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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기연-211화 (211/892)

211화. 더는 초짜 관리가 아니야

여순부를 포함한 완주 전체에서 자기 소유의 전답을 가진 농민은 매우 적었다. 그러니 끼니라도 먹으려면 그들은 지주에게 기댈 수밖에 없었다. 논밭의 농사와 달리 뽕나무를 심고 누에를 기르는 데에는 많은 인력이 필요치 않았다. 어떻게 이익을 얻었다 해도 대부분은 다시 고관대작이나 부호들에게 돌아갔다. 게다가 농민 스스로 부담해야 하는 각종 세금까지 더해지니, 이는 안 그래도 고달픈 농민들의 삶을 더욱더 힘들게 했다.

게다가 그것보다 중요한 문제는, 농민들이 누에를 치고 견직물을 만들어 받는 돈이 전부 은화라는 점이었다. 완주는 식량이 충분히 나지 않아 외지에서 사와야 했는데, 다른 지방에서 이곳으로 옮기기까지 수많은 사람을 거치고 여러 명목의 금액이 덧붙여졌다. 물론 이러한 곡물의 가격변동에는 자연재해도 깊이 관련되어 있었지만, 그보다는 대갓집이며 부호, 또는 관리들의 말 한마디로 가격이 결정되는 것이 더 보편적이었다.

이렇게 해서 값비싼 곡물을 살 돈이 부족하면, 그들은 결국 전답을 저당 잡히는 것이다.

윤재성의 이야기를 듣자, 계연과 같이 다른 사람에게는 ‘선인’으로 보이는 이마저도 그 치밀함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완주의 농민들은 그동안 누에가 뽕잎을 갉아 먹듯이 아주 조금씩 자신들의 생활 터전인 전답을 잃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윤재성은 찻잔 안의 찻물을 남김없이 마신 다음, 차가운 목소리로 이렇게 비꼬았다.

“대정국 사람들은 자주 ‘병주(幷州)의 곡식, 완주의 비단’이라고들 말하는데, 허! 이곳 완주 백성들의 처지는 병주와 감히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합니다!”

계연도 그의 말에 찬성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병주에 그리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머물렀었는데, 그마저도 사실 운산에서 수행하는 시간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병주의 넓은 땅에 곡식을 수확할 때가 오면, 계연도 농민들이 바쁜 와중에 웃는 얼굴로 재잘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럼 윤 훈장님께서는 그 이정에게 어떤 처분을 내리셨나요?”

윤재성은 고개를 저었다.

“만약 제 맘대로 처리할 수 있었다면, 어찌 제가 지금까지 이렇게 울분을 터뜨렸겠습니까! 완주에 오고 2년 간은 백성들의 사정을 세세히 관찰한 다음, 어떤 태도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여순부와 완주의 사정을 깊게 이해하게 되자, 이 사건은 하나를 건드리면 줄줄이 많은 사람이 딸려오게 되어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정 하나쯤이야 쉽게 처리할 수 있겠지만, 그가 연루된 일 자체는 건드릴 수가 없습니다.”

계연은 비록 관리들 사이의 일은 잘 알지 못하지만, 윤재성이 한 말에서 그가 제 직무를 완전히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윤재성은 무모하고 분별없는 행동은 하지 않을 테니, 계연도 그런 방면에 대한 걱정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다.

“윤 훈장님은 지부의 위치에 있는 데다 조정과의 관계도 깊을 텐데, 이렇게까지 그 일에 손대기 꺼리는 이유가 있나요?”

계연은 이렇게 말하며 찻주전자를 들어 다시 윤재성의 잔을 채워주었다. 그 모습은 마치 예전 거안소각에서 한가로이 이야기를 나누던 어느 오후 날과 같았다.

윤재성도 이제는 냉정함을 되찾은 후였기 때문에, 계연이 하듯 자신도 예에 얽매이지 않고 그가 따라준 차를 마셨다.

“비록 지금까지 조정에서 보낸 순찰사들이 돌아가 완주에는 별일이 없다고 고해왔다고는 해도, 그것만으로는 충분한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조정에 이곳 완주와 이익 관계가 얽혀 있는 자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여순부 하나가 아니라 완주 전체로 보면, 이 일과 관련된 자들이 셀 수도 없을 것입니다!”

윤재성의 발언은 이제 막 장원에 급제하여 지방으로 파견된 초짜가 아니라, 마치 관료사회에서 오래 구른 나이 든 관리가 하는 말 같았다.

계연도 완주 백성들의 처지가 안타깝긴 했지만,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일단 자신의 친우에 대한 걱정이 많이 사그라들었다. 그래서 그는 일부러 놀리는 듯한 어조로 윤재성에게 물었다.

“그럼 윤 훈장님께서 이곳 완주로 내려왔을 때, 이곳의 부호며 관리들이 훈장님을 눈엣가시처럼 여겼겠네요?”

“눈엣가시 정도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꺼리기는 했습니다. 특히 제가 막 부임했을 당시에는 밤낮으로 경계를 늦추지 않았었지요. 하하, 이제 와 생각하니 정말 웃기기만 하네요.”

윤재성은 이렇게 대답하며 화제를 조금 바꿨다.

“제가 이곳에 와서 민생을 꼼꼼히 살펴보긴 했지만, 그 외에는 다른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에 그들도 곧 긴장을 내려놓았고, 이제 여순부는 물론이고 완주의 모든 관리가, 저처럼 삼원급제한 인재가 이곳에 내려온 것은 모두 버젓한 간판을 얻으러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곧 저는 승진하여 수도로 돌아갈 터이니, 지부직 임기 동안 제가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길 바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니 우습게도 제게 선물을 보내는 이들이 더욱 많아졌지 뭡니까? 처음에는 별 볼 일 없는 가문이나 사람으로 시작해서, 이제는 고관대작과 부호들까지도 제게 뇌물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 아주 진귀한 것들이겠네요?”

계연이 손을 뻗어 찻주전자에 대자 찻물이 다시금 따뜻해졌고, 그는 자신과 윤재성에게 각각 한 잔 따랐다.

“대부분은 전부 돈입니다! 은자와 번쩍번쩍한 황금이 모두 있지요. 이들은 모두 저 윤재성이 더욱 높은 자리에 오를 것이라 여기고 있으니, 언젠가 조정에서 그들을 두둔할 사람을 하나 만들어 놓는 것이지요.”

윤재성은 웃으며 농을 치듯 계연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리 진귀한 것들이니 저도 당연히 거절하지 않고 전부 받고 있습니다!”

계연은 그의 말을 듣고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조금 놀라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벗에 대한 믿음이 깊은 데다, 윤재성에게서 여전히 순정(純正)한 호연정기를 느낄 수 있었으므로 곧바로 그의 뜻을 알아차렸다.

“윤 훈장님께서는 일단 조용히 때를 기다렸다가 대번에 결판을 보려 하시는군요?”

“나를 낳은 것은 부모이지만, 나를 아는 것은 계연뿐이라! 매번 모든 금액과 이름을 전부 적어 놓고 있습니다!”

윤재성은 계연에게 의미심장한 얼굴로 이렇게 덧붙였다.

“이 대정국 전체에서 저 윤재성을 빼면, 이 일에 가장 분통 터져 할 사람은 아마 당금의 성상(聖上)이실 겁니다.”

계연은 윤재성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제가 알기로는, 황제가 일전에 본 길조를 계속 잊지 못하여 이번에도 수륙법회(*水陸法會: 물과 육지에서 헤매는 외로운 영혼에게 공양을 드리는 불교 의식)를 준비한다고 들었어요. 대정국의 모든 명사와 고인들을 초대한다더군요. 그러니 완주와 관련된 일에 얼마나 마음을 쓸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윤재성은 눈썹을 찌푸리는 것 외에 별다른 표정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또한, 계연이 대역무도한 말을 했다고 언짢아하지도 않았다.

계연은 한번 웃어 보인 다음, 계속해서 느긋한 태도로 말했다.

“황제는 대정국의 기운에 곧바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몸이고, 수천만 백성의 위에 있는 사람이지요. 장수(長壽)를 원한다면 차라리 쉽겠지만, 신선을 청해 도를 묻고자 한다면 저 자신의 자리를 버리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에요. 황제처럼 두 가지 다 손에 쥐고 놓지 않으려 한다면 아무것도 얻지 못할 거예요.”

윤재성도 더는 그 문제에 관해 입씨름하려 하지 않았다.

“성상께서 어쩌면 더는 기력이 왕성하지 않을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완주의 일에 대해 아예 신경을 쓰지 않으시지는 않을 겁니다. 게다가 그 일에는 웅대한 포부를 품은 진왕이 개입해 있습니다. 이미 반년 전에 제가 진왕 전하를 통해 이곳의 사정에 대해 성상께 보고드렸었지요. 다른 말은 더하지 않고, 이곳 사람들이 제게 입막음용으로 보낸 재물의 양을 알려드렸습니다. 계 선생님께서도 그게 얼마인지 한번 맞혀 보시겠습니까?”

계연은 속으로 목숨이 걸린 일도 아니니 한번 높게 불러보자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은 5만 냥?”

윤재성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10만 냥?”

윤재성이 또다시 고개를 젓자 계연은 더 높이 불렀다.

“황금 오만 냥?”

“다시 맞혀 보세요. 제가 얻은 재물에는 황금도 백은도 있고, 진귀한 골동품도 있습니다.”

계연은 웃으며 소매 안에서 몰래 손가락을 접어 잠시 헤아려 본 후, 곧 경악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아니, 황금 21만 냥이요?”

매우 정확한 숫자에 윤재성은 잠시 놀랐지만, 곧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습니다, 몇 년간 받은 진귀한 물건들도 가치를 계산해보면 아마 은으로 2백만 냥은 될 것입니다. 허, 이는 완주에서 쓰는 반년 정도의 국고에 달하는 양입니다!”

윤재성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어 나갔다.

“비록 다른 이들이 보기에 제가 전도가 유망한 인물이라지만, 저는 고작 여순부 지부일 뿐이지요. 그런데 고작 2년 만에 제가 이리 많은 재물을 얻었습니다. 저들이 모은 재물은 모두 백성의 고혈을 짜내 얻은 것이니, 조정에 보내야 할 돈은 또 얼마나 많이 떼어먹었겠습니까? 그러니 황상께서 노하지 않으실 수가 없으시겠지요.”

윤재성은 여기까지 말하고는 차가운 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

“진왕 전하께서 보낸 밀지에는, 어서방에서 제 보고를 받으시던 성상께서 가장 아끼시는 찻잔을 깨트리셨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나이가 들면 우둔해진다는 말도 있고 역대의 많은 황제도 그러한 모습을 보여왔지만, 원덕제는 자기 자신이 그런 황제 중 하나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와 아랫것들이 자신을 속이고 우롱한 것을 알게 되었으니, 그가 느꼈을 분노는 안 봐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이를 들은 계연은 윤재성이 일찍이 계책을 세워 두었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의 앞날에 대해 안심이 되는 한편, 감개무량한 감정이 들기도 했다.

‘윤 훈장님은 이제 초짜 관리가 아니야!’

윤재성은 이렇게 말하고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가 처음 완주 여순부의 지부로 임명되었을 당시, 그는 계주 영안현에 돌아가 있던 상태였다. 그가 영안현을 떠나기 전날 밤, 진왕의 소사(少師)인 이목서가 변장을 한 모습으로 그를 만나러 역참에 찾아왔었다.

당시 이목서는 자신이 방문한 이유를 뚜렷하게 밝히지 않았다. 그저 그는 이번에 윤재성이 완주로 가게 된 것은 성상의 천거 덕분이며, 많은 이들이 윤재성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으니 완주에 가서도 감정을 잘 누르고 초심을 잃지 말라고만 당부했다.

비록 이목서가 정확한 이유를 말해주지는 않았지만, 윤재성은 그의 말에 숨겨진 뜻을 알아차렸다. 이목서는 윤재성이 그곳에서 신변의 위협을 받거나 혹은 윤재성의 이상과 의지가 변하게 될까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그래서 윤재성이 지부로 부임하기 전날 밤에 진왕은 영안현으로 서신을 보내어 임지로 함께 따라가기로 되어있었던 시종 몇을 바꾸었다고 알려왔다. 윤재성도 이를 거절하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윤재성의 곁에는 무공이 출중한 호위들이 있었다.

윤재성은 정무에 관하여 그저 하소연만 할 뿐, 더는 계연에게 자세히 말하려 하지 않았다. 게다가 애초에 계연을 초대한 것도 이런 목적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계 선생님을 뵈니 저도 모르게 푸념을 늘어놓게 되었네요. 부디 용서해 주세요. 이번에 선생님을 청한 것은 제 둘째 아이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함이지만, 아무래도 얼마간 기다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계연이 이곳에 왔으니 그도 당연히 무척 기뻤지만, 아직 아이가 태어나지도 않은 상황에서 연회 자리를 준비할 수는 없었다.

“네, 부인께서 해산하실 날짜가 언제지요?”

계연은 이미 알고 있음에도 이렇게 물었고, 윤재성도 얼굴에 희색이 만연하여 곧장 대답했다.

“의원이 말하길, 태기가 안정되어 있어 아이가 2주 정도 후에 달 수를 다 채우고 나올 것이라고 합니다.”

“아, 그렇군요. 그럼 미리 윤 훈장님께 축하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계 선생님께서 머무실 곳은 이미 안배해 놓았습니다. 바로 여기 뒤편에 있는 객사(*客舍: 손님들이 머무는 곳)입니다.”

계연은 이를 듣고 웃으며 공수했다. 그와 윤재성의 사이에 겉치레는 필요치 않았다.

두 사람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느새 한나절이 지나 간단히 함께 식사를 들었다. 윤재성은 원래 계연을 직접 데리고 객사로 가려 했지만, 긴급히 처리할 공무가 생겨 하인에게 대신 그 일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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