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2화. 정말로 고인들이 모두 모였구나 (1)
어느 날, 이른 아침 태양이 안개를 뚫고 모습을 드러낸 시각, 계연은 한 손을 등에 지고 한 손으로는 죽간(竹簡)을 쥔 채 성안을 거닐고 있었다.
“자자, 이제 이어가도 되겠지요?”
“선생, 차 한잔하고 시작하시지요.”
“선생께 콩고물 떡 한 접시 갖다 드리고 내 계산서에 달아 놓게.”
“예, 알겠습니다요!”
인근 찻집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계연의 발걸음을 늦췄다. 보아하니 누군가 안에서 이야기를 할 모양이었다.
딱!
설서선생이 이야기를 곧 시작한다는 의미의 성목(*醒木: 설화자(說話者)가 책상을 두들겨 청중의 주의를 끄는 데 쓰는 나무토막)소리가 울렸다.
“일전에 황 장군이 연이어 큰 공을 세워 마침내 34세의 나이에 황상께 장군의 직위를 받았다는 이야기까지 했었지요……. 이어서, 황 장군의 위명이 천하에 널리 떨치게 된 전투인 동산(東山) 전투에 관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이를 들은 계연은 돌연 발걸음을 멈췄다. 예전에 의주 균천부의 한 찻집에서 <황장군전(黃將軍傳)>을 들었었는데, 그때는 반 정도만 듣고 나머지는 미처 듣지 못했었다. 오늘 이렇게 우연히 누군가 나머지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하니 계연은 정말 운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계연은 가던 방향을 바꿔 찻집으로 들어갔다.
막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차박사(*茶博士: 찻집의 종업원)가 열정적인 태도로 그를 맞이하러 나왔다.
“손님, 어서 들어오세요. 저희 청엽루(靑葉樓)에 잘 오셨습니다. 위층 별실에 가실 건지 아니면…….”
“쉬…….”
계연은 입에 손가락을 대고 조용히 하라는 시늉을 하고는, 설서 선생이 앉은 탁자를 가리켰다.
“여기 빈자리 아무 데나 앉을게요. 이야기 들으러 왔어요.”
“아아, 네. 손님 편하신 곳에 앉으세요!”
이에 차박사도 목소리를 낮추고 고개를 끄덕인 다음, 허리를 굽힌 채 그를 이끌었다. 계연이 입구 근처 창문에 가까운 깨끗한 탁자에 앉자, 차박사는 행주를 꺼내 탁자를 다시 한번 깨끗하게 닦았다.
곧이어 계연이 주문한 쌀떡 한 접시, 콩떡 한 접시, 견과류 한 접시, 그리고 말린 살구 한 접시에 찻주전자 하나가 올라왔다. 계연은 자리에 앉아 설서 선생이 생생하게 묘사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오! 이곳이 좋겠구나. 양쪽의 요리 냄새를 전부 맡을 수 있고, 여러 방향에서 오는 행인들도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약간 재미있어하는 듯한 노인의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오자, 계연의 주의가 전부 그쪽으로 쏠렸다. 이어서 나이 든 거지 하나와 어린 거지 하나가 맞은편 담벼락에 자리를 잡았고, 어린 거지는 이가 빠진 그릇을 앞에 꺼내 놓았다.
“노 할아버지, 찻집에 앉은 장님이 아무래도 우리를 보고 있는 것 같아요…….”
이 말을 듣고 계연은 참지 못하고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이어서 늙은 거지가 이쪽을 바라보았고 서로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러자 계연은 늙은 거지가 순간적으로 넋이 나간 것을 알아차렸다.
이어서 늙은 거지가 혼잣말을 하자, 계연은 웃는 얼굴로 그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상황이 되자, 늙은 거지는 상대방이 자신의 정체를 알아차렸음을 깨달았다. 어린 거지는 노인의 이런 드물게도 진지한 얼굴을 보고, 다시 찻집의 눈이 먼 선생을 바라보았다.
“할아버지……. 저분을 아세요?”
“모른다. 하지만 곧 알게 되겠구나.”
과연, 계연은 차박사를 불러 몇 마디 나눈 뒤 쇄은자(*碎銀子: 은자를 잘게 부순 것) 한 줌을 건넸고, 차박사가 고개를 끄덕이자 바로 몸을 일으켰다.
계연은 저 두 거지를 청엽루로 들일 생각은 없었다. 예전에 자신의 차림새가 조금 더러웠을 때도 주루에 갔다가 그곳의 영업에 지장을 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밖의 저 두 사람은 그때의 자신보다 훨씬 더 더러웠다.
그래서 계연은 자신이 앉은 탁자 위에 있던 접시와 찻주전자를 모두 긴 걸상 위에 놓은 후에 오른손으로는 그 걸상을 들고, 왼손으로는 또 다른 걸상을 들고서 안정된 걸음걸이로 찻집을 나와 반대편 담장으로 향했다.
계연이 다가오는 동안, 두 거지는 계연이 오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만 늙은 거지가 바라본 것은 계연 본인이었고, 어린 거지가 관심을 둔 것은 계연이 오른손에 든 걸상, 더 자세히 말하자면 그 위의 떡이었다.
계연은 간식거리와 찻주전자가 있는 걸상을 먼저 내려놓고, 왼손에 들었던 걸상을 나중에 내려놓았다. 그 후 두 거지를 향해 공수하며 인사했다.
“제 이름은 계연입니다. 멀리서 온 두 손님께 인사나 하러 왔어요. 괜찮으시다면 저와 함께 차 한잔 드시지요.”
계연은 이렇게 말하며 비어 있는 걸상을 가리키고는 이렇게 덧붙였다.
“차와 간식은 편한 대로 가져가서 드세요. 이미 계산하고 나왔거든요.”
어린 거지는 즉시 기대에 찬 눈으로 노인을 바라보았고, 노인은 목을 긁적이다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계연을 향해 공수했다.
“제 이름은 노염생(魯念生)이라 하고, 이 아이의 이름은 노소유(魯小遊)라고 합니다.”
계연은 놀란 듯 이렇게 물었다.
“손자인가요?”
“하하하……. 이 아이는 이름만 있고 성이 없었기 때문에, 제가 제 성을 붙여주었습니다.”
늙은 거지는 이렇게 말을 하며 엉덩이를 두드린 다음, 떡을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그리고는 걸상에 앉아 어린 거지에게 말했다.
“먹으려무나.”
“네!”
어린 거지는 환호하며, 계연을 향해 노염생보다 더 표준에 가까운 예를 표했다. 그 후 어린 거지는 또 다른 걸상의 한쪽에 걸터앉아, 떡 몇 점을 입으로 쑤셔 넣었다.
늙은 거지가 엉덩이를 두들기자 한순간 먼지가 일었는데, 계연은 이를 개의치 않고 노인의 옆에 앉았다. 그 후 쟁반 위에서 찻잔 세 개를 뒤집어, 찻주전자에 있던 차를 차례로 따랐다.
첫 잔은 입안이 떡으로 가득 찬 어린 거지에게 건넸다.
“목 막히니 조심하렴.”
“으음음…….”
어린 거지는 두 손으로 찻잔을 받은 뒤, 차를 한 입 삼켜 떡을 모두 넘겼다. 그리고 남아 있던 차마저 비운 다음에 마침내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늙은 거지는 흙먼지가 이 선생에게 닿으려던 순간, 스스로 떨어져 내리는 것을 보고 두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계연처럼 태연한 얼굴로 남은 찻잔 하나를 들어 올렸다.
“원래는 수륙법회에 이매망량 같은 삿된 것들만 올 줄 알았는데, 선생 같은 고인이 오실 줄은 몰랐네요.”
계연은 이 늙은 거지가 옥회산에서 온 자는 아닐 거라고 결론지었다. 그래서 계연의 말투에서는 감출 수 없는 호기심이 드러났다.
늙은 거지는 차를 한 입 마신 후, 눈을 감고 맛을 음미했다. 그리고 계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선생의 말에 이 늙은이도 동감하는 바입니다!”
마찬가지로, 늙은 거지도 계연이 인간인 것은 확신했으나 옥회산의 수사는 아닐 것이라고 보았다. 이 계 선생에게는 보통의 수사들이 많든 적든 가지고 있는 일종의 ‘귀기(貴氣)’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 어르신께서는 수륙법회에 참가하러 오신 건가요?”
계연은 그와 마찬가지로 어떤 법력의 기운이나 특별한 빛도 드러내지 않는 이 거지를 바라보았다. 계연의 법안이 특수하여 이 늙은 거지의 주위에 도력의 기운이 은은하게 감돌고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면, 이자를 오해할 수도 있었을 터였다.
“그 말씀은 계 선생께서는 법회에 참가하러 오신 게 아니란 뜻입니까?”
늙은 거지도 계연을 바라보며 이렇게 물었다.
“저는 아니에요.”
늙은 거지가 어떤 것도 드러내려 하지 않는 것을 보고, 계연은 이렇게 대답한 뒤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찻집에서 들려오는 설서 선생의 이야기는 한창 흥미로운 순간을 묘사하고 있었다. 늙은 거지가 무어라 말을 하려 할 때, 계연은 왼손을 들어 올려 그를 제지했다.
동산 전투의 중요한 부분이 지나고 나서, 계연은 찻잔의 남은 차를 모두 마신 다음 다시 찻주전자를 들어 자신과 늙은 거지의 잔을 채웠다.
계연이 이야기를 듣는 동안, 늙은 거지는 계연을 자세히 관찰하고 있었다. 놀랍게도 상대는 듣는 척이 아니라 정말로 흥미진진하게 듣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계연에게 더욱 호기심이 들었다.
“계 선생 같은 분께서도 이런 세속의 일에 흥미를 느끼십니까?”
계연은 웃으며 대답했다.
“세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희로애락이 이야기 속에 있지요. 생동감 넘치고 재미있기까지 하니, 이루 말할 수 없이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심오한 뜻이 숨겨진 양 말했지만, 사실 심심할 때 들으면 재미있는 정도였다.
어린 거지는 떡을 먹으며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는데, 비록 그들의 이야기가 무슨 뜻인지 하나도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맛있는 것을 먹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계연과 늙은 거지는 드문드문 이야기를 이어갔다. 비록 모두 수륙법회에 관련된 이야기였지만, 그들은 요괴나 마귀와 관한 일들은 드러내 놓고 말하지 않았다.
두 사람은 서로가 정도(正道)를 닦는 수행자임을 알게 되었고, 상대의 수행의 깊이가 절대 얕지 않다는 것도 알아차렸다. 이런 때에 이렇게 우연히 만나게 된 것도 인연이라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서로의 내력을 묻지 않았고, 존중하는 태도로 한담을 나누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 눈에 띄었기 때문에, 찻집 안의 손님들과 시종 친절했던 차박사, 그리고 거리를 지나는 사람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자신도 모르게 이 기이한 조합의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더럽고 꾀죄죄한 몰골의 거지와 고상한 문인의 풍모를 풍기는 계연이 한자리에 앉아 있었는데, 그 모습이 의외로 잘 어울렸다. 한 사람은 접시를 들고 한 사람은 잔을 쥔 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아주 자연스러워 보였다.
청엽루의 주인장은 문을 사이에 두고 그 장면을 바라보며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당금의 성상께서 천하에 수륙법회를 연다는 포고를 내렸다더니, 정말로 고인들이 모두 모였구나.’
때로는 누군가를 만날 때, 상대방의 내력이 무엇인지 또는 어떤 인생의 목적을 향해 가는지와 같은 철학적인 질문은 필요치 않았다. 마치 계연과 늙은 거지의 대화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소탈한 대화만 나누어도 상대방의 심성과 세상을 보는 상대방의 태도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대정국이 자신의 천하도 아니고, 계연도 자신의 말 한마디에 모든 이가 따르는 그런 상황을 원하지도 않았다. 게다가 저자처럼 심성이 곧고 수행을 올바르게 하는 이가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아 하니, 계연도 굳이 묻지 않았다. 이에 상대방도 계연의 개인적인 일에 대해 캐묻지 않았다.
‘이런 것도 괜찮네.’
어차피 둘 다 상대방에게 다른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계연은 이런 생각을 하며 늙은 거지와 자유롭게 떠들었다. 이렇게 만난 사람과 마음이 맞기는 대단히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들은 천천히 차를 마셨는데, 찻물이 차가워지지 않았다. 찻주전자가 모두 비었을 때, 찻집 안 설서 선생의 <황장군전> 이야기도 끝났다.
성목에서 딱, 소리가 울려 퍼지며, ‘잡을 새가 없어지면 좋은 활도 깊이 숨긴다(*飛鳥盡良弓藏: 쓸모가 없게 되면 버림을 받는다, 천하가 평정된 다음 공신을 없애다)’는 고사처럼 황씨 일가의 충정이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되자, 찻집 안의 청중들은 탄식을 감추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