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224화 (224/892)

224화. 초씨 집안사람들을 비웃는 것인가, 아니면 ‘고인’들을 비웃는 것인가

쿵!

콰당탕……!

응접실의 문이 안쪽에서부터 거칠게 열렸고, 이에 정교하게 조각된 나무문 두 짝이 문틀에서 뜯겨 나갔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갑니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한껏 신비한 분위기를 내뿜던 두 대사는 이리저리 부딪히고 땅을 구르다시피 하면서 안쪽에서 뛰쳐나왔다. 마치 등 뒤에서 호랑이가 쫓아오는 듯한 모습이었다.

“어……. 대사……?”

“지금 갑니다!”

“아무 짓도 안 했습니다! 아무것도!”

두 사람은 극심한 두려움에 차서 머리 위에 차고 있던 진주 비녀까지 떨어뜨리며 구르듯이 뛰어나갔다.

초 노야가 손짓하며 그들을 부르려고 할 때, 두 사람은 이미 그의 시야에서 사라진 뒤였다. 이에 그는 하인들을 데리고 두 사람의 뒤를 쫓아갔다.

초씨 가문의 대문까지 쫓아온 이들은 결국 두 대사를 따라잡지 못했다. 그들은 문틀에 부딪혀 계단을 구르듯이 내려간 후, 부딪힌 곳을 문지를 새도 없이 다급히 뛰쳐나갔다. 그중 하나는 몸을 일으킨 후 뛰어야 하는 것조차 잊고는, 급한 마음에 두 손을 땅에 짚으며 기어서 도망쳤다.

초씨 집안의 사람들은 이를 보며 대문에 멍하니 서 있었다. 잠시 후, 허 관사가 웃음을 터뜨리는 소리에 그들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푸흣……. 고인이라고?”

초 노야는 그를 보더니, 돌연 무언가 생각나 물었다.

“그 흰빛은 뭐였지?”

“잘 모르겠습니다. 후원 어딘가에서 나타난 것 같습니다.”

“가세, 가서 보세!”

두 대사가 도망치는 모습을 보며 그들 모두 쫓아갈 생각을 접었다. 그들은 저택 안으로 들어가 여러 하인에게 물어본 끝에, 그 흰빛이 서각(書閣)이 있던 방향에서 나왔음을 알아냈다.

초씨 집안의 사람들이 서각에 들어갔을 때 안에 있던 빛은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 커다란 책장의 구석에서 은은히 빛을 발하고 있었다.

허 관사는 성큼성큼 걸어가 사다리의 도움을 받지 않고, 가볍게 몸을 날아 올려 위쪽에 있던 서책을 집어 내렸다. 은은한 빛은 바로 그 책에서 나오고 있었다.

“<백부통감>?”

초 노야는 그것을 이리저리 살피다가 한 권씩 뽑아 살펴보았다. 마침내 두 번째 책에서 책갈피 정도 크기의 선지(宣紙)를 발견했고, 그 위에 적힌 글자에서 빛이 나고 있었다. 모인 사람들이 그 종이를 쳐다보자, 글씨 위에 서렸던 빛이 돌연 사라졌고 이제는 보통의 쪽지처럼 보였다.

“대단한 서체구나……!”

초 노야는 종이 위에 적힌 내용을 읽었다.

“이 서각에 머물며 백부(百府)의 상황을 살폈으니, 한가한 몸을 누인 김에 뜰 앞의 더러운 때를 닦노라.”

글씨는 당당하며 또렷했고 독특한 기세를 품고 있었는데, 바로 계연이 서각을 떠나기 전에 남긴 법령이었다.

알고 보니 계연이 그때 남겼던 쪽지가 초씨 집안 사람들에게 발견되지 않았던 것이다. 서각을 청소하던 하인은 저택의 누군가가 책을 읽다가 원래 자리에 돌려놓지 않은 것이라고 여겼고, 쪽지 위에도 그 책의 이름과 같은 ‘백부’라는 글자 적혀 있었으니 그것을 책 안에 끼우고 책꽂이에 꽂은 것이다.

* * *

이 시각, 한 민가(民家)에 세 들어 꿈속에서 수행하던 계연은 무언가를 느끼고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그 미소가 초씨 집안 사람들을 비웃는 것인지, 아니면 그 ‘고인’들을 비웃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계연은 꿈에서 수행하는 이 방법을 꽤 좋아했는데, 꿈속 의식 세계에서 수행하면 더욱 쾌적하고 몸이 민첩했을 뿐만 아니라 진의(眞意)를 깨달을 수도 있었으며, 정신을 편안하게 하는 효과도 있었다.

이런 꿈을 꾸는 듯 아닌 듯한 상태에서, 계연의 감각은 의식 세계의 산하와 현실 세계에 동시에 연결되어 있었다. 그래서 때로는 무언가 특별한 감각을 느끼기도 했다.

바로 지금처럼 거리가 꽤 가까운 초씨 가문에서 무언가 느껴진 것이다. 계연은 꿈속이라 그 장면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 어처구니없는 감정을 느낄 수는 있었다.

초씨 집안은 복이 있어서 조정의 큰 관직에 몸을 담은 자는 없었지만, 재산이나 명망은 부족하지 않았고 또한 진왕과도 좋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

거대한 서각 안의 서적들 대부분이 먼지에 뒤덮여 있어서 계연의 법령이 이곳에 묶여 있었지만, 비로소 오늘 다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비록 그것이 드러난 방식은 조금 부끄러웠지만, 어쨌든 초씨 가문 사람들은 요사스러운 것들에게 거의 속아 넘어갈 뻔했다.

계연은 한번 웃고는 더는 신경 쓰지 않고, 침상에 누워 계속 수행했다. 그와 달리 초씨 가문 안은 그다지 평온하지 못했다.

* * *

초 노야의 곁에 서 있던 큰아들이 등롱을 들고 이 책갈피 크기의 선지를 비추었다. 그러자 모여든 이들은 종이를 더욱 자세히 볼 수 있었다.

“아버지, 글자에서 방금까지 빛이 났지요?”

“그래…….”

“이건 누가 쓴 것인가요?”

초 노야는 주위를 둘러보았는데, 그는 집안에 이렇게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이 글씨는 그냥 글씨도 아니고 무언가 특별한 것이었다.

“참, 이 <백부통감>, 누가 마지막으로 보았느냐?”

초 노야는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이렇게 물었고, 당연히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런 책이 있었다는 것조차 잊고 있었다. 서각의 책은 너무 많아서, 이곳에 자주 오는 사람이 아니면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잠시 무언가 생각하던 초 노야는 질문의 방향을 바꾸어 다시 물었다.

“누가 서각을 책임지고 청소하지? 허 관사는 알고 있는가?”

허 관사는 저택에서 가장 신임받는 하인으로서, 당연히 누가 이곳을 청소하는지 알고 있었다. 잠시 주변을 살펴보던 그는 찾는 이들이 이곳에 없는 것을 발견했다.

“전덕(錢德)과 손부귀(孫富貴)를 찾아오너라!”

바깥쪽에 서 있던 하인이 재빨리 대답하고 나간 뒤, 얼마 후 휴식을 취하던 하인 둘이 다급히 들어왔다.

정확하게 말해서, 그들은 단순히 서각을 청소만 하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서적을 원래 자리에 돌려놓는 등의 일도 했기 때문에, 당연히 글을 알고 있었다.

그들이 들어오자, 서각 안쪽에 놓인 탁자에 서 있던 서 노야는 <백부통감> 전집과 손안에 시종 쥐고 놓지 않던 쪽지를 들어 보이며 물었다.

“이 책들과 쪽지를 기억하느냐?”

<백부통감>과 그 쪽지를 보자마자 두 하인은 바로 알아봤다. 그리 보기 좋은 서체를 어떻게 잊을 수가 있겠는가? 그들은 그 쪽지를 처음 발견한 후부터 지금까지, 서각을 청소할 때마다 때때로 책을 열어 그 글자를 살펴보고는 했다.

“어르신께 아룁니다. 기억합니다.”

초씨 집안의 사람들은 이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리 저택에 묵었던 어느 손님께서 남기신 것인지 아느냐?”

“그건…… 소인도 잘 모르겠습니다. 처음 서각 3층의 탁자 위에서 그 <백부통감> 전집과 쪽지를 보고서, 두 분 공자나 어르신께서 보려는 것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러나 2주가 넘도록 그 자리에 그대로 있길래, 책과 쪽지를 잘 챙겨 원래 자리에 꽂아 두었습니다.”

자기 집의 일은 그 가족들이 제일 잘 알듯, 서각 3층은 정말로 사람들이 잘 가지 않는 곳이었다. 초 노야는 다시 이렇게 물었다.

“그게 언제 적 일이냐?”

“그……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대략 몇 년은 된 듯합니다…….”

하인의 대답에 초씨 집안 사람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다가 허탈함을 느꼈다.

이런 일은 보통 어떻게 된 건지 완벽히 파악하는 게 불가능했다. 다만 이 쪽지를 남긴 이가 절대 보통 사람이 아니고, 아무래도 고인이라고 보는 게 맞을 듯했다.

허 관사는 어째선지 예전에 있었던 어떤 일이 떠올랐다. 그해 겨울, 마침 눈이 내렸을 때, 진왕부에 상서로운 징조가 내려왔다는 일이 널리 퍼졌을 시기였다. 그때 그는 서각 안에서 무언가 수상스러운 기운을 느끼고, 원인을 찾아내려 했으나 어떤 것도 발견하지 못했었다.

다만 이 일은 어떤 명확한 증거도 없는 데다, 아무래도 자신이 너무 민감하게 반응했던 것 같아 허 관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때, 초씨 가문을 황급히 뛰쳐나온 두 ‘고인’들은 자신들이 어떻게 보이는지 조금도 신경 쓸 겨를 없이 도망치고 있었다. 그들은 초씨 가문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기만 바랐기 때문에, 영녕가를 따라 쭉 뛰어갔다. 그들은 방(*坊: 옛날 도시나 읍의 하급 행정구획) 두 개를 지나쳐 어느 골목의 허물어진 곳간에 이르러서야 발걸음을 멈추고 숨을 몰아쉬었다.

“후…… 후우…… 허억, 너무 무서워……!”

“허억…… 허억……. 그러니까…… 정말 죽는 줄 알았네!”

6, 70세 정도는 되어 보이는 노인 둘은 산발을 하고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있어서, 이전의 신선 같은 모습은 찾아볼 수도 없었다.

잠시 휴식을 취한 두 사람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다.

“방금 그 하얀빛이 스쳐 지나갔을 때, 심장이 쿵 떨어지는 줄 알았어. 그게 뭐지? 초씨 집안 사람들 모습을 보니 자기들도 그게 뭔지 모르는 것 같던데…….”

“아이고, 나는 무언가 소름 돋는 시선이 계속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았어. 곧이어 몸이 말을 안 듣고 덜덜 떨리더니 저절로 밖으로 뛰쳐나갔지. 내 몸인데 말을 안 듣더라고……. 그게 뭐였는지는 모르고 있는 편이 나은 것 같아.”

“그래, 그래. 더는 캐지 말자!”

이렇게 말하는 두 사람은 아직도 마음속에 두려움이 남아서, 그곳에서 잠시 쉬며 숨을 돌린 뒤에 머리와 의복을 가다듬었다. 그 후 약간의 초조함과 아쉬움을 담고 역관이 있는 방향으로 향했다.

대정국에 온 이래로 모든 이들이 우러러보는 대사 대접을 받았는데, 그 커다란 기회를 눈앞에서 놓치게 되니 아무래도 좀 아쉬움이 남았다. 뭐든지 입만 열면 갖다 바칠 기세였는데 말이다.

그들은 이제 그저 초씨 집안 사람들이 와서 훼방만 놓지 않았으면 했다. 그러면 역관에 도착한 이후에도 다시 고인 행세를 하며 ‘대사’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때 하늘은 이미 완전히 어두워져서, 두 사람은 조심스럽게 곳간에서 나온 뒤 역관으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이리저리 돌며 꽤 걸었는데도, 익숙한 길을 찾을 수가 없었다. 초씨 가문에서 도망쳐 나올 때 너무 급하게 나와, 자신들이 어느 쪽으로 도망친 것인지도 알 수가 없었다.

경기부는 대정국에서 가장 크고 번화한 곳이라, 그 안에 나눠진 방(坊)들도 자연히 크기가 컸고 건물들도 빽빽했다. 두 사람은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런 밤 중에 길을 잃지 않았다면 그것이 더욱 이상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조금 전에 그 골목에서 휴식을 취했더니, 어느새 시간이 늦어져서 이제 방 전체가 어두컴컴했다. 보아하니 이곳 백성들은 모두 잠이 든 것 같았다.

“휴, 아무 집이나 두드려서 길을 물어볼까?”

노파가 이렇게 제안하던 순간, 곁에 있던 노인이 그녀를 잡아끌더니 한 건물의 그림자 안에 몸을 숨겼다.

“쉬……!”

노인은 손가락을 입에 대고 노파를 제지한 후, 양손에 부적을 꺼내 들더니 두 사람 각자의 이마 위에 붙였다.

그 후 두 노인은 어두운 곳에 몸을 딱 붙이고 서서 숨조차 크게 내쉬지 못했다.

그들은 곧 희미한 검은 그림자 두 개가 먼 곳에서부터 가까워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림자 두 개는 때때로 주위를 둘러보며 오고 있었고, 두 사람이 몸을 숨긴 곳을 살필 때는 속도가 살짝 느려진 것 같았다. 이에 몸을 숨긴 두 사람은 호흡을 참았다.

다행히 두 사람의 착각이었던 듯, 모호한 검은 그림자 두 개는 작은 길을 따라 이동했고 곧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고도 약간의 시간이 지난 후, 두 사람은 검은 그림자가 완전히 사라지고 그쪽에서 어떤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는 것을 확신했다.

“휴……. 야간 순시관이었어!”

“응, 음기가 엄청 세더라. 역시 대정국 도성의 순시관다워. 우리 둘이 목숨을 걸고 덤벼도 못 이기겠지?”

“덤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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