막휴는 숨을 거칠게 쉬며 멍하니 서 있는 윤청을 향해 말했다.
“다 해결했어? 안 그래도 나도 소변이 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말하며 막휴는 한쪽의 커다란 돌 뒤편으로 가서 허리춤을 풀었다.
“아니, 아직 볼일 안 봤어.”
윤청은 서둘러 언덕 하나를 돌아 바지를 내렸다. 그런 한편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어눌한 발음으로 자기 자신을 산신이라고 칭하던 자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종이학 또한 마찬가지였다.
실은 윤청도 종이학을 본 것이 총 두세 번뿐이었다. 게다가 그것도 전부 종이학이 호운의 근처를 날아다니며 호운을 쪼아 대던 모습뿐이었다. 호운의 말에 의하면 계 선생님께서 그 종이학에 무언가 수많은 글자를 썼다고 했는데, 자신이 보기에 종이는 티 없이 하얗고 깨끗했다.
볼일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윤청은 사방의 암석과 수풀 뒤를 샅샅이 살펴보았지만, 여전히 누구도 발견하지 못했다.
“가자, 뭐 찾고 있어?”
“아, 아니야. 가자.”
어쩔 수 없이 윤청은 막휴를 따라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다만 도중에 종이학이 다시 윤청의 곁으로 날아와 그의 품 안으로 들어갔고, 이에 윤청은 놀라는 한편 기뻐했다.
종이학은 영지가 있다고 볼 수는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위험을 피하고 자기 자신을 안전하게 지킬 줄 알았다. 게다가 주인의 간단한 명령도 알아들을 수 있었고, 자신이 알아들었다면 그에 맞는 대답도 할 수 있었다.
방금 종이학이 윤청을 세 번 쪼아 댄 것도, 사실 종이학 스스로 주인이 ‘왔다가 갔다는’ 대답을 한 게 아니었다. 이는 사실대로 윤청에게 말한 것에 불과했다. 계연이 왔기 때문에 한 번, 지금 없기에 두 번이었다.
윤청과 막휴가 돌아오자 다른 이들은 다시 길을 나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중간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늘어놓느라, 이미 일각이 넘게 쉰 상태였다.
일행이 다시 반 시진 남짓 걸어 높은 고개를 가로지르자, 길이 점차 내리막길로 변하며 산비탈로 접어들었다.
“잘됐네요, 이제 오르막길은 없겠어요. 아래로 따라 내려가기만 하면 되니 그리 힘도 들지 않겠네요!”
임흠걸이 사면령을 받은 사람처럼 기쁨에 차 소리쳤다.
“하하! 젊은이, 자고로 산에 오르기는 쉬워도 내려오기는 어렵다는 말도 있소이다. 여기가 바로 제일 주의해야 하는 길이지요. 호자(虎子), 이은(李銀)하고 천자(川子)는 이 사고가 나지 않도록 세 분 서생을 잘 돌보거라.”
“네!”
“알겠습니다, 어르신.”
“알겠어요. 아저씨.”
서생 셋은 머리를 긁적이며 왜 윤청에게는 보호가 필요하지 않냐고 묻지 않았다. 그들도 오는 내내 본 것이 있으니, 윤청의 체력이 이들 행상인들에게 결코 뒤처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과연 노인이 말한 대로 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오르막길보다 훨씬 힘들었다. 이미 체력을 대부분 소모한 터라, 어떤 이들은 아래로 내려가며 다리가 풀리기도 했다. 게다가 간밤에 비가 온 터라 길이 미끄럽기도 해서, 일행은 조심스럽게 아래로 내려갔다.
일전에 여우에게 다리가 물렸던 한 남자는 원체 체력이 좋아, 그다지 힘을 들이지 않고 걷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발을 디뎠을 때, 그는 흔들리는 돌을 밟고 그대로 아래로 미끄러졌다.
“어, 어엇!”
“조심해!”
“어서 잡아! 잡아!”
촤아악!
돌은 그대로 산비탈을 따라 굴러떨어졌고, 남자도 돌을 따라 바닥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러다가 눈앞에 툭 튀어나온 돌에 부딪힐 지경이 되자, 남자는 발에 힘을 주고 근처의 작은 나무를 붙잡은 다음 가까스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류(劉) 아우, 괜찮은가?”
“류 형님!”
“천천히, 조심해!”
일행 몇 사람이 다급히 그를 둘러싸고 물었다.
“어휴……. 그대로 굴러떨어졌다간 목숨을 잃을 뻔했군!”
류씨 성의 남자는 비탈에 앉아 소매로 식은땀을 닦고 있었다. 방금 놀란 마음에 흘린 땀이 지난 반 시진 동안 흘린 땀보다 많았다.
“어이쿠, 형님, 바지에서 피가 흘러나오는데요!”
남자가 그 말을 듣고 바지를 걷어 보니, 과연 어젯밤 여우에게 물렸던 상처 위에 묶어 놓은 천 위로 피가 스며들고 있었다. 헝겊을 풀어보니 상처가 다시 찢어져 피가 흐르고 있었다.
“어이쿠, 조금 곪았네요. 여우 이빨이 이렇게 독할 줄이야!”
“이따가 밤에 다시 치료합시다. 지금은 아직 쉬면 안 돼요!”
이런 사고를 겪고 일행은 더욱 조심스럽게 산에서 내려갔다. 오후가 되자 그들은 죽통 안에 든 물과 함께 전병과 만두로 식사를 해결했다. 그리고 마침내 해가 지기 전에 행상인들은 작은 언덕 한쪽에 뚫린 동굴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대략 1장(*丈: 약 3m) 정도 깊이에 4, 5장의 폭을 가진 작은 동굴이었다.
이 동굴은 그다지 안전해 보이지 않았는데, 거대한 암석 중간을 커다란 도끼로 쪼개 놓은 듯한 모양이었다. 그래서 언제라도 머리 위가 무너져 내릴 듯한 느낌을 주었지만, 보기와 달리 실은 꽤 견고해서 행상인들이 자주 묵고 가는 곳이었다.
몇몇 이들은 요리를 시작했고, 다른 사람들은 전부 옷을 풀고 어제 물린 상처를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쓰읍……!”
“어이쿠, 상처가 심하네!”
“고름이 생겼구먼…….”
“나는 이렇게 부어올랐어. 왜 낮에는 가려운 걸 몰랐지?”
“참, 자네가 가렵다고 한마디 하니까 나도 지금 간지러워지려고 해.”
“긁지 말게!”
“일단 이 약초를 다시 한번 발라봅시다!”
사람들은 슬슬 걱정스러운 눈치였다. 일반적인 여우에게 물린 게 아니어서, 상처의 예후가 그다지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는 길에 운이 좋아 적지 않은 약초를 발견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즙 내서 상처 입은 이들에게 발라주고 있었다.
조금 멀리 떨어진 수풀 뒤에서, 여우 세 마리는 차가운 눈빛으로 이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히히히……!”
“감히 나에게 덤비다니, 죽고 싶었던 모양이지!”
“난 저자들을 반드시 먹어 치우고 말겠어!”
“일단 저 서생들은 놔둬. 우리도 한번 운우지락(*雲雨之樂:남녀가 육체적으로 관계하는 즐거움.)을 즐겨야 하지 않겠어?”
“그래, 그러자. 히히히……!”
여우들은 정말로 인간의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그저 환술(幻術)을 이용해 사람처럼 보일 뿐이었다. 그러니 언제든 쉽게 정체를 간파당할 수 있었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그들은 사람과 정을 통할 수 없었고, 그들이 말하는 ‘운우지락’이라는 것도 실은 서생들을 미혹해 그들의 정기를 빨아들이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요괴들의 원한을 담은 눈빛을 받은 일행들은 이유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았고, 장작을 주우러 갈 때도 멀리 가지 않았다.
“모두 주의합시다! 오늘은 벽이 있는 건물에서 묵는 게 아니니, 우리를 막아줄 게 없습니다. 산짐승뿐만 아니라, 어젯밤 그 여우 요괴가 또 올지도 모릅니다!”
오랜 세월 행상을 하던 이들은 사실 이렇게 괴이한 일을 한두 번 겪은 게 아니었다. 다만 대부분의 행상인은 그런 일들을 깊게 알지 못했거나 깊이 알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근심 없이 살아가기 위해서 어떤 일들은 덮고 넘어가는 것이 좋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의심할 여지 없이 진짜 요괴를 맞닥뜨리게 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