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화. 속세의 부귀영화를 모두 누린 자
법사가 자리를 접고 떠나자, 응풍과 응약리는 서로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이어서 응풍이 계연을 보며 물었다.
“계 숙부님, 제가 잘못 본 것입니까?”
“하하, 아니요. 일단 가지요, 아직 볼 게 더 남았어요.”
계연은 찻집에 찻값을 치른 후, 두 사람을 데리고 거리로 나왔다. 뒤이어 그들의 형체는 희미하게 변했고, 잠시 후 어느 방(坊)의 인적 드문 오두막 뒤편에 도착했다.
“대사님, 제 연기가 어땠습니까?”
“아주 대단했습니다!”
“그럼 저, 저는요?”
“여기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대사님! 감사합니다!”
계연이 두 사람을 데리고 도착했을 때 본 것은, 일전에 감사 인사를 올리러 왔던 백성들이 대사에게서 돈을 받는 모습이었다. 모두 쇄은자(碎銀子) 아니면 대통보(*大通寶: 중국 고대 화폐의 일종)였다.
“이렇게 해도 괜찮은 건가요?”
응풍은 멍하니 이 장면을 쳐다보다가 계연에게 물었다.
“계 숙부님, 저자는 황제를 속인 죄를 짓는 게 아닙니까? 머리를 잘리는 게 두렵지도 않은가 보지요?”
계연은 웃으며 한마디를 남긴 뒤 몸을 돌렸다.
“원덕제와 아주 비슷하군요.”
응풍은 눈썹을 찌푸리며 응약리를 쳐다보았다.
“동생, 넌 알아들었어?”
응약리도 눈썹을 찌푸리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다시 한번 돈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나눠주는 법사를 바라보았다. 저자는 비록 선풍도골의 외양을 지녔지만 빼빼 마르고 나이가 든 모습이었다.
“어쩌면 계 숙부님의 말씀은 저자는 이미 이런 지경까지 왔으니 봉정(封正)을 위해 이제 머리가 잘리는 것도 두렵지 않은 정도가 된 것이란 뜻일걸.”
“아, 그럼 우리 아버지가 지게 될까?”
응약리는 약간 짜증이 난 얼굴로 응풍을 째려보았다.
“우리 아버지가 고른 자는 진짜 실력이 있는 자인데 어떻게 지겠어? 계 숙부님이 고른 자랑 비교하면, 우리 아버지는 답안을 이미 아는 것이나 다름없어!”
“그럼 비긴 거네!”
응풍은 씩 웃더니 몸을 돌려 떠나갔다.
* * *
8월 30일은 대정국 원덕제의 생일이었으므로, 이날은 바로 만수절이었다.
황궁 전체에는 등이 걸리고 색색의 비단이 깔렸으며, 궁전 내부와 외부는 바쁘게 돌아다니는 궁인들로 가득했다. 어선방(*御善房: 옛날, 황제의 식사를 준비하던 주방)을 비롯한 다른 기관들은, 일찍부터 이날을 위해 준비하고 있었다.
만수절의 조회에서는 조정 대신들도 매우 급한 일이 아니라면, 황제가 기분이 상할 만한 일은 아뢰지 않았다.
정무에 관한 의논이 끝나고, 대신들은 모두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이에 원덕제는 용상 곁에 서 있던 태감에게 말했다.
“법사들을 들어오라고 해라.”
태감은 몸을 구부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깊게 숨을 마신 뒤,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황제께서 말씀하시기를, 수륙법회의 법사들은 대전으로 들어오라 하신다!”
대전 밖에 서 있던 궁인이 큰 목소리로 그의 말을 반복했다.
“황제께서 말씀하시기를, 수륙법회의 법사들은 대전으로 들어오라 하신다!”
이렇게 세 번을 반복한 뒤, 대신들의 쏟아지는 눈빛을 받으며 태감 하나가 한 무리의 사람을 이끌고 대전으로 들어왔다.
대신 중에는 눈을 가늘게 뜨고 살피거나 웃는 이들도 있었고, 코웃음을 치거나 호기심을 드러내는 이들도 있었다.
들어온 이들 중에는 승려도 있고 도사도 있었으며, 젊은이부터 노인까지 연령대도 다양했다. 심지어는 구멍이 숭숭 뚫린 옷을 입은 늙은 거지도 있었다. 이렇게 총 16명의 법사가 대전에 들어왔다.
황제도 높은 곳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법사들은 제자리에 서서 황제를 향해 예를 올렸다.
“폐하를 뵙습니다.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예를 거두어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법사들은 이런 상황에도 모두 안색이 평온했고 정신도 또렷해 보였다. 최소한 겁에 질린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가장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이는 바로 늙은 거지였다. 그의 옷차림이나 태도가 모두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언 애경이 추천한 고인이 어느 쪽인가?”
언상은 자리에서 나와 홀을 쥐고 예를 올렸다.
“폐하께 아룁니다. 소신이 추천한 노 선생은 바로 이분이십니다!”
언상은 손으로 거지를 가리켰다. 이에 언상을 간사하고 아첨이나 해대는 자라고 생각하고 있던 일부 관원들조차 모두 몹시 놀랐다.
원덕제는 언상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그 거지를 자세히 살폈다.
“자네는 어떤 신통한 술법을 할 수 있는가?”
늙은 거지는 앞으로 한 걸음 나왔다. 그는 평소의 나태한 태도는 오간 데 없이, 황제를 향해 공수하며 그의 질문과 전혀 무관한 대답을 했다.
“이 늙은 비렁뱅이는 어느 날 문득 제자를 두 명 정도 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는 어려서부터 속세의 온갖 고초를 겪은 자, 다른 하나는 늙을 때까지 속세의 부귀영화를 모두 누린 자여야 합니다. 이에 저는 이 수륙법회가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폐하께 한 말씀 묻겠습니다. 혹시 용상에서 내려오실 생각이 있으십니까?”
“무엄하다!”
“방자하구나!”
“노 선생님, 지금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어서 폐하께 죄를 청하십시오!”
“감히 황제 폐하를 욕보이다니!”
챙! 챙! 챙!
대신들의 분노한 눈빛 아래, 언상도 식은땀을 잔뜩 흘렸다. 함께 들어온 법사들마저 어느새 늙은 거지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었다. 대내시위들은 모두 검을 뽑으며 일촉즉발의 상황이 되었다.
높은 용상 위에서 원덕제는 분노를 억누르고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자네는 불로장생의 방법을 아는가?”
늙은 거지는 눈썹을 찌푸리며 멈칫했다가 다시 고개를 저었다.
“죽지 않는 방법은 없습니다.”
“그럼 과인의 천자의 자리가 가진 권세와 부귀를 뛰어넘는, 구오지존(*九五之尊: 제왕의 존귀한 지위를 뜻함)을 초월하는 자유로움을 얻을 수 있는가?”
황제는 선연(仙緣)을 구한다고 했다. 그래서 늙은 거지는 자신이 이렇게 묻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도, 최소한 상대 역시 정중한 태도로 나올 줄 알았다. 그러나 인제 보니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을 듯했다. 황제는 제 뜻을 아주 조금만 거슬러도 참지 못하는 것 같았다.
늙은 거지는 담담한 얼굴로 대답했다.
“그러한 종류의 소요(*逍遙: 아무런 구속 없이 자유로이 거닐다)는 얻지 못할 듯합니다.”
“오, 그럼 과인이 이 용상에서 내려가면 천자의 자리게 비게 될 텐데, 국가대사(國家大事)는 누가 처리한단 말인가?”
늙은 거지는 더 얼굴에 어떤 표정도 띠고 있지 않았다.
“나라에는 하루도 군주가 없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 순리에 따라 당연히 황자에게 양위(讓位)하셔야겠지요. 황상께서도 이제 연세가 되셨으니 말입니다.”
원덕제는 황자들을 한 번 훑어본 후, 수많은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분노가 끓어올라 오히려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하하하! 언상, 저자를 추천한 것이 자네인가?”
“폐하! 소신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소신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태상사는 놀라 바닥에 무릎을 꿇고서, 홀을 쥔 채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태상사 언상은 일부 간관들이 보기에 황제를 미혹한 죄인이었지만, 실제로 그가 맡은 주된 업무는 하늘을 관측하는 것과 절기를 계산하는 것 그리고 달력을 제작하는 일이었다.
이처럼 심오하고 어려운 업무는 확실히 머리가 좋은 사람만이 맡을 수 있는 일이었다. 언상은 평소에 그의 업무에서 벗어난 일에는 나서지 않는 사람으로, 제 일만 열심히 하고 헛된 꿈은 꾸지 않았다. 그는 황제에게 아첨하는 무리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직언을 하는 자도 아니었다. 그런 일은 자신이 아니라 해도 간관들이 이미 맡고 있었다.
다만 수륙법회의 일은 태사사천감의 감정으로서 그가 주관해야 했으므로, 필연적으로 황제에게 떠밀려 앞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사천감의 역대 감정들은 다들 확실히 특이한 구석이 있었다. 오랫동안 하늘의 흐름을 관측하다 보면, 아주 미세한 신비로움이라 해도 남들에 비해 쉽게 느낄 수 있었다. 이에 언상은 별들을 관측하듯, 늙은 거지의 남다른 구석을 알아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언상은 이 늙은 거지로 인해 자신이 화를 입게 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때 그는 바닥에 납작 엎드려 조금도 움직일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황제는 냉소를 지으며, 아래쪽을 향해 손가락을 뻗었다.
“태사사천감 감정 언상과 저 늙은 거지를 모두 체포하라!”
“예!”
황제의 명이 떨어지자마자 시위들이 몸을 움직였고, 그들이 내뿜는 폭발적인 기세가 주위의 기운을 억눌렀다.
시위들은 순식간에 몸을 움직여 늙은 거지의 목에 칼을 들이댔다. 그의 양옆과 뒤, 각각 세 방향에서 날아온 검날은 그의 목을 중간에 두고 감싸는 모양이었다.
언상에게도 두 자루의 검 끝이 목으로 겨눠졌고, 시위가 그의 옥으로 된 홀을 거둬갔다. 그는 두 손이 뒤로 포박된 채, 시위들에 의해 마치 붙잡힌 아이처럼 질질 끌려갔다.
언상은 안색이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해져, 이 순간 그의 심장은 마치 터져 나갈 것 같았다. 그는 속으로 온통 이 말만 되뇌고 있었다.
‘끝났어, 끝난 거야…….’
“언상, 짐이 네게 묻겠다. 누가 네게 이 거지를 추천하라 하였는가? 오왕이냐, 아니면 진왕이냐?”
두 황자는 놀라 두려움에 찬 얼굴로, 거의 동시에 바닥에 꿇어앉으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소자가 어찌 감히 그런 대역무도한 짓을 하겠습니까!”
“소자는 모르는 일입니다!”
두 황자에게 있어서 이 일은 난데없이 당한 봉변이었기 때문에, 속으로는 언상에게 무척 분노하고 있었다.
“휴우…….”
언상은 눈을 감고 잠시 탄식한 뒤, 억지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시 눈을 떴다.
“폐하, 저 스스로 저자를 추천한 것입니다. 두 분 전하와는 무관한 일입니다. 노 선생께서는 정말로 고인이시지만, 저도 저분이 감히 대전에서 그런 대역무도한 말을 입에 담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전부 소신의 잘못입니다.”
원덕제는 그의 말에 코웃음을 친 뒤, 늙은 거지를 바라보았다. 거지는 시종일관 평온한 안색이었는데, 황제를 바라보는 두 눈은 무척 담담했다. 이에 황제는 속으로 무언가 알 수 없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다면 너는 어떠냐? 누군가 네게 지시를 했다거나…….”
원덕제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을 이었다.
“아니면 정말 스스로가 하고 싶은 말을 한 것이냐?”
대전에서 양측으로 갈라진 법사 중에서는, 평온한 안색이지만 사실 불안에 떨고 있는 자도 있었고 어떤 이들은 늙은 거지에게 일어난 일을 즐기고 있기도 했다.
계연이 만난 준수한 용모의 승려도 이러한 법사들 사이에 있었는데, 이때 그는 늙은 거지와 황제를 번갈아 바라보다가 이렇게 탄식했다.
“선재 대명왕불…….”
늙은 거지는 원덕제를 잠시 바라보다가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는 안색이 창백해진 언상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후우……. 언 대인, 이 늙은 거렁뱅이가 대인께 큰 화를 입혔습니다.”
이렇게 말한 후 늙은 거지는 고개를 들어 황제를 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다시 미소가 떠올라 있었는데, 다만 이때는 처음 입을 열 때와 같은 정중함이나 공손함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평소에 구걸할 때처럼 세상을 업신여기는 듯한 불손한 태도를 보였다.
“폐하, 이 일은 이 늙은이가 하지 말았어야 했을 말을 입에 담은 것이 원인입니다. 언 대인의 잘못이 아니고, 두 분 황자와도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아니면 이렇게 하시지요, 폐하의 화도 푸실 겸 그냥 저를 죽이십시오.”
‘죽이라니?’
언상은 현재 이 단어에 굉장히 민감했기 때문에 몹시 놀랐다. 하지만 곧 그가 말하는 것이 자신이 아니라, 늙은 거지 그 자신의 죽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조정 대신들은 속에서 그가 배후의 누군가를 보호하려는 목적이라거나 하는 수많은 추측이 오갔다. 그러나 이 시각 그런 말을 드러내 놓고 떠들 수는 없어, 대전이 매우 고요했다.
황제의 표정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분명치 않았고, 오로지 저 늙은 거지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