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221화 (221/892)

221화. 보통 장님이 아니다

관원들은 포고문을 붙이고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그러자 주위에 서 있던 사람들은 담장 가까이 다가왔다. 그중 한 노인이 포고문을 한 글자씩 읽어 내려갔다.

“황제가 천하에 고하노니 대정국 개국 200년 이래, 때마침 태평 성세를 맞이했노라. 나라는 태평하고 백성은 편안하니 온 천하가 이에 탄복하였다. 이에 을유년(乙酉年) 가을, 황제의 탄신을 맞이하여…….”

노인은 수염을 쓰다듬으며 포고문을 읽어내리다가, 더 순탄하게 읽기 위해 중간에 숨을 한번 고르고는 뒤에 오는 글을 읽었다.

“특별히 조서를 내리노니, 천하의 고인(高人)들을 소집해 구천십회(九天十會)의 성대한 자리를 열려 한다. 묘법(妙法)을 부리는 세상의 선인(仙人)들은 모두 와서 대정국과 천자를 위해 축하하도록 하라.”

노인이 글을 다 읽자, 몰려든 사람들 사이에서 의견을 나누는 소리가 분분해졌다.

“선도(仙道)를 닦는 이들이 참가하는 대회를 열려는 것인가?”

“자네 포고문에 뭐라고 쓰였는지 못 들었는가? 이건 수륙대회라네.”

“도성이 떠들썩해지겠구먼! 어쩌면 정말로 신선 같은 자가 올지도 모르지!”

“그러게 말일세. 만약 정말로 신선이 있다면, 우리도 가서 봐야 하지 않겠나? 만약 그 신선의 눈에 든다면, 내게 선법(仙法)을 전수해줄지 어찌 아나?”

“헛물도 작작 마시게! 돼지머리처럼 생겨서는!”

“못생긴 게 뭐 어때서! 신선이 되려면 얼굴도 따져야 하나?”

“천사라는 칭호만 받게 되면 그야말로 천하에 위명을 떨치겠구먼.”

“그따위 칭호를 받아 봤자 무에 쓸 데가 있다고. 황금 천 냥이야말로 진짜 상이지!”

모여든 이들은 서로 의견을 내세우며 흥분에 차 토론했고, 어떤 이들은 이미 법회 시기에 맞춰 도성에 가서 구경해보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어찌 되었든 황제가 주최하는 것이니, 묘회(*廟會: 잿날 또는 일정한 날에 절이나 사당 부근에 임시로 설치하던 시장)보다는 재미있을 것 아닌가?

그러나 끼니를 때우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인 거지들에게 있어, 이런 떠들썩한 수륙법회란 너무나 요원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심드렁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그중 홀로 단잠을 자고 있던 나이 든 거지가 돌연 눈을 떴다.

‘이런 시기에 대정국 황제가 수륙법회를 연다니, 선인들을 초청한다고는 하지만 실은 온갖 삿된 것들이 모여 날뛰지 않을까?’

그러나 잠시 생각해보니, 또 그렇지만도 않을 것 같았다. 다만 이미 잠이 전부 달아나 있었다.

“흐아함!”

늙은 거지는 하품을 하며 일어나 앉았다. 그는 눈을 문지르다가 나온 눈곱을 손톱으로 멀리 튕겨 날렸다.

“노(魯) 할아버지, 왜 벌써 깨셨어요? 아직 받은 음식이 없어요.”

그가 깬 것을 보고 곁에 앉아 있던 열한 살에서 열두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그러다가 노인이 몸을 일으키려 하자, 얼른 다가가 그를 부축했다.

“노(魯) 어르신, 일어나셨어요?”

“어르신, 물 한 잔 드세요.”

“저한테 먹을 게 좀 있어요. 방금 떡을 두 조각 주웠거든요. 아직 상하지 않았어요!”

노인이 잠에서 깨자, 주변에 있던 다른 거지들은 모두 그에게 인사를 건네며 노인을 살뜰히 살폈다. 노인은 죽통을 하나 받아 물을 마시고는, 떡을 집어 입에 쑤셔 넣고 다른 이들에게 손을 저었다.

“되었네, 됐어. 자네들 먹게. 나는 아직 배가 안 고프니.”

이렇게 말을 하고서 그는 떡을 씹으며 시원스레 기지개를 켰다. 아직도 포고문을 보고 있던 행인 중 몇몇은 노인이 일어서자 그를 쳐다보기도 했다.

노인은 기지개를 켜다가, 가장 먼저 그에게 말을 걸었던 어린 거지에게 손짓했다.

“소유(小遊)야, 도성에 가보고 싶지 않으냐?”

어린 거지는 이가 빠진 도자기 그릇을 들고는, 몸을 일으켜 벽에 붙은 포고문을 바라보았다. 거지는 속으로 할아버지께서 주무시던 도중에 누군가 저 포고문을 읽는 것을 들은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좀처럼 대답을 하지 못했다.

“도성이요? 그렇게 먼 데를…….”

“허, 그래서 가고 싶은 것이냐, 아니냐?”

늙은 거지는 옷에 뚫린 구멍에 손을 넣어 겨드랑이를 벅벅 긁었다. 그러고는 나른한 듯이 한쪽 눈은 뜨고, 한쪽 눈은 감은 채로 웃으며 소유에게 이렇게 물었다.

“가고 싶어요! 천하에서 가장 번화하고 가장 화려한 곳이잖아요. 당연히 가고 싶지요!”

“하하……. 그럼 가면 되지!”

그는 어린 거지의 등을 툭툭 치고는 아이를 앞으로 밀며 걷기 시작했다.

어린 거지는 멍하니 몇 걸음 걷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뒤에 있던 한 무리의 거지들은 모두 아이와 노 할아버지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에 소유는 돌연 무언가를 깨달았다.

‘지금 이렇게 바로 가는 건가?’

바로 그때, 뒤에 있던 거지들이 모두 그들을 향해 작별 인사를 건넸다.

“노 어르신, 몸조심하세요!”

“소유야, 조심히 가거라!”

“어르신! 소유를 잘 챙겨주세요!”

늙은 거지는 허허 웃으며 고개를 돌리고는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대충 “잘 지내게”라고 몇 번 대답한 후, 아이를 이끌고 거리로 나섰다.

거지들은 잠시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 자리로 돌아가 앉아, 오후에 남았을 밥이며 반찬을 누군가 베풀어 주길 기다렸다.

“할아버지, 우리가 가면 장(張) 씨 아저씨네는 어떻게 해요?”

늙은 거지는 온몸에 벼룩이 끓는 듯, 한 손으로 앞을 긁고 한 손으로는 뒤를 긁어 댔다. 그러다가 소유가 이렇게 묻자, 그는 중얼중얼 이렇게 대답했다.

“저놈들이 우리한테 기대서 사는 것도 아니고, 밥을 빌어먹는 능력은 우리보다도 좋을 거다. 게다가, 저놈들 중 몇 명은 다리가 부러지거나 손이 잘린 것도 아닌 데다, 무슨 종기가 있는 것도 아니니 제대로 된 일을 찾기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

속세에 있는 고승이나 도인, 정괴며 마귀들은 물론, 온갖 사기꾼과 무당 중에는 늙은 거지처럼 수륙법회의 소식을 듣고 경기부로 향하는 이들이 적지 않을 터였다.

설령 요괴며 마귀 같은 것들이 오지 않는다고 해도, 온갖 사기꾼들과 무당들이 운집한 도성은 그야말로 ‘성대한 행사’가 될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도 삿된 것들이 들끓는다고 볼 수도 있을 터였다.

* * *

통주가 비록 경기부에 인접해 있다고는 하나, 장락부에서 경기부까지 가려면 중간에 두 개의 부를 지나야 했다. 늙은 거지와 어린 거지는 부지런히 걷는 와중에도 밥동냥을 했다. 그러다가 피곤해지면 요즘 날씨는 아직 덥거나 춥지 않으니, 바람과 비를 막을 수 있는 적당한 곳을 찾아 잠을 잤다.

자는 시간만 빼고 부지런히 걸으니, 그들은 불과 한 달 만에 경기부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날 아침 일찍, 두 거지는 성문 밖에서 안으로 들어가려는 행렬에 줄을 섰다. 어젯밤 미리 성문 근처에서 잠을 잤기 때문에, 그들은 행렬의 앞쪽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늙은 거지는 하품을 하며, 행렬의 앞뒤를 몇 번이고 살폈다. 줄이 점점 더 길어지자 그는 그중에서 사람도 아닌 것들이 ‘고인’ 행세를 하며 서 있는 것을 발견했고, 이에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끼익…… 쿠궁!

“성문이 열렸다!”

성안에 있던 병졸들이 성문을 열자, 경기부로 향하는 곧게 뻗은 대로가 그들의 눈앞에 나타났다.

원래 성문을 지키는 이들은 거지들을 성안으로 들여보내 주지 않았지만, 소유가 보기에도 노 할아버지가 병졸들의 질문에 대답하는 기세가 자못 당당했다. 비록 먼지를 뒤집어쓴 데다 꾀죄죄하긴 했지만 말이다.

“조서를 받들어 수륙법회에 참가하러 왔소이다.”

이 자신감 가득한 한마디와 당당한 눈빛에, 병사들은 잠시 망설이다가 그들을 들여보내 주었다.

도성은 과연 무척 번화하고 떠들썩한 곳이었다. 평소에도 장락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풍경일 텐데, 지금은 황제의 조서 때문인지 더욱 인파가 몰린 시기였다. 그래서 어린 거지는 눈이 핑핑 돌 지경이었다.

그렇다고는 해도, 두 거지는 성안을 한 바퀴 돈 후에 본래 하던 일을 계속하기로 했다. 적당한 위치를 찾아 밥 동냥을 할 준비를 시작한 것이다.

“오! 이곳이 좋겠구나. 양쪽의 요리 냄새를 전부 맡을 수 있고, 여러 방향에서 오는 행인들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늙은 거지는 기쁜 듯이 소유를 이끌고, 한 찻집의 맞은편 담장으로 가서 앉았다. 그들 주위로는 주루가 몇 곳 늘어서 있었다. 두 사람이 자리에 앉은 후, 소유는 이가 빠진 밥그릇을 앞에 내려놓았다.

늙은 거지가 다시 졸기 시작하는 것을 보고, 어린 거지는 호기심에 차서 이리저리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도성은 정말 크고 사람도 많네. 거지도 별로 없어!’

거지의 시선은 이리저리 떠돌다가 마침내 맞은편 찻집의 입구 쪽 탁자에 앉은 한 사람에게 멈췄다. 그는 마침 찻잔을 들고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람은 마치 자석처럼, 단번에 어린 거지의 주의를 빼앗았다.

그리 넓지도 않은 4, 5장(*약 12~15m) 거리를 사이에 두고 있었기에, 어린 거지는 그자의 외모를 또렷하게 관찰할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학식 있는 점잖은 문인처럼 보였는데, 반 정도만 뜬 눈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 안의 두 눈이 뿌옇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할아버지, 찻집에 앉은 장님이 아무래도 우리를 보고 있는 것 같아요…….”

“허허, 어리석기는. 장님이 우리를 본다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냐!”

“그런데 정말 우리를 보는 것 같단 말이에요…….”

늙은 거지는 이리저리 몸을 긁으며, 어린 거지의 시선이 향한 곳을 바라보았다. 바로 다음 순간, 그는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상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자는 소탈하고 평온한 분위기를 지녔고, 희뿌연 두 눈은 오래된 우물처럼 고요했다. 그는 어떤 특별한 기운도 드러내지 않았지만, 한 번만 보아도 맑고 상쾌한 느낌이 들었다.

늙은 거지는 곁에 있던 어린 거지를 향해 넋이 나간 것처럼 중얼거렸다.

“소유야……. 저 사람은 보통 장님이 아니다!”

* * *

얼마 전에 있었던 일로, 계연은 자신의 외적 특징이 대정국의 신령들 사이에서 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성황신이나 토지신처럼 신위(神位)가 비교적 높은 신령들은 물론, 속세에 더욱 가까운 호수신 또는 강신들도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 외에도 소식이 빠른 이들이라면 대정국에 ‘하늘을 무너뜨릴 듯한 기세의 검’을 부리는 능력자가 있다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 생활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계연은 수선자들 사이의 관계에 대해 점차 이해하게 되었다. 간단하다면 간단하고, 복잡하다면 복잡하다고도 할 수 있는 그런 관계였는데, 이들은 서로에게 예속되거나 간섭하지 않는 관계였다. 기묘하지만 암묵적으로 서로를 상관하지 않고, 각자의 수행을 하는 방식이었다.

일반적으로 수행하는 이들은 매우 개인적인 자들이었다. 속세에 비교적 가깝고 신도(神道)를 닦는다는 공통점이 있는 성황신들조차 누가 누군가에게 속하거나 관계를 맺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대정국 원덕제가 대신들의 의견을 묵살하고 거행하는 이 수륙법회에서는 달랐다. 표면적으로 ‘고인(高人)과 명사(名士)’들이 모일 이 법회에 실제로 보기 드문 각 방면의 정통 수행자들이 모두 모여들 것이다. 즉, 이는 선문을 대표하는 옥회산, 용왕으로 대표되는 도를 닦는 요괴들은 물론, 경기부를 주축으로 하는 각지의 신령들이 모인다는 것을 뜻했다.

천기각의 일이 있든 없든, 대정국은 여전히 이들 모두가 오랜 세월 수행해 온 땅이었다. 속세에 너무 깊게 관련되면 때가 묻기 쉽다지만, 그렇다고 해도 삿된 기운을 가진 온갖 종류의 어중이떠중이들이 이곳에 와서 난장을 치도록 놔둘 수는 없었다.

계연은 그들 모두를 이어주는 연결끈이었고, 사실상 그들 모두를 이끄는 우두머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대정국 수행계(修行界)에 널리 퍼진 그의 위엄과 명망으로 볼 때, 그는 유일하게 모든 이들이 인정할 수 있는 자였고 또한 용왕의 협조를 얻어낼 수 있는 유일한 자이기도 했다.

이 일을 위해, 윤 훈장님의 부저(府邸)를 떠난 지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계연은 조금도 쉬지 않았다. 예전의 단조롭고 여유로웠던 생활과 비교하면 무척 바쁘고 피곤했다.

수륙법회가 열리는 장소인 경기부는 주 무대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계연은 서둘러 경기부로 돌아왔다. 그러나 법회가 열리기 전까지는 비교적 큰 소동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았다. 어쨌든 대정국 곳곳의 ‘고인’들이 이곳까지 오려면 시간이 좀 걸릴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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