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화. 핏빛 비단
응접실에는 운파부 지부뿐만이 아니라, ‘때마침’ 윤재성을 방문했던 관원들도 자리에 있었다. 그중에는 여순부의 현관(縣官)들뿐만이 아니라, 운파부의 관원들도 몇 있었다.
윤재성이 서둘러 걸어오는 소리가 회랑에서부터 들려오자, 응접실에 앉은 이들은 정신을 바짝 차렸다. 그들은 모두 속으로 ‘역시 조 대인이 우리 중 가장 체면이 서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조 대인, 오래 기다리셨지요? 제가 방금까지 아들과……. 오, 여러분도 계셨군요?”
윤재성은 응접실에 들어서고 나서야 그들을 발견한 듯 이렇게 말했다.
“윤 대인, 어서 오십시오!”
“윤 대인, 드디어 오셨군요!”
관원들이 모두 그를 향해 인사를 올렸다.
윤재성은 눈썹을 찌푸리며 난감한 듯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래서 이들은 모두 윤재성이 원래는 조 지부 한 사람만을 만나려 했던 거라고 속으로 짐작했다. 윤재성은 한번 한숨을 내쉰 뒤, 자리에 앉았다.
“일추(一秋)야, 하인들을 데리고 응접실 사방을 잘 지켜라. 누구도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해라!”
“예, 대인!”
윤재성이 수하에게 이런 명령을 내리자, 조 지부를 제외한 모든 이들은 그제야 한숨을 돌렸고 이어 기대감이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등갓을 씌운 유등(油燈)이 실내를 밝게 비추고, 윤재성과 조 지부는 모두 상석에 앉았다.
윤재성은 이 자리에 모인 불안하거나 기대감에 찬 표정의 관원들을 보고 말했다.
“조정에 저와 가까운 이들에게 진 대인의 소식을 물었더니……. 아무래도 상황이 안 좋은 듯합니다. 비록 진 대인 한 사람의 말뿐이라지만, 그분이 해야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이미 너무 많이 하셨더군요.”
“진우하, 이 양심도 없는 짐승 같은 놈이……!”
“죽일 놈! 자기가 제일 많이 착복해 놓고서, 감히 우리를 팔아넘겨?”
“가증스러운 놈!”
“여러분, 그만 진정하십시오. 제가 말했다시피, 이것은 진 대인 한 사람의 주장일 뿐입니다.”
“아이고, 이미 일이 이렇게 되었는데, 윤 대인은 아직도 진우하 그 짐승보다 못한 놈을 대인이라 칭하십니까?”
“그러게 말이오. 윤 대인께서는 정과 의리를 중히 여기시는군요. 하지만 그런 것을 아무에게나 주어서는 안 됩니다!”
관원들 몇몇은 분을 참지 못하고 이렇게 말했고, 조 지부마저도 그러했다.
윤재성은 겉으로는 탄식을 내뱉었지만, 속으로는 비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정말로 자신의 정과 의리를 아무에게나 주지 않았다.
“여러 대인들, 예전에 순찰사가 완주에 왔을 때도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비록 속으로 의심이 들었을지라도, 아무 증거도 찾지 못했었습니다. 게다가 조정에서 누군가 우리를 위해 말을 해주면, 대부분 아무 일 없이 지나갔지요. 하지만 이번에는…….”
윤재성은 몹시 원망하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에는 진 대인, 진우하가 입을 열었으니 이는 정말이지……. 비록 여전히 증거는 없지만, 이미 황상의 의심을 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정말로 결백하다고 해도, 이번에는 몇 사람이라도 끌어내리지 않으면 이대로 끝나지 않을 겁니다.”
사람들의 얼굴이 놀람과 두려움으로 물들자, 윤재성은 계속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사실대로 말씀드리는 게 낫겠군요. 다행히 황상께서 저를 신임하셔서, 어제 제가 황상의 밀지를 받았습니다. 완주의 어떤 관원들이 부패했는지 물으시며 증거를 찾으라 명하셨고, 이어 순찰사를 파견하겠다고도 하셨습니다.”
윤재성이 품 안에서 옥새가 찍힌 황색 비단 두루마리를 꺼내자, 관원들은 조건반사적으로 공수하며 예를 올렸다.
그러자 윤재성은 급히 손을 뻗어 그들을 제지하며 말했다.
“진우하가 그래도 양심은 남아있었는지, 완주의 관원 중 2할 정도만이 탐관오리라고 말했다 합니다. 이에 황상께서 진노하시어, 제게 이 2할을 채울 관원을 잡아내라 명하셨습니다.”
윤재성은 이제 거의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발제인(*先發制人: 선수를 쳐서 상대를 제압하다)이라는 말과 낙정하석(*落穽下石: 우물에 빠진 사람에게 돌을 던진다)이라는 말이 있지요! 여러분, 일단 저는 그 2할에 속하는 관원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관원들은 노란 비단 위에 찍힌 옥새를 바라보며, 종잡을 수 없는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정신력을 소모해가며 홀로 그들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호랑이와 늑대가 서로 물어뜯게 하는 게 훨씬 쉬웠다. 이는 윤청이 완주를 떠나기 전에, 은밀히 자신의 부친과 토론을 거쳐 짜낸 책략이었다.
* * *
사실 진우하는 형부 감옥에서 윤재성을 포함한 몇 사람의 이름만을 내뱉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당연히 그 몇 사람의 이름으로는 충분치 않았고, 전체의 2할에도 미치지 못하는 숫자였다.
그 후 두 달간, 완주 전체는 먹구름이 뒤덮인 듯한 형세였다. 윤재성이 쓴 각종 계략에 의해 원래 하나로 단결되어 있던 관원들은 불안감을 느끼며 긴장 국면에 접어들었고, 서로를 적대시하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연말이 되어, 조정에서는 기세가 등등한 순찰사들을 완주로 보냈다. 동시에 황성에서부터 파견된 고수들은 은밀히 여순부로 들어와 윤재성에게 보고했다.
그들은 새해에 접어든 후부터 본격적으로 일에 착수하기 시작했는데, 이대로 위험이 지나간 줄 알았던 관원들은 미처 손쓸 새도 없이 잡혀 들어갔다. 그리하여 정월(正月)이 지나가기 전 완주 관원의 6할이 쓸려나갔다. 각 현에서는 주부(*主簿: 각 계급 관리 밑에서 문서를 관리하는 보좌관) 등의 부관(副官)들이 그들의 업무를 대행했고, 이 사건은 역사에 ‘핏빛 비단 사건’이라 불리게 된다.
비단은 누에고치에서 뽑은 실로 만들어져, 원래는 아무런 색깔도 없었으므로 그 위에 따로 염색을 해야 했다. 핏빛 비단 사건이라는 이름은 후세에 확정된 것이지만, 이미 대정국의 위아래로 사건의 전말이 그런 이름으로 퍼지고 있었다. 그 말에 담긴 뜻은 완주의 관료 사회가 모두 피로 물들었다는 뜻이었다.
사건이 종결되자, 이 일에 얽힌 소리(*小吏: 말단 관직)까지 합치면 이번에 쓸려나간 관원들은 천 명은 되는 숫자였다. 참형을 받은 중죄인들의 머리가 쉬지 않고 떨어졌고, 그들과 함께 죄를 지은 이들은 부지기수였다.
완주의 저승 세계에서는 집행관과 저승의 관원들이 이 죄인들의 혼백이 뿜어내는 악한 기운에 물들지 않도록, 일찍부터 죄인들을 맞아들일 준비를 끝낸 상태였다.
완주의 수많은 개인 창고에서 압류한 재물은 정확한 금액을 계산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많았다. 다시 수면 위로 드러난 미해결 사건과 오판(誤判)된 사건도 부지기수였다. 가장 많은 것은 백성들이 억울하게 당한 사건들이었지만, 그중에서도 청렴한 관리가 모함을 당한 사건도 꽤 많았다.
윤재성은 순찰사들을 비롯하여 정무를 처리하는 여러 곳의 관원들과 협동하여, 잘못 판결 내린 사건부터 미처 잡아내지 못한 탐관오리들에 관해서까지 일일이 검토하고 결과를 받아보았다.
비록 말로는 완주 관원의 6할이 잘려 나갔다지만, 사실상 8할 이상이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었다. 이런 환경에서 깨끗할 수 있는 이들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래서 윤재성은 자신이 정한 일정한 조건만 위배하지 않는다면, 약간의 합당한 벌을 내린 뒤 풀어주었다. 그렇지 않으면 완주에는 관원들이 너무나 부족해지기 때문이었다.
완주 관원의 6할이 이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소식이 경기부에까지 전해지자, 문무백관 모두 크게 놀라워했다. 뒤이어 대정국 강산 전체에 이 소식이 퍼지자, 관원들은 물론이고 백성들조차 경악을 금치 못했다.
완주에 남은 소수의 청렴한 관리들은 손뼉을 치며 기뻐했다. 그들은 이 희소식에 평소 술을 마시지 않았던 자조차 새해를 핑계로 크게 취할 정도였다. 완주의 백성들은 초기의 불안함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무사히 사건이 종료되자 미친 듯이 기뻐했다.
완주 백성들이 연말 연초에 받은 가장 좋은 신년 선물은 바로 그들을 흥분에 떨게 한 한 가지 소식이었다.
관아에서는 방문을 붙여 소식을 널리 알렸다.
《완주의 각 부와 각 현에서 전답을 빼앗긴 이들은, 처음 받았던 가격으로 다시 돌려받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당장 그 돈이 없다면, 첫 3년간의 수확 후 내는 세금에 저당금을 더해 받겠다. 곡식을 심을지 뽕나무를 심을지는 각자가 알아서 선택할 수 있다. 앞으로 견직물을 제작하는 이들은 백성들로부터 합당한 가격으로 뽕잎과 누에고치를 사와야 한다.》
윤재성은 선견지명을 발휘해 탐관오리들을 제거할 때도 소수의 상인과 말단 관리들은 남겨 두었다. 완주 견직물 산업을 이대로 끊어버릴 수는 없었으므로 조심스럽게 보호했던 것이다. 그리고 견직물 산업에서 나오는 이윤은 백성들이 좀 더 안락한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좀 더 합리적으로 나누게 했다. 비록 그는 어떠한 경제 이론도 접한 적이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이렇게 하는 것이 적합하다는 것을 알았다.
한동안 떠들썩했던 완주 관료 사회의 정리가 끝나자 민생이 점차 회복되기 시작했고, 마침내 봄이 되자 완주는 드디어 평온해졌다.
그동안 인력도 부족하고 직무를 이어받은 이들의 경험도 부족한 탓에 혼란스러웠던 시기가 있기는 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이들은 윤재성의 지휘 아래 점차 업무를 손에 익히게 되었다. 이들은 심지어 백성들이 전답에 뿌릴 종자들도 모두 생각해 준비해 두었고, 견직물 생산의 어떤 부분도 무너져 내리지 않았다.
완주의 서원에서 공부하던 학생과 유생들은 관원들의 손에 뽑혀 완주를 안정시키는 데에 최선을 다했고, 이에 완주의 국면은 점차 안정기에 접어들 수 있었다.
대정국의 조세는 분기별로 거둬들이는데, 사람들은 연초에 있었던 혼란 때문에 완주의 경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어 거둬들인 조세도 형편없을 거라 여겼다. 그러나 실은 거액의 재물을 압수했기 때문에, 그 대부분이 국고로 들어갔다고는 해도 남은 돈으로 충분히 완주의 경제를 재건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이에 완주의 경제는 짧은 기간 내에 재건되었고, 조세는 작년의 같은 기간보다 2할은 더 거둬졌다. 관원들이 층층이 빼먹던 돈이 줄어들자, 정상적인 금액이 걷힌 것이다.
이 소식이 도성으로 전해지자, 가슴에 울분이 맺혀 병이 났던 원덕제조차 용안에 큰 웃음을 드리웠을 정도였다. 그는 소식이 전해진 다음 날, 병든 몸을 이끌고 조회에 들어 조정대신들 앞에서 윤재성을 칭찬하며 ‘왕좌지재(*王佐之材: 재상이 될 만한 인재)’라 일컬었다.
이 일로 윤재성의 이름은 다시 한번 사림(士林)에 울려 퍼졌고, 또 한 번 천하에 이름을 떨쳤으니, 그를 경외하는 이들이 부지기수였다.
물론, 윤재성에게 깊은 원한을 품은 이들도 적지 않았다. 심지어 이전 몇 달간, 그는 목숨의 위협을 두어 번 받기도 했다. 하지만 다행히 그들은 어떤 해도 끼치지 못했다.
* * *
병술(丙戌)년 초여름, 이른 아침 여순부의 관아 앞마당에서는 윤재성이 수하들을 이끌고 허리를 구부리고 고개를 조아린 채 엄숙한 얼굴로 서 있었다.
나이 든 태감 하나가 관아의 문 앞에서 높은 목소리로 성지(聖旨)를 읽어 내렸다.
“황제의 지엄한 명을 받드노니, 여순부 지부 윤재성은 충군애국(忠君愛國)하며 부패한 이들을 제거하여 관료로서 청렴함을 드러냈다. 이로써 완주의 정세를 바로잡고 백성들의 민심을 안정시켜 완주에 다시 흥성함을 가져왔으니, 그 공로가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이에 특별히 윤재성을 완주 지주(知州) 겸 운파부 지부(知府)에 봉하노라. 이상의 내용을 준수하라(欽此)!”
성지의 내용을 듣던 윤재성은 어리둥절하여 약간의 어지러움을 느끼기까지 했다. 이에 조서가 끝난 다음에도 그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못했다.
“윤 대인, 윤 대인! 어서 조서를 받드세요!”
윤재성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서, 수하들과 함께 성지를 받들고 성은(聖恩)에 감사를 표했다.
“소신 윤재성, 천자의 성은에 감사드리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