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5화. 오히려 일반 백성들은 안전하다
부적에 있는 영험한 술법의 소모를 줄이기 위해 재빨리 부적을 떼어낸 노인은 이상한 소리를 한다는 얼굴로 노파를 쳐다보았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마. 우리가 천사(天師)의 자리를 얻고 이 대정국에서 허리를 꼿꼿이 펴고 다닐 수 있을 때 어쩌면 가능할 수도 있겠지.”
두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 몇 걸음 가지도 않았을 때, 먼 곳에서 “으아악!” 하는 끔찍한 비명이 들려왔다.
‘어떤 멍청이들인지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군.’
두 ‘대사’들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자신의 실력을 믿고 날뛰는 사술(邪術)을 닦는 이들이 사람을 해친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어쨌든 이 법회에 참가하러 온 이들 중에는 별의별 것들이 다 있었으니 말이다.
그들은 그 소리로부터 멀리 떨어지려 했다. 저 소리를 듣고 저승 관리들이 몰려오면, 괜히 가까이 있다가 연루되어 혼이 뽑힐 수도 있었다.
두 사람은 저승 관리들이 오기 전에 소리가 들린 반대 방향으로 뛰었는데, 몇 걸음 가기도 전에 이번에는 다시 앞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와앙~! 으아앙!”
방금 그 비명과 비교하면 이 소리는 좀 더 날카롭고 마치 아이가 우는 듯한 소리와 비슷했다. 두 사람은 모골이 송연해졌다.
“사람이 아니야!”
“얼른 뛰어!”
오늘 밤 이미 여러 차례 두려운 일을 당한 두 사람은 몸 안의 영기와 미미한 법력을 전부 끌어다 쓰고, 다시 부적을 꺼내 붙였다. 하지만 이미 길을 잃은 상황에서 그들은 계속 같은 방(坊)을 헤매고 있었다.
앞을 향해 계속 뛰자 곧 거리가 넓어지며, 달빛이 밝게 비추는 대로가 보였다. 이에 두 사람은 속으로 안심하며, 더욱 속도를 높여 뛰어갔다.
툭!
그때 두 사람은 발밑에 나타난 계단에 걸려 중심을 잃고 앞으로 엎어졌다.
풍덩! 풍덩!
물방울이 사방으로 튀었다. 알고 보니 전방은 대로가 아니라 성안에 흐르는 작은 개천이었다.
“아으으어…… 어푸……!”
“어푸우…… 푸아하……!”
두 ‘대사’들은 물에 잠겨 손발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발버둥질 쳤다. 입에서는 계속해서 기포가 나오고 있었고, 그들에 의해 개천의 물이 사방으로 튀고 있었다. 하지만 괴이하게도 그들은 몸을 뒤집거나 헤엄치지 못했다.
잠시 후, 두 ‘대사’들은 수면 위에서 몇 번 움찔거리다가 점차 아무런 움직임이 없어졌다.
회색 고양이 한 마리가 주변의 옥상에서 뛰어내려 개천에 떠 있는 시체 위에 내려앉았다.
미야옹…… 와우웅……!
고양이의 울음소리는 마치 어린아이가 우는 듯해서, 듣는 이들의 피부에 닭살이 돋게 했다. 고양이는 몸을 굽혀 두 시신에 가까이 다가간 다음, 그들로부터 회백색의 기운을 빨아들였다.
회백색의 기운을 모두 빨아들이고 나서, 회색 고양이는 시원스레 몸을 앞뒤로 쭉쭉 펴며 기지개를 켰다.
달빛을 받은 등 뒤의 꼬리 아래로 다섯 개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지금 이런 도성이 어지러운 상황에서 일반 백성들은 모두 함부로 나다니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이런 사술을 닦는 이들이 무언가 수작을 부리기 좋은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역관에서 얌전히 있지 않고 이렇게 밖에서 쏘다닌 것이다. 게다가 이런 자들은 목숨을 잃는다 한들 속세든 저승이든 어느 곳에서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을 것이었다. 누군가 조사한다고 해도 원인을 캐기는 불가능할 터였다.
회색 고양이는 잠시 후 통통 뛰어 사라졌다. 시체들도 곧 개천의 물길을 따라 천천히 흘러갔다.
약 일 각(*15분)도 안 되어 그들의 시체는 곧 누군가에 의해 발견되었다. 일정한 속도로 근처를 지나던 희미한 검은 그림자들은 돌연 속도를 높여 시체 근처의 기슭에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일전에 지나쳤던 두 야간 순시관이었다.
모습을 드러낸 두 야간 순시관은 검은 경장(*輕裝: 간결한 복장을 뜻함, 무협지에 흔히 등장하는 옷차림) 차림을 하고, 왼쪽 허리에 긴 칼을 차고 있었다. 그중 한 순시관은 오른쪽 허리에 긴 채찍을 걸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칠흑처럼 검은 궁과 새까만 화살 세 개를 등에 지고 있었다.
두 야간 순시관은 눈을 가늘게 뜨고 개천의 시체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시선으로는 당연히 이것이 혼백이나 생기도 남지 않은 순수한 껍데기임이 보였다. 보통 사람들은 죽어도 이렇게까지 깨끗하게 죽을 수 없었다.
이를 제외하고도 그들은 이 두 시체에 요사스러운 술법을 익힌 흔적과 기운이 남아 있는 것을 꿰뚫어 보았다.
“도대체 이런 짓을 한 자의 정체가 뭐지? 분명 그 새로 지은 법대 주변의 역잔에 머무는 이들 중 하나일 텐데.”
“흥, 누가 한 짓인지 알 게 뭐야? 어쨌든 이보다 큰일은 감히 일으킬 수도 없을걸.”
“하하, 자네 말이 맞아. 이승의 관리들이 골머리 꽤 앓겠군.”
다음 순간, 두 야간 순시관은 형체가 흐릿해지더니 그곳에서 십 수 장(丈) 떨어진 곳에서 모습을 드러낸 다음 천천히 자리를 떴다.
먼 곳의 지붕 위에는 회색 고양이 한 마리가 처마 위에 앉아 앞발을 혀로 핥고 있었다. 차가운 눈빛으로 야간 순시관이 사라진 방향을 잠시 쳐다보던 고양이는, 다시 물속의 시체로 시선을 돌렸다.
슈욱-!
그 순간, 전혀 빛이 나지 않는 새카만 화살이 회색 고양이를 노리고 날아왔다. 고양이는 몸 전체가 흐릿해지더니, 순식간에 화살을 피해 조금 떨어진 곳으로 몸을 피했다. 그러자 화살은 공중에서 방향을 바꿔 다시 한번 회색 고양이를 향해 날아왔다.
그와 동시에 먼 곳에 있던 야간 순시관이 다시 한번 활을 당겨 활을 보름달처럼 둥글게 만들었다. 그러자 검은 화살이 화살통에서 사라지며 저절로 활에 모습을 드러냈다.
슈웃!
또 다른 화살이 공중을 가르며 날아갔고, 앞뒤로 공격해오는 화살의 기세에 음양이 만나는 기운이 찢기며 틈이 생겼다. 화살은 계속해서 형체가 드러났다 사라졌다 하는 회색 고양이를 뒤쫓았다.
“맞혔다.”
펑-!
어느 지붕 위에서 음기가 폭발했다. 하지만 화살에 맞은 회색 고양이는 마치 거품처럼 톡 터지며 형체도 없이 사라졌다.
검은 화살 두 개가 날아와 저절로 경기부 야간 순시관의 화살통으로 들어갔다.
“환술(幻術)을 부리는 실력이 대단하군. 저 요괴는 쉽지 않겠어!”
“음, 좀 더 돌아다니게 놔둡시다.”
이렇게 말을 마친 두 야간 순시관은 곧 유령처럼 흐릿해지더니 깊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대략 백 장(丈) 정도 떨어진 모처의 오두막집 아래에서 회색 고양이의 형체가 모습을 드러냈다. 고양이의 두 눈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감정을 알아볼 수 없었다.
‘야간 순시관이 저 정도의 도력을 가지고 있다니, 대정국 경기부는 과연 다르구나.’
요괴는 재빨리 달려서 역관으로 돌아갔다. 물론 그는 경기부의 길을 잘 알고 있었다.
* * *
다음 날 이른 아침, 두 구의 시체가 성문 근처 개천을 가로막는 갑문(閘門)에서 발견되었다.
이 작은 개천은 성 밖으로 흘러나가기 때문에, 물길이 지나는 성벽에는 갑문이 있었다. 물고기들은 그 창살을 지날 수 있었지만, 시체처럼 커다란 것들은 그곳에 가로막히게 되어있었다.
포졸들과 관리들은 시체를 건져냈을 뿐, 저승 관리들처럼 일 처리가 빠를 수 없었다. 그들은 두 사람이 누구인지, 경기부 사람인지 아닌지조차 알아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관아가 한동안 바빠졌는데, 만약 아무도 이들의 실종 신고를 하지 않는다면 이 일은 이렇게 흐지부지 끝날 것이다.
물론, 이승의 관리들도 어느 정도 심증은 있었다. 곳곳에 세워진 법대 주변에 머무는 한 무리의 이방인들과 분명 관련이 있을 것이었다. 가을에 들어선 후로부터 경기부에는 수많은 고인이며 법사들이 몰려와, 온갖 기괴한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 * *
계연은 그동안 한 민가의 곁채에 세 들어 살고 있었는데, 이곳은 예전에 왕립이라는 이름의 설서 선생이 머물던 골목에 있었다. 이곳에 사는 백성들은 빈방을 외지인들에게 세를 받고 빌려주었다. 그 가격이 아주 합리적이었기 때문에, 경기부에 과거시험을 치러오는 서생이나 강호 사람들이 주로 묵었다.
중추절 당일 밤, 계연이 머무는 골목에 있는 민가에서는 모두 등롱을 내걸고 명절 분위기를 냈다. 마치 새해를 보내는 것처럼 들뜬 분위기였는데, 백성들은 중추절 관습대로 작은 탁자를 꺼내 놓고 그 위에 갖가지 공물을 올려 달을 향해 제사를 올렸다.
“계 선생님, 계 선생님!”
그가 머무는 곳의 집주인이 쾌활한 목소리로 밖에서 그를 불렀다.
“네, 가요!”
방 안에 있던 계연은 손에 들고 있었던 옥간을 내려놓고, 일어나서 문을 열었다. 밖에 선 남자는 접시를 하나 받쳐 들고 있었는데, 그 위에는 월병(月餠) 몇 개가 놓여있었다.
“계 선생님, 월병을 선생님께 조금 나눠드리려고 가져왔어요. 저희 셋째 백부께서 직접 만드신 건데, 보기에 그다지 예쁘지는 않지만 맛은 참 좋답니다.”
“아, 그렇군요. 정말 감사합니다. 마침 달 구경하러 나가려던 참인데, 이걸 갖고 나가서 간식으로 먹으면 되겠네요.”
계연은 접시를 받지 않고, 월병 여섯 개를 모두 손에 쥔 다음 집주인을 향해 공수한 후 문밖으로 나갔다.
“계 선생님, 지금 출타하시려고요?”
집주인은 계연이 나가려는 모습을 보며 걱정하는 기색으로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밤에는 나가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관아에서부터 방 곳곳에 통지가 내려왔는데, 백성들에게 밤에 밖에 나가지 말라고 하던데요. 최근에 사건이 자주 일어나나 봐요.”
이미 밖으로 나선 계연은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본 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맞아요. 밤에는 외출을 삼가는 게 좋지요. 저도 여기 영녕가만 조금 걷다가 돌아올 거예요. 게다가 오늘은 밖에서 달을 구경하는 사람들이 분명 적지 않을 테죠.”
그는 집주인에게 다시 고개를 끄덕여 보인 후 문을 나섰다. 작은 골목 안의 민가들은 모두 자기들 방식으로 중추절을 축하하고 있었고, 어떤 이는 마당에 나와 달을 감상하고 있었다.
계연은 골목을 나와 발걸음을 빨리하여, 행인들이나 하늘은 보지도 않고 걸었다. 잠시 후 그가 원하던 목적지에 다다랐는데, 그곳은 경기부에서 가장 큰 성의 동쪽에 세워진 법대였다.
법대는 3장(*약 9m) 높이에 가로세로 각각 100장(*약 300m)정도의 너비였다. 사면에는 법대에 오를 수 있는 계단이 놓여있었다. 며칠 후, 이곳이 바로 수륙법회의 주 무대가 될 것이다. 계연의 지난 생의 표현대로라면 ‘개막식’이 열리는 장소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이 거대한 돌을 쌓아 만든 법대 주위는 적막하기 짝이 없었다. 법대 주변으로는 광활한 공간이 비어 있었고 인가도 없는 데다, 밤에 이렇게 먼 곳까지 오는 이들은 없었기 때문이다. 법사나 고인들이 머무는 역관은 대부분 이 주(主) 법대가 아닌 다른 작은 법대들의 근처에 있었다.
“엄청 조용하네.”
계연은 소매를 한번 떨치고 성큼성큼 계단 위로 올라가, 높고 거대한 법대 위에 올라섰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니, 동그랗고 환한 달이 그보다 약간 어두운 별들에 둘러싸여 높은 하늘에 걸려있었다.
“옛말에 15일의 달은 밝고 16일의 달이 둥글다던데, 아무래도 달빛이 가장 밝은 건 오늘 밤이겠지!”
계연은 웃으면서 이렇게 혼잣말을 했다. 그리고 시선이 곧 법대 아래를 향하다가, 마침 그 계단 근처에 있던 두 사람의 인영(人影)을 발견했다. 그중 한 사람은 남루한 옷을 입은 그 늙은 거지였는데, 그는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다리 위에 얹어 놓고 있는 모양새였다. 다 떨어진 짚신은 위쪽에 올린 발에 걸린 채 위아래로 흔들렸지만, 어쩐 일인지 떨어지지는 않았다.
다른 한 사람은 완벽하게 옷을 차려입은 긴 수염을 가진 중년의 유학자였다. 그는 거지의 곁에 서서 하늘의 달과 별을 바라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