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화. 법회가 열리다
원덕제는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던 태감을 바라보았다.
“과인이 잡지 못했느냐?”
황제가 자신을 쳐다보자, 모골이 송연해진 태감은 거듭 말했다.
“소인은 모르겠습니다, 정말 모르겠습니다…….”
“잡지 못했어…… 잡지 못했어…….”
원덕제는 여전히 살짝 떨리고 있는 오른손을 잠시 쳐다보다가, 곧 정신이 돌아온 듯 대전에 서 있던 태상사를 바라보았다.
황제와 마찬가지로 넋이 나가 있던 언상은 그 시선에 깜짝 놀랐다. 마치 얼음물을 온몸에 뒤집어쓴 것처럼 온몸이 차가워졌다. 그는 황제가 자신에게 화풀이할까 두려워졌다.
“언 애경, 가진 월병이 하나밖에 없는가?”
그러자 언상은 차마 사실대로 고할 수 없었다. 비록 사실대로 고한다고 해도, 다른 하나의 월병은 다시 끄집어낼 수도 없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다급히 홀을 쥐고 바닥에 무릎을 꿇은 다음 고개를 숙였다.
“폐하! 그것은 선인께서 주신 것이라, 하나를 얻은 것도 제게 이미 천운이었습니다. 미천한 소신이 어찌 감히 다른 월병이 있는 것을 숨길 수 있겠습니까!”
태상사가 솔직하게 고하는 모습과, 방금 자신에게 선인이 준 월병을 바치던 것을 떠올리며 황제는 이렇게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만약 다른 이들이었다면 자신에게 이 월병을 바칠 자는 몇 되지 않을 터였다.
조정의 대신들은 모두 입을 꾹 다물고 있었고, 심지어 법회를 여는 것을 내내 반대하던 간관(諫官)마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원덕제는 이들을 한번 훑어본 뒤, 다시 언상을 바라보았다.
그가 바닥에 죄인처럼 엎드려 있는 모습을 보자, 원덕제는 마음의 울분을 더욱더 풀 곳이 없었다. 잠시 시간이 지난 뒤에야 원덕제는 자신의 감정을 억누를 수 있었다.
“언 애경은 일어나시게. 어찌 되었든 선인이 주고 간 월병을 과인에게 바친 것은 사실이니, 황금 백 냥을 상으로 내리고 어서방의 그림 한 부를 하사하겠다. 수륙법회의 일은, 언 애경과 예부의 각 대신이 좀 더 신경을 쓰도록 하라.”
“명을 받들겠나이다!”
“명을 받들겠나이다!”
언상은 바닥에서 몸을 일으켰고 예부의 대신들은 모두 황제의 명을 받들었다. 그들은 속으로 크게 한숨을 돌렸다. 상이야 받든 안 받든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었다. 황제에게 꾸짖음을 듣지 않는 것이 가장 큰 행운이었다.
“퇴청하라.”
이렇게 말하며 원덕제는 몸을 일으켰고, 한쪽에 서 있던 태감이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퇴청하십시오!”
태감이 서둘러 황제의 발걸음을 쫓아가려던 때, 그는 황제가 용상 앞쪽을 쳐다보는 것을 발견했다. 이에 그는 황제의 뜻을 깨닫고, 그를 따르던 두 소태감(小太監)에게 손짓하며 대야를 가리켰다.
“저것을 들고 오너라, 한 방울도 흘려서는 안 된다!”
“예!”
소태감 두 명이 놋쇠 대야를 들고 조심스럽게 황제의 뒤를 따라 나갔다.
대전에 있던 대신들은 서로를 멀뚱멀뚱 쳐다보았고, 호기심을 품고 황제가 떠난 쪽을 쳐다보는 자들도 있었다. 어떤 이는 언상에게 다가와 말을 걸기도 했다. 하지만 간관들은 차가운 눈빛으로 언상을 바라본 다음 바로 대전을 떠났다.
* * *
8월 20일, 대정국 각지의 주부(州府)에는 새로운 계방(桂榜)이 걸렸다. 하지만 경기부에서 가장 큰 일은 자연히 원덕제의 고희연(*古稀宴: 일흔 살이 되는 해에 베푸는 생일잔치)이었다. 또한, 대정국 곳곳에 퍼진 성대한 수륙법회의 시작이기도 했다.
수륙법회가 열리기 하루 전, 옥회산의 수사들은 이미 바람을 부리거나 구름을 타고서 도성 밖에 도착해 있었다. 이렇게나 많은 2, 30명의 수선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정말로 드문 일이었다.
다만 그들은 모두 법회가 어떻게 흘러갈지 알았기 때문에, 며칠간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날 이른 아침, 한가한 백성들과 대정국 각지에서 이 구경거리를 보러 모여든 사람들은 모두 성 동쪽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곧 거대한 법대가 눈에 띄었는데, 그것은 경기부 부성 내 수많은 건물 중에서 가장 높았다. 게다가 성 동쪽에 자리한 이 법회 장소는 넓은 공터나 다름없었기 때문에, 법대를 뛰어넘는 크기나 높이의 건축물은 아예 없었다.
계연도 수많은 인파를 따라 성 동쪽으로 향했고, 그가 도착했을 때 법회가 열리는 앞쪽은 이미 발 디딜 틈도 없을 정도로 북적거렸다.
“어어, 밀지 마시오!”
“황상께서는 어디 계시지? 저 법대 위로 올라가셨나 보지?”
“모르겠어, 하지만 금군(禁軍)이 법대에서 떨어져 있으니, 아직 올라가지 않으신 듯하군.”
“어이쿠, 저 법대 높이 좀 보게. 저 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보이지도 않겠구먼!”
“그러게나 말이오. 나중에 법사(法師)들이 법대를 올라가는 것만 보이겠군.”
“그럼 여기 볼 것이 무에 있단 말인가?”
“괜찮네, 아흐레 동안 열리지 않는가? 게다가 이곳 말고 다른 부(副) 법대는 높지 않다더군.”
“어어, 그만 떠들고 저기 좀 보게! 법사들이 온 게 아닌가?”
“저렇게 이상한 차림새를 한 걸 보니, 분명하군!”
계연은 구경꾼들이 소란스럽게 떠드는 와중에도, 좌우로 이리저리 떠밀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 위치에서는 저 법대 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볼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이렇게 인파가 몰린 날에 공중으로 날아가는 것은 분명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그러나 법대 주위에는 다른 높은 건물도 없어, 계연은 자신도 모르게 저 ‘참가 선수’들이 조금 부러워졌다.
이 시각, 3장(*약 9m) 높이의 높은 무대는 금군에 의해 창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그래서 구경꾼들은 법대 20장(*약 60m) 주위로는 가까이 갈 수 없었고, 대정국 각지에서 모인 법사들은 각각 네 방향에서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원덕제의 조서에 쓰인 대로 승려든 도사든, 유학자든 다른 민속 신앙의 명사들 모두 고인(高人)이라면 누구나 이곳에 올 수 있었다. 그에 따라 경기부에 온 법사들은 무척 많았고, 온갖 신기한 외양의 사람들이 다 있었다.
승려와 도인은 물론, 괴이한 머리털 색을 지니거나 이상한 옷을 입은 이들은 부지기수였다. 난쟁이나 거대한 몸집의 거인들도 적지 않게 있었다.
백성들은 이런 ‘법사’며 ‘고인’들을 보며 매우 흥분했는데, 그 안에 그들을 향한 경외심 같은 것은 그다지 없었다.
“어이, 저기 좀 보게! 저기 저 사람, 얼굴에 무슨 노래 부르는 이들처럼 분칠을 했어. 저자도 법사인가?”
“그게 뭐라고, 저기 서쪽을 좀 보게. 얼굴에 저렇게 많은 쇠고리를 달고 있다니! 그리고 저 사람도! 머리를 묶은 게 꼭 칼날 같아.”
“저기, 저기! 저 법사는 보기만 해도 뭔가 있군!”
“정말이네, 진짜 고인인가 봐. 몸에 저렇게 큰 뱀이 똬리를 틀고 있다니!”
백성들이 의견을 교환할 때, 높은 법대에 자리해 있던 사천감 관원들과 예부의 관원들은 각 방향에서 걸어오는 법사들을 살피고 있었다.
언상은 온갖 기괴한 모습의 이들을 살펴보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이마를 문질렀다. 그러나 법사들의 대열에서 나이 든 거지 하나와 어린 거지를 발견하고 나서는 기분이 좀 괜찮아졌다.
모든 법사가 자리에 서자, 언상은 동료들과 고개를 끄덕이며 의견을 맞춘 후 시위(侍衛)를 향해 다음 지시를 내렸다.
관원들은 천천히 높은 법대에 놓인 자신들의 위치로 물러났고, 무공을 몸에 익힌 시위들은 법대 주위를 빙 둘러서 있었다. 시위들은 온몸의 진기를 운용해 가슴을 내밀고 큰 소리로 외쳤다.
“모든 법사는 위로 오르십시오!”
시위들의 내공이 담긴 목소리가 사방으로 울려 퍼지자, 아래쪽에 서 있던 어떤 법사들의 귀에 ‘윙윙’하는 이명이 들려왔다. 어떤 이들은 자신만만한 모습으로, 어떤 이들은 약간 초조한 듯한 모습으로 법대를 향해 올라갔다.
법대 위쪽 가장 중앙에 앉은 원덕제는 기다리지 못하고 몸을 일으켰다. 각각 다른 세 방향에서 올라오는 법사들을 보고, 군신(群臣)들도 황제를 따라 분분히 몸을 일으켰다.
“언 애경, 그때 본 달 아래서 검무를 추던 선인이 이 안에 있는가?”
“그…… 소신도 잘 모르겠습니다!”
황제의 질문에 언상은 감히 더 말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황제도 정말로 그에게서 답을 얻고자 한 것은 아니었고, 다만 기대감으로 인한 흥분을 좀 가라앉혀 보려 했을 따름이었다.
‘법사’들이 모두 올라오자, 원덕제의 기대감에 가득 찼던 표정이 점차 가라앉았다. 이어서 황제는 어좌에 앉았다.
그 후 아주 긴 시간 동안, 언상과 예부 관원들은 수륙법회의 일정이며 중점 사항 등을 읽어 내려갔다. 그러자 적지 않은 ‘법사’들이 모두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규칙과 예법을 따르지 않거나, 실력도 없이 이곳에 오른 자가 있다면 그 즉시 참형(斬刑)에 처할 것이다!”
내공이 깊은 대내시위(*大內侍衛: 궁중 시위)들이 큰 소리로 따라 말했다.
“규칙과 예법을 따르지 않거나, 실력도 없이 이곳에 오른 자가 있다면 그 즉시 참형에 처할 것이다!”
그러자 많은 법사가 단번에 잠에서 깼다.
이어 언상은 황색 조서를 손에 들고 큰 소리로 읽었다.
“대정국 강산의 영원함과 폐하의 천추만대(*千秋萬代: 천년만년 영원히 계속되다)를 기원합니다!”
주위의 금군과 시위들이 목소리를 높여 이렇게 소리치자, 조정 대신들과 황족들도 함께 소리쳤다.
“대정국 강산의 영원함과 폐하의 천추만대를 기원합니다!”
법사들은 시위들의 찌릿한 눈빛을 받고, 일전에 몇 번이고 거듭해 들었던 예법 교육을 떠올리고는 함께 큰 소리로 외쳤다.
“대정국 강산의 영원함과 폐하의 천추만대를 기원합니다!”
법대에서 큰 소리가 울려 퍼지자, 법대 아래에 있던 금군들도 함께 소리쳤다. 이에 법대 주변이 엄숙한 분위기에 뒤덮이며 적지 않은 백성들도 함께 따라 외치게 되었다.
계연은 인파의 바깥쪽에 자리 잡고, 두 손으로 뒷짐을 진 채로 법대가 있는 상공을 바라보았다. 보이는 것은 당연히 인도(*人道: 인간사(人間事), 사람됨의 길)의 기운뿐이었다.
‘대정국은 그래도 뿌리가 얕지 않구나. 원덕제가 저렇게 어리석은 일을 벌이는 데도 아직 그 운이 다할 시기가 되지 않았다니.’
사람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동안, 법대의 네 모서리에는 역사(力士)들이 징채를 들고 커다란 징 앞에 서 있었다. 그들은 온몸의 힘을 끌어올려 엄청난 기세로 징을 때렸다.
댕~!
징 소리가 하늘을 울리며, 수륙법회의 시작을 알렸다.
그다음부터는 술법을 펼치는 시간이었다. 법사들은 바닥에 가부좌를 틀거나 몸을 덩실거리며 춤을 추는 등,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하늘에 대정국과 황제를 위해 복을 기원했다. 그들은 오늘 하루가 저물기 전까지 이곳을 떠날 수 없었다.
황제는 곧 대신들을 이끌고 자리를 떴다. 회궁할 이는 회궁하고, 자택으로 돌아갈 이는 돌아갔다. 어차피 정말로 그들이 관심을 두어야 할 이들은 남은 8일 후 두각을 드러낼 고인들뿐이었다.
황제도 이 중에 머릿수만 채우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보고 싶은 것은 당연히 진정으로 신통한 능력을 지닌 고인이었으므로, 미련 없이 자리를 떴다.
* * *
수많은 법사 사이에서 늙은 거지는 어린 거지의 손을 잡고 차가운 눈빛으로 주위의 수천 ‘법사’들 중 끼어 있는 삿된 존재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숙여 바닥을 내려보았다.
인도의 기운이 가장 왕성해질 때, 바닥에서는 이미 웅건한 서체가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것은 소리도 기척도 없이 인도의 기운을 빌려 모든 ‘법사’들의 기운을 붙들었다. 그들은 이제 인도의 기운에 뒤덮여 모든 감각이 가려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쿠르릉……!
하늘에서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어두운 구름이 모여들고 있었다. 천둥 번개가 구름 속에서 번쩍였지만 비는 내리지 않았다. 그 언제라도 터져 나올 듯한 억눌린 기운이 법대에 오른 범인(凡人)들은 물론이고 요괴며 삿된 이들을 불안에 떨게 했다.
구름 위 높은 곳에는 8마리나 되는 교룡들이 유유히 날아다니고 있었다. 이 먹구름과 번개는 용들의 신통력에 의해 나타난 것도 있지만, 나머지 반 정도는 바로 법대에 모인 이들의 기운에 이끌려온 것이었다.
고공의 교룡들은 구름을 꿰뚫고 아래를 바라보았다. 작은 떡처럼 생긴 법대 위에는 추측하기 어려운 글씨들이 영험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번쩍!
쿠궁……!
하늘에서부터 번개 한 줄기가 구름을 뚫고 내려와, 법대 한쪽에 놓인 징에 떨어졌다. 주위의 역사와 시위들은 깜짝 놀라 몸을 피했고, 근처에 있던 ‘법사’들은 더욱 공포를 느끼며 불안해했다.
법대 주변을 둘러싼 백성들은 번개가 내려치고 천둥소리가 울리자, 발걸음을 서둘러 모두 집으로 돌아갔다. 어쨌든 오늘 그들은 아무것도 볼 수 없을 듯했기 때문이었다.
백성들이 떠나고 난 후 왠지 모르게, 법대 위에 있던 수많은 삿된 존재들은 더욱 불안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