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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가기연-233화 (233/892)

233화. 연(緣)이 다했다

한참 후에야 황제는 이렇게 입을 열었다.

“네가 만약 신통한 법력이 있다거나 오묘한 선술(仙術)을 할 줄 안다면, 지금 이 자리에서 내게 보이거라. 그렇게 한다면, 짐은 너의 죄를 묻지 않을뿐더러 상을 내리고 천사의 칭호를 내려주겠다!”

그의 말이 끝나자 대신들은 작은 목소리로 갖가지 의견을 주고받았다. 심지어 언상마저 기대에 차서 늙은 거지를 바라보았다. 그는 계연이 달빛 아래에서 검무를 추는 모습을 보았지만, 저 늙은 거지는 고양이 한 마리를 잡았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두 고인의 대화로부터, 노인이 잡은 고양이가 범상치 않은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러나 늙은 거지는 딱딱한 얼굴에 억지로 미소를 드리우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그냥 이 늙은 비렁뱅이를 죽이십시오.”

“이놈……!”

황제는 두 손으로 용상의 팔걸이를 세게 쥐었고, 그의 몸도 순식간에 뻣뻣하게 굳었다.

“감히 짐이 네놈을 죽이지 못할 거라 생각하는 것이냐!”

늙은 거지는 날카로운 세 자루의 검이 자신을 겨누고 있는 상황에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보였다. 그는 두 손마저 시위에 의해 포박되어 있었는데, 이때 그는 고개를 모로 하여 검 끝에 자신의 어깨를 비비며 간지러움을 떨쳐내려 했다.

이에 그의 곁에 서 있던 시위조차 속으로 이 거지의 담력이 엄청나다고 혀를 찰 정도였다. 그들은 거지의 두 손을 잡고 있었으므로, 진기(眞氣)를 이용해 그의 몸이 ‘텅 비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거지는 조금의 무공도 익히지 않은 몸이었다.

늙은 거지는 가려운 부분을 다 긁은 뒤, 일전과 다를 바 없는 표정으로, 심지어 눈빛에는 조금의 연민마저 담은 채 말했다.

“구오지존께서는 이 늙은 거지 하나를 죽이는 데에 그리 많은 신경을 쓰실 것 없습니다. 어서 시작하시지요.”

황제의 노쇠한 두 손등에는 격렬한 분노로 인해 핏줄이 툭 불거져 나왔고, 그의 가슴은 화가 끓어올라 크게 부풀어 오르며 숨을 내쉬었다. 저 늙은 거지가 그를 바라보는 표정이 황제를 더욱 분노하게 했다.

“하하하…… 좋다! 전전(殿前) 시위는 명을 받들어라, 즉시 이 늙은 거지를 영녕가로 끌고 가 공개 참형하라! 사천감 감정, 태상사 언상은…….”

이에 언상은 몸을 벌벌 떨기 시작했고, 그의 관자놀이에서는 끝없이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직위를 박탈하고, 감옥에 처넣어라!”

“예!”

언상은 몸에 모든 힘이 빠져나간 것처럼 바닥에 축 늘어졌다. 두 명의 시위들은 그를 들어 대전 바깥으로 끌고 나갔다. 얼마간 남은 힘을 그러모아 늙은 거지를 바라보니, 그자는 시위들에게 압송되어 대전을 나가면서도 유유자적한 모습이었다.

두 ‘죄인’들이 압송되어 나가자, 대전 안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조차 들을 수 있을 것처럼 조용해졌다. 두 황자들은 여전히 바닥에 꿇어앉아 두려움에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심지어 부황의 시선이 그들에게 떨어지는 것조차 느낄 수 있었다.

“흥, 너희 둘은 그만 일어나거라!”

“감사합니다, 부황!”

두 사람은 이구동성으로 감사를 표하며, 몸을 일으킬 때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들은 서로의 눈빛에서 두려움을 읽을 수 있었다.

대전 안에 남아 있던 열다섯 명의 법사 중 적지 않은 이들은 늙은 거지가 참형을 받는 것을 보고 모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었다. 함께 법회의 일을 주관하던 사천감과 예부의 관원들도 속으로 불안해하고 있었다.

* * *

황제가 직접 내린 명에 조금도 소홀할 수 없었으므로, 시위들은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늙은 거지를 궁 밖의 대로를 향해 끌고 갔다.

그들은 정오가 되는 것도 기다리지 않았다. 대전의 시위들이 직접 그를 압송하였고, 금군들도 그 뒤를 따랐다. 그들은 큰 죄를 저지른 조정 대신들을 대하듯, 거지를 곧바로 영녕가로 압송해갔다.

금군은 창을 뻗어 전방의 행인들을 물리치며 길을 열었다.

“비켜라, 비켜! 길을 막지 마라!”

“무관한 자들은 모두 비켜서라!”

백성들은 그들의 기세를 보고 누군가 머리가 잘릴 것을 알아챘다. 이에 많은 인파가 그들의 행렬을 따라 걸었고, 곧이어 소문을 듣고 온 더 많은 사람이 따라오기 시작했다.

“저쪽에서 곧 누군가의 머리가 잘릴 것 같구먼!”

“정말이오?”

“어서 가서 보면 알겠지!”

“가세, 가세…….”

“나도 가겠네.”

참형은 백성들에게 있어 특별한 구경거리였다.

“에고, 저 호송 마차에 있는 자는 아무래도 거지 같구려.”

“어느 대신에 감옥에서 끌려 나온 게 아니라?”

“아니, 진짜 거지라니까. 저 옷을 좀 보시오, 죄인들이 입는 옷이 아니지 않소!”

“정말 그렇군.”

“저 거지는 전혀 겁을 먹은 표정이 아닌데?”

“너무 놀라서 머리가 돌아버린 게 아닐까?”

이런 떠들썩한 광경에 계연과 옥회산 진인 몇몇도 소식을 듣고 따라갔다.

계연은 죄인의 수레를 따라 이동하는 백성들의 인파에 섞여, 의혹을 담은 목소리로 노인에게 이렇게 소리쳤다.

“노 선생님, 도대체 무슨 죄를 지으셨길래 그러세요?”

늙은 거지는 목에 칼을 차고 발에는 쇠고랑을 찬 채, 억지로 계연이 있는 방향을 향해 머리를 내밀어 이렇게 소리쳤다.

“계 선생님, 저는 대전에서 황제에게 무엄한 언행을 하여 머리가 잘리게 되었습니다!”

계연은 그의 말에 웃지도 울지도 못했다. 그러나 동시에 호기심이 들기도 했다.

‘저 늙은 거지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벗어날 수 있을 텐데, 설마 정말로 머리가 잘리도록 놔두려는 걸까?’

그러나 더 많은 생각을 하기도 전에, 금군 두 명이 계연에게 다가와 엄숙한 얼굴로 물었다.

“자네는 누구인가? 이 죄인과는 무슨 관계지?”

“아……. 부디 오해하지 말아 주세요. 저는 저 늙은 거지와 차를 한 번 마셨을 뿐, 어떤 관계도 아닙니다!”

계연은 공수하며 태연자약한 얼굴로 미소를 띠었다.

이에 두 금군은 서로를 바라보다가, 더는 계연을 막지 않고 수레에서 멀어지도록 했다.

금군은 계연을 놔주었지만, 거지는 아직 아니었다.

“계 선생님~! 이 늙은이가 듣기로, 머리가 잘리기 전에는 단두(斷頭)밥을 먹을 수 있다던데요. 부디 저를 위해 식사 한 끼 가져와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계연도 웃음을 터뜨리더니 곧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려 떠났다.

계연이 다시 돌아왔을 때, 거지는 영녕가의 중앙에 앉아있었고 수많은 백성이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비켜 주세요, 잠시만 비켜 주세요! 단두밥을 들고 왔어요!”

계연은 연신 사과하며 인파의 앞으로 향했다. 사람들은 그가 죄인의 밥을 가져온다는 소리를 듣고 즉시 길을 열어 주었다. 그래서 계연은 곧 손쉽게 인파의 벽을 넘어갈 수 있었다.

옥회산 수사들은 한 곳에 서서 괴이쩍은 표정으로 계연과 늙은 거지를 바라보고 있었다.

“사숙(師叔), 저분들은 지금 뭘 하시는 건가요?”

이에 한 노인이 생각에 잠긴 얼굴로 말했다.

“보면 알 것이다.”

계연은 양념이 자작하게 올라간 고기덮밥을 가져왔다. 이에 주위의 금군과 시위들을 그가 지나갈 수 있도록 비켜 주었다. 계연이 늙은 거지의 곁에 다다랐을 때, 그는 이미 모든 족쇄에서 풀려나 있어 스스로 밥을 먹을 수 있는 상태였다.

“노 선생님, 어서 드세요.”

늙은 거지는 활짝 웃는 얼굴로 커다란 그릇을 받아 들었다. 그는 “고맙습니다”라고 짧게 한 마디 남긴 후, 허겁지겁 식사를 해치웠다.

밥이 가득 담겼던 그릇은 순식간에 한 톨도 남지 않고 텅 비었다. 그는 지켜보는 사람들이 군침이 돌 정도로 맛있게 먹어 치웠다.

“꺼억~!”

큰 소리로 트림을 한 늙은 거지는 그릇과 수저를 계연에게 내밀었다.

“허허……. 계 선생님, 좀 멀리 떨어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좀 이따 제 피가 선생의 옷을 더럽히지 않도록 말입니다. 아, 선생께서는 때 묻지 않은 몸이시니, 이런 더러움 정도는 두려워하지 않으시겠지만요.”

계연은 그릇과 수저를 받아 들고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한쪽의 인파 속으로 섞여들었다.

보아하니 저 늙은 거지는 정말로 자신의 ‘머리가 잘리도록’ 놔둘 생각인 듯했다. 이는 계연에게 예전에 잡았던 목이 떨어진 후에도 살아난 귀모(鬼母)를 떠올리게 했다.

“밥도 먹었겠다, 어서 가자꾸나! 우리더러 무정하다고 탓하지 말고, 부디 탓할 거면 죽을죄를 저지른 자신을 탓하거라!”

대전 시위는 이렇게 말을 남긴 뒤, 친히 망나니가 되기로 했다. 그는 곧 검을 높이 빼 들었고, 거지는 바닥에 꿇어앉아 머리를 숙였다.

이들을 둘러싼 백성들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고, 인파 사이에서는 간간이 숨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음 순간, 시위의 칼이 떨어졌다.

툭!

거지가 머리가 떨어져 바닥을 굴렀고, 목에서는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다. 이를 지켜보던 많은 구경꾼은 몸을 벌벌 떨었다.

“아……!”

“에고!”

“허억……!”

계연은 법안을 열어 늙은 거지를 살피다가 돌연 무언가를 깨달았다.

약 몇 초 뒤, 구경꾼들과 집행관들의 모골을 송연하게 하는 일이 발생했다.

바닥에 엎드린 채 누워있던 머리 없는 시신이 돌연 몸을 일으키더니, 손을 뻗어 앞쪽을 더듬기 시작한 것이다.

“아악!”

“귀신이다!”

“시체가 일어났어, 어서 도망쳐!”

“악!”

“도망쳐!”

“밀지 마시오!”

백성들은 경악하여 사방으로 도망쳤고, 주위의 금군과 대전 시위들은 몹시 놀라 몸이 꼿꼿이 굳은 채 도망치지도, 거지에게 다가가지도 못했다.

“어이! 여기, 여기야!”

한쪽에 굴러가 있던 머리통이 자신의 위치를 알려주려는 듯 입을 열어 이렇게 말했다.

잠시 후, 머리 없는 시신이 머리통을 들어 올려 자신의 목 위에 얹었다.

뚜둑! 뚜두둑!

늙은 거지는 목을 이리저리 돌리며 관절에서 소리를 냈다. 그 후 웃음을 띤 얼굴로 대전의 시위들을 바라보았다.

“휴우, 황실의 기운과는 쉬이 엮이면 안 되겠군. 나와 황제의 사제(師弟)의 연은 이걸로 끝이야!”

뚜둑…… 뚜둑…….

늙은 거지는 목과 허리를 이리저리 비틀더니, 바닥에 흩뿌려진 피가 자신과는 무관한 것처럼 말을 하고 몸을 움직였다.

“아이고!”

“허억!”

늙은 거지가 자신들을 향해 몇 걸음 다가오는 것을 보고, 비교적 담이 작은 금군 몇몇은 다리가 풀렸다. 무공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대전 시위들조차 사실은 겁에 질려 떨고 있었다.

늙은 거지는 무릎과 다리의 흙먼지를 툭툭 털었다. 그 후 거지가 주위를 둘러보니, 조금 전의 수많은 인파는 어느새 전부 사라진 상태였다. 오직 몇몇 사람이 멀리 골목 입구에 몸을 숨기고 이쪽을 관찰하고 있는 것이 거지의 시야에 보였다.

물론 원래 있던 자리에 담담하게 서 있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은 당연히 계연과 옥회산 수사들이었다.

늙은 거지는 금군과 대전 시위들이 있는 쪽을 한 번 바라본 후, 계연이 있는 곳을 향해 공수하며 다가왔다.

“계 선생님, 부끄러운 모습을 보였습니다. 차라도 마시러 가시겠습니까?”

이에 계연도 웃으며 그를 향해 공수했다.

“듣자니 천사에 봉해지면 천 냥의 황금을 받을 수 있다던데, 노 선생님께서는 오늘 벌어진 일로 그 돈을 확실히 손에 넣으실 수 있겠네요. 그러니 찻값은…….”

“아, 찻값은 그래도 계 선생님께서 내셔야 합니다. 이 늙은이는 황상께 머리를 잘렸는데, 저 같은 죄인이 무슨 돈이 있겠습니까.”

“하하하……. 그럼 어서 가요, 제가 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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