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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기연-212화 (212/892)

212화. 광동호에 용이 떨어지다

하인 하나가 계연을 이끌고 그리 크지 않은 후원에 다다랐다. 그곳의 주랑(柱廊)을 따라 걷자, 그는 곧 부저 내에 있는 객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계 선생님, 안으로 드시지요. 바로 이곳입니다.”

하인은 정중한 태도로 계연을 데리고 객사 안을 간단히 소개해 주고서 곧이어 그곳을 떠났다.

“계 선생님은 이곳에서 쉬시면 되겠습니다. 무언가 필요하신 게 있다면 언제든 제게 분부해 주세요. 주랑이 있는 쪽을 향해 하인을 부르시면 됩니다. 그럼 저는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네, 수고가 많으시네요!”

계연이 그를 향해 공수하자, 하인도 다급히 예를 올렸다.

“아, 아닙니다.”

어느 정도 거리가 멀어졌을 때, 하인은 고개를 돌려 계연을 쳐다보았다. 계연은 아직 객사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 서서 정원이며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아주 편안하고 소탈해 보였다. 동시에 하인은 그가 점잖고 비범한 사람임을 느낄 수 있었다.

이곳의 하인들은 사실 계연에 대해 큰 호기심을 품고 있었다. 그들의 주인인 지부 나리는 단 한 번도 집에서 연회를 열거나 누군가를 초대한 적이 없었다. 누군가를 부저 내에 머물게 하도록 허락한 적도 없었다. 먼 곳에서부터 진귀한 선물을 보내온 이들 모두 역참이나 객잔에 머물렀는데, 계 선생이라는 손님은 대접이 아주 특별했다. 그가 부저에서 먹고 자게 된 것을 보니, 확실히 지부 나리와 오래된 친우 사이인 듯했다.

계연은 간단히 자신이 머물 곳을 살펴보았다. 기본적인 침상, 책상, 탁상, 걸상이 모두 있었고 문방사우와 바둑판도 갖춰져 있었다. 비록 화려하다 할 순 없어도, 필요한 모든 것을 다 갖춘 방이었다.

방을 둘러본 후 계연은 그곳에 머물지 않고, 발밑에 연기 같은 구름을 피워 올린 다음 그것을 타고 바로 부저를 떠났다.

* * *

여순부의 대로는 그 속사정과 달리 여전히 번화한 모습이었다. 대정국 각지와 주변 각국에서 온 상단들이 이 지역의 견직물을 사러 오기 때문이었다. 이 도시의 산업은 비단류의 상품을 만들어내는 것에 극단적으로 쏠려 있었다. 곳곳에 객잔과 음식점과 찻집이 성황이었고, 기루며 도박장 같은 장소도 다른 도시와 달리 매우 북적였다.

여순부조차 이러하니, 주부(州府)인 운파부(雲波府)는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계연은 민감한 청력과 모호한 시력을 한데 이용하여, 대로며 좁은 골목을 큰 무리 없이 걸을 수 있었다. 또한 그런 와중에 다른 이들이 나누는 이야기도 모두 들려왔다. 계연은 어떤 목소리들을 찾아 길을 걷거나 스스로 길을 묻기도 하며 곧 묘사방에 다다랐다.

일찍이 이 세계에 왔을 때부터, 계연은 성황신과 같은 신령들이 어느 지방이나 누군가를 보호할 수는 있지만, 주동적으로 나서 속세의 사물에 관여할 수는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특히 그것이 인간 세상의 대세에 영향을 주는 일이라면 더욱 그러했고, 신령들이 어느 특정한 곳의 원력(愿力)에만 의존하는 처지라 해도 그러했다.

그래서 그들은 속세의 일에 관여하는 데에 거리낌을 느꼈다. 속세에 생기는 변화에 따라 신령들도 그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이 그 첫 번째 이유였고, 오랜 시간 동안 쌓여 내려온 교훈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조금씩 저승의 관리들은 이승의 일에 관여하지 않게 되었고, 특히 그 일의 영향력이 막대할수록 이는 마치 철칙처럼 지켜져 내려왔다.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왕조가 무너질 때마다 성황신 같은 신령들은 그 왕조의 기운과 연결되어 있어 함께 스러지고는 했다. 그래서 신령들은 이런 사실을 깊이 숨기고 드러내지 않았고, 속세에 대해 느끼는 감정도 매우 모순적이었다.

한편, 계연이 묘사방에 가는 이유는 당연히 성황당에 가기 위해서였다. 비록 그들이 속세의 일에 간섭하지 않는다지만, 저승에서도 이 정도의 일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성황당에 가는 것은 여우 요괴 사건에 대한 조사 때문이 아니라, 여순부 저승의 담당 지역에서 사악하고 원한 섞인 기운이 모여들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느 도시든 상관없이, 묘사방은 보통 가장 번화한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고 여순부도 역시 그러했다.

묘사방의 거리 곳곳은 호객하는 소리와 가격을 흥정하는 소리 등이 섞여서 매우 번잡스러웠다. 지방마다 성황당 부근은 반드시 들러 봐야 하는 명소였고, 또한 그 주변에 각종 주루며 찻집이 운집해 있었기 때문에 외지에서 온 이들도 적지 않았다.

“선생, 향 몇 개 사시지요. 성황신께 향을 올리면 공명(功名)을 떨칠 수 있게 보우해 주시고, 재물운을 올리는 데에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답니다!”

“어이쿠, 선생님! 제가 파는 향은 보통 향이 아닙니다. 새로 만든 단향(檀香)이에요! 향 하나에 단돈 5문(文)입니다. 또 품질이 아주 좋은 빨간 양초도 있답니다!”

계연이 길을 지나자, 노점 주인들이 단향이나 양초를 사라며 다가와 그를 둘러쌌다.

“필요 없어요. 저는 향을 올리러 온 것이 아니라서요. 아뇨, 아뇨. 정말 필요가 없어요…….”

한 노점에서는 두세 사람이 함께 물건을 고르고 있었는데, 그 주인장이 매우 열성적이었다. 그는 심지어 자신의 노점을 뒤로하고, 길을 지나는 참배객들에게 다가가 자신의 향이나 초를 팔려고 했다. 계연은 이들을 연이어 거절하고 성황당으로 향했다.

게다가 사실 향의 가격이 너무 비싸기도 했다. 이곳의 향을 하나 살 돈이면, 다른 곳에서는 국수를 한 그릇 먹을 수도 있는 돈이었다. 게다가 아마 향만 비싼 것은 아닐 것이다.

성황당 안에는 여행객들로 가득 차, 어느 한 곳 조용한 데가 없었다. 계연은 참배객들을 따라 성황당 안의 대전 곳곳에 들어가, 화려한 옷을 입은 이들이 신령에게 절을 올리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이 비는 소원 대부분은 돈을 많이 버는 것이었다. 신령에게 절을 올리러 오는 이들 중 일반 백성들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계연의 근처에 있던 나이 든 묘지기는 계연이 성황당 안을 걸어 다니기만 할 뿐 향을 올리지는 않는 것을 보고, 아마 그가 여행객일 거라고 짐작했다. 입은 옷이 값비싸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에게서 느껴지는 기운은 비범했다. 머리에 꽂은 묵옥 비녀는 햇빛 아래에서 투명하게 빛나고 있었는데, 보자마자 아주 상등급의 옥임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계연이 걸음을 멈추고 잠시 서 있던 때에, 묘지기는 그에게 시험 삼아 물었다.

“선생께서는 성황신께 향을 올리러 오신 건가요? 향화전(*香火錢: 참배객들이 바치는 돈)을 내시면 성황신께서 모든 일이 순조롭도록 보우해 주실 겁니다.”

계연은 노인을 잠시 쳐다보다가, 다시 성황신의 신상(神像)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하……. 비록 이곳 성황신께 바쳐지는 향불이 왕성하긴 하지만, 그분이 그것을 다 받지는 못할 텐데요.”

“네? 그게 무슨 뜻입니까?”

계연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별로 깊은 뜻은 없어요. 글자 그대로의 뜻이에요.”

이곳에서 올린 향불은 모두 모여 원력(愿力)이 되지만, 성황신은 아무 향불이나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헛된 이익을 바라거나 삿된 마음을 품고 올린 향불에는 일종의 ‘독성’이 들어 있었다. 성황당에서 죽간을 던져 점을 칠 때도, 이런 이들은 제대로 된 답을 얻을 수 없었다. 그들이 던져서 나오는 점괘는 간단한 확률에 의해 나온 결과일 뿐이었다.

“선생의 말씀이 맞습니다!”

약간의 탄식을 담은 목소리가 근처에서 들려왔다. 검은 장포를 입고 머리에도 검은 방관(*方冠: 망건 위에 쓰는 네모반듯한 관)을 쓴 피부가 누런 중년의 남자가 계연을 향해 공수했다.

그러자 계연도 그자를 향해 같은 예를 표했다.

“성황당 밖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게 어떻겠습니까?”

“선생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남자는 계연의 말에 대답한 후, 그의 뒤를 따라 성황당의 주전(主殿)을 떠났다. 뒤에 남겨진 묘지기는 머리를 긁적이며 무언가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그는 속으로 오늘 이상한 이들을 둘이나 만났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대문으로 나서지 않고, 인파가 상대적으로 적은 옆문을 이용해 밖으로 나갔다. 그들은 유유자적하게 걸어 어느덧 성황당 밖 강변에 이르렀다.

이곳에는 답청(*踏靑: 교외를 산책하며 화초를 즐기는 중국의 풍속)하러 온 여행객들이 꽤 있었는데, 즐겁게 노니는 모습이 보기에 아주 평화로워 보였다.

바깥으로 나오자, 검은 옷의 남자는 다시 한번 정중한 태도로 계연을 향해 읍했다.

“선생께서는 희뿌연 법안(法眼)에 묵옥 비녀를 꽂은 데다 깊은 도력을 숨기고 소박한 모습을 하셨으니, 제 추측이 틀리지 않다면 바로 그 소문의 계 선생이시지요?”

‘그게 무슨 말이지?’

계연은 멍한 얼굴로 생각했다. 소문의…… 계 선생이라니?

‘내 이름이 완주까지 전해질 정도로 유명해졌단 말이야? 게다가 그 소문은 도대체 뭐길래?’

만약 계주 부근에서 그를 알아보는 이들이 있다면 계연도 그리 놀라지 않았겠지만, 이곳은 완주였다.

그래서 계연은 그에게 같은 예를 올리며 예의 바른 얼굴로 웃어 보였다.

“소문의 계 선생이란 말은 당치도 않습니다. 그러나 제 이름이 확실히 계연이고 성황신께서 말씀하신 외양이 제 외양과 모두 들어맞으니, 아무래도 제가 맞는가 보네요.”

“과연 계 선생님이셨군요! 저도 한 번 추측해본 것일 뿐인데, 정말로 이렇게 존엄하신 분을 만나 뵐 줄은 몰랐습니다.”

성황신은 그의 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대정국은 곧 다사다난한 가을을 맞이하게 될 텐데, 그래도 계 선생님께서 이곳을 지켜주고 계시니 참으로 우리 대정국의 홍복(洪福)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잠깐, 방금 그게 무슨 말이지?’

계연은 성황신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설마 자신이 잠든 반년 동안 무언가 큰 변화가 있었단 말인가?

“성황 대인,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시겠어요? 그게 무슨 말인지 정말로 모르겠는데요!”

“계 선생님께서 저를 대인이라고 칭하시니, 참으로 황공합니다. 부디 저를 난처하게 하지 말아주십시오…….”

성황신은 쓴웃음을 지으며 계속해서 말했다.

“우리 대정국의 대세가 불안하여 길흉을 예측할 수 없으니, 저를 비롯한 성황신들은 모두 바람 앞의 등불처럼 마음이 초조한 상황입니다. 일전에…….”

쿠오오!

별안간 용이 포효하는 소리가 먼 하늘에서 울려 퍼졌다. 계연과 성황신은 모두 안색이 변하여 북쪽의 상공을 바라보았다.

크아아악……!

음매에……!

콰르릉-!

무언가 잘못된 듯한 용의 울음소리가 하늘에서 울려 퍼지자, 성안의 적지 않은 백성들이 모두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북쪽 하늘에는 어느새 비구름이 몰려와 있었는데, 거대한 야수의 울음소리 같기도 하고, 늙은 소가 애처롭게 우는 듯도 한 괴이한 소리가 천둥소리에 섞여 들려왔다.

많은 이들이 그쪽을 지켜보던 와중, 돌연 구름 덩어리같이 보이는 무언가가 하늘 저편에서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거대한 뱀의 모양이라고 하기에는 용이라고 보는 것이 좀 더 정확했다.

쿠르릉……!

천둥소리가 울려 퍼지는 동시에, 검은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었고 어느새 사위가 어두워졌다.

용의 포효성과 울음은 서로 달랐는데, 길게 이어지는 포효성에서는 웅장한 기세가 느껴졌고 울음은 마치 소가 우는 것과 같았다. 용이 울면서 상공에서 떨어지는 모습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좋지 않은 상황에 놓인 것 같았다.

계연이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혹시 응 선생이 아닐까 하는 걱정이었으나, 다행히 그 울음소리는 그가 아는 익숙한 음성이 아니었다.

“저곳이 어디인가요?”

“계 선생님께 아룁니다. 광동호(廣洞湖)가 있는 방향으로, 이곳과는 백 리(里) 남짓 떨어져 있으며 여순부의 담당 지역입니다.”

여순부 성황신은 엄숙한 얼굴로 계연의 물음에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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