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238화 (238/892)

238화. 혜동 대사

승려 혜동은 고승(高僧)으로서, 닦는 수행의 종류도 다르고 도력으로 봐도 대전 안의 사람들보다 약했지만 그래도 영혼이 맑고 감각도 예민했다. 그래서 그는 이 자리에 있는 고인들이 이런 일로 농담을 하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천보상국은 국운이 크게 번성한 나라입니다. 설령 어딘 가에 삿된 것들이 생겨났다고 해도, 민간에 있는 신령들과 천보국 안의 고인들도 있을 텐데요…….”

승려는 방금 들은 말이 사실임을 알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물을 수밖에 없었다.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이 고인들에게서 명확한 답을 얻을 수 있기를 바라서였다.

“그렇소, 나를 비롯한 여기 이분들 모두 대정국에 오래 머물렀지만 그래도 천보국은 한번쯤 들어본 이름이오. 동토의 운주에서는 손꼽히는 황조이며, 운주의 기운을 뒤흔들 수 있다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지요. 그래서 한번 점을 쳐 보았더니, 나라의 기운이 혼란스럽고 명확히 보이지 않았소. 그러니 분명 천보국에 큰 혼란이 일어났거나, 누군가 흑심을 품고 속셈을 꾸미는 거요!”

늙은 용의 말을 듣고 계연은 심경이 복잡해졌다.

이전 생의 표현을 빌리자면, 대정국의 수행자들은 대부분 ‘집돌이’들이었다. 어쩌면 이 세상의 모든 수행자 대부분이 비교적 그런 성향이라고 볼 수도 있었다. 다만 대정국의 사람들이 좀 더 그 표현에 가까웠을 뿐이다.

승려의 말을 듣고 사람들은 갖가지 추측을 시작했다. 옥회산 수사들과 인간의 모습을 한 교룡들 모두 자신들의 의견이 있었다. 그들은 심지어 이전에 누군가에게 습격당했던 경험을 공유하기도 했다.

성황전 안의 토론 소리가 점차 작아지자, 경기부 성황신은 소매를 휘둘러 실내에 떠 있던 안개를 한쪽으로 치워 공간을 만들었다. 그러고는 좌우를 두리번거리는 혜동 대사를 바라보았다.

“혜동 대사와 여러 도우(道友) 분들의 의견에 의하면, 이 두 가지 가능성으로 추측할 수 있겠군요. 천보국을 비롯한 운주에 이런 이상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최근 십수 년간의 일이거나, 아니면 최소 십수 년 전부터 지금까지 존재를 잘 숨기고 있었던 겁니다.”

옥회산 수사 중 도행(道行)이 가장 깊은 거원자가 눈썹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삿된 요괴들은 사고의 방향이 올바르지 않고 마음도 평온하지 못하니, 그렇게 오랜 세월 참고 인내할 수 있었을 리가 없습니다. 게다가 그것들이 하나도 아니고 한 무리였다면요.”

“거원자 진인(眞人)의 말씀이 맞습니다. 삿된 요괴들은 심성이 올바르지 못하여, 쉬이 폭력적인 성향을 드러내지요. 하지만 그들의 심성과 성격 간에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 해도, 필연적으로 서로 영향을 끼치진 않을 거예요. 아무리 심성이 나쁘다고는 해도 인내심도 없을 거라고 추측할 수는 없어요. 이 일은 보통 일이 아니니, 이대로 어물쩍 넘어갈 수는 없어요. 그리고 이번에 대정국의 수륙법회에 참가한 요물들도, 중간에 큰 소동을 일으키지는 않았잖아요.”

계연은 거원자의 말에 조심스럽게 찬성한 뒤, 자신의 관점을 덧붙였다.

옥회산의 수사들은 정통 선문의 관점으로 이 일을 바라보고 있어, 요괴와 마귀들에 대한 선입견이 강했다. 그들 대부분은 이런 요괴들을 무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색안경을 끼고 그들을 대한다면, 상대방의 실력을 낮잡아 보게 된다.

계연은 거원자가 쓴 옥간을 가지고 있기도 했고, 그는 수행이 깊고 도력도 높은 자였다. 늙은 거지와 비교해도 그다지 큰 차이는 없을 정도였다. 그는 요물들이 교활하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요사한 것들은 수행에 큰 성과를 이룰 수 없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 성격이 흉포한 사람들도 어떤 모종의 이유를 위해서라면 일시적으로, 또는 그보다 훨씬 오래 인내력을 발휘하는 일이 있었다.

“음, 일리 있는 말입니다! 하지만…….”

거원자는 이렇게 말하며 경기부 성황신을 바라보았다.

“그 지방을 보우하는 신령들이 있지 않습니까?”

대부분의 수선자는 세속의 일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때로 선문에서는 십수 년 혹은 수십 년 동안 누구도 산 밖으로 나오지 않는 일도 있었다. 게다가 밖으로 나온다고 해도 하늘을 날아 이동했다. 그러나 각 지방의 신령들은 일반 백성과 동물들처럼 서로 간에 연결되어 있었다.

그래서 수사 한 사람이 이대로 천보국까지 날아가 한번 순찰을 하고 오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는데, 곧바로 거원자의 반대에 부딪혔다.

“우리는 지금 그 추측들을 너무 맹목적으로 믿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천보국에 직접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닙니다!”

“흥, 직접 날아가 본다 해도 무슨 결과를 얻지는 못할 거요. 일전에 이 늙은이가 그곳으로 날아가 적지 않은 요물들을 죽였는데, 그런데도 어떤 실마리도 잡지 못했소. 그 수많은 요물은 마치 어느 날 스스로 땅에서 솟아난 것 같았소!”

늙은 용은 결국 묵영을 기습한 것이 누구인지 찾아내지 못했고, 그 때문에 지금까지 울분을 마음에 담고 있었다. 그는 묵영이 죽기 전에 자신이 범인을 죽였는지 아닌지 확실치 않다고 말했지만, 사실 그는 자신이 범인을 죽이지 못한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묵영의 힘줄마저 찾아오지 못했으니, 아직 그에게 온전한 시신을 남겨주지도 못한 셈이었다.

그러자 자리에 있는 이들은 모두 자신들의 의견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보통 사람들이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을 때와 비슷한 광경이었지만, 그보다는 덜 소란스러웠다는 점이 달랐을 뿐이다.

계연은 그들의 말을 다 듣고, 깊이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이렇게 입을 열었다.

“이번에 저희가 대정국의 법회에 온 요물들을 한 번에 청소했으니, 만약 즉시 몸을 움직인다면 타초경사(*打草驚蛇: 풀을 두드려 뱀을 놀라게 한다, 오히려 적들을 일깨워 스스로를 불리하게 만든다는 뜻)가 될 거예요. 게다가 응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신통력이나 법력을 억지로 누른 후 그곳으로 직접 간다고 해도 좋은 결과를 얻을 거라는 보장이 없어요. 연량국과 천보국의 일은 신중해야만 해요. 우리가 가서순찰하는 것보다는 보통 사람을 보내 자세히 관찰하도록 하는 게 나을지도 몰라요.”

“선재 대광명불, 소승 혜동이 그 임무를 맡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쭉 존재감이 희미했던 혜동 대사가 돌연 입을 열었다. 하지만 계연은 마치 그의 반응을 예측했던 것처럼 평온하게 물었다.

“대사님께서 불법(佛法)을 깊이 수행하신 데다 그간 복을 기원하고 액막이를 한 공덕이 있으시지만, 그곳에서 마주치게 될 요괴와 마귀, 사도(邪道)를 닦는 이들은 불법에만 의지해서는 물리칠 수 없어요. 대사께서 명왕(明王)의 술법을 부릴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 힘을 쓸 기회조차 없을 수도 있다는 뜻이지요.”

“선재 대명왕불…….”

혜동 대사는 이렇게 중얼거리더니 주위의 신령과 요괴, 선인들을 향해 예를 올렸다.

“소승이 몸을 담은 대량사는 천보국과 닿은 국경에서 그다지 멀지 않습니다. 그간 오래 떠돌기도 했고 이번에 대정국의 법회에도 참가했으니, 마침 연량국에 돌아갈 좋은 시기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더 북쪽으로 올라가 천보국의 대륜사(大輪寺)로 가 불법을 수행할지도 모르지요, 하하……. 이번 일이 없었다 해도 소승은 이미 그리하려고 생각 중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발생하여 가는 것하고, 그전부터 가려고 했다는 것은 서로 다른 얘기였다.

계연은 얼굴에 조금 흠모하는 빛을 드리웠다.

“대사께서는 정말 의로우시네요. 머지않은 장래에 필시 명왕의 과위(*果位: 불교의 승려가 도달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르실 거예요!”

“알고 보니 꽤 괜찮은 승려였군. 우리 사이에 있던 일은 없던 거로 하겠소.”

늙은 용은 이 승려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바꾸고서 이렇게 웃으며 농을 던졌다. 이에 다른 이들도 모두 이 ‘나이 어린’ 승려를 조금 다른 눈빛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혜동 대사의 제의는 그들이 쓸 수단 중 하나일 뿐이었다. 모든 것을 승려 한 사람에게 걸 수는 없으니, 그들은 다른 수단도 검토해야 했다.

물론 이 모든 게 그들의 우려가 너무 컸을 뿐, 우연이 만들어낸 결과였다고 밝혀질 수도 있었다. 아니면 천기각의 소문이 널리 퍼진 후, 원래 천보국에 있던 요물들이 이곳으로 넘어왔을 가능성도 있었다.

* * *

다음 날 오후, 혜동 대사는 이미 대정국 가장 북쪽에 있는 금주에 다다른 상태였다. 이 승려는 비거술을 하지 못했으므로, 당연히 누군가 그를 데려온 것이었다.

금주 북쪽에 있는 연추산에서는 혜동 대사와 계연, 응굉이 함께 구름에서 내려와 땅을 밟고 있었다.

“혜동 대사, 이 산을 넘으면 바로 연량국이에요. 우리가 예전에 이야기 나눈 바로는 이 일의 뿌리가 천보국 혹은 운주의 북쪽에 있는 지방일 거라고 추측하고 있지만, 연량의 땅이라고 해서 꼭 안전하다는 보장은 없어요. 이 산을 넘고 나면 항상 조심하셔야 해요. 물론 얼마 전에 진룡께서 연량국 남부 근처로 날아가 크게 위세를 떨친 적이 있으니, 아직은 별일 없을 거예요.”

계연은 이렇게 말하며 전방을 쳐다보았다.

“대사님을 데려갈 분이 오셨네요.”

혜동 대사와 늙은 용은 곧이어 멀지 않은 곳에서 누런 연기가 일며 안색이 돌과 비슷한 사람이 나타난 것을 발견했다. 그자는 마침 세 사람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연추산 산신 홍성연이 계 선생님과 용왕, 그리고 대사님을 뵙습니다!”

“홍 산신님, 안녕하세요!”

“산신께서는 예를 거두십시오.”

“소승이 산신 대인을 뵙습니다!”

계연과 늙은 용, 혜동 대사는 산신을 향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인사했다.

산신은 혜동 대사를 몰랐지만, 이 승려가 저 두 사람과 함께 서 있는 것만 봐도 보통 사람이 아닐 거라고 결론 내렸다.

“대사님, 옥회산의 태허 옥 부적은 신비롭고 비범하여, 부적 중에서도 무척 상등품이라고 볼 수 있어요. 하지만 대사님께서 소모해야 할 법력이 너무 많을 테니, 신중히 사용해 주세요. 토둔(土遁) 부적은 비록 사람이 도망칠 수 있도록 해주지만, 그 자체에 무슨 신통력이 있는 것은 아니거든요. 법력이 완전히 소모되면 땅 밑에서 그대로 죽을 수도 있어요. 게다가 만약 토행(土行) 술법에 정통한 이를 만났는데 그 부적을 썼다가는, 오히려 땅에 갇히게 되어 매우 위험할 거예요.”

계연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혜동 대사는 자신의 머리에서 식은땀이 솟는 것을 느꼈다. 계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을 들으면, 자신이 무슨 일을 해도 결국에는 위험에 처할 것만 같았다.

“하하, 어쨌든 대사께서는 최대한 많이 듣고 많이 보고 오세요. 이런 부적들에 너무 의지하지 마시고요. 어떨 때는 이것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계연의 잔소리가 너무 많다고 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수선계라더라도 즉시 소식을 전달하는 수단은 찾기 어려웠고, 있다고 해도 아주 희귀한 신물(神物)이었다. 검을 날려 서신을 전하는 방법이라 해도 요구되는 법력이 크고 일정한 시간이 걸렸다. 게다가 아무 걱정 없이 쓸 수 있는 완벽한 방법도 아니었다. 계연처럼 몇 번이나 선검을 이용해 서신을 전달한 것은 사실 아주 사치스러운 수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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