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화. 크게 낙담하다
푸른 장포를 입은 서생과 다 떨어진 남루한 옷을 입은 거지는 웃으며 떠나갔다. 그들은 유유자적 걷는 모습이었지만, 지켜보는 이들의 시선에서 순식간에 멀어지더니 몇 초 만에 완전히 사라졌다.
계연과 늙은 거지가 사라지고도 한참 후에야 금군과 대전 시위들은 믿을 수 없는 공포감에서 천천히 제정신을 되찾았다.
그들이 주위를 둘러보자, 조금 전까지 남아 있던 장포나 날개옷을 입고 작은 관을 쓴 이들은 이미 떠나간 후였다. 이에 비교적 담이 큰 백성들은 상황을 보러 다시 돌아왔다.
땅에 남아 있는 핏자국은 다른 이들의 머리가 잘렸을 때와 조금도 다른 점이 없었다. 다만 이번에는 수습할 시신이 없다는 것만이 달랐다.
대전 시위들은 정신을 차린 뒤 서로를 바라보았다.
“저, 저자가 정말 선인(仙人)이었단 말인가?”
“그…… 우리, 우리는 황상께 이 일을 어찌 고해야 하겠는가?”
“사실대로 고하는 수밖에…….”
이렇게 대답하는 이는 아직도 두려움이 남은 듯 보였다. 방금 일어난 일은 너무나 비현실적이고 너무나 얼토당토않은 일이었기 때문이다. 머리가 잘리고도 다시 살아난 사람이 있다니, 이는 그자가 신선이라는 이유밖에는 해석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보고하면 황제가 어떤 생각을 하겠는가? 혹은 그게 그들에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는가? 대전 시위들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
이와 달리, 주위의 금군들 대부분은 아무런 화도 입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이 일은 그들에게 있어 다른 사람들과 술을 마실 때 좋은 안줏거리로 삼을 이야기가 될 것이다.
금군과 대전 시위들이 복잡한 심경을 가지고 영녕가를 떠나자, 더 많은 백성이 다시 이곳으로 몰려들었다. 모든 일을 멀리서 지켜보고 있던 간 큰 이들 몇몇은 방금 상황을 대강 설명해주었다.
이에 인파 사이에서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혹은 놀라움이 담긴 소리가 울려 퍼졌다.
* * *
방금 일어난 일로, 대전 안의 분위기는 한동안 매우 가라앉아 있었다. 하지만 다시 법회에 관한 일에 대해 고하기 시작한 후, 분위기는 차츰 풀어지기 시작했다.
법회 중에 있었던 일들을 모두 고한 뒤, 남은 것은 이제 황제에게 계속해서 법사들을 소개하는 일뿐이었다.
열 몇 명의 법사들은 누구도 눈에 띄는 언행은 하지 않으려 했고, 자신들의 소개를 마친 뒤 황제의 만수절에 대해 축하 인사를 올리기만 했다.
그들 중 황제와 대신들은 당연히 자신들의 마음이 좀 더 기울어지는 대상이 있었다. 외모가 반듯한 법사들은 더 많은 관심을 받았는데, 그런 자들 중에는 계연이 마주친 승려와 응풍과 응약리 모두가 본 선풍도골의 나이 든 법사가 포함되어 있었다.
예부의 한 관원은 언상의 직책을 대리하여, 손을 뻗어 승려를 가리켰다.
“폐하, 이분은 혜동 대사(慧同大師)이십니다. 저희 대정국 사람은 아니고, 연량국(延梁國) 이북에서 오셨다고 합니다. 법회에서 이분의 경문을 읽는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곧이어 빈 공간에 향 태우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오?”
원덕제는 약간의 흥분감을 감추지 못하고 이 승려에게 물었다.
“법사께서는 어떤 신통하고 오묘한 불법(佛法)이 있소?”
승려는 애써 미소 지으며 좌우를 둘러보다가 한 걸음 걸어 나왔다. 그러고는 황제를 향해 두 손으로 합장한 뒤 허리를 숙였다.
“선재 대명왕불이시여, 폐하께 아룁니다. 소승은 그저 풀때기를 먹고 불경을 읽는 자일뿐입니다. 어떤 오묘한 법력이나 신통력도 없으며, 법회에 참석한 것은 오로지 복을 빌고 액막이를 하기 위해서일 뿐입니다.”
사실, 이 승려는 이 중 유일하게 황제의 법사가 되려는 생각을 가지지 않고 온 자였다. 구천십회에서 한 일도 일반적인 수륙법회에서 하는 일을 했을 뿐이었다. 다만 그의 모습이 너무 진지하여 오히려 신비스러워 보였고, 이에 예부의 관원에게 선발되어 황제를 뵙게 된 것이었다.
승려의 어조는 담담했고 안색도 차분했다. 황제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한 번 살피다가, 약간 실망한 듯 코웃음을 치고는 이렇게 물었다.
“대사의 말은, 예부의 애경(愛卿)들이 과인을 기만했다는 뜻인가?”
예부의 몇몇 관원들은 순간 숨을 들이마셨고, 극도로 긴장한 나머지 관원들의 온몸의 털이 꼿꼿하게 일어섰다.
승려는 이에 몹시 놀란 듯이 고개를 들어 황제를 바라본 후 다시 합장했다.
“선재 대명왕불이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조정에 들어 황상을 뵈는 조건에, 반드시 신통력을 지닌 자여야 한다는 말은 없었습니다. 법회는 성심성의껏 복을 빌고 액막이를 하려는 목적이니, 공덕(功德)이 있는 자가 뽑히는 것이 맞습니다. 예부의 대인들께서도 분명 그리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그 뜻은 대사 자신을 공덕(功德)이 있는 자라고 여긴다는 말인가?”
황제가 이렇게 물으며 냉담한 얼굴로 승려를 바라보았다.
이에 혜동 대사는 합장하며 허리를 숙였다.
“소승은 그리 생각합니다.”
분위기는 다시 한번 깊게 가라앉았다. 잠시 후, 용상에 앉은 황제는 손을 휘휘 저어 승려를 물러가게 했다. 이에 예부의 관원들은 크게 한숨을 돌렸다.
원래 황제를 알현하러 오기 전에, 언상을 포함하여 법회를 책임진 관원 대부분은 모두 이 승려에 대해 좋은 인상을 받고 있었다. 다만 그들은 늙은 거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좋은 인상을 받지 못했고, 오직 언상만이 그에게 무척 정중하게 대했다.
그런데 오늘 이 두 사람 중 하나는 언상에 큰 화를 입혔고, 다른 하나는 예부 관원들이 진땀을 흘리게 했다.
승려가 법사들이 서 있는 위치로 돌아가고, 다시 조금 전의 예부 관원이 정신을 차리고 다음 법사를 소개하려던 순간, 대전 밖에서 황제에게 아뢰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형을 집행했던 시위들이 돌아왔습니다!”
대신들과 황제는 모두 대전 바깥을 향해 시선을 던졌고, 이어서 원덕제는 한쪽에 선 태감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들라 하라.”
“예!”
태감은 허리를 구부린 뒤, 다시 목소리를 높여 소리쳤다.
“성상께서 분부하시기를, 형을 집행한 대전 시위들을 들라 하셨다!”
잠시 후, 검을 찬 네 명의 시위들이 다시 대전에 발을 디뎠다. 오직 그들과 가까이 서 있던 일부 대신들만이 시위들의 안색이 좋지 않은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네 사람은 대전의 중앙까지 걸어와, 용상을 향해 한쪽 무릎을 꿇었다.
이 모습을 지켜본 일부 눈치 빠른 대신들은 무언가 이상한 점을 눈치챘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황제를 뵐 때도 무릎을 굽히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폐하께 아룁니다. 저희는 명대로 영녕가 한복판에서 그 늙은 거지의 머리를 베었습니다…….”
“음, 물러가거라!”
황제는 흥미 없는 얼굴로 손을 휘휘 저었다.
다만 이 네 명의 대전 시위들은 누구도 몸을 일으키지 않고 그 자리에 가만히 무릎 꿇고 있었다.
원덕제는 눈을 가늘게 뜨고 네 사람을 쳐다보았다.
‘설마 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어찌 그러느냐? 더 고할 말이 있느냐?”
시위들은 서로를 쳐다보다가, 결국 오른쪽 앞에 선 시위 하나가 이를 깨물더니 앞에 나서 입을 열었다.
“폐하께 아룁니다, 소신이 직접 그 거지의 목을 베었는데, 그자의 목이 굴러떨어진 후 피가 사방에 솟구쳤습니다, 그러나…….”
“그런데?”
시위는 고개를 들어 황제를 한번 쳐다본 후, 긴장감에 등허리에 열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잠시 후, 몸과 머리가 분리되었던 그 늙은 거지가 돌연 몸을 일으키더니, 머리를 찾아 목에 얹었습니다. 그리고 그자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무어라?”
황제는 몸을 크게 흔들며, 용상에서 거의 일어설 뻔했다.
“헉…….”
“어찌 그런 일이……!”
“저 시위가 헛된 말을 하는 게 아닌가?”
“저자가 감히 그럴 수 있겠는가?”
이 순간 황제는 경악을 금치 못했고, 대다수 침묵을 유지하던 대신들마저 입을 열어 대전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이 일을 믿는 사람, 안 믿는 사람, 그리고 그와 상관없이 이 일을 소름 끼쳐 하는 자들 모두 의견이 분분했다.
용상의 팔걸이에 얹은 원덕제의 두 손이 살짝 떨리고 있었다. 그는 두 눈을 부릅뜨고 대전 시위 네 명을 쳐다보며 노기 어린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다.
“감히 과인을 기만하는 것이냐?”
“소신, 당치 않습니다!”
“소신이 어찌 군주를 기만하는 죄를 짓겠습니까!”
“황제 폐하, 부디 살펴주십시오!”
네 사람은 창백한 안색으로 황제를 향해 절을 올렸다.
조금 전 입을 열었던 그 시위는 공손한 자세로 다시 말을 이었다.
“폐하, 저희는 절대 삿된 말로 폐하를 기만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희를 따라간 금군들뿐만 아니라, 영녕가를 둘러싼 백성 모두가 늙은 거지의 머리와 몸이 따로 떨어졌다가 다시 살아나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폐하께서 사람을 보내 영녕가 일대에 한 번 묻기만 하셔도 소신의 말이 사실임을 아실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머리가 잘린 핏물이 그곳에 남아 있습니다! 폐하, 부디 살펴주십시오!”
용상에 앉은 원덕제는 호흡이 점차 거칠어지더니, 네 명의 시위들을 가리키며 무어라 말을 하려 했다. 하지만 몇 번이고 입을 벌렸다 닫았다 하던 황제는 결국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
그러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 마침내 황제의 입이 열렸다.
“그, 그자는? 그 사람은 어디로 갔느냐? 왜 너희와 같이 돌아오지 않았지?”
대전 시위들은 근육을 잔뜩 긴장한 채, 극도의 불안을 느끼고 있었다. 황제의 물음에 그들은 다시 한번 이를 꽉 물고 사실대로 고했다.
입을 연 것은 조금 전의 그 시위였다.
“폐하게 아룁니다. 그 늙은 거지는 몸을 일으킨 후, 이리저리 움직여 보더니 청색 장포를 입은 서생같이 보이는 자와 함께 떠났습니다.”
이에 원덕제는 참지 못하고 몸을 일으킨 뒤, 노여움을 한껏 담아 소리쳤다.
“너희는 그자가 그냥 가게 두었단 말이냐? 어째서 붙잡지 않았느냐?”
대전 시위는 고개를 들어 눈을 꼭 감았다가 뜬 뒤, 겁에 질린 표정으로 계속해서 말했다.
“그 두 사람은 마치 신인(神人)처럼, 단 몇 걸음 만에 종적을 찾을 수도 없이 사라져 저희도 그를 쫓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 늙은 거지가 떠나기 전에 한 마디를 남겼사온데…….”
“어서 말해 보아라!”
시위는 숨을 한번 깊게 들이마셨다.
“늙은 거지는 저희를 바라보며, 황실의 기운과는 쉬이 엮이면 안 되겠다고 하였습니다. 또…… 또 그자와 폐하의 사제(師弟)의 연은…… 이걸로 끝이라고도 하였습니다!”
황제는 멍하니 서서 입을 조금 열었다. 그의 아래턱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온갖 복잡하고 망연한 각종 감정이 그의 마음에 떠올랐다가, 다시 그의 마음이 텅 빈 것처럼 바뀌었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대전 시위가 그 말을 하던 순간, 황제는 속으로 그의 말이 사실이라는 강렬한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시간이 잠시 흐른 뒤, 황제의 몸이 순간 기우뚱하더니 다리가 풀렸다. 이어 황제가 용상에 풀썩, 쓰러지듯 앉았다.
“폐하!”
가까운 곳에 있던 대신이 이 모습에 놀라 그를 부르자, 황제가 그를 돌아보았다. 그런 황제의 두 눈에는 깊은 공허함이 담겨있었다.
대전 시위 네 명은 바닥에 꿇어앉아 머리를 조아렸다. 이에 대전 안은 다시 한번 조용해졌고, 곧이어 대전은 더욱 깊은 적막 속으로 빠져들었다.
“허…… 허억……!”
잠시 뒤, 원덕제는 마치 꿈에서 깨어나 돌연 정신을 차린 것처럼 바닥에 꿇어앉은 시위 네 명을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돌려 옆에 서 있던 태감에게 조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명을 전해라, 어서 내 명을 전해라! 보군통령(*步軍統領: 수도방위대인 보군영(步軍營)의 우두머리), 경기부 관아, 사천감…… 전부 보내, 전부 보내서 찾아오거라. 그자를 찾아와! 언상, 언상은 어디 있느냐?”
이런 황제의 모습은 지켜보는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태감은 이에 두려움을 무릅쓰고 이렇게 대답했다.
“폐하, 언 대인은 현재 감옥에 있습니다.”
“무어라? 그가 감옥에 있다고? 누가 그를 가두었다는 말이냐, 누가 감히……!”
황제는 여기까지 말하다가 돌연 이전의 일을 떠올리고는 하려던 말을 멈췄다. 이에 그는 맥이 빠진 듯 더욱 낙담한 모습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