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9화. 기운으로 ‘사람’을 누르다
하늘에서 천둥소리가 울리며 번개가 내려치자, 법대 주위와 그 위 사방을 둘러싼 금군들은 모두 초조해졌다. 특히나 그들은 기다랗고 뾰족한 무기들을 하늘을 향해 쳐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언상과 소수의 사천감 관리들, 그리고 예부의 관원들은 바깥쪽의 건물 안으로 들어가서, 천둥 번개가 내려치는 높은 제대(祭臺)를 멀찍이 바라보았다.
월병을 바친 일로 언상은 요즘 황제의 깊은 신임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수륙법회를 책임지고 있는 관원들 중 그의 발언권이 가장 세다고 할 수 있었다.
“언 대인, 천둥 번개가 시작되는 걸 보니 곧 폭우가 내릴 듯합니다. 위에 있는 법사들을 어쩌면 좋겠습니까?”
누군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언상에게 질문했고, 언상은 눈썹을 찌푸리며 높은 법대가 있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이름을 올린 이들 중 보통의 승려나 도인들처럼, 복을 기원하고 경전을 낭독하러 왔다는 이들은 아래로 내려와 비를 피하게 합시다. 스스로 신통력이나 법력이 있다고 말한 자들은 분명 고인일 테니, 저런 비바람쯤은 별문제가 되지 않겠지요.”
언상이 이렇게 말하자, 이 일을 함께 맡은 관원들은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대강 그의 뜻을 유추해냈다.
“다만 법대 위아래에 자리를 지키고 있는 금군들이 고생 좀 하겠군요.”
“그럼 법대 위에 있는 금군들에게 모두 아래로 내려오라고 명하도록 하지요. 비에 젖는 게 벼락에 맞는 것보단 나을 테니 말입니다.”
언상이 이렇게 말하며 한쪽에 있던 외정전(外廷殿) 부지휘사를 바라보았다. 그는 이곳에 배치된 외정전 금군들의 부통령이었다. 그가 가진 관직의 품계는 언상보다 높았지만, 법회에 배치된 금군들은 어디까지나 보조의 역할일 뿐이었다.
“허허, 언 대인의 말씀이 맞습니다. 제 수하들은 군중에서 무예를 연마하느라 투구며 갑옷을 매일같이 입고 있지요. 그러니 반나절쯤 비를 맞는 것 정도는 아무 일도 아닐 겁니다.”
이렇게 말한 후, 부지휘사는 곁에 있는 병졸 몇 명에게 명을 전달했다. 그들은 칼을 쥐고서 내공을 운용하여 나는 듯 법대 위를 올라 명령을 하달했다.
그리고 몇 분 뒤, 법대 위의 모든 금군과 역사는 차례로 네 방향의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왔다. 이제 높은 법대 위에는 수천 명의 법사만이 남아 있었고,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복을 기원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하늘은 더욱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먹구름은 천천히 이동하여 곧 경기부 부성 전체를 덮었다.
* * *
번쩍!
쿠르릉……!
번개가 원덕제의 얼굴을 밝게 비췄다. 이 시각 그는 한 궁전 밖 처마 밑에서 먹구름으로 뒤덮인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오늘은 수륙법회가 열리는 날이지만, 동시에 황제의 생신연 개막일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9일 후 원덕제는 ‘천사’들을 책봉할 것이고, 더불어 그들을 그의 만수절(*萬壽節: 황제의 생일) 연회에 참가토록 할 예정이었다.
황제와 함께 서 있는 이들은 태감과 시위, 몇몇 황자들뿐이었고, 어떤 대신이나 비빈도 자리에 없었다.
“경아(慶兒)야.”
“소자 여기 있습니다!”
원덕제가 이렇게 부르자 곁에 있던 오왕이 즉시 허리를 굽히며 대답했다.
“수륙법회 날 벼락이 떨어지고 천둥이 치니, 이는 하늘이 과인에게 경고하는 것이냐?”
“그…… 소자…… 소자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 물음에 대해 오왕은 감히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황제를 그를 한번 쳐다본 다음, 다시 셋째인 양호(楊浩)에게 물었다.
“호아(浩兒), 네 생각은 어떠냐?”
진왕은 눈썹을 찌푸리며 자신의 부황을 쳐다보다가 다시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우르릉……!
새카만 먹구름이 무겁게 하늘을 짓눌렀고, 천둥과 번개가 맹렬한 기세로 떨어졌다.
“부황께서는 너무 심려치 마십시오.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천둥 번개가 치는 것은 이 계절에 흔히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여름에 눈이 오고 겨울에 벼락이 치는 것이야말로 이상 현상이지요.”
황제는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후 다른 아들들을 살펴보니, 그들 모두 얼굴에 제발 자신에게 묻지 말아 달라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번쩍! 콰직…… 콰지직……!
우르릉……!
돌연 번개가 치더니 벼락이 동쪽으로 내리쳤다. 그것이 떨어지는 거대한 소리는 황제를 포함한 모든 이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 후, 단 몇 초 만에 장대비가 내렸다.
솨아아-!
* * *
멀리 성 동쪽의 법대 위에 있던 사도(邪道)를 닦는 이들과 요괴들은 이 순간 마치 꿈에서 번쩍 깨어난 듯한 느낌을 받았다.
법대의 중앙에는 용모가 추악하고 교활하게 생긴 남자 하나가 그로부터 십 수장 떨어진 방향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조금 전 벼락 몇 줄기가 동시에 떨어지더니, 이곳에 있던 한 여인에게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 여인의 시체는 벼락에 완전히 그을려 검은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주위에 있던 ‘법사’들은 모두 놀라 다리가 풀렸다. 바로 조금 전까지 법대 위에는 기도를 올리고 경전을 낭송하는 소리와 춤을 추는 떠들썩한 소음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이 순간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고요한 상태가 되었다.
“이건 보통 벼락이 아니야……. 이건 술법이야! 누군가 어뢰술(御雷術)을 쓴 거야!”
교활한 눈빛의 빼빼 마른 남자가 황급히 소리쳤다.
“누군가 벼락을……!”
콰직! 콰지직……!
우르릉……!
남자는 말을 다 잇지도 못한 채 여섯 또는 일곱 개의 벼락을 동시에 맞았다. 이에 어떤 반응을 보일 새도 없이 그는 목숨을 잃고 말았다.
어뢰술의 살상력의 유명한 이유는 그 위력 때문이라기보다, 피할 수 없이 빠른 그 속도에 있었다. 게다가 보통의 벼락이 아니라 이렇게 술법으로 부린 벼락에는 법력과 진의(眞意)가 포함되어 있었고, 그것이 현재 특수한 상황에 놓인 요괴들에게 떨어지니 그 위력은 몇 배나 더 강했다.
이에 완전히 범인(凡人)이거나 무공을 좀 익혔을 뿐인 법사들이 가장 먼저 일어났다. 놀라 자빠진 극소수의 이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계단을 구르다시피 하여 법대에서 도망쳤다.
“어이쿠! 벼락을 맞아 죽다니!”
“얼른 도망가세! 까딱하면 우리도 벼락을 맞겠어!”
“어서, 어서 가세. 돈은 없어도 되지만 목숨은 일단 구하고 봐야지.”
“어어, 밀지 말게……”
수천 명의 법사 중에서 9할 이상은 보통 사람이거나 강호인이었다. 그들은 다리가 두 개뿐인 것을 한탄하며 얼른 법대를 벗어나려 했다. 그중에는 대정국의 대세(大勢)와 무관하거나 어떠한 삿된 기운도 가지고 있지 않은 수행자들도 섞여 있었다.
우르릉……!
천둥이 치는 와중 벼락이 종종 떨어졌는데, 내려칠 때마다 항상 누군가에게 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많은 이들이 도망치던 중에 열 몇 명은 벼락에 맞아 목숨을 잃었다.
이런 상황에서 법대 아래의 금군들도 벼락의 기세에 놀라, 비를 피할 곳을 찾아 안으로 들어갔다. 그래서 그들은 원래 이 법대를 떠날 수 없게 되어있는 ‘법사’들을 막지 않았다.
인파 중에서 안전하게 도망쳐 나온 수행자들은 모두 한숨을 돌렸다. 법대에서 멀리 떨어진 후, 점차 공포감이 잦아들자 그들은 고개를 돌려 도망쳐 나온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법대 주변이 온통 희뿌옇게 보였다.
법대 위에는 아직도 최소 수백 사람이 도망치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도망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감히 경거망동할 수 없는 것이었다.
하늘에서는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다른 빗물은 모두 흘러 아래로 떨어졌지만, 이상하게도 법대에 있는 사람들의 발밑에는 얇은 물결이 맑은 유리처럼 한 겹으로 덮여 있었다.
그 수면에 서 있는 이들의 인영(人影) 또는 괴이한 형체가 비쳐 보였다. 그들 중 법대에 선 어떤 이들의 모습은 분명 사람이었지만, 발치에 있는 물에 비쳐 보인 모습은 괴물이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유리처럼 보이는 수면에 빗물이 쉴 새 없이 떨어지며 영험한 빛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글자들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었다.
글자는 부드러운 빛을 내뿜었는데, 그 무궁한 달빛이 점차 수면에 퍼져 나가자 마치 밝은 달이 빗속에 떠오른 것처럼 보였다.
그러자 거대한 기운이 그 위에 얽혀들며, 달빛이 몽롱한 빗속에서 신비한 빛을 뿜어냈다. 법대 위에 남은 수백 명의 사람은 만 근(斤)의 무게가 자신을 짓누르는 것을 느꼈는데, 온 힘을 다 쏟아야 겨우 서 있을 수 있을 정도였다.
“하하……. 곧 수면에 진정한 모습이 비치겠군!”
계연은 법대에서 수백 장 떨어진 찻집에 앉아, 탁자를 등 뒤에 두고 앉아있었다. 담담한 미소를 지은 그는 다리를 꼬고 두 손으로 무릎을 짚고서, 법대가 있는 방향에서 흘러나오는 은은한 빛무리를 바라보았다.
하늘을 뒤덮는 검세(劍勢)를 부리게 될 수 있게 된 이후로, 계연은 자신의 의식 세계와 기운을 운용하는 데에 큰 성취를 얻게 되었다.
그는 이번에 쓴 자신의 ‘남의 기운을 빌리는’ 술법에 매우 만족하고 있었다. 달빛, 칙령, 인도(人道)의 기운, 그리고 요괴들 본연의 삿된 기운 중 하나도 빠지면 안 되는 술법이었다. 각종 기운이 왕성해질수록 그 효과는 더욱 강해졌다.
계연은 스스로 만족하며, 이번 술법은 온갖 무궁무진하고 오묘한 술법이 넘쳐나는 수행계에서도 상상력이 충만한 편에 속할 것이라 생각했다.
비가 내리며 법대 전체가 유리 거울처럼 변하여, 수백 개의 글자로 된 법령이 그 힘을 드러냈다. 그에 더해 법령이 빌린 인도의 기운과 그 안에 숨겨놓은 달빛이 퍼져 나가자, 거울의 반전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법대 위의 요괴며 마귀들은 자신들의 기운이 그림자와 뒤바뀐 것을 느꼈다. 그들의 몸은 법대 위에 있지만, 그 기운은 법대 아래에 눌려 버렸다. 그런 이유로 수면에 그들의 진정한 모습이 드러나고야 만 것이다. 요괴를 비추는 거울처럼 빗물에는 무슨 신통한 능력이 있던 것이 아니었다. 다만 법대에 고인 빗물은 그들의 가진 기운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이 거대한 법대를 뒤집을 법력이나 신통력이 없거나, 이 술법의 이치를 꿰뚫어 보지 못한다면, 이 기운에 묶여 결코 몸을 움직이지 못할 터였다. 게다가 이 술법은 그들의 영대(*靈臺: 마음을 이르는 말)를 속이고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들이 놀라워하고 두려워할수록 그 기운에 눌려 몸을 일으키지 못하게 만들었다.
물론, 어떤 고매한 수단이 있거나 뛰어난 도둔술(*逃遁術: 도망치는 용도의 술법)을 부릴 수 있다면 이곳에서 벗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드득…… 우드득……!
한 건장한 남자가 온몸의 근육을 움직이더니, 이를 꽉 물고 몸을 세웠다.
“하…… 허억……!”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의 무릎 한쪽이 접히며 법대에 부딪혔다. 그는 온몸을 덜덜 떨며 몸의 주도권을 되찾으려 했지만, 다른 한쪽 무릎도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돌로 된 바닥에 부딪히고 말았다. 기이한 점은 그가 부딪힌 수면에 오직 파문만 일어날 뿐, 물방울 하나도 솟구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흐아악!”
근처에 있던 한 노인은 얼굴은 온통 찌푸리며 하늘을 향해 포효했다. 온몸의 관절에서 투두둑대는 소리가 나며, 그와 동시에 요기(妖氣)가 솟구쳤다. 그는 온 힘을 쏟아 결국 앞으로 반걸음을 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결과 그는 수없이 떨어지는 벼락에 맞고 말았다.
콰직…… 콰지직!
쿠르릉!
늙은 거지는 결국 손을 뻗어 어린 거지의 눈을 덮었다. 벼락의 빛에 의해 눈이 상할까 걱정되었던 탓이다.
“쯧쯧쯧……. 가만히 꿇어 앉아있으면 될 것을…….”
이 법대 위에서 그들 두 사람만이 어떤 압력도 느끼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어떤 기운에도 묶이지 않았고, 늙은 거지는 심지어 이 술법을 꿰뚫어 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늙은 거지는 여전히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아무래도 자신은 계연이 술법을 부릴 때 제대로 집중하지 못한 것 같았다. 계연이 엄청난 칙령을 쓴 것은 알았지만, 이러한 술법의 잇따른 변화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