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223화 (223/892)

223화. 정말로 고인들이 모두 모였구나 (2)

시간이 정오에 가까워지자, 날씨는 점점 더 뜨거워졌다. 이야기하는 것은 체력과 정신력이 크게 소모되는 일이었으므로, 설서 선생은 온 얼굴에 땀을 흘리고 있었다. 선생은 젖은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주위의 갈채를 받았고, 이어서 탁자 위에 놓인 사례금을 수거했다.

“음, 시간이 딱 좋네요.”

계연은 이야기를 다 듣고, 찻잔 안에 남은 마지막 차를 마신 다음 몸을 일으켰다.

늙은 거지는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고, 어린 거지는 걸상을 돌려줘야 하는 줄 알고 자리에서 따라 일어났다. 어차피 그 위에 있던 접시는 모두 싹 비어 있었다.

계연은 걸상 하나를 남겨 두 거지가 앉을 수 있게 한 다음, 남은 걸상 위에 그릇과 찻주전자를 올리고 걸상을 찻집으로 들고 들어갔다. 그러는 김에 계연은 조금 전에 냈던 쇄은자의 거스름돈을 받았다. 그런 뒤에 계연은 찻집을 나와 늙은 거지에게 목례한 후 그 장소를 떠났다.

두 거지는 모두 흥미로운 이들이었으나, 자신이 있으면 어린 거지의 행동이 확실히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게다가 할 이야기도 모두 나눴으므로, 계연은 이 사람들과 더 붙어 있을 생각이 없었다.

계연이 떠난 후, 차박사는 계산대로 가서 잠시 망설이다가 찻집의 주인장에게 물었다.

“주인어른, 저 걸상은 제가 가서 가지고 올까요?”

주인장은 차박사의 머리를 살짝 내려쳤다.

“아둔하기는!”

찻집 밖에 있던 걸상에는 두 거지가 나란히 앉아있었다. 그러자 이 희귀한 광경에 길을 지나던 행인들이 그들을 관찰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어린 거지는 찻집을 살피다가 다시 계연이 떠난 방향을 보고는, 가려운 곳을 벅벅 긁었다. 그러며 팔꿈치로 생각에 잠긴 늙은 거지를 툭 치더니 뿌듯한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노 할아버지, 이것 보세요!”

늙은 거지가 고개를 돌려 어린 거지의 옷 한쪽에 붙은 커다란 주머니 안을 바라보았다. 그 안에는 다과와 과일 말린 것, 견과류 등이 가득 들어있었다.

“어이구, 아까 다 안 먹었구나?”

“어떻게 할아버지 몫도 안 남기고 다 먹겠어요, 반은 여기에 숨겨 놨죠!”

그래도 어쨌든 혼자서 남은 음식 반을 먹은 것이었다. 접시 몇 개에 나눠 있던 간식의 양은 분명 적지 않았었다.

“그렇게 서둘러 싹 가져가면서, 어찌 계 선생께는 남겨 드리지 않았느냐?”

어린 거지는 약간 켕기는지 작은 목소리로 항변했다.

“제가 봤는데 안 드시던데요. 그리고 그분은 돈이 없는 것도 아니니까….”

늙은 거지는 그의 대답을 듣고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걸상에 앉은 지 얼마 안 되어, 두 거지는 밥 동냥하는 이들이 걸상에 앉아 행인들을 지켜보는 게 조금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다시 땅바닥에 앉았다. 대신 이 빠진 그릇을 걸상 위에 올려 두었다.

대략 일 각(*15분)쯤 지나자, 주변 주루와 찻집에서 요리하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어린 거지는 온갖 다과들로 배가 가득 찬 상태였지만, 음식 냄새를 맡자 바로 침이 고였다. 늙은 거지는 눈을 감고 담벼락에 기대 누워있었다.

“소유야, 좋은 것이 오는구나!”

늙은 거지가 돌연 이런 말을 하자, 소유는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곧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왜냐면 청엽루의 차박사 하나가 쟁반을 들고 자신들을 향해 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쟁반 위에는 어린 거지의 머리통보다도 큰 청색 자기 그릇이 두 개 놓여있었다. 그 안에는 향긋한 냄새가 나는 국수가 가득 들었는데, 국수는 커다란 고깃덩어리와 함께 국물에 촉촉하게 잠겨 있었다. 국수 그릇 위에는 젓가락이 하나씩 꽂혀 있었다.

“두 분 안녕하십니까, 이 소고기탕면은 저희 청엽루 주인어른께서, 옆 가게에서 사 오라고 제게 명하신 것입니다. 두 분을 위해 준비한 점심이라고 전하셨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차박사는 커다란 그릇 두 개를 걸상 위에 놓고, 그들에게 공수한 다음 찻집 안으로 들어갔다. 늙은 거지가 찻집을 쳐다보니, 그곳의 주인이 마침 이쪽을 보고 있었다. 서로 눈이 마주치자 주인은 그를 향해 공수해 보였다.

이에 늙은 거지도 같이 공수한 후 그에게 인사했다.

“할아버지……. 이거 저희 먹어요?”

“먹어라, 안 먹는 게 바보지! 왜 그리 울상이냐?”

늙은 거지는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어린 거지를 쳐다보았다. 이런 잘 차린 식사는 반년에 한 끼 먹을까 말까였다.

“으……. 이거 먹을 줄 알았으면 아까 간식 안 먹는 건데…….”

늙은 거지는 이를 듣고 ‘으하하’ 웃음을 터뜨렸고, 주변에 지나가던 행인들은 그 소리를 듣고 그들을 바라보았다.

곧이어 두 거지는 젓가락을 들고 걸상을 식탁으로 삼아, 큰 국수 그릇에 얼굴을 대고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어린 거지는 이미 배가 부른 상태였지만, 설령 배가 터져 죽는다고 해도 이런 면 요리를 낭비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거리에서 후룩후룩 소리를 내며 맛있게 먹자, 행인들은 원래의 생각을 접고 길을 돌아 국수 가게로 들어갔다. 그 두 사람은 먹는 모습만으로 지켜보는 이들을 너무나 군침 돌게 했다.

* * *

시간은 점점 더 중추절(中秋節)에 가까워져, 대정국 각지에서 몰려온 ‘고인’들도 점차 많아졌다. 그들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의 돈 있고 시간 있는 한량들도 모두 경기부로 몰려들었다.

그래서 안 그래도 떠들썩한 경기부는 요즘 하루하루가 새해 전날처럼 들썩거렸다. 길가 좌판에도 온갖 새로운 물건들이 눈길을 끌었다.

만약 길을 걷다가 누군가의 옷차림이 이상하다거나 그 사람 자체가 어딘가 괴이한 느낌이라면, 이는 의심할 필요도 없이 ‘고인’을 본 것이었다.

도성 백성들과 호사가들은 수륙법회에 큰 호기심을 품고 있었고, 이를 마치 중대한 명절처럼 여겼다.

다만 이 일을 맡은 조정의 관원들은 줄곧 우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곳곳에 건물을 세우고 법대(法臺)를 쌓는 데다, 시일에 맞춰 서두르기까지 해야 하니 그야말로 돈이 물처럼 흘러나갔다.

특히 몰려온 고인들이 가장 문제였다. 그들이 이름을 등록하면 조정에서는 그들의 식사와 주거 문제를 책임져주어야 했기 때문에, 그에 따르는 온갖 잡다한 문제가 생겨났다. 번거로운 건 둘째 치고 사소하고 짜증 나는 문제들도 일어났다. 듣기로는 거지들조차 그곳에 빌어 사는 지경이었다. 역관의 관리들이 몇 번이나 그들을 쫓아내려 했으나, 결국 일이 커질까 봐 쉬쉬하며 그들이 안에 머무르도록 놔둘 수밖에 없었다.

8월 초엿새날.

오늘은 영녕가(永寧街)에 있는 초(楚)씨 가문의 초 노야(老爺)가 대단하다고 소문난 누군가를 자택으로 초대하는 날이었다. 이에 이미 하루 전부터 저택 사람들은 바쁘게 준비를 시작하고 있었다.

초저녁이 된 시각에, 노야와 두 공자가 말을 타고서 하인들을 이끌고 돌아왔다. 그들은 팔인교(*八人轎: 고관이나 신부가 타던 가마)를 메고 영녕가를 따라 초씨 가문으로 왔는데, 이 범상치 않은 가마를 본 많은 백성의 이목을 끌었다.

운치 있는 저택의 대문 밖에는 관사인 허(許) 씨가 일찍부터 그들을 맞이하러 나와 있었다. 그는 그들을 본 즉시 초 노야를 위해 말을 끌려고 다가왔다.

“허 관사, 연회 준비는 잘 마쳤는가?”

초 노야는 가마를 쳐다본 다음, 확실히 하기 위해 다시 허 씨에게 물었다.

“노야께서는 안심하시지요. 모두 준비를 마쳤습니다.”

“음!”

초 노야는 고개를 끄덕인 다음, 말에서 내린 두 아들과 함께 가마로 다가가 몸을 굽히며 공수했다.

“두 분 대사(大師)님, 이곳이 제 누추한 거처입니다.”

“으음!”

가마 안에서는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대답 소리가 들려왔고, 이어서 6, 70세쯤 되어 보이는 남녀 한 쌍이 나왔다. 그들은 장포를 입고 있었는데, 남자는 엄숙한 표정이었고 여자는 선한 눈을 가지고 있어 정말로 선풍도골(仙風道骨)의 고인과 같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한쪽에 서 있던 관사 허 씨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 두 사람을 자세히 살폈다. 손발의 움직임을 보니 무공을 익힌 것 같지는 않았고, 겉모습만 봐서는 일단 사기꾼들처럼 보이지도 않았다. 다만 무공을 익힌 자의 직감으로, 이유 없이 그들에게서 뭔가 찝찝한 느낌을 받았다.

이 두 대사는 가마를 나와 초씨 가문의 대문을 보고서는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 이 대문만 봐도 초씨 가문은 확실히 부귀한 가문이 분명했다.

초 노야는 다시 한번 공수한 후, 손을 들어 그들을 위해 길을 이끌었다.

“어서 드시지요!”

“음, 초 노야께서 안내해 주시지요.”

이에 눈썹을 찌푸린 허 관사의 몸속 진기가 약간 들끓었다. 감히 노야에게 길 안내를 시키다니, 이게 어르신을 하인 취급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초 노야는 이에 웃음을 드리운 얼굴로, 정말로 그 두 사람을 이끌고 들어갔다. 다른 하인들은 모두 그 뒤를 따라갔다.

“예, 이쪽입니다!”

두 대사가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 허 관사는 참지 못하고 뒤처진 두 공자에게 물었다.

“공자, 저 두 대사에게 무슨 대단한 능력이 있기에 우리 어르신을 오라 가라 한단 말입니까?”

대공자(大公子)가 멀리 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관사에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허 백부, 저 두 사람은 진짜 고인이에요. 우리가 직접 두 눈으로 봤어요. 저 사람들은 흙으로 작은 인형을 만들어 그것들이 춤을 추게 했어요. 게다가 촛불을 손에 쥐고 뱃속으로 삼킬 수도 있더군요. 또 쏟아 버린 물을 다시 대야에 담기도 했어요.”

“맞아, 맞아. 저도 봤어요. 옛말에 쏟은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던데, 저 두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있더라고요. 그걸 어수술이라고 한대요. 대사께서는 또 우리 같은 범인에게 보일 수 있는 게 이 정도뿐이라고 하셨어요. 진짜 술법을 부리면 초래할 결과를 감당하지 못할 거래요.”

“아…….”

허 관사는 그다지 믿지 못했지만, 초 노야와 공자들도 그리 쉽게 속아 넘길 수 있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이각(二刻: 30분) 정도가 지난 후, 저택의 한 응접실에는 두 대사가 감정을 다스리며 침착하게 앉아있었다. 다만 얼굴에 띤 화색은 감추기 힘든 모양이었다. 응접실 안에는 좌우로 탁자 두 개가 늘어서 있었는데, 그 위에는 적지 않은 금과 은 원보(*元寶: 중국 역대 왕조의 화폐의 일종으로 말굽처럼 생김)가 쌓여 있었다. 그 외에도 그들의 요구에 따라 익힌 고기 다섯 종류, 생고기 다섯 종류, 살아 있는 짐승 다섯 종류가 준비되어 있었다. 익힌 고기는 각각 소, 개, 양, 돼지, 닭이었다. 또한 그와 같은 종류로 도살하였으나 아직 요리하지 않은 같은 종류의 생고기와 아직 도축하지 않은 살아 있는 소, 개, 양, 돼지, 닭이 준비되어 있었다.

등을 켰지만 응접실 안은 아직도 조금 어두웠는데, 실내의 등불은 두 대사의 얼굴을 조금 괴이하게 보이도록 만들었다.

“음머……!”

“메에에……!”

“깍깍……!”

살아 있는 동물들은 어째서인지 무척 불안해 보였다.

“허허허……. 초씨 가문에서 참으로 정성껏 준비해 주셨군요. 초 노야와 여러분들은 잠시 나가 계세요. 저희는 이제 수행을 해야 해서요!”

초 노야와 하인들은 고개를 끄덕인 후, 정중한 태도로 응접실을 떠났다.

바깥 복도에 서 있던 허 관사는 시종 눈썹을 찌푸리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저 두 대사가 좀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어르신…….”

초 노야는 그의 말을 제지하고, 화원 방향을 향해 턱짓했다.

“가서 말하지.”

그들은 응접실 복도를 지나 화원에 들어섰다.

“허 관사, 당금의 성상께서 수륙법회를 여신 것은 당연히 능력 있는 고인들을 만나기 위함일세. 그리고 저 두 대사는 분명 대단한 분들이시지. 다른 어중이떠중이나 무림 고수라고 하는 것들과는 달라. 그러니…….”

초 노야가 이렇게 말을 하던 도중, 별안간 빛이 지나갔다.

슈욱!

흰 빛무리가 후원에서 생겨나더니, 활 모양으로 구부러지며 눈 깜짝할 사이에 그들이 서 있던 곳을 휙 지나갔다.

“아!”

“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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