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0화. 완주의 기형적인 행정
계연은 편지를 받고 곧바로 여순부로 향하지 않았다. 그는 완주의 경계에서 윤청의 대략적인 위치를 헤아려보다가, 대통산 상공에서 자신이 예전에 썼던 서신의 기운을 느끼게 되었다. 그러다가 윤청이 곤란한 상황에 놓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계연이 역참 근처에 도착했을 때는 마침 여우 세 마리가 행상인들에게 쫓겨 도망쳐 나오고 있었는데, 이를 본 계연은 웃음을 참지 못할 정도였다.
사실 그 세 요괴가 대단한 실력을 지닌 요괴들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횡골을 녹인 요물인데 그렇게 일반인들에게 쫓겨나오니 계연조차 부끄러움을 느낄 정도였다.
그리고 과연 자신의 생각대로 세 요괴는 역참 근처를 떠나지 않고 한이 서린 눈길로 그곳을 바라보며, 그 안의 사람들을 해칠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계연은 아직 완성되지 못한 어뢰술(御雷術)을 한 번 시험해 보았다. 구름을 모아 번개를 만들어내지는 못했지만, 비가 오는 하늘 저편에서 떨어지는 번개를 끌어올 수는 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조절하는 것에 실패하여 공격하지는 못했다.
원래 계연은 그 세 요괴를 전부 처리할 생각이었으나, 그가 이곳까지 오면서 지켜보니 본래 부유하고 넉넉한 곳이었어야 할 완주에 병색이 짙게 깔려있었다. 대통산은 그리 크다고 할 수 없는 산인데도 그토록 사념(邪念)이 강한 세 요괴를 만들어냈으니, 그 땅의 영험한 기운이 정상적인 동물들로 하여금 영지를 얻게 한 것은 아닌 게 분명했다.
그 산세(山勢) 때문에 대통산에는 많은 기운이 모여들었고, 자연히 그 기운에 끌려온 이들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주변 어느 땅에 있던 사악한 기운도 아마 그런 이유로 대통산에 끌려왔을 것이다. 만약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대통산에는 계속해서 삿된 것들이 생겨날 터였다.
모든 기술에는 전문가가 있듯이, 이곳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면 관아와 그 백성들이 나서야 했다. 계연은 수선자로서 겉으로 보이는 문제만 해결하고, 대통산 주변 백성들이 삿된 것들에 해를 입지 않게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산속을 돌아다니며 관찰해보아도 신령한 기운을 발견할 수 없었던 계연은, 시험 삼아 구신술을 써보았다. 그런데 뜻밖에도 이곳의 산세와 지맥(支脈)에 연결된 정괴가 하나 나타난 것이다.
이에 계연이 법안을 열어 상대가 어떤 자인지 관찰하면서, 이 일의 이해관계를 설명하고 산신으로서 좋은 수행을 쌓을 계기라며 설득했다.
그리고 산신이 되고자 하는 정괴는 이러한 옳고 그름에 큰 관심은 없었지만, 눈앞의 상선(上仙)의 도력이 깊다는 것은 알아볼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계연의 말에 따랐고, 이렇게 윤청과 그 일행들이 겪은 일들이 일어난 것이다.
정괴에게 일을 맡긴 계연은 더는 그곳에 머무르지 않고, 주변 각지를 돌아보았다. 상공에서 내려다보면 대부분이 뽕나무로 뒤덮인 것 이외에는 당연히 천인공노할 어떤 특별한 점도 발견할 수 없었다.
조금의 정보와 매개체만 있다면, 계연도 한 사람이나 한 가지 일에 대해서는 충분히 점을 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대국에 영향을 주는 것이거나 국가의 기운이라면 볼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이라면 혹여 이러한 상황에서도 점을 칠 수 있을지도 모르나, 어쨌든 계연에게는 그런 능력은 없었다. 그러니 사정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그 일에 몸담은 이들에게 물어봐야 했다. 즉 완주에서 이미 몇 년간 관리로 일하고 있는 친우인 윤재성 같은 이 말이다.
여순부는 완주의 주부(州府)는 아니었지만, 완주 견직 산업을 이끄는 가장 큰 세 지방 중의 하나이며 가장 경제가 발전한 부(府) 가운데 하나였다.
계연이 구름을 타고 오면서 보니, 여순부의 경계 안쪽과 바깥 모두 뽕밭으로 뒤덮여 있고, 적지 않은 양잠 공방이나 견직물 공방, 염색 공방이 늘어서 있어서 여순부는 아주 번영한 도시처럼 보였다.
여순부 부성은 결코 작은 규모가 아니었다. 계연은 땅에 내려선 다음 부성으로 들어가, 성안을 거닐며 구경하지 않고 길을 물어 곧바로 관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오래된 친우를 만나러 가는 길이니, 계연은 장안법으로 사람들의 눈을 속이려 하지 않았다. 게다가 그가 눈꺼풀을 반 정도만 열고 있으면, 사람 대부분은 그의 눈이 멀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러나 계연이 지부 대인을 뵈러 왔다고 하니, 문지기는 당연히 계연을 자세히 관찰할 수밖에 없었다. 계연이 계주에서부터 대인의 초대를 받아 여순부에 왔다고 하자, 문지기는 서둘러 그 사실을 지부에 고했다.
* * *
“성함이 계연이라고 했다고?”
윤재성은 오늘 오전에 근처 마을 몇 곳으로 순시를 떠나 새로 발표한 칙령이 잘 시행되고 있는지 돌아보고 온 참이었다. 그는 침실에서 부인의 곁을 지키고 있다가, 심부름꾼이 와서 이렇게 고하자 놀라는 동시에 기뻐하며 물었다.
“네, 대인. 보기에는 문인처럼 고상하지만, 눈이 좀 이상했습니다. 탁한 회백색이었어요.”
“맞구나, 맞아. 계 선생님이야! 그분 혼자 오셨더냐?”
윤재성과 그의 부인은 당연히 윤청이 그와 함께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하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네, 혼자 오셨습니다.”
“상공(相公), 어서 계 선생님을 맞이하러 가세요.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마시고요!”
윤재성은 부인의 손을 잡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그럼 부인은 여기서 쉬고 있으시오. 아마 청이도 곧 올 것이오. 계 선생님께서 그를 데리고 오지 않았을 리 없으니까.”
“네!”
배가 크게 부풀어 오른 모습으로 침상에 누워 이불을 덮고 있던 윤재성의 부인은 그의 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오랫동안 윤청을 보지 못했으니, 그들은 당연히 부모로서 아들을 매우 그리워하고 있었다.
계연은 이미 안채가 있는 저택의 뒤쪽 응접실에서 차를 마시며 기다리고 있었다. 계연이 차 한 잔을 미처 다 마시기도 전에, 바깥에서 서둘러 걸어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발소리가 아니더라도 그가 윤재성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던 까닭은, 그의 호연정기가 벽과 문을 뚫고 볼 수 있을 정도로 강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윤재성은 문에 들어서자마자 공수하며 인사를 올렸다.
“계 선생님! 드디어 완주에 오셨군요. 제가 한참을 기다렸습니다! 너희는 어서 물러가 보아라.”
“네.”
곁에 서 있던 하인 두 명이 그의 분부에 따라 몸을 숙이고는 밖으로 나갔다. 이에 계연도 찻잔을 내려놓고, 웃는 얼굴로 몸을 일으켜 공수하며 이렇게 농을 쳤다.
“윤 훈장님, 참, 아니지. 윤 지부(知府)를 뵙습니다!”
“아이고! 계 선생님, 저를 놀리시는 겁니까? 보기와 달리 이 지부 자리가 참 쉽지가 않습니다! 참, 청이는요? 같이 오지 않으셨습니까?”
계연은 찻주전자를 들어 윤재성에게 따뜻한 차를 따라 주었다. 계연은 마치 자기 집에 있는 것처럼 편안해 보였고, 차를 받는 윤재성도 이상함을 느끼지 못한 듯이 계연의 옆에 앉았다.
“윤청은 동기 세 명과 함께 유학길에 올랐어요. 아마 3일에서 5일이면 이곳에 도착할 거예요.”
“아, 그렇군요. 그럼 되었습니다.”
윤재성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계연은 자신의 친우를 잠시 살펴보았다. 겨우 몇 년간 보지 못했는데, 이미 흰머리가 드문드문 나 있는 것을 보아하니 지부의 일이 확실히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윤 지부께서는 대정국에서 두 번째로 탄생한 삼원급제의 인재이며, 조정의 주목을 받는 관리이고, 고향에서는 문곡성(文曲星)의 현신으로까지 불립니다. 그런데 도대체 무슨 일로 그토록 골치 아파하고 있는 건가요?”
윤재성은 그의 과찬에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손을 휘휘 저었다. 비록 일찍이 이 관직에 적응이 되었다지만, 계연이 그렇게 말하니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했기 때문이다.
“계 선생님, 그만 좀 놀리십시오. 전부 골치 아픈 일뿐입니다. 완주가 번화했다 하나, 사실 아주 기형적인 구조입니다……. 어휴, 제가 오기 전, 특히 7, 8년 전부터 7할 이상의 논밭이 전부 뽕밭으로 변했습니다. 거기서 나는 이익의 9할은 전부 권세 높은 대갓집에 들어갑니다. 고작 남은 그 1할로 백성들이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제가 이곳의 부모관(*父母官: 옛날 지부(知府), 지현(知縣) 등 직접 백성을 다스리는 지방 장관에 대한 존칭)이라지만……. 어휴, 생각만 해도 성질이 납니다!”
탕!
윤재성은 이렇게 푸념하며 탁자를 세게 내리쳤다. 윤 훈장이 이토록 화를 내는 모습은 계연도 오늘에서야 처음으로 보게 된 것이었다.
윤재성은 현재 대정국의 문인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명성이 높은 인물이었고, 지금은 그가 자신의 언행에 각별하게 주의를 기울여야 할 때였다. 그래서 그는 완주에 부임하여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자, 자신의 감정이나 의견을 쉽게 밖으로 드러내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심지어 그는 부인이 과도하게 우려할까 걱정스러웠기에 자신의 이런 답답한 마음을 잘 드러낼 수 없었다. 하지만 계연의 앞에서는 그런 고민을 하지 않아도 되니, 그로서는 드물게도 답답하고 울적한 감정을 드러낸 것이다.
“휴……. 계 선생님 앞에서 추태를 보였군요!”
윤재성은 감정이 많이 격앙된 듯이 보였다. 그처럼 차분하고 매사에 진중한 사람이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아무래도 이곳에서 관리로 일하며 적지 않게 스트레스를 받은 모양이었다. 물론 오랫동안 쌓였던 울분을 이제야 쏟아내다 보니 감정이 한 번에 폭발한 것일 수도 있었다.
계연은 찻잔을 들어 올려 차를 마시지는 않고 찻물에 가볍게 입김을 불었다. 그러자 상쾌한 바람이 실내에 불어와 윤재성이 가졌던 울분을 조금 흐트러뜨린 후, 그가 다시 냉정함을 되찾게 했다.
“윤 훈장님, 완주의 사정이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좋지는 않은가 보네요?”
계 선생님이 다시금 자신을 ‘윤 훈장님’이라고 부르자, 윤재성은 그제야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그는 곧이어 탄식하며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계 선생님께서 모르시는 것이 있습니다. 완주가 확실히 부유한 지방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금과 옥에 둘러싸여 사는 반면, 다른 이들은 그 와중에 먹을 음식조차 없는 지경입니다. 문제는 전자(前者)는 아주 소수고, 후자(後者)가 대부분이라는 겁니다. 그야말로 뿌리까지 썩어들었지요! 고작 이정(*里正: 지방 행정 조직의 최말단인 리(里)의 책임자) 하나가…….”
윤재성은 이렇게 말을 하며 계연에게 그 관직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관직인지를 보여주려는 듯, 오른손 엄지와 검지 끝을 모아 쥐었다.
“……이렇게 참깨만 한 작은 관리가 50경(*頃: 중국 주공(周公)이 처음으로 제정한 도량형의 면적 단위로, 1경은 24,326㎡에 해당)의 뽕밭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 전부 어디에서 온 것이겠습니까? 그가 일평생 이정 자리를 맡은들, 어찌 그런 재산을 모을 수 있었겠습니까?”
윤재성은 한숨을 쉰 다음 찻잔을 들어 한 입 마신 후, 다시 한 마디 덧붙였다.
“더욱 화가 나는 것은 그 50경의 밭 중 1,000무(*畝: 중국 주공(周公)이 처음으로 제정한 도량형의 면적 단위로, 1무는 666.67㎡에 해당)가 영업전(*永業田: 중국의 당(唐)나라에서 균전제를 시행하며 백성들에게 나눠준 자손에게 상속할 수 있는 전답)이었습니다. 이것들은 그야말로 백성의 목숨줄입니다!”
계연은 그의 말을 듣고 눈썹을 찌푸렸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자신이 구름을 타고 완주의 경계를 지나오는 동안, 뽕나무 숲이 대부분이었고 곡식을 재배하는 논밭은 보기 드물었다. 보아하니 모든 백성이 누에를 치며 함께 부를 나눠 받는 것이 아니라, 관리들이 백성들의 전답을 갖은 방식으로 빼앗아 쓰고 있었던 것 같았다.
물론 맨 처음에는 뽕나무를 심고 양잠에서 나오는 막대한 이익으로 농민들을 유혹했을 것이다. 그 후에는 자연재해나 인위적인 방법으로 큰 손해를 입은 백성들을 상대로, 보기에는 ‘공정한’ 가격으로 뽕나무밭을 매입했을 것이다. 그렇게 오늘에 이르러서는 뽕나무가 대부분이고 농사짓는 땅은 드물어졌다. 게다가 그 뽕나무밭에서 나오는 이익은 전부 고관대작들의 손에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