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1화. 환골탈태
이 시각 계연은 마음에 윤재성과의 감응을 느끼고 왼손에 백돌을 띄웠다. 그러자 바둑돌 표면을 통해 그의 벗이 느끼는 감정의 변화와 감개무량함을 느낄 수 있었다.
“호연지기가 용솟음치고, 청명(淸明)한 덕을 바로 세우는구나.”
곧이어 계연은 의식 세계 속 산과 하천에서 하늘과 땅의 기운이 무(無)에서부터 생겨나는 것을 느꼈다. 비록 이전에도 이런 기운이 늘어나는 것을 느끼기는 했지만, 그때는 마치 실처럼 가늘었다. 전체적으로 볼 때 그런 상태는 ‘밑천을 까먹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일찍이 증명됐듯이 이는 계연이 쌓은 공덕으로 인해 생겨난 천지(天地)의 기운이었다. 가장 처음 이 기운이 나타났을 때는 조(趙)씨 집성촌에서 계연이 칙령음을 얻었을 당시였다. 칙령음이 아니더라도 계연은 의식 세계 속에 있는 단로에 오행(五行)의 진의(眞意)를 드러낼 수 있었고, 음과 양 두 가지 기운의 불길을 만들어냈으며, 가장 처음의 삼매진화를 불러낼 수 있었다.
칙령음은 계연이 가진 것 중 가장 실용적이며 만병통치약 같은 수단이었다. 삼매진화는 계연이 법력을 증진하는 속도를 더욱 빠르게 만들었고, 지금은 원래 무형이던 불길에서 그 실체를 드러낼 수도 있게 되었다. 적절히 사용하면 비범한 위력을 내뿜는 것이 바로 삼매진화였다.
게다가 단로에 있던 오행의 진의는 계연이 바둑돌을 점차 늘려가며 자신의 몸 안에서도 다섯 가지 기운이 드러나는 근원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계연으로 하여금 수행의 경지가 높아지도록 도왔고, 법력을 품은 단전과 규혈(*竅穴: 신체의 혈자리들과 같은 위치에 같은 이름을 하고 있지만, 규혈은 몸 안에 숨겨져 있음)도 조금이나마 늘어나게 되었으니 큰 덕을 봤다고 할 수 있었다.
어쩌면 <정덕보공록>에 쓰인 모든 도움이 되는 부분들을 계연이 받아들인 것 같았다.
칙령음이 드러나며 계연도 ‘천지의 기운’을 느끼게 된 것으로, 그 기운은 <정덕보공록>에 의해 생겨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계연 자신의 의식 세계에 원래 존재하고 있다가, 처음 모습을 드러낸 후부터 느끼게 된 것이었다.
그것의 근원에 대해서는 아무래도 맨 처음의 그 바둑판과 관련이 있을 것 같았다.
<정덕보공록>은 토지신이 스스로 얻은 기연이었지만, 아무래도 그것은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았다. 계연은 자신이 바로 그 대상이라고는 감히 결론지을 수는 없었지만, 어쨌든 자신과 비슷한 사람이어야 했던 것 같았다. 자신과 비슷한 심성이든 아니면 천지의 기운을 가진 자이든 간에 말이다.
“바둑돌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아무래도 이 돌이지!”
계연이 이렇게 감탄한다고 해서 다른 바둑돌들이 가치가 없다는 뜻은 아니었다. 다만 지금까지 진정으로 ‘바둑판’ 위에서 중요한 작용을 한 것은 윤 훈장님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대정국의 기운을 안정시키는 중요한 한 수였다.
여기까지 생각하던 계연은 의식 세계에서 드러났다 사라졌다 하는 바둑돌 하나를 바라보았는데, 그것은 바로 혜동 대사를 가리키는 돌이었다.
이런 상태는 매우 희귀하다고 볼 수 있었는데, 아무래도 바둑돌이 되기 직전의 상태 같았다. 게다가 이는 그와 헤어질 때 생긴 것이 아니고, 헤어진 후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나타난 변화였다. 당시 계연은 어찌 된 일인지 알 수 없어, 하마터면 연량국까지 날아가 물어볼 뻔했다.
그러나 만약 바둑돌이 되지 못한다 해도, 이것을 통해 혜동 대사가 무탈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으므로 계연에게는 좋은 일이었다.
‘혜동 대사가 떠난 지도 반년이 지났는데, 무언가 발견한 것이 있는지 모르겠네.’
생각에 잠겼다 깨어난 계연은 계속해서 글을 써 내려 갔다.
돌 탁자 위의 종이는 보통 종이였지만, 그 위의 글자는 일반적인 글자가 아니었다. 지금 그가 쓰는 것은 칙령법(勅令法)에 대한 추론이었고, 곁에 놓인 것은 건곤 납물술(乾坤納物術)에 관한 것이었다.
머리 위의 대추나무에는 올해 대추꽃이 새로 피었다. 다만 전처럼 거리를 가득 채울 정도로 꽃향기를 만들어 내지는 않았고, 오히려 깨끗하고 맑은 기운을 뿜어냈다. 이는 주의를 기울여 맡지 않으면 잘 알아챌 수 없었지만, 천우방과 그 주변에 사는 백성들에게 편안하고 깨끗한 기운을 느끼게 했다.
타닥!
돌연 가벼운 발소리가 들려왔는데, 호운이 담을 넘어 후원으로 들어오며 낸 소리였다. 그는 계연이 후원에 있는 것을 보고 앞발을 모아 예를 올렸다.
“계 선생님, 안녕하세요.”
“응, 다음에는 문으로 다니렴.”
여우는 귀 뒤편을 긁적이며 뒷발로 걸어 계연에게 다가갔다.
“선생님이 주무시고 계실 수도 있는데, 소리를 내면 깨실 것 같아서 그랬어요.”
호운은 사실대로 고한 것이었다. 계 선생님의 수면시간은 점점 더 늘어나고 있었는데, 보통은 3일에 한 번 일어났고 때로는 10일에서 2주 정도 잠을 자기도 했다.
계 선생님은 자신의 눈이 안 좋다고 말했는데, 호운은 사실 그 점을 잘 느끼지 못했다. 어쨌든 계 선생님의 청각은 정말로 예민해서, 아주 미세한 소리도 잡아낼 수 있었다. 이에 호운은 자신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선생의 휴식이나 수행을 방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계 선생님이 자신의 말에 대꾸하지 않자, 호운은 약간 풀이 죽어 탁자 위에 엎드린 채 먼저 방문한 이유를 말했다.
“계 선생님, 육 산군의 털이 계속 빠지고 있대요. 그가 말하기로는, 백 년이 넘도록 한 번도 이렇게 빠진 적이 없었대요. 그래서 자신의 수행에 무슨 문제가 있었던 건지 선생님께 여쭤보고 오라고 절 보낸 거예요.”
계연은 웃으며 대답하지 않다가, 새 종이를 꺼내 커다란 글자 네 개를 썼다.
호운은 한쪽에서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가 계연이 쓰는 글자를 읽었다.
“환골탈태(*換骨奪胎: 도교의 수련용어로, 수도자가 득도하면 ‘범태(凡胎)’에서 ‘성태(聖胎)’로, ‘범골(凡骨)’에서 ‘선골(仙骨)’로 바뀌는 데서 유래함)…….”
여우는 멍하니 이를 읽다가 곧 계연에게 물었다.
“계 선생님, 육 산군이 둔갑하게 되나요?”
“아니, 아직 이르지. 하지만 육 산군에게는 확실히 좋은 일이야. 둔갑하기 전에 환골탈태하는 것은, 수행하는 요괴들에게 있어 비범한 의의가 있어. 보통의 요물들은 이렇게 되지 않아.”
계연이 이렇게 말하는 동안 종이 위의 글자에서는 빛이 번쩍였다. 그가 종이를 들어 바람을 불자, 종이 위의 먹이 단번에 말랐다.
“그럼 어떤 요괴들이 환골탈태하나요? 저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여우는 자기 자신을 가리키며 기대에 차 물었다.
계연은 곁눈질로 그를 보더니, 두 번째 질문에는 답하지 않고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만 천천히 대답했다.
“예를 들면, 하늘의 보살핌을 받은 물속 정괴(精怪)가 교룡이 될 때도 환골탈태를 하지.”
* * *
우규산 깊은 곳 모처의 빛이 드는 절벽에는 1장(*약 3m) 너비에 2장 높이의 좁고 긴 동굴이 있었다. 안쪽은 꽤 넓어서, 대략 4, 5장 정도 길이 이어지다가 점차 좁아지며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그 길을 따라 쭉 들어가면 동굴 지하에는 강줄기가 흐르고 있었다.
이 시각 동굴 안에는 거대한 몸집의 호랑이 한 마리가 부드러운 풀잎으로 만든 보금자리 위에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이때 그는 돌연 머리 위가 간지러운 느낌이 들어, 발톱을 꺼내 긁으려다가 공중에서 동작을 멈췄다.
잠시 망설이던 그는 가려움을 더는 참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발톱을 집어넣은 뒤 발바닥으로 머리통을 긁적였다.
막 간지러움이 잦아들던 때, 발바닥에서 무언가 미끄덩한 느낌이 들자 호랑이는 깜짝 놀랐다.
발바닥을 오므리고 눈앞에 대 보니, 발바닥 위에 노랗고 검은 털들이 잔뜩 붙어 있었다. 그 위에는 영험한 빛이 미세하게 흐르고 있었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게 털이 떨어져 나갔다는 사실을 덮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휴……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발톱으로 긁을걸…….”
육 산군은 걱정스러운 얼굴로 우수수 떨어진 자신의 털들을 바라보았다. 보지 않아도 지금 자기 머리통 위에 동그란 구멍이 꽤 크게 나 있을 거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동굴 뒤쪽에는 종유석으로부터 떨어져 생성된 작은 못이 있어 거울처럼 쓸 수 있었지만, 육 산군은 차마 가서 자신의 모습을 확인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니 채찍같이 기다린 자신의 꼬리에도 털이 빠지고 피부가 드러나 얼룩덜룩해 보였다.
“에휴…….”
이렇게 한숨을 내쉰 육 산군은 발바닥 위에 있던 털들을 조심스럽게 입으로 가져와 꿀꺽 삼켰다.
이전에 털이 빠졌을 때도 그는 모두 배 속에 집어넣어 보관했다. 수행에 큰 진보를 이룬 뒤로, 이 털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육 산군과 함께 백 년 하고도 수십 년을 함께해왔다. 하지만 이제 그 털이 모두 떨어져 나가는 것을 보니, 그는 마음이 허전하고 서글퍼졌다.
“육 산군…… 육 산군……!”
호운의 목소리가 바깥에서 들려오자, 동굴 안에 엎드리고 있던 호랑이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지만 이쪽으로 다가오는 여우의 재빠른 발소리에 그는 긴장하여 이렇게 소리쳤다.
“어흥……. 멈춰! 동굴에 들어오지 말고, 밖에서 이야기해라!”
육 산군은 그간 계 선생의 위엄 있는 모습을 본받아 여우를 가르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온몸에 털이 빠져 문둥이 같은 모습으로 여우의 앞에 모습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육 산군이 생각하기에, 그는 이미 계 선생의 문하에 든 자였다. 호운의 성격이 아이처럼 천진난만하지만, 그것도 점차 진중해지고 있었고, 조만간 그도 수행에 성과가 있을 것이었다. 그들은 머지않은 미래에 함께 불로장생할 요괴들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이런 모습을 계 선생님이 보는 것은 상관없지만, 호운이 보는 것은 달랐다. 지금 자신의 모습은 상대방이 수백 년은 족히 놀릴 만한 웃음거리였기 때문이다.
호운은 원래 목 아래에 종이 한 장을 끼고서 신나게 산을 오르고 있었다. 원래 호운은 곧바로 동굴로 들어가려다가, 호랑이의 포효를 듣고 재빨리 동굴 입구에 멈춰 섰다.
여우는 이미 꽤 오랫동안 육 산군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비록 그가 가진 ‘탈모’ 증상이 어떤 모습일지 무척 궁금하긴 했지만, 그보다는 육 산군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다.
“사…… 으흠, 선생께서는 일어나셨어? 네게 무언가 전한 말이라도 있어?”
육 산군의 위엄 있는 목소리가 동굴 깊은 곳에서 흘러나왔고, 휘익 하는 소리와 함께 가벼운 바람이 불어왔다. 그러자 동굴 입구의 나뭇잎과 마른 풀들이 바람에 의해 솨아 하고 흔들렸다.
붉은 여우는 그의 말을 듣고 앞발로 목 아래에 끼운 종이를 잡아 몇 번 털어냈다.
“있어, 있어! 계 선생님 말씀으로는, 네 현재 상황이 물속 정괴들이 교룡이 되기 전의 모습과 같대. 그걸 환골탈태라고 한다고 했어. 어쩌면 나중에 너는 더는 호랑이가 아니게 되거나, 최소한 일반적인 호랑이는 아니게 될 거야. 계 선생님은 네게 그리 걱정할 것 없으니 수행을 게을리하지 말라고 하셨어.”
동굴의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호랑이의 두 눈이 번쩍하고 빛났다.
“어쩐지, 과연 그랬구나! 선생님의 가르침보다 더 신묘한 술법은 없지, 정말 다행이야.”
기쁨에 겨운 호랑이의 마음이 다시 흥분으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몸 곳곳이 다시 간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제 육 산군은 더는 걱정할 것이 없었으므로, 발톱을 드러내 시원하게 긁었다. 최근까지 근심에 차 조심스럽게 긁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편안했으므로, 호랑이는 저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호운은 손안의 종이를 꼭 잡고 햇빛 아래에 비춰 보기도 하고, 위에 남은 묵향(墨香)을 맡아 보기도 했다. 오는 길에 너무 서두르느라 자세히 살펴보지 못했기 때문에, 호운은 이제야 계 선생님이 쓰신 종이를 자세히 관찰해보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도행이 한참 모자랐기 때문에, 얼핏 종이가 무겁다고만 느꼈을 뿐 다른 특별한 점은 발견할 수 없었다. 심지어 조금만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면 그 무거운 감각조차 느낄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