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6화. 달빛으로 글씨를 쓰다
계연은 법안을 살짝 열어 그 남자를 살핀 후, 유유자적하게 늙은 거지를 향해 걸어가며 이렇게 말했다.
“노 선생님, 대정국 역관의 관리가 대접이 소홀한 건가요, 아니면 선생께서 일부러 이렇게 남루한 차림새를 하신 건가요?”
계연의 목소리를 들은 중년의 남자가 놀란 듯이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는 계연이 다가오는 기척을 조금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허허, 오늘 밤 여기에 오면 좋은 구경거리가 있다는 걸 알았지요. 설마 그것이 계 선생님일 줄은 몰랐군요. 중추절 밤에 달빛이 가장 밝게 빛나고, 며칠 후면 또 수많은 이들이 이곳에 올 테니, 허허…….”
“노 선생님의 앞일을 예측하는 능력은 백발백중이신데, 설마 제가 하려는 일을 막으려고 오신 것은 아니시지요?”
“아이고! 어찌 그러겠습니까!”
늙은 거지는 그제야 몸을 일으켰다.
“저는 그저 늙은 비렁뱅이일 뿐, 그런 능력은 없습니다. 다만 계 선생님께서 도대체 무슨 고명한 술법을 쓰실지 무척 궁금합니다!”
계연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이제야 막 그들 근처에 도착한 계연은 늙은 거지를 향해 공수한 후, 중년의 학자를 향해서도 인사했다.
이에 늙은 거지도 계연을 향해 대강 인사를 했는데, 그래도 몸을 일으켜 제대로 인사를 하는 모습이었다. 중년 남자는 그런 늙은 거지의 모습을 보고, 상대가 심상치 않다는 걸 느끼고 정중하게 장읍례를 올렸다.
“이분은?”
계연이 이렇게 묻자, 늙은 거지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남자가 스스로 자기 소개를 했다.
“저는 태사사천감(太史司天監)의 감정(監正), 언상(言常)입니다!”
이에 계연도 대답했다.
“언 대인이셨군요, 제 성은 계 씨입니다.”
“진인(眞人)의 앞에서 대인이라 불리다니 당치 않는 말입니다!”
태사사천감은 대정국에서 태상사(太常使) 또는 흠천감(欽天監)이라고도 불렸다. 그들은 하늘을 관측하고, 절기를 계산하며 달력을 만드는 일을 맡아 했다.
이자는 늙은 거지가 무언가 남다른 점이 있다는 것을 아는 듯했고, 마찬가지로 계연도 범상치 않은 인물임을 알아본 것 같았다. 그는 조정 관원의 위엄을 조금도 드러내지 않았는데, 계연과 거지를 대하는 태도가 무척 공손했다.
늙은 거지는 다시 자리에 앉아서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허허, 대정국은 확실히 인재가 많이 나는 곳인가 봅니다. 역관에서 먹고 자는 나 같은 늙은 거지를 이 언 대인이 콕 집어 불러내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언 대인을 데리고 왔으니 선생께서도 저를 탓하진 않으시겠지요?”
“예?”
그의 말을 듣고 계연은 조금 의아해졌다. 계연은 다시 한번 언상을 살피며 언상이 평범한 범인임을 확인했다. 계연은 마음속으로 저 거지 노인이 조정 관원과 이렇게 가까이 어울리는 걸 이상하게 여겼다.
“아, 그렇지. 저한테 월병이 몇 개 있는데, 마침 우리가 세 사람이니 잠시 후에 두 개씩 나눠 먹으면 될 것 같아요. 지금은 제가 우선 할 일이 있어서요.”
계연은 마치 무언가가 떠오른 사람처럼, 소매 안에서 월병 여섯 개를 꺼내더니 계단의 난간 위에 올렸다. 그리고 조정의 관원이 있는 것을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거대한 법대의 중앙을 향해 걸어갔다.
언상은 계연을 보다가 다시 늙은 거지를 바라보았다. 그는 망설이며 자신이 따라가서 지켜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으나, 늙은 거지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보고 결국 가만히 자리를 지켰다.
계연은 법대의 중앙에 가만히 서서 검지를 뻗어 하늘을 한번 그었다. 그러자 등 뒤의 넝쿨검이 모습을 드러낸 후, 번쩍이는 푸른 빛을 뿜으며 공중으로 날아갔다.
하늘에는 밝은 달이 높이 떠 있었는데, 지면을 향해 수없이 흩뿌려지던 달빛이 공중에 뜬 넝쿨검을 향해 모여들었다. 그러자 무언가 심상치 않은 기척을 느낀 듯, 건장한 체격을 가진 경기부 토지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법대의 한쪽 끝에 서서 등나무로 만든 지팡이로 바닥을 짚고 있었다.
뒤이어 법대의 돌바닥이 마치 유리로 만든 거울 표면처럼 변했고, 달빛이 넝쿨검이 있는 곳으로 모여들었다. 넝쿨검은 그 사이에서 마치 깔때기처럼 달빛을 모아 아래로 흘려보냈다.
마치 계연은 법대에서 검무를 추는 것 같았다. 그는 손을 휘두르며 곧게 뻗은 검지로 이리저리 선을 긋고 구부렸다. 상공에 뜬 선검에 이끌려 온 달빛은 마치 붓처럼 계연의 손끝을 따라갔다.
이 광경은 언상의 눈에 아름답고도 몽환적인 풍경으로 비추어졌으며 동시에 신비롭고 비범하기 짝이 없었다. 계연이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광활한 법대 위에 온 하늘의 달빛이 모두 이곳에 모인 것처럼, 달빛으로 글자가 쓰여졌다.
“대단한 솜씨야! 이렇게나 정교한 칙령은 처음 보는군!”
늙은 거지는 더는 자리에 앉아있을 수 없어, 몸을 일으킨 뒤 그 광경을 구경했다. 언상의 주의력도 계연에게 전부 쏠려 있었지만, 그에게는 큰 그림을 볼만한 능력은 없었다. 그런 그도 그저 부드럽고 고아한 빛무리처럼 보이는 계연의 글자 하나하나가 실은 웅건한 기세를 품은 채로 거울 표면처럼 보이는 법대에 전부 스며들고 있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십여 분 정도가 지난 뒤, 하늘의 달빛이 흩어지며 법대의 거울 같은 바닥에 있던 글자들이 스르르 사라졌다. 곧이어 유리 같은 표면의 바닥이 점차 원래의 색을 회복하더니, 다시 평범한 돌바닥으로 변했다.
“허허, 이제 월병을 먹어도 되겠군. 언 대인도 어서 드십시오.”
“아뇨, 아뇨. 어르신 드세요. 저는 별로 출출하지 않아서요.”
“엥? 진심입니까, 언 대인? 이 월병은 대인 평생에 아마 다시는 못 먹을 텐데요.”
그다지 먹고 싶은 생각이 없어 대충 대답했던 언상은 그 말을 듣고 속으로 몹시 놀랐다. 이어서 그는 고개를 돌려 줄지어 늘어선 여섯 개의 월병을 바라보았다. 월병에는 달빛이 은은하게 반짝이다가 점차 사라져가고 있었다.
늙은 거지가 그새 두 개를 집어 간 것을 보고, 언상은 붉어진 얼굴로 무릎을 굽혀 두 개를 손에 쥐었다.
그러나 늙은 거지는 월병을 먹지 않고 바로 주머니에 넣었다. 이어서 먼 곳의 지붕을 향해 한번 손짓했는데, 그에게서 마치 무언가를 끌어당기는 듯한 거대한 힘이 뻗어져 나왔다. 곧이어 회색 고양이 한 마리가 노인의 근처로 끌려왔고, 노인은 고양이의 머리를 계단에 콱 내리눌렀다.
미야옹……!
계연은 천천히 걸어와 회색 고양이를 한번 쳐다본 다음 웃으며 말했다.
“어이쿠, 이미 왔는데 인제 와서 어딜 가려고?”
늙은 거지가 직접 도력을 써서 고양이를 붙잡은 것을 보고, 계연은 기분이 아주 좋아졌다.
왜냐면 이 늙은 거지가 방금 능력을 사용한 그 순간, 계속 법안을 열고 그를 눈여겨보고 있던 계연이 마침내 그의 기운을 포착해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그가 본 것에 그다지 특별한 것은 없었다. 심지어 사람이 가진 다섯 가지 기운(*금(金), 목(木), 수(水), 화(火), 토(土))도 일반 사람들과 같았는데, 다만 그것이 고요한 물처럼 평형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 특이할 뿐이었다. 그의 정기(精氣)는 인간만이 가진 불의 기운에 숨겨져 있었다. 그러나 그 기운은 무척 평온하여 어떤 움직임도 없었고, 은은한 광채에 뒤덮여 있었다.
그 광채는 노인의 온몸에 흘렀는데, 흩어지고 모이지 않고 맺힐 뿐 실체를 갖지 않았다.
이 사람은 확실히 깊이를 모를 정도로 오랜 세월 꾸준히 수행을 쌓은 것이 확실했다. 계연이 지금까지 만난 이들 중 수행의 깊이로는 두 번째라고 볼 수 있었는데, 법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제쳐 두고서 그 수행의 깊이만 본다면 늙은 용에게 조금 뒤지는 정도였다.
법력과 전투력으로만 본다면, 노인은 진룡과 비교했을 때 당연히 아주 많이 뒤처졌다.
물론 계연 자신과 비교한다면 엄청난 차이가 났다. 계연은 아직 몸 안의 다섯 가지 기운을 연마하는 중이었고, 이 늙은 거지는 이미 세 가지 정수(精髓)는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었다.
현재 수행계에서는 다섯 가지 기운 중 하나만 통달해도 일정 경지에 들었다고 보았다. 그러니 이 늙은 거지가 만일 자신을 스스로 진선(眞仙)이라고 칭한다고 해도, 반박할 수 있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에게 반박하려면 그가 닦은 정도의 수준은 되어야 하니 말이다.
그러나 계연의 이런 방면에 대한 관점은 늙은 용과도 일치했다. ‘거의’는 어디까지나 거의이고, 조금 모자라는 것도 어쨌든 모자란 것이다. 그 차이는 하늘과 땅 사이의 거리만큼 컸다.
‘진(眞)’자를 얻지 못하면, ‘동현(*洞玄: 도교 경전은 동진(洞眞), 동현(洞玄), 동신(洞神) 세 부분으로 나뉨)’이라 할 수 없었다.
거지 노인 정도의 수준인 자라면, 아마 그 자신이 이 점을 더욱 잘 알 것이다.
계연의 법안으로 조금이나마 거지를 파악한 데 비해, 늙은 거지는 계연과 정반대였다. 이 계 선생이라는 자가 술법을 펼칠 때, 그가 쓰는 법력의 파동은 거의 느끼지 못할 정도로 미세했다. 어떻게 봐도 계 선생이란 자는 겉으로는 보통 사람이라, 한 번만 봐도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사실상 자신과 계 선생의 사이에는 산과 물을 뛰어넘는 거리가 있는 것 같았다. 마치 구름과 안개 속에 가려진 것처럼 계 선생의 모든 것이 보일 듯 말 듯했다.
그러나 늙은 거지는 남들이 보기에는 자신 또한 조금의 기이한 구석도 찾아볼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 회색 고양이를 잡을 때도 그는 조금의 기운도 드러내지 않을 수 있었으나, 계 선생의 달빛 검무를 보고서 일부러 실력을 조금 드러낸 것이었다.
‘달빛을 이용해 검으로 글을 쓰다니, 정말로 꿈처럼 아름다운 풍경이구나. 내가 이 고양이를 잡아낸 것도 사실 일종의 도박이었지.’
늙은 거지는 곁에 있던 태사사천감 감정 대인이 월병 두 개를 손에 꼭 쥐고서 회색 고양이를 몇 번 보다가, 다시 계연에게 온통 집중하는 것을 보고 입을 삐죽거렸다.
‘겉으로 드러난 것만 보다니,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어서 늙은 거지는 먼 곳에 떨어져 있던 토지신이 사라진 것을 발견했다. 아무래도 와서 인사를 할 생각은 없는 모양이었다.
다시 계 선생을 바라보니, 어느새 그는 왼손으로 등 뒤의 넝쿨검을 잡은 채 오른손은 자연스럽게 내리고 이쪽으로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노 선생께서는 마치 꽃을 하나를 꺾듯 술법을 부리시는군요. 그리도 손쉽게 처리하실 줄이야, 정말 대단한 실력이시네요!”
계연의 감탄을 듣고 늙은 거지는 피어오르는 웃음을 숨기지 못했다. 어떤 말은 일정한 경지에 오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법이었다.
“계 선생님, 이 고양이는 어찌 처리하실 겁니까?”
늙은 거지가 이렇게 묻자, 그의 손에 의해 바닥에 머리가 눌린 회색 고양이는 힘껏 발버둥 쳤다.
끼야옹……!
고양이의 애처로운 울음소리는 아기의 것과 비슷했다. 곁에서 이를 들은 언상은 온몸에 닭살이 돋았고, 본능적으로 저것이 요물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뒤이어 회색 고양이의 털이 꼭 부풀어 오르려는 것처럼 빛으로 한 겹 덮였다. 법력과 요기(妖氣)가 동시에 솟구치며, 고양이는 늙은 거지의 억압에서 벗어나려 했다.
“어허! 얌전히 있지 않고!”
늙은 거지는 왼손으로 고양이의 머리에 꿀밤을 때렸다.
통!
맑은소리와 함께 회색 고양이에게서 나오던 빛이 마치 거품이 터진 것처럼 사라졌다. 그러자 고양이는 온몸이 딱딱하게 굳은 것처럼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