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화. 모두 사라지다 (2)
성안의 요충지나 대로, 혹은 건물의 지붕에는 두세 명씩 날개옷이나 장포를 입은 수사들이 서 있었다. 그 외에도 법력이 높은 수사들은 태허(*太虛: 우주 또는 공허하고 현묘한 경지) 옥부(*玉符: 옥으로 된 부적)를 들고 어풍술을 이용해 공중에 몸을 숨기고 있었다.
법대 주변의 검은 연기와 더러운 기운에 비해, 이 수사들의 눈빛에는 신령한 빛이 감돌았다. 이들은 몸에서 솟구치는 법력을 제어하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법력이 일정 경지에 다다른 자들로, 바로 옥회산에서 보내온 수선자들이었다.
옥회산은 이번에 도행(道行)이 깊고 법력이 높은 다섯 명의 옥주봉 대진인(大眞人)들이 옥회산에서 ‘진인(眞人)’이라 불리는 수선자들을 이끌도록 했다. 구풍은 계연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옥회산 수사인 데다, 그 자신이 닦은 도행도 충분했기 때문에 이곳에 함께 와 있었다.
다만 법대가 있는 방향에서 빛무리가 번쩍이고 공중에서 벼락이 떨어지는 걸 보며, 옥회산 수사들은 이번에는 자신들이 나설 기회가 없다는 걸 알아차렸다.
폭우는 마침 정오가 되기 전에 멈추었고, 먹구름이 점차 흩어졌다.
이에 언상은 조정 관원과 금군, 주위에 남은 법사들을 이끌고 조심스럽게 법대에 올랐다.
그러나 그가 상상했던 두려운 장면은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오히려 법대 위는 텅 비어 깨끗하기만 했다. 그들은 분명 법사가 벼락에 맞아 죽었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법대 위에는 시체조차도 없었다.
도망쳐 나온 법사들은 모두 위쪽에 아직 수백 명의 사람이 남아 있다고 말했었다. 하지만 괴이하게도 지금 이곳에는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았다.
사실 사람이 실종된 것은 법회가 순조롭게 흘러가지 않았던 일에 비하면 사소한 일이었다. 그러나 황제는 분명 그들에게 죄를 물을 터였다. 게다가 이 일은 분명 숨길 수 없을 테니, 언상을 포함한 관원들은 모두 난색을 표하며 어찌 이 일을 원만히 처리할지 생각에 잠겼다.
* * *
오찬을 들기도 전에, 원덕제는 곧 예부로부터 법회에 큰 문제가 있었다는 보고를 받게 되었다.
일찍이 마음에 준비는 해 두고 있었지만, 그래도 원덕제는 용안에 서리는 분노를 참지 못했다. 그는 예부와 태상사 언상을 비롯한 이들을 전부 쓸모없는 것들이라며 꾸짖었다.
황제는 한참 노한 얼굴로 꾸짖다가, 한 관원의 말을 듣고 곧 화를 가라앉혔다. 웃기게도, 그 관원이 둘러댄 말은 찻집에서 저승의 관리들에게 둘러싸였던 그 법사가 했던 말이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해보니, 원덕제도 마음이 조금 풀렸다.
법회 첫날부터 수백 명의 사람이 실종되며 큰 문제가 발생했다. 법회에 관한 일을 담당하던 관리들은 비록 첫날의 일을 무사히 넘겼지만, 앞으로 이어질 며칠간은 절대 어떤 실수도 용납되지 않았다.
다행히 부 법대들은 그다지 높지 않고, 내부에 널찍한 실내 공간도 달려 있었기 때문에 벼락이 법사들에게 떨어지는 일이 또 일어날 확률은 낮을 터였다.
법사들에 대한 관리는 비교적 느슨해서, 비록 책자에 그들의 정보를 적어 두긴 하였지만, 거동의 자유를 제한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만약 법회가 열리기 직전까지 오지 않은 법사들이 있다면 그냥 기권으로 쳤다.
분명 복을 빌고 액막이를 하는 법회였지만, 이는 일종의 선별 과정이기도 했다. 원덕제가 뽑고 싶은 이들은 그가 책봉을 내릴 고인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쨌든 수륙법회의 형식이니, 참가자들은 서로 싸우거나 경쟁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어떻게든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고인’답게 보이도록 애썼다.
비가 그친 후, 남은 법사들은 조정의 안배에 따라 각자 역관으로 돌아갔다.
사람들이 거의 다 떠난 후, 손에 선장(*禪杖: 승려가 드는 나무 지팡이)을 든 젊은 승려가 법대의 계단 앞에 서서 엄숙한 얼굴로 그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승려는 오관(五官)이 단정하고, 치아는 깨끗하며 입술은 붉었다. 피부는 양지(羊脂)처럼 곱고 부드러웠는데, 그런데도 나약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는 승복을 입고 머리에는 두립(斗笠)을 쓰고서 꼿꼿한 자세로 서 있었다. 그는 법대를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한 손으로 합장했다.
“선재(*善哉: ‘좋다, 그러하다’라는 뜻의 동의나 찬탄, 혹은 죄를 지은 후 속죄의 의미로도 사용)로다, 대명왕불(大明王佛)이시여…….”
“대사께서는 외양이 참 단정하시네요!”
근처에서 갑자기 목소리가 들려오자, 승려는 깜짝 놀라 몸을 떨었다. 목소리는 비록 정중하고 온화했지만, 다가오는 기척도 없이 너무나 갑작스러웠기 때문이었다.
언제 이곳에 와 있었는지 몰라도, 계연은 웃으며 이렇게 승려에게 말을 걸었다. 승려가 깜짝 놀라는 것을 보고, 계연은 그런 반응을 예상치 못했기 때문에 조금 흥미롭게 느꼈다.
승려는 계연은 보고서 합장하며 인사했다.
“시주(施主)께서도 말씀하셨다시피, 이는 그저 껍데기일 뿐입니다. 외양은 중요한 것이 아니지요.”
“음……. 그런데 그 껍데기가 대사님 정도 되면, 외양을 중시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오히려 더욱 외양을 본다는 말처럼 들릴 거예요.”
계연도 그를 향해 공수한 후, 지난 생 인터넷에서 읽었던 누군가의 이론을 떠올리며 대답했다. 사실 자신의 생각이기도 했다. 누구나 이 승려처럼 생겼다면, 어디에서든 일반적인 대접을 받기는 힘들 것이다.
승려는 그 말에 오히려 멍해지더니, 다시 한번 계연을 향해 합장했다.
“선재로다, 대명왕불이시여……! 시주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허를 꿰뚫어 보셨군요.”
하늘의 먹구름은 거의 다 흩어져, 햇살이 다시 한번 경기부 대지를 비추었다. 계연이 주위를 살피자 길에는 이미 행인들이 지나다니고 있었고, 조금 전 법대에서 있었던 일을 들은 이들이 구경하러 오기도 했다.
“대사께서는 왜 이 수륙법회에 참가하셨나요?”
계연은 가벼운 어조로 물었다.
“복을 기원하고 액막이를 하기 위해서지요!”
승려는 어떤 불교 구호도 말하지 않고, 오히려 공손한 태도로 답했다.
계연은 그의 말에 대해 어떠한 의견 표현도 하지 않고,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 뒤 몸을 돌려 떠나갔다.
승려는 계연이 사라진 곳을 시선으로 좇다가, 다시 커다란 법대를 바라보았다. 그 후 그는 이마에 난 땀을 닦으며 선장을 손에 쥐고 빠른 걸음으로 자리를 떴다.
‘아무래도 내가 머무는 역관으로 어서 돌아가는 게 낫겠구나.’
* * *
경기부의 백성들은 구천십회 동안 법대 주변에서 들리는 경전 읽는 소리를 제외하고도, 길가에서 이런 법사들이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는 ‘공연’을 볼 수 있었다.
부 법대가 세워진 곳은 장소가 그리 크지 않았는데, 남은 시일 동안 도성 곳곳의 법대에서는 법사들끼리 돌아가며 법회를 주최했다. 이는 관원들이나 그들 수하의 관리들이 세심하게 이런 법사들을 관찰할 기회가 되었다.
그래서 법회 도중에 자신의 실력을 드러내는 것이 아주 중요해졌다.
수륙법회에서 더욱 눈에 띄기 위해, 어떤 법사들은 경기부 성안에서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 보이려 했다.
어떤 이들은 휴식 시간에 고관(高官)들과 친분을 쌓으려 했고, 어떤 이들은 시장에 자리를 깔고 점을 봐주기도 했다. 심지어 어떤 자들은 일부러 괴이한 행동을 하여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모처럼 산에서 나온 옥회산 수사들은 이런 떠들썩함에 꽤 흥미를 느꼈다. 그들뿐만 아니라, 계연과 늙은 용을 비롯한 경기부 귀신들 모두 구경꾼이라도 된 듯이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
이 시각 계연은 청엽루의 2층 창가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의 맞은편에는 진룡의 아들인 응풍이 앉았고, 다른 한쪽 창가를 마주 보는 자리에는 진룡의 딸인 응약리가 앉아있었다.
아래층에는 노점이 하나 열렸는데, 선풍도골(仙風道骨)의 외양을 가진 나이 든 법사가 자리를 깐 것이었다. 작은 노점은 작은 손수레를 이용해 만든 것으로, 위에는 수많은 글자가 붙여져 있었다.
종이에는 이곳에서 점괘를 쳐주고, 고민을 들어주며 어려운 일을 해결해 준다고 적혀 있었다. 하지만 인연이 있는 자가 와야 점을 쳐줄 것이고, 그렇지 않은 자들은 금괴를 들고 와도 받지 않을 것이라고도 쓰여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점괘가 정확하지 않으면 1문(文)도 받지 않을 것이며, 영험한 결과를 얻었는데도 낼 돈이 없다면 성심성의껏 감사 인사만 올려도 된다고 적혀 있었다.
계연은 차를 마시며 그 노점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을 듣다가, 때로 바깥쪽을 쳐다보기도 했다.
“계 숙부님, 저 아래의 늙은이는 외양만 그럴듯해 보이는 도행도 얕은 사기꾼입니다! 저자가 가진 건 기운을 감지하는 능력 약간, 얕은 무공, 별것도 아닌 술법 몇 가지뿐이에요. 왜 저자를 고르신 겁니까? 저자를 믿다가는 저희 아버지를 이기지 못할 텐데요!”
응풍은 마침내 참지 못하고 이렇게 물었다. 옆에 앉은 응약리도 그와 비슷한 표정이었다. 처음에 그들은 아래에 앉은 노인이 그 깊이를 눈치챌 수 없는 고인이라고 생각해, 인내심 있게 앉아 그를 자세히 관찰했다. 심지어 응풍은 모습에 약간 변화를 준 다음 노점으로 가서 그자의 허실(虛實)을 알아보려 했고, 뒤이어 크게 실망하게 되었다.
계연과 늙은 용은 남은 법사 중 각자 한두 사람을 골라, 그중 누가 최종으로 올라가느냐를 두고 내기를 한 상태였다. 이에 응풍과 응약리도 이곳에 구경을 하러 온 것이었다.
“흠, 재미있는 일이 곧 생길 거예요. 오, 왔네요. 이제 보세요.”
계연이 이렇게 말했다. 아래쪽 거리에서는 착실하게 생긴 남자 하나와 부녀자 한 사람이 이 법사의 노점을 향해 걸어왔다.
“여보, 바로 이곳이에요!”
“오!”
남자는 여자의 말에 답하며 노점 앞으로 걸어갔다. 이어서 좌우를 둘러보다가 풀썩 바닥에 꿇어앉았고, 함께 온 여인도 남자의 곁에 꿇어앉았다.
“대사님, 저희를 구해 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남자는 보기에 뻣뻣해 보였지만, 목청은 의외로 작지 않아 단번에 주위 행인들을 놀라게 했다.
노점 뒤쪽에 앉아있던 법사는 몸을 일으켜 돌아 나온 뒤 두 사람을 부축했다.
“두 분께서는 어찌 이리 과분한 예를 올리십니까? 어서 일어나십시오!”
“아닙니다, 대사께서는 저희 집안에 크나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게다가 제 안사람이 가져온 돈도 받지 않겠다 하시니, 저희는 이렇게 꿇어앉아 감사 인사를 올리는 것 외에 보답할 방법이 없습니다!”
“어찌 이러십니까, 제발 일어나세요!”
대사는 내공을 운용해 남녀를 땅바닥에서 끌어 올렸다. 두 사람은 곧바로 다시 꿇어앉으려 했으나, 대사의 손힘을 거스르지 못했다.
그들을 둘러싼 행인들은 의견이 분분한 모양이었는데, 모두 저 대사가 도대체 무슨 일을 하였길래 저 부부가 저리도 고마워하는지 궁금해했다.
“어휴, 돈도 안 받겠다 하시고 꿇지도 못하게 하시니, 대사께서 베푸신 은혜를 저희보고 어찌 갚으라는 말씀입니까? 여러분, 제가 어찌 보은하면 좋을지 좀 알려주십시오!”
그의 말을 듣고 몰려온 구경꾼들은 이렇게 물었다.
“도대체 저 대사님이 무슨 일을 해주셨길래 이러시오?”
“그래요, 어서 말해보시오.”
“한번 들어봅시다.”
남자는 대사가 탄식하며 고개를 젓고서 노점으로 돌아가자, 자신의 부인과 함께 이전에 있었던 일들을 생생하게 풀어놨다. 부부는 대사가 어떻게 그들을 도와 화를 면하게 해주었는지에 대해 자세히 늘어놓았고, 전체적으로 매우 환상적이고 신기한 이야기였다. 듣는 사람들은 혀를 차며 연이어 신비롭다고 감탄했다.
이후에 이 부부는 크게 감읍하며 떠났고, 다시 한 시간쯤 지난 뒤, 또 다른 노인이 이곳에 와서 감사 인사를 올렸다. 대사는 이 노인에게서도 돈 한 푼 받지 않았다. 그 후에는 젊은 여인이 와서 감사 인사를 올렸고, 이번에 대사는 동전 열 개를 받았다.
온종일 지켜본 결과, 호기심에 점괘를 본 이들 몇 명을 제외하고 법사가 자리를 접을 때까지 대략 네다섯 명이 감사 인사를 올리러 왔고, 그는 단 한 번만 돈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