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218화 (218/892)

218화. 죽은 후에도 물길을 타다

‘그러고 보니 성황신도 좀 전에 내게 알 수 없는 말을 했던 것 같은데!’

계연은 용이 떨어져 잠시 뒤로 미뤄둔 일을 떠올렸다. 그래서 성황신이 일전에 말한 ‘대정국은 곧 다사다난한 가을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번 자세히 물었다.

원래 계연이 묻고 싶었던 것은 어떻게 자신의 외적 특징에 대해 알고 있느냐였는데, 이는 약간의 추측을 통해 스스로 알아낼 수 있었으므로 그다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성황신이 설명한 내용은 계연도 모두 아는 일이었다. 대정국의 사직(社稷)은 원덕제의 치하에서 기묘한 시기를 맞이하고 잊었다. 경기부 황족들과 조정 대신들 사이에는 분쟁이 극렬하게 일어났고, 국내 각 지방의 정무(政務) 부분에서도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런 속세의 일을 제외하더라도 천기각의 일로 수많은 이목이 대정국으로 쏠려 있었기 때문에, 지위가 높고 소식에 통달한 신령들의 마음에 점차 근심이 쌓이고 있었다.

계연이 생각하기로는 이런 상황에서 어느 높으신 신령들에게 자신이 알려지며 자신이 유명세를 얻게 된 모양이었다. 계연의 생각대로 얼마 전의 그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검세(劍勢)’도 계연의 신통함과 더불어 널리 알려졌다.

* * *

검은 교룡 묵영이 머물던 곳은 동해 밖 어딘가였다. 하지만 교룡이 진룡으로 거듭나고 싶다면, 물길을 타는 것이 오래된 정도(正道) 중 하나였다. 홍수를 일으키고 물길을 타는 것은 둘째치고, 그 시작점을 선정하는 것에서부터 도중에 통과하는 산천(山川)과 호수며 연못 등의 각 지형까지 모두 신중히 검토해야만 했다. 광동호는 대정국 4대 호수 중 하나로서, 사방의 기운은 물론이고 동쪽과 서쪽의 수택의 기운이 모여드는 곳이었으므로 수행하기에 그보다 적합한 장소가 없었다.

그러나 교룡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여,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바다로 헤엄쳐 가 그 안의 바다생물들을 먹어 치우기도 했다. 이번에도 그렇게 식사를 하고 동해에서 돌아오는 길에 그는 이런 공격을 당한 것이다.

그를 공격한 것들은 원래 그가 대정국으로 도망치도록 놔둘 생각이 없었다. 악념의 술법으로 그를 제압한 뒤, 대정국 국경 안에서 자신들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끔 만들 계획이었다. 다만 묵영의 성격이 독하여 그는 자신의 여의주를 파괴하고, 그들 중 하나를 물어뜯은 후에 고통을 참고 대정국까지 날아온 것이었다.

그가 오직 굳센 의지만으로 완주에 도착했을 때, 그에게는 이미 통천강까지 갈 기력이 남지 않게 되었다. 이에 계연과 여순부 성황신이 본 그런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통천강의 늙은 용은 크게 노하여 대정국의 국경을 순식간에 벗어났다. 이는 대정국의 경계에 자리 잡은 요괴며 마귀들에게 한 가지를 떠올리게끔 했다. 대정국에는 ‘하늘을 뒤덮는 기세의 선검’을 부리는 숨겨진 신선이 있고, 천 살이 넘은 진룡이 한 마리 있다는 소문이었다. 어쨌든 응굉은 이들에게 ‘진룡이 노하면 온 세상이 벌벌 떤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실감하게 해주었다.

응굉은 여의주를 입에 물고 동해에서부터 시작해 남쪽에 이르기까지, 그의 눈에 거슬리는 요괴, 마귀, 온갖 삿된 것들을 전부 죽였다. 그들이 정말로 묵영을 공격한 일에 관련이 있는지, 요기나 마기가 드러나는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지도 묻지도 않았다.

진룡이 지나간 곳에는 검은 구름이 뒤덮이고 천둥 번개가 내리쳤다. 올바른 방향으로 수행을 닦던 요물들도 어쩌다 삿된 것들과 함께 있었다는 이유로 함께 목숨을 잃었다.

이후에 늙은 용은, 그런 삿된 것들과 함께 있었다면 어쨌든 제대로 된 것들이 아니라는 논리를 계연에게 펼쳤다. 그들은 조만간 잘못된 길로 빠질 것들이었으며, 만약 그중에 정말로 성품이 맑고 고결한 요괴가 있었다면 그건 그냥 운이 나쁜 것이었다.

이 일을 겪고 나서 응굉과 계연은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동토의 운주, 최소한 대정국 주변 지역에 이미 이렇게나 삿된 것들이 많이 존재하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는 이전에 응굉과 계연이 추측했던 수보다도 훨씬 많았다.

* * *

용이 떨어진 지 열흘 후, 광동호 1,000척(*약 300m) 아래 바닥에 있는 모래 언덕.

그곳에는 대섶으로 된 장포를 입은 응굉과 하얀 장삼을 입은 계연이 함께 서 있었다. 성황신은 일찍이 성황당으로 돌아간 뒤였고, 모래 언덕에는 수십 장(丈)에 달하는 길이의 거대한 검은 교룡 하나가 누워 있었다.

이 교룡은 여기에서 수십 년을 살았고, 항상 자유로운 생활을 하며 집조차 짓지 않았다.

묵영은 겨우 숨만 붙어있는 상태였는데, 굳센 의지로 이미 열흘 정도를 버텨낸 것이었다.

만약 교룡이 세상을 떠날 날이 다가온 것이 아니라면, 응굉은 아직도 바깥에서 분노를 내뿜고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는 살기를 거두지 못하여, 흉흉한 기운이 응굉의 몸을 감돌았다. 동시에 짙은 용의 기운이 끊임없이 주변으로 뻗어 나갔다.

용들은 죽은 후에 큰 예외가 없다면, 그 혼이 물과 섞이게 된다. 그 과정에서 점차 몸의 혼백이 흩어지다가, 바다에 이르면 그 온몸이 녹듯이 사라진다. 그 후에 남는 것은 진령(眞靈)의 기운이다.

진령의 기운은 기본적으로 어떤 사고도 생각도 할 수 없는 상태이다. 그것은 일종의 특수하고 순수한 영기처럼, 망망대해 또는 천하의 물길을 따라 사방으로 떠돌게 된다. 그러다 어느 날 하늘의 보살핌을 받는, 물에 사는 운 좋은 생명체를 만나게 되면, 그 몸 안으로 들어가 그 생명이 영지를 얻도록 한다. 그럼 그것은 새로운 신체를 얻은 셈이고, 언젠가는 다시 교룡 또는 진룡이 될 수도 있는 법이다.

일단 교룡이 되어 용족이 되면, 전생의 기억이 수행하며 점차 돌아오게 된다.

이는 아주 신기한 과정으로, 진룡으로 거듭나는 과정과 마찬가지로 ‘물길을 탄다’라고 불리지만, 이 둘은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

계연이 보기에 이것은 용들만의 독특하고도 신통한 힘이었으며, 동시에 적당히 낭만적인 힘이기도 했다. 용족이 되는 결과를 얻기까지는 아주 희박한 확률에 의존해야 하기에 이렇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교룡은 자신들만의 긍지가 있어, 용들 대부분은 이 희박한 확률에 기회를 걸지라도 귀룡(鬼龍)으로 남고 싶어 하지 않았다.

“묵영, 이 늙은이가 자네에게 손을 쓴 자들을 전부 죽였는지는 확실치 않네. 하지만 내 친히 자네를 위해 저승에 보낸 이들이 적지 않으니, 안심하고 가도록 하게!”

늙은 용은 자신의 사나운 기운을 갈무리하고, 탄식하며 이렇게 말했다. 계연은 그의 옆에 조용히 서서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교룡의 호박색 눈은 여전히 광채를 띠고 있었는데, 이 칠흑 같은 물속에 마치 커다란 등롱 두 개를 걸어 놓은 것 같았다.

“허…… 허억…….”

마지막으로 내뿜은 용의 기운은 교룡의 입에서 흩어져, 방울방울 머리 위의 수면으로 솟아올랐다.

다시 몇 분이 지나자, 용의 기운과 남아 있던 원기가 모두 흩어졌다. 용의 몸뚱이는 더는 움직이지 않았고, 호박색 동공은 마치 빛이 꺼진 듯했다.

“용왕, 부디 잘 지내십시오.”

거친 목소리가 교룡의 입에서 울려 퍼졌고, 뒤이어 그의 두 눈이 천천히 감겼다.

바로 그때, 교룡의 몸에서 커다란 기포들이 퐁퐁 솟아나더니, 물줄기 하나가 그의 몸에서 넘쳐흘렀다. 계연이 법안을 크게 열어 살펴보니, 용의 그림자가 이곳을 떠나가는 모습이 보였고 그 뒤로는 어떤 것도 느낄 수 없었다.

이는 계연이 용족이 죽은 후 ‘물길을 타는’ 것을 보는 첫 경험이었다. 또한, 요물이 자연적으로 사망하는 것을 지켜본 최초의 경험이기도 했다. 용의 혼이 그림자처럼 변해 사라지던 순간, 계연은 수행하는 생명체들과 생명의 의의에 대해 어떤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다.

계연은 아직 호수 바닥에 남아 있는 거대한 용의 시신을 보았다. 이미 용의 기운이며 영기가 시신에서 모두 사라져, 어떤 신비로운 기운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아주 무거워 보인다는 특징 외에는 용의 시신은 그저 평범해 보였다. 작은 물고기나 새우들도 그 근처를 유유히 헤엄칠 뿐이었다. 보아하니 아주 긴 시간 동안은 썩지도 않을 것 같았다.

만약 어느 날 극심한 가뭄이 광동호의 물을 마르게 하거나, 매서운 기세의 홍수가 일어나 범람하게 된다면, 호수 바닥에 자리한 용의 시신 또는 그의 뼈가 드러날 수도 있을 것이다.

* * *

여순부에는 기이한 폭우가 한바탕 내린 후, 이상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다. 특히 쌍공교촌 백성들이 경험한 것이 그중 제일 신기하다고 볼 수 있었다.

백성들은 절대로 우둔하지 않았다. 각지에 비가 내린 일에 관해 이들이 얘기하며 교류하다 보니, 아주 신비로운 색채를 띤 이야기 하나가 퍼지기 시작했다. 중요한 몇 가지 사실만 제외하고, 계연이 들은 백성들의 이야기는 거의 진실을 완벽하게 표현했다고까지 말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광동호에 용이 떨어진 사건은 멀리 퍼져 나가게 되었고, 전해질 때마다 이 사건은 더욱 허무맹랑한 이야기처럼 변했다.

* * *

유월 넷째 날, 여순부 지부는 둘째 아들의 만월연을 크게 열었다. 여순부 각지의 관원은 전부 만월연에 참석했고, 완주에서 어느 정도 체면 있는 이들은 전부 지부로 선물을 보내왔다. 주부에 있는 지주 대인조차 축하 선물을 든 사람을 보내오기도 했다.

윤재성도 어쩌다 한번 이런 연회를 여는 것이라, 크고 성대하게 준비하려 했다. 원래는 여순부의 한 주루 전체를 빌리려고 했는데, 그곳의 가격과 자신이 받는 봉록을 비교해 보고는 부에서 연회를 마련하기로 했다.

계연이 부에서 머무르는 동안, 윤청과 임흠걸 등의 이들은 모두 계연이 머무는 곳의 곁채에 묵었다.

연회날 아침, 윤청은 일찍 일어나 좋은 옷을 갖춰 입고 아버지를 도와 손님 접대를 도왔다. 윤청은 사리에 밝고 영특하여 손님 접대를 맡기기에 가장 적합한 상대였다.

연회에 참석하기만 하면 되는 손님인 계연, 임흠걸, 뇌옥생과 막휴는 일찍 일어날 필요가 없었다. 더구나 계연은 원래 습관대로,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잤다.

임흠걸, 뇌옥생, 막휴 세 사람은 일어나자마자 몸을 씻은 후, 계연이 머무는 객사 바깥에서 그를 기다렸다. 그들은 이미 한 달이 넘도록 이렇게 같은 시간에 찾아와 계연을 기다리곤 했는데, 이들이 시간을 헤아려보니 곧 계 선생께서 일어나실 시간이었다.

끼익-.

곧 청색 장포를 입은 계연이 방 안에서 문을 열고 나왔다.

“계 선생님, 좋은 아침입니다!”

임흠걸, 뇌옥생, 막휴는 이구동성으로 계연을 향해 허리를 굽히며 이렇게 인사했다.

계연도 웃으며 그들을 향해 차례대로 공수했다.

“좋은 아침이네요!”

자신에 대한 이 세 사람의 약간 과하다 싶은 존경심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 계연도 사실은 그 원인을 알고 있었다. 바로 윤청이 가지고 있던 그 서신 때문일 터였다.

계연의 생각대로 그들은 직접 그 서신의 신비로운 능력을 목격했을 뿐만 아니라, 계연이 쓴 글씨만 보아도 계연은 충분히 공경할 만한 상대였다. 그래서 이들은 예의 바르게 계연을 모셨고, 기회가 된다면 계연의 묵보(墨寶)를 받아가고 싶어 했다.

윤 문곡(文曲)의 묵보도 아주 진귀하지만, 그는 조정의 관원인 데다 윤청의 부친이라 그들은 감히 그에게 글씨를 청할 엄두를 내지 못했고 매일같이 이렇게 얼굴을 보일 수도 없었다.

비록 이들이 윤청에게 묵보를 얻어 달라 수차례 부탁하긴 했지만, 윤청은 좀체 입을 떼지 못했다. 자신이 그렇게 해서 글씨를 얻어준다면, 이후에 혜원서원에서 조용한 나날을 보내지 못하리라는 걸 윤청은 알았다. 그래서 윤청은 자신의 아버지가 글씨를 써서 파는 사람도 아니라 가훈을 따라야 한다는 이유로 그들의 요청을 거절했고, 오히려 그들에게 직접 자신의 부친께 부탁해보라고 말했다.

이들이 직접 글을 청하는 것과 윤청이 이들을 대신해 부탁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게다가 윤청은 부친의 성격으로 볼 때, 자신의 동창들이 부친께 찾아가 글을 부탁하면 분명 아버지께서 글을 써 주리라는 걸 알았다. 그렇게 되면, 나중에 혜원 서원으로 돌아간 후에도 다른 이들이 자신에게 부탁해오지 않을 것이다.

막휴를 비롯한 세 사람은 산에서 여우 요괴를 만나 목숨을 잃을 위기까지 겪었는데도, 자신들의 ‘우상’을 대면하자 말조차 제대로 걸지 못했다. 계연의 전생에서 연예인들을 쫓아다니던 극성팬들과 이들을 비교하자면 땅과 하늘만큼의 차이였다. 이들은 윤재성과 함께하는 몇 차례의 식사 자리에서 숨도 크게 쉬지 못할 정도로 긴장해 있었다. 윤재성이 이들의 학업이나 생활에 대해 질문하면 겨우 대답만 하는 정도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