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220화 (220/892)

220화. 심상치 않은 수륙법회

완주의 국면은 많은 이들이 어떻게 되어가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점차 변화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경기부에서 열리는 수륙법회는 맹렬한 기세로 준비되고 있었는데, 이때는 아직 경기부 주변의 사람들만 이 일을 알 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원덕제에게 있어 이번 일은 완주의 일보다 중요성이 덜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사람을 보내어 용이 추락한 일을 조사할 때, 완주에 있는 기인이며 명사들을 찾으려는 생각도 했다.

곧 황제가 경기부에서 수륙법회를 연다는 소식은 아주 빨리 퍼져 나갔다. 황제는 대정국의 국운과 천자를 위한 복을 기원하기 위해 불교, 도교, 유교 또는 온갖 민속 신앙을 제한하지 않고 천하의 명사와 고인들을 모두 경기부의 법회로 초대했다.

게다가 그중에서 몇몇 고인들을 선발해, ‘천사(天師)’라는 칭호를 내리고 황금 천 냥을 하사하며 천자를 직접 만날 기회도 줄 예정이었다.

그의 조서(詔書)가 발표되자, 대정국 각 주와 각 부의 ‘고인’들은 모두 엉덩이가 들썩들썩했다. 그들은 모두 제각각의 생각을 가지고 경기부의 법회에 참가하러 길을 떠났다.

* * *

윤씨 집안 둘째 아들의 만월주 연회로부터 20여 일이 지난 어느 날, 완주 여순부 관아 후원의 돌로 된 탁자에는 바둑판이 하나 놓여있었다. 그 주위로 윤재성은 하얀 평복을 입고 계연은 푸른 장포를 입고서 둘이 대국을 하고 있었다.

이제 계연의 실력은 일찍이 윤재성을 넘어섰다고 할 수 있었는데, 윤재성 또한 그간 진보가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다. 두 사람은 더는 처음 만났을 당시처럼 엉망으로 바둑을 두는 초보들이 아니었다.

계연은 늙은 용처럼 호승심이 강한 것도 아니라서, 친우인 윤재성에게 조금씩 져주면서 대국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오가며 꽤 흥미롭게 여러 번 바둑을 두었고, 그런 김에 못다 한 이야기들을 나누기도 했다.

계연이 손에 든 검은 돌을 내려놓자, 윤재성의 돌이 하나 먹혔다. 이를 지켜보던 윤재성은 눈썹을 찡그리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윤 훈장님. 아무래도 정신이 딴 데 팔린 듯한데, 무슨 걱정이 있으세요?”

윤재성은 바둑판에 종횡으로 놓인 바둑돌들을 보다가, 이어질 결과를 대강 예측한 듯했다. 이에 그는 잠시 망설인 후, 결국 돌을 던지고 패배를 인정했다.

“아……. 도성에서 소식이 왔는데, 성상께서 마침내 완주 관리들을 대대적으로 손보려는 결심을 하셨습니다. 다만 수륙법회를 연다는 조서도 함께 내려왔습니다. ‘구천십회(九天十會)’라는 이름이라더군요. 천하의 고인들을 초대해 아주 성대하게 연다고 합니다.”

윤재성은 진짜 고인을 만나봤기 때문에, 조정에 있는 이들과 비교하면 아는 것이 적잖은 편이었다. 이런 식의 초청에 과연 진짜 실력자들이 몇이나 참가하겠는가?

윤재성은 이번에 내려온 황제의 조서를 보고 예전 정원제(正元帝)가 선인(仙人)을 두루 찾으려고 벌였던 황당무계한 일들을 떠올렸다. 물론 선인을 찾아 도에 관해 묻고 싶다면 그렇게 해도 되지만, 황제는 이에 합당한 자세를 갖추고 있지 않았다. 그는 권력을 틀어쥐고 놓지 않으면서, 조정을 돌보지 않고 엉망으로 내버려 뒀다. 백성과 강산을 위해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선단(*仙丹: 장생불로(長生不老)한다는 영약)을 위해서였으니……. 그 후로 대정국에는 많은 혼란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러자 계연도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웃는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그 일은 윤 훈장님께서 관여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조정에는 그 일을 맡아 하는 간관(*諫官: 천자의 잘못을 규간(規諫)하는 벼슬)들이 있고, 황제도 완주의 일에 신경을 쓰기는 하는 모양이니 제가 전에 예상했던 것보다는 훨씬 나은 상황이군요. 법회 정도는 그냥 열도록 놔두세요!”

윤재성은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휴, 저는 앞으로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바쁠 것 같습니다. 완주의 일이 엉망이라 골머리를 꽤 앓을 것 같거든요. 도성 쪽의 일은 저도 관여할 능력이 없으니, 어찌할 도리도 없고요. 다만 조정에 있는 사람들로는 성상의 마음을 바꾸지 못할 것 같습니다.”

윤재성은 계연과 한담을 나눌 뿐, 진정한 고인을 눈앞에 두고도 그에게 법회에 참가해 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런 일에 자신의 친우는 흥미를 느끼지 않으리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윤재성의 이런 추측은 사실이 아니었다. 계연은 수륙법회에 큰 흥미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물론 천사라는 칭호와 상금을 노리는 것은 아니었다.

사실 이 법회에 관해서 계연과 응굉도 사적으로 이야기를 나눈 바가 있었다. 심지어는 옥회산 쪽에서도 이 수륙법회에 대해 무언가 움직임을 보이는 것 같았다.

원덕제가 정말로 복이 따르는 자여서 그런 것일까? 실은 절대 그렇지 않았다.

현재 동토 운주의 형세는 슬슬 엇나가고 있었다. 이곳에 오랜 시간 쌓여온 문제들이 터져 나올 때가 된 이유도 있었고, 천기각으로부터 퍼진 소문으로 인하여 동토 끄트머리에 자리 잡던 대정국에 갑자기 큰 관심이 쏠린 이유도 있었다.

현재 대정국은 그야말로 ‘와호장룡’이라고 부를 만했다. 원덕제가 이번에 주최하는 수륙법회에는 어쩌면 속임수를 쓰는 사기꾼이나 허장성세를 부리는 협잡꾼만 있지 않을 수도 있었다. 높은 확률로 온갖 이매망량(*魑魅魍魎: 이매는 산속의 요괴, 망량은 물속의 괴물을 말하며 온갖 요괴들을 부르는 총칭)들이 법회로 몰려올 것이다.

대정국 황제로부터 친히 ‘천사’로 책봉되기만 한다면, 이는 대정국에서 정통(正統)으로 인정받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도력이 그다지 깊지 못한 정괴들은 이러한 명분을 무척 갈망하고 있을 것이다.

다만 경기부 저승에서 그들을 가만히 두고 보고 있지는 않을 터였다. 게다가 대정국 내의 정통 수선자들도 이번 기회를 빌려 온갖 요괴들을 깨끗이 처리하려 할 것이다.

계연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윤재성이 돌연 이렇게 입을 열었다.

“아, 참! 지주 대인께서 곧 승진하여 도성에 드신다고 합니다. 저도 곧 선물을 준비해 보내드려야겠습니다.

“하하, 윤 훈장님! 쓸데없는 돈을 쓰시네요. 지금 받는 봉록으로 준비한 예물이라고 해 봤자, 다른 이들의 예물에 눌려 보이지도 않을 거예요!”

“듣고 보니 계 선생님 말씀이 맞습니다. 차라리 그 돈을 아끼고 서첩이나 하나 써서 가야겠습니다!”

윤재성은 이렇게 말하며 몸을 일으켰다.

비록 서첩이라고는 해도 그의 선물은 초라하기는커녕, 많은 돈을 주어도 구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황금 백 냥이 있다 한들 살 수 없다는 말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윤 훈장님은 어서 일을 보러 가세요. 저도 이곳에서 거의 두 달을 머물렀으니, 떠날 때가 되긴 했네요.”

계연도 그를 따라 몸을 일으키며, 좋은 벗인 그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윤재성은 그다지 놀란 모습이 아니었다. 계 선생님을 한 달 동안 붙잡아 둔 것만 해도 이미 대단한 수확이었기 때문이다.

“계 선생님께서는 영안현으로 돌아가십니까?”

계연은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경기부에서 열린다는 수륙법회에 가서 구경 좀 하려고요.”

* * *

그로부터 반나절 후에 계연은 윤재성, 그리고 그의 가족들과 작별 인사를 나눈 후 여순부 관아를 떠났다. 그런 뒤 계연은 성안을 유유자적 한 바퀴 돌아본 후, 성문을 나서 구름을 밟고 길을 나섰다.

계연은 당연히 그 법회에 이름을 올리고 참가할 생각은 없었지만, 대신 일찍 가서 자리를 잡을 생각이었다.

이 법회는 분명 심상치 않은 일이 될 것이다. 어쩌면 원덕제에게 있어서는 일종의 행운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최소한 정원제(正元帝)처럼 어떤 소득도 없진 않을 터였다.

* * *

경기부는 통천강이 흐르는 통주 유역의 서쪽에 있었다. 경기부는 사실 통주 한쪽에 박혀 있는 듯한 모양새였다. 그래서 대정국 사람들은 농담 삼아 통주를 직할주(*直轄州: 중간에 다른 기구나 조직을 통하지 아니하고 정부에서 직접 관할함)라고 불렀다.

비록 대정국의 조정에서 이에 대해 명확히 분류한 적은 없었지만, 사실상 그와 비슷했다.

어느 날, 통주의 장락부(長樂府) 부성에서는 관아의 심부름꾼들이 몰려와 성문을 비롯하여 관아의 대문과 번화한 일대의 거리며 벽에 포고문을 붙이고 있었다.

경풍(慶豊)대로에 위치한 천열대주루(天悅大酒樓)는 부성에서 유명한 주루 중 하나였다. 대로 주변에는 찻집, 잡화상, 포목점 등 많은 점포가 자리해 경풍 대로를 떠들썩하게 만드는 데에 일조하고 있었는데, 이 경풍대로는 장락부에서는 손꼽히는 번화한 대로였다.

시각은 어느덧 식사 시간에 가까워져, 큰 주루 주변으로 사람들의 통행이 잦아지는 때였다. 그래서 몇몇 거지들은 주루의 맞은편 담장에 앉아 누군가 은혜를 베풀어 주길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은 한창 해가 가장 뜨거울 시간이었다. 거지들은 밥 동냥을 하러 다닐 때 자연히 버려진 사당이나 다리 아래에 가지 않고, 이런 번화한 곳으로 왔다. 그래서 이들에게 담장 구석 그늘진 자리는 가장 사치스러운 휴식 공간이었다.

일고여덟 명의 각각 다른 연령층의 거지들은 기꺼이 따가운 햇빛을 견뎌내고 있었다. 이들은 구멍이 난 천이나 찢어진 부채, 또는 망가진 우산 등으로 햇빛을 가리려고 애쓰고 있었다. 반면 담장 구석의 작은 그늘 자리에는, 나이 든 거지 하나가 몸을 웅크린 채 코를 골며 잠을 자고 있었다.

“비켜, 비켜……. 비켜라! 길 막지 마라!”

칼을 찬 관원들이 저 앞에서부터 성큼성큼 걸어오고 있었다. 앞에 선 두 사람은 길을 열었고, 뒤에 선 두 사람 중 하나는 커다란 황금색의 천을 들고 있었으며 다른 한 사람은 통 하나를 들고 있었다.

“비켜라, 어서! 너희 말이다. 포고문 붙이는 담장 앞은 막지 마라.”

앞쪽에 선 두 관원이 걸어와 한참 단잠을 자고 있던 몇몇 거지들을 발로 툭툭 쳐 깨웠다. 관원들은 그들을 비켜나게 만든 다음, 다른 한쪽에 몰려 앉은 거지들을 바라보았다. 그는 잠시 눈썹을 찌푸렸지만 더는 그들을 상대하지 않고, 뒤에 서 있는 두 사람을 향해 말했다.

“여기에 붙이시오.”

이에 통을 든 심부름꾼이 고개를 끄덕인 후 앞으로 나섰다. 그는 통에서 붓을 꺼내 들고는 풀물이 든 통 안을 몇 번 휘젓고서, 담장에 대고 여러 번 발랐다.

주변에 있던 거지들은 그가 든 통을 바라보며 때때로 침을 꿀꺽 삼켰다. 그들은 그 풀물이 사실은 쌀을 끈적끈적하게 끓여 만든 것이란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 됐소. 이제 붙이시게.”

뒤에 있던 또 다른 심부름꾼이 황색 포고문을 열자, 관원 둘이 서둘러 모서리를 한 쪽씩 잡았다. 그 후 세 사람은 포고문 위쪽을 먼저 담장에 붙인 다음, 돌돌 말린 천을 풀며 아래를 향해 꾹꾹 눌렀다.

커다란 황색 포고문이 담장에 붙자, 주위에 지나가던 백성들과 화려한 옷을 입은 부호며 상인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모여들었다.

“어, 이 포고문은 황색 천에 쓰여있군, 천자께서 내리신 조서인가 보오!”

“정말이네, 도성에 무슨 일이 났나?”

“뭐라고 쓰였는지는 보면 알겠지.”

“얼른 붙이시게, 이건…… 초현방(*招賢榜: 현인(賢人)을 초빙하는 내용의 공고문)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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