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216화 (216/892)

216화. 홍수가 나다

계연이 술법을 펼치자, 빗방울들이 어느 한 곳으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그러자 근처에 떨어지는 빗줄기가 폭우에서부터 점차 가느다래지더니, 곧 가랑비 정도로 변했다.

솨아아…… 솨아아……!

성황신은 발밑에 흐르는 물이 점점 높이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주변을 둘러싼 마을 건물들을 바라보니, 거기에도 이미 물이 가득 차 있었다. 비록 그 수위가 문을 넘어설 정도였지만 그 물은 기이하게도 건물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았다.

‘정교하고도 교묘한 어수술이구나!’

처음부터 토지신으로 받들어진 이들과 달리, 거의 모든 성황신은 향불과 원력의 힘에 의존해 수행해온 신령들이었다. 그래서 이들은 귀신들이 부리는 술법이나 이른바 ‘저승’의 술법에 더 익숙했다. 이들에게는 육신이 없었으므로 오행(五行)을 부리는 술법에는 큰 제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이들이 금신(金身)이나 법체를 만들어낸다고 해도, 그것을 자신의 주된 능력으로 삼아 수련하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성황신들이 다른 이들이 오행을 부리는 술법을 펼쳤을 때, 그게 어느 정도 수준인지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었다.

비록 계 선생은 술법 하나만을 부렸지만,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말이 있다. 이 술법을 본 여순부 성황신은 계 선생의 각종 술법 실력이 분명히 뛰어날 거라고 추측하게 됐다.

솨아아……!

물의 수위는 점점 더 높아지다가 마침내 검은 교룡의 몸을 완전히 뒤덮었다.

비는 아직도 내리고 있었고, 쌍공교촌의 반 정도는 마치 커다란 호수에 잠긴 모양새였다. 때때로 파도가 넘실대며 마을을 뒤덮었지만, 그 물은 백성들에게 어떤 해도 끼치지 않았다.

사실 계연이 쓸 수 있는 술법이 많지 않은 데다가 아주 긴 시간 동안 오직 약간의 어화술과 피수술로만 살아왔기에, 자연히 이러한 술법을 부리는 계연의 능력은 더욱 세밀하게 발전할 수밖에 없었다. 계연은 사실 비교적 절묘한 방법을 찾아낸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게다가 칙령음은 그가 각종 법결을 더욱 손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계연은 왼쪽 소매 안에 바둑돌을 쥐고 있었기 때문에, 주위의 영기와 교룡에게서 새어 나온 수택의 정기를 흡수해 그가 쓰는 법력의 양을 줄일 수 있었다. 그로 인해 어수술을 지금 이 정도의 정교한 수준으로 부릴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곧 계연은 물에 완전히 잠긴 교룡을 보고서 문제점 하나를 발견했다.

‘아무래도…… 물에 잠겨서 떠오르진 않을 것 같네.’

교룡의 몸은 밀도가 너무 높은 데다 매우 무거워서, 마치 수십 장 길이의 주석처럼 물살 아래에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계연이 현재 가진 어수술의 수준으로 볼 때, 천천히 채워지는 기의 흐름으로 법력을 운용한다면 커다란 파도를 일으키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만약 하늘을 뒤덮는 수준의 해일을 만들어내야 한다면, 그의 법력을 극한까지 끌어다 써야 했다.

즉, 그의 힘은 끊임없이 졸졸 떨어지는 물줄기와 비슷하여 폭발적인 힘이 부족하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다행히 계연은 그런 걱정을 오래 하지 않아도 되었다. 잠시 후 혼수상태였던 교룡이 깨어나 자신이 물 아래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활력을 조금 되찾아 정신을 차렸기 때문이다.

묵영은 물살의 온화함을 느낄 수 있었는데, 그에 더해 이 물에는 충만한 영기와 수택의 정기가 담겨 있었다. 이는 천천히 그의 체력을 회복시켰고, 그가 느끼던 통증도 현저하게 줄어들고 있었다.

“정말 감사합니다, 계 선생님!”

교룡의 수염 두 개가 물살 안에서 이리저리 흔들렸다. 한 쌍의 호박색 눈이 모습을 드러내더니, 그는 네 발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어서 물살 아래 거대한 용의 몸뚱이가 마치 뱀처럼 이리저리 움직였다.

촤아!

새로 나타난 이 ‘거대한 호수’에서 물보라가 솟구치며 ‘바닥’에 있던 거대한 교룡이 슬슬 헤엄쳐 올라오기 시작했다.

계연은 한숨을 돌린 뒤 어풍술을 이용해 물의 수위를 점점 높여, 광동호 방향까지 이어지도록 만들었다.

마을과 광동호 간의 거리는 30리 정도로,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성황신이든 계연이든, 심지어 교룡에게도 이는 산책이라고 부르지도 못할 짧은 거리였다. 하지만 이 순간 이 거리는 그들에게 있어 ‘머나먼 장정’처럼 느껴졌다.

여순부 성황신은 처음에 계 선생이 왜 이토록 정교한 어수술을 부려서까지 교룡이 광동호로 헤엄쳐 가도록 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렇게 하면 소모되는 힘과 법력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바로 교룡을 호수로 옮기는 것이 훨씬 간단했을 것이다.

하지만 천천히 성황신은 이에 담긴 뜻을 알아차렸다. 물살을 헤치고 나아가는 교룡의 몸짓이 점점 자연스러워졌고, 점차 교룡이 제정신을 되찾는 것이 그의 눈에 보였다.

‘과연 듣던 대로 계 선생님께서는 마음가짐이 올바르고 수행에 최선을 다하는 이들 모두를 존중하시는구나.’

여순부 성황신이 이렇게 생각하는 동안, 교룡은 조금이나마 기력을 회복한 데 이어 원래는 서지도 못하던 몸으로 물살을 가르며 유영하기 시작했다. 이에 그는 자신이 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좀 더 오랫동안 버틸 수 있겠다는 굳건한 믿음이 생겼다.

* * *

쌍공교촌에는 사실 작은 개천 하나가 마을을 감싸고 지나가고 있었다. 그래서 마을 앞뒤로 아치교(拱橋)가 하나씩 세워져 있었고, 바로 이 때문에 마을의 이름이 쌍공교촌이 된 것이다.

계연은 어수술을 부리고, 교룡은 계연이 어수술로 만든 물길을 따라 헤엄쳤다. 이들은 서로 힘을 모아 물길을 작은 개천으로 향하게 했다.

다만 이 개천은 너무 작아서 교룡을 품을 크기가 못되었기 때문에, 교룡이 개천에 다다른 뒤에도 6, 7장(*18~21m) 정도 되는 파도가 교룡을 감싸고 있었다. 그에 더해 개천 양쪽 약 300m 정도 되는 거리까지 그 물살이 퍼졌다. 이 거대한 ‘호수’는 엄청난 위세로 전방을 향해 몰아치는 것처럼 보였다.

이 개천은 광동호와 이어졌는데, 그 중간 30여 리(*약 11km)정도의 거리에는 마을 몇 곳이 있었다. 이때 마을 사람 하나가 비가 쏟아지는 와중에, 어마어마하게 불어난 개천 양옆의 물이 이쪽을 덮쳐 오는 모습을 보고는 아연실색한 얼굴로 크게 소리쳤다.

“홍수…… 홍수다!”

“홍수가 났어!”

“세상에! 개천의 물이 저렇게나 높아졌다고?”

마을에는 큰 소란이 일어났고, 백성들은 경황없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곧 이 땅을 다 뒤덮을 것처럼 덮쳐 오던 거대한 파도가 개천의 모양을 따라 순순히 흘러가는 것을 발견했다. 물은 강기슭 양옆의 백성들이 모여 사는 지역에는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았으며, 사람들에게 밀려오는 물살이라고 해봤자 고작 발목에 채 닿지도 않는 수위였다.

이와 동시에, 지대가 높은 곳에 살던 사람들은 이 거대한 파도가 아래로 흘러가는 것을 지켜보다가 거대한 형체의 무언가가 그 안을 헤엄쳐 가는 것을 발견했다.

쌍공교촌에서 광동호까지 30리의 여정은 총 한 시진 남짓 걸렸다. 계연이 소모한 법력의 총량은 제쳐 두고라도, 심신의 소모도 적지 않았다. 계연은 영기와 교룡이 뿜어내는 수택의 정기를 모으는 동시에 이 거대한 물살을 잘 통제하며 앞으로 나아가야 했기 때문이다.

계연과 교룡이 만든 물길이 지나가자, 개천의 너비는 이전의 몇 배로 넓어졌다. 게다가 많은 곳에는 뱀이 지나간 듯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시작점인 쌍공교촌의 타작마당에는 거대한 몸체의 무언가가 기어갔던 흔적이 개천까지 이어져 있었다.

검은 교룡은 물길을 따라 헤엄쳐 광동호에 들어갔다. 이에 개천 근처에 정박해 놓았던 고깃배들은 갑작스레 일어난 파도에 위아래로 넘실거렸고, 광동호의 수면은 몇 분 후 점차 잔잔해졌다.

광동호에 들어오자, 교룡은 비록 상처는 그대로였지만 마치 집에 돌아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더욱더 의지를 불태우며 정신을 다잡을 수 있었다.

비는 아직도 그치지 않았지만, 이전과 비교하면 그 기세가 많이 줄어든 상태였다. 방금 교룡이 많은 물을 이끌고 호수로 들어와, 호수의 수면에는 파도가 일었고 강기슭에 정박 된 배들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비는 아직 그치지 않았지만, 기슭에 살던 어민들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도롱이와 두립을 걸치고 자신의 배를 점검하러 나왔다.

방금 일어난 파도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기이한 사건이었다. 하지만 이 배는 어민들에게 있어 중요한 생존 수단이었기 때문에, 기어코 밖으로 나온 것이다. 어민들은 정박해 놓은 배가 사라지거나 손상을 입지 않은 걸 확인하고는 한숨을 돌리며 집으로 향했다.

오늘 일어난 일에 나이 많은 이들은 매우 불안해했다. 예전에 광동호에서 돌연 큰 홍수가 일어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수많은 가옥이 무너지고 실종된 사람이 부지기수였기 때문이다.

* * *

계연과 여순부 성황신 이보천은 광동호 근처에 서서 평온한 수면을 바라보았다. 호수로 들어간 교룡은 이미 광동호 깊은 곳을 향해 잠수해 들어간 것 같았다.

“계 선생님께서는 교룡 묵영의 내력을 아십니까?”

성황신은 불안해하며 상황을 살피러 나온 어민들을 보다가 계연에게 이렇게 물었다.

계연은 이때 응굉이 언제쯤 올지 계산하고 있었다. 통천강과 광동호는 각각 경기부에서 완주로 서로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다. 넝쿨검이 최대한 빠른 속도로 움직이면 한 시진 정도 걸릴 테고, 진룡인 응굉은 비거술이 당연히 뛰어날 테니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는 이곳에 도착할 터였다. 다만 그가 집에 있고, 바로 올 수 있는 상황이라는 전제가 깔려야만 했다.

성황신의 말을 듣고 계연은 사실대로 대답했다.

“저는 완주에 처음 오는 것이고, 이 광동호에 온 것도 오늘이 처음이에요. 그래서 저 교룡의 내력은 잘 알지 못해요.”

사실 계연이 처음 광동호라는 이름을 들은 것은 예전에 위무외를 납치하려 했던 검은 옷의 남자에게서였고, 그 외에는 책으로 읽은 것이 전부였다.

성황신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반대편 기슭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한 호수를 바라보았다.

“대략 40년 전, 완주의 견직 산업이 완전히 발달하지 않은 때였습니다. 그때 광동호 인근 마을에는 ‘화 대왕(花大王)’에 대한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화 대왕이요?”

계연은 호수를 바라보다가 온몸이 칠흑처럼 검은 교룡을 떠올리며, 누구도 그에게는 꽃이란 의미의 ‘화(花)’자를 붙이지 않았으리라고 짐작했다.

“예, 화 대왕은 색깔이 화려한 한 독두꺼비의 이름이었습니다. 그놈은 광동호에 최소 수백 년 동안 몸을 숨기고 있었는데, 도력이 깊고 교활한 데다 밑에 요괴들도 몇 부리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약 백여 년 전부터 점점 날뛰기 시작하여, 호수에 떠 있던 배를 뒤집어 백성들을 먹어치우곤 했습니다.”

계연은 눈썹을 찡그리며 성황신을 바라보았다. 계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의 눈빛에서 의아함을 알아차렸기 때문에 성황신은 계속해서 이야기했다.

“광동호는 세 부(府)와 맞닿아 있었기 때문에 세 지역의 성황신들도 당연히 이 일을 수수방관하지 않았습니다. 연속으로 비슷한 일이 발생하자, 저승에서는 호수에 요괴가 있다고 확신하고 광동호를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 요물이 돌연 술법으로 인근 어촌 백성들에게 악몽을 꾸게 하여, 자신을 위한 사당과 신상을 세우게 했습니다. 게다가 제물로 어린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요구하며, 자기 자신을 화 대왕이라 칭했지요!”

성황신은 이렇게 이야기하며 차갑게 비웃었다.

계연도 눈을 가늘게 뜨고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무슨 무슨 대왕이라는 이름은 대정국에서는 극히 보기 드문 일이었다. 먼저 대정국에는 요물의 수가 적었고 그중 도력이 깊은 오래 묵은 요물은 더욱 적었으며, 그중에서 자

기 자신을 ‘요왕(妖王)’이라고 칭하는 것은 더더욱 드문 일이었기 때문이다.

성황신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광동호에는 호수의 신이 없으니, 저를 비롯한 호수 근처의 신령들은 모두 힘을 합쳐 광동호를 소탕하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그 요물은 무척 교활해서, 1,000척(*약 300m)은 거뜬히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수심이 가장 깊은 곳에서 몇몇 요괴들과 함께 몸을 숨겼습니다. 그곳은 빛이 들지 않아 아주 어두운 데다 수중 동굴이 여러 개 있는 곳입니다. 그들이 가진 법력에 더해 어수술까지 부리니, 저희는 그들을 찾아낼 수가 없었습니다. 한 달이 넘도록 아무것도 찾지 못하자, 저희는 결국 그 요물들이 강물을 따라 도망쳤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약 40년 전까지는 그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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