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2화. 소매 안의 우주는 크고, 술 단지 안의 세월은 길다
관찰을 다 끝낸 뒤 호운은 종이를 들고 동굴 입구를 향해 소리쳤다.
“참, 산군. 계 선생님께서 네게 주신 게 있어. 선생님의 말씀으로는 이게 네게 도움이 될 거라고 하셨는데 내가 여기…….”
“뭐? 선생님께서 내게 선물을 보내셨다고? 어흥!”
맹렬한 포효와 함께 군데군데 털이 빠진 모습의 거대한 호랑이가 동굴에서 뛰쳐나왔다. 그는 호운의 머리 위를 날아 여우 뒤편의 바닥에 착지했다.
“어디 있어? 선생님께서 내게 주신 그게 어디 있다고? 이거야? 선생께서 쓰신 게?”
육 산군은 한눈에 호운이 들고 있는 종이를 알아보았다. 그 위에 적힌 ‘환골탈태’ 네 글자 위에는 지금도 빛이 흐르고 있었고 짙은 도력이 느껴졌다.
“선생께서 쓰신 글이라니…… 정말 잘 쓴 글자네! 환골탈태라, 환골탈태…….”
호랑이는 조심스럽게 다가가 날카로운 발톱을 숨긴 뒤, 발바닥으로 부드럽게 종이 양쪽을 누르며 선생의 법령을 넘겨받았다.
그의 손에 닿자마자, 종이에는 또 다른 글자들이 드러났다.
‘연(緣)이 육 산군에게 선물하다.’
글자가 드러나자 육 산군은 즉시 종이에 흐르는 도력에 몸을 가까이 대었다. 그러자 정신이 번쩍 들면서 그의 사지(四肢)와 온몸이 모두 편안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선생님께서 내게 선물을 주셨어, 호운, 이것 봐. 선생님께서 내게 주신 거래. 하하하…… 이건 선생님께서 내게 주신 선물이야!”
호랑이의 웃음소리는 마치 높은 포효와 같아서 또 한차례 산바람을 만들어냈고, 이에 호랑이의 주위에 있던 산천초목이 모두 흔들거렸다.
“그…… 산군…… 어쩌다 이렇게, 이렇게 됐어……!”
호운은 눈을 크게 뜨고 입을 다물지 못한 채로 육 산군을 쳐다보았다. 평소에 그리도 위엄 넘치던 호랑이 요괴가 이제는 곳곳에 털이 뭉텅 빠져 있었다. 특히 그의 머리통과 얼굴 부분에는 이제 남아 있는 털이 거의 없었다. 그건 마치 털이 잔뜩 뽑혀 나간 거대한 고양이와 비슷한 모습이었다. 그의 이런 모습은 온몸의 털이 다 빠진 것보다 열 배는 더 못나 보였다.
호운의 말을 들은 호랑이의 웃음소리가 돌연 뚝 그쳤다.
흥분에 차 있던 육 산군은 온몸이 뻣뻣하게 굳은 채 고개를 숙여 호운을 바라보았다. 가늘고 긴 여우의 두 눈과 크고 동그란 호랑이의 두 눈이 마주쳤다.
‘지금 그냥 먹어 치운 다음에 후환을 없앨까?’
육 산군은 한순간 이런 생각을 떠올렸다. 그러자 그의 눈빛에서는 흉흉한 빛이 떠올랐다.
호운은 이에 한바탕 오한을 느끼고 덜덜 떨다가, 머리를 쥐어 짜낸 다음 이렇게 말했다.
“절대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게! 절대로! 어…… 계 선생님께서 쓰신 종이에 법력이 담겨있어서 눈이 좀 아픈 것 같네. 뭐가 잘 안 보여…… 방금도 사실 잘 못 봤어! 그럼 나, 나는 먼저 수련하러 갈게!”
이렇게 말한 여우는 젖 먹던 힘까지 짜내 거의 날듯이 도망쳤다.
“휴우…….”
여우가 수풀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본 육 산군은 이렇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손에 든 글자를 보자마자 다시 기분이 좋아져, 그는 종이를 들고 다시 동굴로 향했다.
의식이 생기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이 글자는 육 산군이 처음으로 받아본 선물이었다. 게다가 자신이 존경하고 있는 스승에게서 받은 것이었다. 이 글자와 함께 호운이 전달한 계 선생님의 말을 떠올린 육 산군은 이전에 가졌던 걱정과 초조함이 단번에 사라졌다.
글자를 다시 한번 자세히 감상하던 육 산군은 동굴 내벽의 움푹 파인 곳에 종이를 보관했다. 그러고는 천천히 영기를 들이마시며 수련을 시작했다.
그는 이전에 영지를 얻은 물의 족속이 교룡이 되려면 아주 고통스럽거나 혹은 기나긴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 육 산군은 비록 자신이 어떤 미래를 맞이하게 될지 알 수 없었지만,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의 뒤에는 스승님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내가 완전히 환골탈태하는 그 날이 바로 내가 둔갑술에 성공하는 날일지도 몰라!’
* * *
특이한 대추꽃 향기가 나지 않는 거안소각은 이제 더욱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도력을 품은 어떤 특이한 기운이 거안소각을 휘감아 도는 듯, 이곳은 전보다 더욱 평화롭고 고요했다.
호운이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누군가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쿵쿵쿵……!
계연이 대문으로 다가가 직접 문을 열자, 밖에는 늙은 거지와 항상 그와 함께 다니는 어린 거지가 서 있었다.
“노 선생님하고 소유(小遊)가 여기를 어떻게 알고 오셨죠?”
계연은 공수하여 인사한 뒤, 이렇게 물으며 손을 뻗어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들어오세요!”
공손한 태도의 어린 거지와 웃는 얼굴의 늙은 거지는 동시에 계연에게 인사를 올린 뒤 안으로 들어갔다.
“옛말이 틀린 게 하나도 없군요! ‘진정한 은자(隱者)는 저잣거리에 숨어 있다’더니, 계 선생님께 갖다 붙이면 딱 맞는 상황이겠습니다!”
늙은 거지는 이렇게 감탄한 뒤, 딱 봐도 비범해 보이는 대추나무에 자연스럽게 시선을 던졌다. 대추나무의 잎사귀 뒤편에 불길처럼 빨갛게 빛나는 대추가 달린 것이 보였다.
계연은 그를 향해 고개를 저으며 대문을 닫았다.
“안 돼요, 저 대추나무도 수행해야 해서요. 별로 특별한 일이 아니라면 대추를 떨어뜨리게 할 수 없어요.”
“제가 이곳에 온 건 특별한 일이 아니란 말씀입니까?”
늙은 거지의 말에도 불구하고 계연은 나무 아래 탁자로 돌아가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 모습을 본 그는 어쩔 수 없다는 웃으며 말했다.
“제가 얼마 전 옥회산에 방문했었는데, 그들도 저와 계 선생님 사이의 머리가 잘려 맺게 된 우정을 알고 있지 뭡니까. 그래서 한 번 물어봤더니 선생께서 이곳 영안현에 산다고 알려주더군요.”
‘범인은 그쪽에 있었군.’
계연은 속으로 이렇게 혼잣말을 하며 손을 끊임없이 움직였다.
“도성에서 헤어진 후로 선생님의 행적을 알 수가 없어, 저는 선생님께서 이미 대정국을 떠났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어찌 아직 이곳에 계세요?”
‘갚아야 할 빚이 있으니, 마음이 불편하여 그렇지!’
늙은 거지는 속으로 이렇게 투덜댄 뒤, 겉으로는 하하 웃으며 말했다.
“대정국이라는 한 나라에 옥회 성경(聖境)이 있는 것만 해도 이미 대단한데, 거기에 더해 통천강에는 진룡이 엎드리고 있고 선생 같은 진선(眞仙)이 은거해 있기까지 하니……. 천기각의 그 수염 난 늙은이들이 대정국의 기운이 대성(大盛)한다고 한 데에는 이유가 있나 봅니다.”
계연은 글을 쓰며 웃다가 다시 늙은 거지를 바라보았다.
“알겠어요, 저는 어떤 답례도 바라지 않고, 선생님께서 제게 은자를 빚진 것처럼 계속 눈치 보지도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나저나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침대 삼아 사는 선생 같은 분이 이런 면에서는 꽤 장사치 같으시네요.”
“아이고, 계 선생님도 참 독하십니다! 오랫동안 수행을 쌓은 데다 저 같은 성격을 가진 사람들은 그렇게 말할수록 오히려 더 잊지 못하게 된단 말입니다! 쯧쯧……!”
늙은 거지가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어린 거지 노소유는 돌 탁자로 다가가 손에 턱을 얹고서 계연이 글씨를 쓰던 종이를 바라보았다.
아이는 비록 거지이지만, 아홉 살부터 늙은 거지를 따라다닌 후로는 그에게서 글을 배우고 있었다. 그래서 소유는 자연스럽게 종이 위의 글자를 읽을 수 있었다.
“소매 안의 우주는 크고, 술 단지 안의 세월은 길다(*袖內乾坤大, 壺中日月長: 신선들의 술법이 탁월하고 변화무쌍하여, 기존의 사고 이외의 또 다른 시공간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을 말함). 심오함은 마음에 있고 도(道)는 천만 가지 사물을 품을 수 있다. 그리하여 소매 속의 건곤납물술은…….”
“소유, 너 이 무슨 무엄한 짓이냐!”
늙은 거지는 잔뜩 긴장한 채 손으로 어린 거지를 세게 잡아당겼다. 계 선생이 이토록 아무런 방비도 없이 심오한 술법의 내용을 종이에 적다니……. 소유가 읽은 몇 줄만 들어도 이미 그 신묘함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이는 그가 소유에게 수행계에 관한 일들을 너무 감춰두었던 탓이었다. 다른 사람의 신묘한 술법을 엿보는 것은 수행계의 엄청난 금기였다.
계연은 늙은 거지가 소유를 향해 갑자기 화를 내며 꾸짖는 것을 보고 자기도 놀라 멍해졌다가, 곧 상황을 이해하고는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그냥 추론해 보면서 글씨 연습을 하는 중이었어요.”
이렇게 말하고서 계연은 습관적으로 소매를 한번 흔들었다. 그러자 탁자 위에 있던 붓, 먹, 종이, 벼루가 모두 그의 소매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가 손에 쥐고 있던 붓도 공중을 돌더니 소매 안으로 날아 들어갔다.
하지만 지금의 건곤납물술은 계연이 머릿속에서 상상하는 신통하고 높은 경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종이에 쓴 첫 몇 마디는 그의 염원일 뿐이었고,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스스로를 격려하고 기운을 북돋기 위한 구절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늙은 거지를 화들짝 놀라게 했다.
늙은 거지는 생각을 알 수 없는 얼굴로 탁자를 보다가 다시 계연의 옷소매를 바라보았다. 방금 계연이 탁자 위에 있던 물건들을 거둬들이는 동작이 보통의 건곤납물술과 무척 달랐기 때문이다. 그의 손짓은 좀 더 자유롭고 제멋대로였다.
‘소매 안의 우주는 크고, 술 단지 안의 세월은 길다…….’
계연이 스스로 느끼기에 이 건곤술이 꽤 괜찮다고 생각하는 한 가지 이유는, 이 소매 속의 건곤술 9할 정도가 자신의 상상에서 비롯된 데다, 나머지 1할 정도는 자신이 지닌 아주 섬세한 기술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이었다. 방금 물건들을 거둬들일 때 벼루에는 먹이 남아 있었지만, 계연의 소매에는 조금도 묻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다. 다른 사람들이 이 광경을 본다면 거의 신선의 경지라며 놀라워할 터였다.
비록 지금 계연의 마음가짐은 지난 생과 크게 다르지만, 그래도 대국에 큰 영향이 없고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그는 좀 더 눈이 즐겁고 보기 좋은 술법을 익히고 싶었다.
그때 주방에서 부글부글 물이 끓어오르는 소리가 났다. 이때 거안소각은 무척 고요했기 때문에 계연은 물론이고 두 거지도 이 소리를 명확하게 들을 수 있었다.
“아, 마침 물이 끓네요.”
계연이 주방으로 들어가 보니, 솥 안의 물은 끓고 있었고 아까 넣어둔 장작은 마침 거의 다 타버린 상태였다.
그는 화덕 주변의 작은 탁자에서 찻주전자를 가져온 다음, 옆에 있던 나무 상자를 열어 안에서 찻잎을 조금 집어 주전자에 넣었다. 그러고는 솥뚜껑을 열어 나무 국자로 끓는 물을 주전자 안에 부었다. 그러자 곧 끓는 물이 뿜는 열기가 주방을 가득 채웠다.
잠시 후 계연은 찻주전자와 찻잔 네 개, 기다란 도자기 숟가락과 작은 도기 그릇 하나를 얹은 쟁반을 들고 나왔다.
계연은 일상생활에서 스스로 몸을 움직이는 것을 더 좋아했다. 이런 행위는 계연이 느끼기에 좀 더 사람 냄새가 났고 더 생활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는 어쩌면 자신이 본질적으로 일반 백성들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사람임을 스스로 일깨우는 방식일 수도 있었다.
“계 선생님은 직접 불을 지피고 물을 끓이는 것을 좋아하시나 보군요?”
늙은 거지는 사실 계연의 이런 태도를 매우 흡족해하고 있었다. 이는 속세를 모방하며 즐긴다기보다는 일종의 생활 태도에 가까워 보였다. 게다가 이를 구실로 삼아 조금 전 소유가 벌였던 어색한 일을 넘어가기에도 딱 좋았다.
늙은 거지가 자연스레 화제를 바꾼 것을 보고 계연도 웃으며 대답했다.
“제가 느끼기에, 그럴 조건이 된다면 직접 불을 지피고 물을 끓이는 것이 차 맛을 더 좋게 만드는 것 같아요.”
“할아버지, 정말 그런가요?”
어린 거지는 천진난만한 얼굴로 이렇고 물었고, 노인은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그걸 믿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