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9화. 용이 떨어진 곳
계연은 세 사람이 군기가 바짝 든 채로 자신을 쳐다보는 모습을 보고, 먼저 회랑으로 걸어가면서 이렇게 물었다.
“함께 아침 식사나 할까요?”
“예.”
“네!”
세 사람은 얼른 그의 뒤를 쫓아가, 계연과 서로 그간 보고 들은 것이나 흥미로웠던 일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세 사람은 계 선생님이 친절하고 온화하며 재치 있는 데다 학식도 깊다고 생각했다. 자신들이 잘 이해하지 못했던 일도, 계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나자 돌연 눈앞이 밝아지듯 그 이치를 깨닫게 된 적도 많았다. 이렇게 이들은 계 선생님과의 대화를 통해 다양한 지식을 얻었다.
사실 이 며칠간 계연도 이 세 사람을 관찰하고 있었다. 이들은 아직 나이도 어리고 미숙했지만, 발전의 여지가 무궁무진한 좋은 인재들이었다. 후에 변하게 될 수도 있지만, 최소한 현재는 품성 또한 단정했다.
모두는 다 함께 응접실에서 아침 식사를 했는데, 계연이 가장 먼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남은 세 사람은 여전히 훈툰(*餛飩: 물만두나 만둣국과 비슷한 요리로, 주로 아침 식사로 먹음)을 먹고 있었는데, 계연은 함께 나누던 대화나 아침 식사와는 무관한 말을 툭 던졌다.
“세 분의 나이가 아직 약관(*弱冠: 남자 나이 20세)이 되지는 않았지만, 모두 혜원 서원의 인재들이니 좀 더 일찍 과거 시험에 참여해 보세요. 몇 년 후에는 지방 관리들이 아주 많이 모자랄 거예요.”
임흠걸은 헤헤 웃으며 가장 먼저 대답했다.
“계 선생님께서도 현재 많은 관리가 부패했다고 보시는군요. 저희가 나서서 재능과 포부를 펼쳐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거죠?”
그러자 계연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계 선생님께서는 저희가 붙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장원 같은 건 꿈도 꾸지 않고, 관리만 되면 되거든요!”
막휴가 한껏 기대하는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다.
계연은 여전히 미소 짓는 얼굴로 대답했다.
“어쨌든 시험을 보지 않으면, 붙지는 않겠지요.”
“하하하…….”
“계 선생님의 말씀이 맞네요, 하하하…….”
웃으며 몇 마디 말을 나누는 세 서생은, 계연의 말에 숨겨진 중요한 속뜻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 * *
대정국의 수도가 있는 경기부의 황성에서는 막 조회가 끝난 참이었다. 어서방(御書房) 안에는 원덕제가 용안(龍案) 뒤에 앉아 있었고, 그가 신임하는 대신 몇 명, 오왕과 진왕을 비롯한 몇몇 황자들과 완주에서 온 정탐꾼들이 있었다.
원덕제는 머리가 모두 하얗게 센 모습이었다. 그는 용안 뒤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고, 다른 이들은 모두 그 앞에 서 있는 상태였다.
“말해 보거라, 완주의 최근 상황이 어떠했느냐?”
“예!”
중간에 서 있던 정탐꾼 하나가 앞으로 나서더니, 황제를 향해 예를 올렸다.
“폐하께 아룁니다. 저와 제 일행들은 윤 지부께서 보내주신 증거와 여러 정보를 토대로, 타초경사(*打草驚蛇: 풀을 두드려 뱀을 놀라게 한다는 뜻으로, 공연히 문제를 일으켜 화를 자초함을 비유)하지 않고 정체를 숨긴 채 완주 각 부를 다녀왔습니다. 과연 윤 지부의 말씀대로, 많은 지방이 겉으로는 번영한 모습이나 실은 민생이 불안하였고…….”
탁탁탁…….
원덕제는 그의 보고를 들으며 손가락으로 탁자를 두드렸다. 그 모습이 익숙했던 대신과 황자들은, 황제가 탁자를 두드리는 속도에 황제가 이미 짜증이 난 상태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마침내, 정탐꾼은 원덕제가 가장 관심을 기울이는 문제에 대해 보고했다.
“……각 부와 각 현의 관원 중에서 청렴한 관리들은 매우 적었고, 재물을 탐내는 탐관오리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윤 지부께서 보고해주신 그대로, 100가구를 관리하는 작은 이정(里正)조차 50경(*頃: 1경은 24,326㎡)의 전답을 소유하고 있었고, 매년 사리(私利)를 취하여 많게는 백은(白銀) 100냥까지도 빼돌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 위의 관원들이 사사로이 얻는 이익은 그보다 많으며, 계급이 위로 올라갈수록 그 금액이 더 많아지니 얼마나 많은 돈이 빼돌려지고 있는지는 정확히 계산하기 어렵습니다.”
“그야말로 법도 하늘도 무서운 게 없는 모양이구나!”
오왕이 참지 못하고 이렇게 소리쳤는데, 장차 제위를 이을 거라고 스스로 여기는 만큼 어떤 방면에 있어서 오왕은 그의 부황과 생각이 비슷했다.
“내가 네게 물었더냐?”
나이 든 황제는 오왕을 향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소자가 잘못했습니다!”
오왕은 서둘러 황제에게 자신의 실수에 대해 사죄했지만, 그의 얼굴에는 아직도 노기가 드리워져 있었다. 진왕을 제외하고는, 이곳에 있는 황자들 모두 완주가 비록 ‘기름기’ 많은 땅이라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란 것은 모르고 있었다.
황제는 계속해서 탁자를 두드렸다. 정탐꾼의 보고는 이미 끝났지만, 그는 이렇게 한마디 물었다.
“그 밖에 완주에서 보고할 만한 일은 없었느냐?”
그러자 정탐꾼들은 생각에 잠긴 듯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곧 서로를 쳐다보며 눈빛을 교환했다.
이를 본 진왕은 눈썹을 찌푸렸고, 오왕은 참지 못하고 큰 소리로 꾸짖었다.
“있으면 얼른 고하거라! 군주를 기만하려는 것이냐?”
“아닙니다! 아닙니다!”
정탐꾼들은 놀라 머리를 숙이며 몸을 굽혔고, 원덕제를 향해 사죄했다. 결국은 조금 전 입을 열었던 자가 다시 나서서 입을 열었다. 얼마 후 경기부에서 수륙법회가 크게 열릴 예정이었으므로, 최근 황제가 어떤 화제에 관해 관심이 있는지 그들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완주에서 일어난 사건은 비록 놀랍고도 두려운 일이었지만, 사람들이 헛된 생각을 하게끔 하기 쉬운 사건이었기 때문에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던 것뿐이었다.
“폐하께 아룁니다. 각 지방의 정무(政務)에 관한 일을 제하면 최근 완주에는 두 가지 큰 사건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윤 지부의 부인께서 아들을 낳으신 일이고…….”
“오, 과인이 잊을 뻔했구나. 윤 애경(*愛卿: 아끼는 신하를 이르는 말)은 국가의 동량(棟梁)이니 축하 선물을 준비해 보내거라.”
황제는 웃으며 혼잣말을 한 후, 그의 곁에 서 있던 태감(太監)에게 이렇게 분부했다. 그리고 다시 정탐꾼을 바라보며 그가 말을 잇기를 기다렸다.
정탐꾼은 주위에 선 대신들과 황자들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두 번째 일은…… 완주는 물론이고 그 주변 지역까지 떠들썩하게 만든 광동호에 용이 떨어진 사건입니다…….”
원덕제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멍하니 있다가, 정탐꾼을 쳐다보며 물었다.
“용이 떨어져?”
이미 말을 뱉었으니, 정탐꾼도 더는 이 주제를 말하길 꺼리지 않고 이렇게 답했다.
“그렇습니다. 최근 완주를 비롯한 그 일대에는 이 일을 모르는 자가 없을 정도입니다. 특히 쌍공교촌 일대의 백성들은 그 일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였고, 듣기로는 4월 20일 여순부에 돌연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고 천둥 번개가 쳤다고 합니다. 그곳 백성들은 용의 포효와 소가 우는 듯한 소리도 함께 들었다고 합니다. 이어서 용 한 마리가 검은 구름에 휩싸여 하늘에서 추락했고, 쌍공교촌의 타작마당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정탐꾼은 살짝 눈을 들어 조심스럽게 황제를 관찰했다. 황제가 그를 뚫어질 듯이 쳐다보는 것을 보고, 그는 침을 꿀꺽 삼킨 뒤 이어서 말했다.
“……그날 광풍이 불고 폭우가 쏟아져 내렸다고 하는데, 쌍공교촌의 백성들은 모두 소가 우는 듯한 용의 울음을 들었으며, 비가 내리는 와중에도 그 거대한 몸체를 언뜻 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곧 용의 포효에 놀라 정신을 잃었다고 들었습니다……. 후에 마을에 돌연 홍수가 일어나더니, 용이 개천을 따라 거센 물길을 만들어내며 광동호로 향했다고 합니다. 근처에 사는 백성 중 그 물길 속에서 유영하는 용의 그림자를 목격한 이가 셀 수 없이 많았습니다……. 현재 쌍공교촌에는 용이 헤엄쳐 지나간 흔적이 아직도 남아 있고, 그 개천은 용에 의해 몇 배나 더 폭이 넓어졌다고 합니다……. 보고드릴 내용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정탐꾼은 말을 마치고 나서도 차마 황제를 쳐다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황제는 잠시 넋이 나간 것처럼 멍하니 중얼거렸다.
“용이 있다니? 용이 있었어……. 그런데 용이 떨어졌다니……. 완주가 용이 떨어진 땅이라고…….”
어서방에 앉은 황제는 조금 비정상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용이 있다는 소식에 흥분한 동시에, 용이 추락한 일에 대해 불안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가 느끼는 불안함은 매우 강렬해서, 황제는 자신의 심장이 북처럼 쿵쿵 울리는 소리가 다른 이들에게까지 들릴 것만 같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원덕제는 돌연 비밀리에 올라온 상소 하나를 떠올리고는, 팔을 약간 떨면서 탁자를 이곳저곳 뒤지기 시작했다. 평소 당당하고 위엄이 넘치던 황제는 지금은 마치 정신이 나간 듯한 모습이었는데, 심지어 자신의 상태를 자각하지도 못하는 듯했다.
덜컹……!
탁! 타닥!
원덕제가 이리저리 거칠게 뒤적이자 쌓아 놓은 상소문들이 바닥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진왕은 충격을 받은 듯이 자신의 부황을 쳐다보고 있었다. 황제가 미미하게 손을 떠는 모습을 보니 무언가 중요한 일인 듯했지만, 이 순간 그는 씁쓸한 감정을 느끼며 심경이 복잡해졌다.
‘부황께서…… 이제 나이가 드신 거야.’
오왕조차 복잡한 눈빛으로 황제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나 곧 그의 얼굴에는 희색(喜色)이 떠올랐고, 곧이어 오왕의 표정은 평온하게 돌아왔다.
“찾았다……. 찾았어…….”
원덕제는 이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떨리는 손으로 상소를 집어 들었다. 그것을 조심히 열어보니, 제일 위쪽 상소를 올리는 사람의 이름에 여순부 지부인 윤재성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원덕제는 상소를 활짝 펼치고 빠른 속도로 읽어 내려갔다. 마치 무언가를 찾는 듯한 모습이었는데, 잠시 후 그는 찾던 글자를 발견해냈다.
‘소신의 의견으로는, 완주의 일은 절대 가벼이 넘겨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곳의 관원들은 황제 폐하를 기만하고 백성들을 속였으며, 무절제한 탐욕을 부리고 권세를 이용해 백성의 재산을 빼앗은 이들입니다. 이로 인해 민생이 불안해졌고, 대정국 강산의 사직이 위험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상, 계연이 이전에 했던 걱정에도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당시 그가 윤재성에게 황제는 수륙법회를 준비하는 데에 온 신경을 쏟고 있으니, 정무에 관해 신경 쓸 여력이 없을 것이라고 했었다.
원덕제는 이 일을 알고 나서 분명 크게 진노했고, 어서방에서 찻잔을 깨뜨린 일도 사실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황제의 마음에는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그 관원들이 그렇게나 많은 사익을 취했다면, 혹시 그것들을 모두 국고나 그의 사적 재산으로 가져올 순 없을까? 그 후 계속 지금처럼 마르지 않는 돈줄로 유지하면 어떨까?
원덕제의 이런 비밀스러운 생각은 진왕조차 모르고 있었다. 당연히 완주의 윤재성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틀림없이 매우 위험한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때 광동호에 용이 추락한 일에 대해 듣고 나서, 그런 생각을 하던 황제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휴…….”
원덕제는 이렇게 한숨을 쉬며, 어서방에 있는 대신들과 황제들을 바라보며 원래 말하려던 내용을 바꿔 말했다.
“윤 애경의 말 대로, 완주의 일은 절대 가볍게 넘어갈 수 없다. 당분간 조정에 완주와 연이 있는 관원들을 주시하고, 윤 애경의 건의대로 적당한 이유를 찾아 완주 지주(知州)인 진우하(陳雨賀)를 승진시켜 도성에 들게 하라…….”
황제는 이렇게 말한 뒤, 대신들과 아들들을 한 번씩 훑어보았다.
“과인은 너희 중 완주와 관련 있는 자들이 있는지 관여하지 않겠다. 오늘 너희에게 마지막 기회를 주는 셈이다. 최선을 다해 이 일을 처리한다면, 과인도 옛일을 묻지 않겠다. 하지만 만약 조금이라도 헛된 마음을 품는다면…… 황실의 사람은 즉시 참수할 것이고, 관원들은 삼족(三族)을 멸할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황제의 목소리는 약간 거칠었고, 그 안에 담긴 서릿발 같은 위엄에 어서방의 관원들은 모두 벌벌 떨었다. 어떤 이는 식은땀을 흘려 등이 흠뻑 젖은 자도 있었다. 그들은 모두 속으로 진우하가 십중팔구 목숨을 잃으리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