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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기연-215화 (215/892)

215화. 삿된 것을 쫓고 요물을 속박하다 (2)

계연은 검은 교룡의 눈을 바라보며 진창으로 더러워진 땅을 천천히 걸어, 용의 머리가 놓인 곳 앞으로 다가갔다.

진흙은 그가 땅을 밟는 순간 저절로 떨어져 나가며, 깨끗한 물만이 그가 걸은 자리에 남았다. 마침내 성황신도 이런 기이한 현상을 발견했으며, 이는 계연을 주시하고 있던 교룡도 마찬가지였다.

계연의 법안은 만능이 아니어서, 조금의 실마리 정도만 알아챌 수 있을 뿐이었다. 그는 정중한 태도로 공수하며 떠보듯 이렇게 입을 열었다.

“제 이름은 계연이라 합니다. 통천강 용왕과는 막역한 사이이지요. 교룡께서는 힘줄이 뽑힌 데다 중상을 입기까지 하셨으니, 이대로는 오래 버티지 못할 거예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게 말씀해 주시면, 제가 용왕께 그대로 말씀드릴게요. 하지만 만약 저를 믿지 못하시겠다면, 지금 당장 가서 용왕을 모셔오도록 하겠습니다.”

“음머…….”

검은 교룡은 눈을 몇 번 움직이기도 하고, 한참 동안 입을 달싹이다가 겨우 이렇게 소리를 내었다.

이때쯤 되자, 계연은 물론이고 성황신마저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계연은 눈빛을 반짝이며 조심스럽게 교룡에게 다가갔다. 그가 용의 눈을 바라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호박색 눈의 동공이 천천히 수축하며 세로로 가늘어졌다. 용은 계연이 손을 뻗어 자신의 수염을 하나 만지도록 허락해 주었다.

이때 계연의 신체와 뜻이 결합하며 언뜻 그의 의식 세계가 드러나 보였고, 그는 재빨리 손을 꼽으며 점을 쳐보다가 한순간 동작을 멈추었다. 그 후 다시 한번 계연이 용의 눈을 바라보니, 용의 동공이 천천히 열렸다. 그들은 마치 일종의 소리 없는 교류를 나눈 것 같았다.

다음 순간 계연이 다시 천천히 뒤로 몇 걸음 물러난 뒤 손을 한 번 휘두르자, 쏟아지는 비가 그의 소매 안으로 전부 떨어졌다. 계연은 입으로 칙령음을 머금었고, 그가 가진 법력은 천천히 그 힘을 뿜어냈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았지만, 이 순간 계연의 온몸은 마치 안개 속에 파묻힌 것처럼 보이다가 연기로 변하였다.

이어서 계연이 다시 한번 소매를 휘두르자, 그 안에 있던 물이 물줄기처럼 날아가 교룡의 위 약 3, 4장(*약 9~12m) 정도 떨어진 위치에서 은은하게 반짝이는 거대한 문자를 형성해냈다.

성황신도 계연이 무언가 시도하는 것을 보고서 교룡에게 큰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온몸에서 신령한 빛이 뿜어 나오자, 등 뒤로 찬란한 오색 빛이 터져 나오는 듯했다. 이에 성황신이 입은 검은 장포가 바람에 펄럭였고, 성황신은 언제든 전력을 다해 나설 준비를 마쳤다.

그때, 계연의 등 뒤에 있던 넝쿨검이 천천히 떠오르더니 주인의 머리 위에 가로로 길게 자리했다.

계연이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천둥과 벼락 치는 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오고 있었다. 그에게는 더없이 적합한 때가 아닐 수 없었다. 그의 어뢰술은 그다지 뛰어나지 못하지만, 칙령에 한해서는 큰 진보를 이루었고 연구를 통해 계연은 무궁한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계연의 의식 세계 속 우주의 기운이 솟구쳤다. 그는 마침내 칙령음을 내뱉었다.

“칙령, 구사박매(*驅邪縛魅: 삿된 것을 쫓고 요물을 속박하다)!”

슈욱!

용체 위 몇 미터 상공에 떠 있던 네 글자는 투명하게 빛나다가 순식간에 번쩍이는 금빛을 내뿜었다. 한순간 소모된 법력이 너무나 커서, 계연은 자신도 모르게 왼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그의 발밑의 흙이 파이며 커다란 홈이 파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온 힘을 다해 뒤로 몸을 물렸고, 성황신이 이를 보고는 뒤로 크게 물러섰다.

우르릉…… 콰광!

콰직! 콰지직!

하늘에서는 더욱 많은 벼락이 쏟아져 내려, 금빛으로 빛나는 글자 위에 모여들었다. 이렇게 모여든 번개는 금빛 글자와 합쳐져 천천히 용을 내리눌렀다.

어흥!

검은 교룡은 맹렬한 기세로 포효했다.

“크아아! 크아아악!”

금빛으로 빛나는 글자가 용의 몸체에 새겨 넣어지자, 교룡의 몸에서부터 무엇인지 알 수 없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동시에 한 줄기 오염된 듯한 연기가 피어나, 번개가 번쩍이는 와중에 끊임없이 요동쳤다. 번쩍이는 번개는 마치 은빛으로 빛나는 뱀처럼, 움직이는 사슬이 되어 그것의 몸에 달라붙었다.

“어흥…….”

교룡이 입을 벌려 이렇게 울부짖자, 검고 더러운 무언가가 그의 입에서 쏟아져 나왔다. 그것은 마치 검은 연기처럼 교룡의 코와 눈, 그리고 입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왔다. 그런 후에 용의 몸체 위에서 다시금 모여들더니 이리저리 요동치다가, 금빛으로 빛나는 번개에 의해 꽉 속박당했다.

“베어라.”

계연이 단조로운 목소리로 이렇게 내뱉자, 넝쿨검은 즉각 검집에서 빠져나왔다.

챙!

검명(劍鳴)이 울리는 동시에 검광이 찬란하게 빛났다. 검의를 담은 날카로운 검기가 그것을 긋고 지나갔다.

끼아악!

그러자 날카로운 비명이 울려 퍼지다가 돌연 뚝 끊겼고, 그것은 검은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후우…….”

계연은 자신의 상태를 다시 갈무리하고, 소매를 휘둘러 용의 몸 위에서 빛나고 있는 글자를 다시 거둬들였다. 그가 소모한 법력과 우주의 기운을 생각하면, 이렇게 계속 그 위에 놔두는 것은 그야말로 낭비였기 때문이다.

후우…… 후…….

검광이 흩어지자, 검은 교룡은 땅에 엎드린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비록 그 호흡은 이전보다 더욱 거칠었지만, 그의 상태는 확실히 전보다 나아진 것이 보였다.

성황신도 교룡처럼 일시에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방금 그 괴이한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계 선생님과 함께 있으니 그는 하늘이 무너져도 믿을 구석이 있다는 막연한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쌍공교촌 타작마당 주위를 둘러보니, 민가에 숨어있던 백성들은 방금 가까운 거리에서 울려 퍼진 용의 포효와 귀를 날카롭게 찌르는 괴이한 비명을 듣고서 귀에서 피를 흘리며 정신을 잃은 상태였다.

다만 성황신이 제때 손을 써 무지갯빛 광채로 넓은 이 일대를 모두 뒤덮었고, 이에 백성들은 그 이상으로 크게 다치지는 않았다. 대부분은 깨어난 후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하겠지만, 이후의 생활에 오늘 겪은 일이 영향을 주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곧 백성들이 느낄 놀라움과 당황스러움은 그들도 어찌 손을 쓸 수 없었다.

계연은 법안을 모두 뜨고서 교룡의 몸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와 동시에 상공을 훑어보며 잠시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법안이 비록 신비롭다고는 하나, 여러 상황을 겪은 덕분에 계연의 견식이 늘어난 후에는, 비록 법안을 모두 열어도 무언가는 볼 수는 없다는 걸 직관적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이 세상에 완전히 모습을 숨기는 술법이 존재하기는 어려웠다. 하지만 알아챌 수 없을 정도로 아주 은밀하게 몸을 숨기는 것까지는 가능했다. 통찰력이라는 것도 상대적인 능력이라, 법안으로 본들 아주 세심하게 살펴야 무언가를 포착해낼 수 있었다. 게다가 계연의 법안을 피해서 몸을 숨길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었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후, 계연은 한숨을 돌리며 당장은 아무 일도 없을 거라는 판단을 내렸다.

“자, 이제 말씀해 보실 수 있죠?”

“허…… 허억……!”

교룡이 숨을 몰아쉬자 그의 입 주변으로 하얀 연기가 한 줄기씩 뿜어져 나왔다. 하지만 다행히 몸에서 빠져나가던 수택의 정기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발로 몸을 지탱해 일어나려던 그는 몇 번 시도하다가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그래서 교룡은 어떻게든 계연을 향해 머리를 숙여 보이려 노력했다.

“감사…… 목숨을 구해주신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선생이 아니었다면 저 묵영(墨榮)은 목숨을 잃었을 것이고…… 평안을 얻지도 못했을 겁니다!”

교룡은 안구를 이리저리 굴리며, 호박색의 두 눈으로 주위를 살펴보았다. 그는 자신의 주변 마을을 훑어보다가, 여순부 성황신 이보천을 잠시 보고는 다시 계연에게 시선을 돌렸다.

“계 선생님, 부디 용왕을 이곳으로 모셔와 주시겠습니까? 저는 힘줄이 뽑힌 데다 몸의 정기도 거의 흩어졌으니, 아마 시간이 그리 많이 남지 않았을 겁니다. 하지만 제가 알게 된 일은 직접 용왕께 고해야 제가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성황신은 눈썹을 찡그리며 놀란 듯 물었다.

“설마 계 선생님조차 상대가 안 된다는 뜻입니까?”

수염을 흔들어 보이는 교룡의 눈에는 피로가 가득했다.

“계 선생님께서는 한마디 말로 칙령을 사용해 삿된 것을 속박하였으니, 분명 법력이 대단하신 고인이 맞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무래도 용왕을 더욱 신뢰하다 보니…… 부디 양해해 주십시오!”

용은 이렇게 입을 열자 그에게서 옅은 비린내가 났다.

“후우…… 허억…….”

짧은 몇 마디를 한 후, 교룡은 가진 힘을 거의 소모한 듯 숨을 몰아쉬었다.

“알겠어요, 제가 즉시 통천강에 소식을 보낼게요!”

계연은 그리 쩨쩨한 성격이 아니었으므로 이에 별로 개의치 않았다. 어찌 되었든 교룡은 요괴였으므로, 자신을 잘 믿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정상이었다. 어쨌든 묵영은 통천강 일족처럼 자신과 가까운 사이도 아니었고, 춘목강 강신처럼 자신을 우러러보는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용들은 비록 죽음을 앞두고 있다고 해도 그 자긍심이 대단했다.

계연이 망설이지 않고 검지로 공중을 가리키자, 넝쿨검이 곧바로 하늘로 떠올랐다. 넝쿨검은 떨어지는 벼락을 맞으면서 먹구름을 통과해 위로 올라갔다. 곧이어 구름 위 고요한 곳에 이르자, 넝쿨검은 경기부 방향으로 재빨리 날아갔다.

“계 선생님, 아무래도 교룡이 계속 이곳에 있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듯합니다. 선생님께서 이 분을 광동호로 옮겨 주실 수 있겠습니까?”

성황신은 용의 추락으로 인해 평범한 백성들에게 갈 영향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는 계연이 어떻게든 이 수십 장에 달하는 거대한 교룡을 30리 밖의 광동호로 보내주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성황신의 말뜻은 힘으로 용을 들어 올려달라는 것이 아니라, 술법을 이용해 운반해달라는 뜻이었다. 이를 통칭 반운법(搬運法)이라 하는데, 귀신을 부리거나 법력을 이용해 변화를 만들어내는 등 각각의 이점이 있는 다양한 술법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계연은 희뿌연 눈을 조금 크게 떴다. 칠흑처럼 검은 비늘이 교룡의 커다란 몸체를 뒤덮고 있었다.

‘이렇게 큰 걸 내가 옮길 수 있을까?’

그러나 교룡을 계속 여기에 두는 것은 확실히 적절치 않았다. 비가 그치면 많은 이들이 몰려들 것이고, 용의 기운이며 그가 뿜는 위엄으로 인해 담력이 작은 어떤 이들은 놀란 상태로 죽을지도 몰랐다.

곧 그칠 비를 떠올리자 계연은 자신도 모르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가 어쩌면 자신을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몰랐다.

그는 양손을 교차해 소매를 휘둘렀고, 엄청난 양의 법력이 법결(*法訣: 도법(道法)이나 비술(秘術)을 쉽게 전수할 수 있도록 만든 어구)을 따라 흘러나왔다. 동시에 계연이 소매 안에서 바둑돌이 모습을 드러냈다.

계연의 단전은 크지도 않았고, 그의 법력 또한 그 경계가 넓지도 않았지만, 의식 세계 속의 단로에서 나오는 단기만은 충만하다고 할 수 있었다. 그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바로 기의 순환이 빠르다는 것이었다. 방금처럼 단번에 엄청난 양의 법력을 소모하지만 않는다면, 소모되는 법력의 양이 일정하다는 전제 아래 끝없는 기운을 끌어다 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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