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난가기연-243화 (243/892)

243화. 얌전히 남아 계세요

계연은 쟁반을 탁자 위에 놓은 뒤, 다시 손을 뻗어 그들에게 자리를 권했다.

“두 분도 앉으세요.”

늙은 거지는 계연이 정말로 소유에게 조금도 화나지 않은 듯한 모습을 보이자, 다시 원래대로 웃는 얼굴을 회복했다. 그리고 소유를 끌어당겨 탁자 옆에 앉혔다.

“계 선생님이 직접 끓인 차를 마시다니, 천하에 이런 복을 가진 사람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천천히 감상하며 마셔야겠군요.”

“이건 그냥 보통 차일 뿐이에요.”

계연은 그를 곁눈질로 한 번 바라본 뒤, 숙련된 몸짓으로 찻잔을 뒤집어 탁자에 놓았다. 그러고는 주전자를 들어 자신과 두 손님의 몫으로 한 잔씩 따른 후, 찻잔 뚜껑을 덮지 않고서 쟁반 위에 있던 작은 도기 그릇을 열었다. 그 후 도기로 된 숟가락으로 안에 있던 것을 가득 떴다.

그러자 숟가락 끝에는 투명하게 빛나는 실선이 길게 늘어졌다. 계연은 숟가락을 도기 그릇에 대고서 끈적하게 늘어진 것을 끊어냈고, 은은한 단내를 풍기는 그것을 소유의 찻잔 위에 대고 뒤집었다. 그러자 투명하게 비치는 벌꿀이 소유의 찻잔 안으로 떨어졌다.

때마침 수온이 적절해졌고, 계연은 찻잔의 뚜껑을 덮은 뒤 소유에게 밀어주었다.

“가볍게 몇 번 흔든 뒤에 마시렴. 맛이 아주 좋단다.”

그 후 자신과 늙은 거지를 위해서도 차를 따른 뒤 다시 각각의 찻잔에 꿀을 한 숟가락씩 넣었다.

그러는 동안 두 거지는 코를 킁킁대며 냄새를 맡았다. 비록 계 선생은 이것이 특별할 것 없는 보통 차라고 했지만, 꿀을 넣자마자 찻잔 안에서 무언가 특별한 기운이 느껴졌다.

두 거지는 더는 참지 못하고, 얼른 찻잔을 들어 몇 번 흔들었다. 그러고는 뚜껑을 열고 두어 번 입김을 불어 식힌 뒤 한 입 마셨다.

“냄새가 무척 좋아요! 엄청 달고요! 진짜 맛있어요!”

“호오……. 정말 맛있군요. 계 선생께서는 참 풍류를 잘 아십니다!”

그들의 반응은 계연이 예상했던 그대로였다. 소유는 한 입 더 마신 후 호기심에 찬 눈빛으로 쟁반 위의 도기 그릇을 바라보았다. 그는 본능적으로 저 안에 든 것이 차의 맛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것을 알았다.

“계 선생님, 저 그릇 안에 든 것이 무엇인가요? 투명한 것이 꼭 물엿 같지는 않고…….”

“어리석기는, 이게 바로 꿀이라는 것이다. 이건 일반 백성들이 먹을 수 있는 게 아니야, 게다가 계 선생님이 쓰는 꿀은…….”

늙은 거지는 고개를 들어 대추꽃 사이를 바쁘게 오가는 꿀벌들을 바라보았다.

“황제라고 해도 이런 꿀은 맛보지 못했을 거다, 아니, 못 할 것이다.”

이 꿀차는 늙은 거지의 칭찬을 받을 만하긴 했지만, 계연은 계속 그가 이리저리 화제를 바꿔 대는 것을 들을 생각이 없었다. 전에 자신이 늙은 거지를 찾을 때마다, 그는 이리저리 말을 돌리며 계연이 이야기하고자 바는 꺼내려 들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그가 자신의 집에 방문한 데다가 빚진 것을 돌려주려고 조바심을 내는 듯하니, 계속 그의 잡담이나 들어줄 생각은 없었다.

법력으로 늙은 용에 비할 바는 안 되지만, 그래도 진정으로 신묘한 고인을 만났으니 계연은 이 기회에 많은 것을 물어볼 생각이었다.

“노 선생님이 옥회산에 들르셨다고 했으니, 분명 저희가 경계하고 있는 일에 대해 알고 계시겠군요?”

“예!”

늙은 거지는 그로서는 드물게도 진지한 표정을 짓고는, 손에 든 찻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비록 옥회산 수사들이 이 늙은이에게 전부 말해준 것은 아니지만, 그간 쌓은 이 보잘것없는 도행(道行)과 계 선생님과의 관계 덕에 제게 조금 귀띔을 해줬습니다.”

거지는 잠시 숨을 고르더니 말을 이었다.

“계 선생님, 이 거지가 주제넘지만 한 말씀만 올리겠습니다. 선생님과 통천강 용왕께서는 운주의 전망을 그리 좋지 않게 보시는 듯한데, 천기각의 그 수염 긴 늙은이들이 그렇게 보여도 실력은 있습니다. 그자들의 명성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본 몇 년 전의 그 점괘에 따르면 선생께서 걱정하시는 그런 형세는 아니었습니다.”

계연의 희뿌연 두 눈이 늙은 거지를 향했다.

“보아하니 선생님께서는 천기각과 밀접한 관계가 있으신 모양이네요. 게다가 그 소문에 대해서도 들어서 안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점괘를 알고 있으신 모양이군요. 이것도 옥회산에서 들었다는 거짓말은 치지 마세요.”

“제가 어찌 감히 그러겠습니까? 수행하다 머리가 크게 상한 그 옥회산 수행자들에게라면 또 몰라도, 계 선생님께는 그런 거짓말을 할 수 없습니다.”

‘감은 부드러운 것부터 고른다(*만만한 것부터 건드린다는 뜻)’라는 식의 이런 말을 옥회산 수사들이 듣지 않아서 참 다행이었다. 아니었다면 아무리 수선자들이라 해도 화가 머리끝까지 났을 것이다.

“수륙법회에 요사스러운 것들이 모여든 것은, 아무래도 천기각의 소문 때문이라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게다가 혜동 대사가 떠난 지 이미 반년이 지났는데도 옥회산 진인들은 거의 매일같이 점을 치고 있었습니다. 옥주봉의 땅과 대사가 가진 태허 옥 부적이 감응하여 그의 상황을 알 수 있기 때문이지요. 다행히 아직은 아무런 위험이 없었다고 합니다.”

특수한 상황이 발생하지만 않는다면, 옥회산 진인들이 점을 치는 방법이 계연의 바둑돌보다는 더욱 직관적이었기 때문에 계연도 그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노인은 잠시 말을 멈추고 이어질 말을 어떻게 꺼낼까 생각하는 듯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는 결국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한 듯, 솔직하게 말을 꺼냈다.

“만약 계 선생님과 용왕께서 모두 틀리지 않았다면, 그리고 천기각의 점괘도 틀린 게 아니라면 그 뜻은 운주 전체의 기운은 쇠하나 대정국은 홀로 흥성한다는 뜻이 됩니다. 하지만 이는 음양과 천지의 균형에 부합하지 않습니다…….”

계연은 차를 마시며 그의 말을 집중하여 듣고 있었다. 사실은 계연도 그의 말을 듣고 분석하면서, 여러 방면의 일을 생각해보고 있었다. 하지만 방금 그가 뱉은 말을 듣고서 계연은 일종의 신비로운 두근거림을 느꼈다.

계연은 찻잔을 내려놓고, 눈썹을 잠시 찡그린 뒤 다시 그를 향해 말했다.

“천지의 이치와 균형에 부합하지 않는다……. 꼭 그렇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노 선생님께서는 속세에 머무시면서 적지 않은 왕조의 흥망성쇠를 보셨겠지요. 하지만 왕조가 변할 때의 이치를 자세히 생각해 본 적은 없으실 수도 있어요. 분명 흩어지고 모이는, 분열과 결합이 반복되었을 거예요.”

계연의 말을 듣고 노인의 얼굴은 엄숙하게 가라앉았다.

“계 선생님의 말씀은, 대정국은 하늘의 보우(保佑)를 받는 기운을 탈 것이라는 뜻입니까?”

“하늘의 보우요? 만약 하늘도 정이 있다면 사람과 같이 늙어가겠지요(*天若有情天亦老: 정을 가진 것은 늙고, 정이 없는 것은 늙지 않음을 이르는 말). 하지만 인간 세상은 변화무쌍합니다. 노 선생님께서 저를 과대평가하신 거예요. 저는 그저 앞날에 대한 소망을 이야기했을 뿐이에요.”

계연이 완곡하게 부정했지만, 이는 늙은 거지를 놀라게 하기 충분했다.

소유는 그들이 나눈 대화를 조금도 알아듣지 못했지만, 노 할아버지가 최근에 자신에게 가르쳐 주던 수행의 도리보다도 더욱 심오한 것 같았다.

소유가 두통이 나게 만든 대화가 끝나고, 노인과 계연은 정해진 주제 없이 온갖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어떤 것은 수행에 관한 일이었고, 어떤 것은 보통 백성들이 나누는 이야기처럼 작고 소소한 일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대화를 자세히 듣다 보면 또 그리 간단하지 않은 것도 같았다.

물론 화제가 끝날 때마다 늙은 거지는 빙빙 돌려 계연을 떠보려고 했다. ‘내가 당신께 빚진 것에 대해 확실한 답을 달라’는 뜻이 거지의 말 전반에 숨겨져 있었는데, 다만 거지는 이를 아주 에둘러 표현했을 뿐이었다.

어쨌든 결국 소유는 두 어른이 어떤 결과를 내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은 쭉 쓸데없는 이야기만 나눴기 때문이다. 소유는 다만 노 할아버지가 어떤 식으로 보답을 하라는 식의 확실한 대답을, 계 선생님의 입에서 듣지 못한 것만은 알 수 있었다.

시간은 어느새 정오가 되었고, 두 거지는 계연이 직접 요리한 음식을 먹었다. 계연의 솜씨는 그다지 좋다고 할 수 없어, 요리 대부분은 삶거나 찐 것이었다. 하지만 그에 잘 어울리는 특이한 조미료나 양념이 함께 나와, 두 사람은 접시를 싹싹 긁어먹었다.

오후가 되자 늙은 거지는 마침내 소유를 데리고 작별 인사를 고했다. 그보다 더 오래 머물면 거안소각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노인은 다른 곳에서는 결코 이런 식으로 에둘러 표현하거나 모호하게 말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계연의 앞에서는 약간의 겸연쩍음과 어색함을 느꼈다.

그로부터 반 시진(*1시간)쯤 지난 영안현 밖의 관도(官道)에서는 남루한 옷을 입은 거지 두 명이 길을 걷고 있었다. 늙은 거지는 계속 입을 꾹 다물고 있었고, 소유도 이에 할 말을 참았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먼저 물었다.

“할아버지, 그래서 우리 대정국을 떠나는 거예요, 아니에요?”

“에잇……. 못 가겠구나, 아무래도 가기 힘들겠다!”

어린 거지는 눈썹을 찌푸렸다. 그는 어디를 가든 아무 상관이 없었지만, 노인의 잔뜩 골이 난 듯한 얼굴을 보고 결국 이렇게 말했다.

“할아버지, 방금 계 선생님한테 뭐 하러 그렇게 빙빙 돌려 말씀하신 거예요? 터놓고 물어봤으면 됐을 텐데, 그래서 계 선생님도 할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를 못 하신 거잖아요.”

이 말을 듣고 늙은 거지는 약간 짜증이 난 듯했다.

“못 알아듣긴 무슨? 선생은 모른 척을 한 거다! 나보다도 더 화제를 잘 바꾸더구나. 게다가 나도 이미 꽤 대놓고 털어놓은 거다. 그보다 더 명확하게 물어보라니, 내가 그에게 빌기라도 하라는 뜻이냐? 안 그래도 계 선생 앞에서는 항상 작아지는 느낌인데! 내가 지금 짜증이 나지 안 나겠느냐?”

어린 거지는 잠시 말이 없다가, 작은 소리로 투덜댔다.

“작으면 작은 거지, 우리 같은 거지들이 무슨 체면이 있다고…….”

늙은 거지는 그가 더 말을 잇지 않는 것을 보고, 아이의 손을 잡고 관도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한참 후, 그는 이렇게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고인(高人)들도 체면을 따진다, 다만 그게 누구인지에 따라 다를 뿐이지…….”

* * *

영안현 천우방의 거안소각에서는 계연이 다시 소매 속의 물건들을 탁자 위로 꺼내 놓고 있었다. 다시 붓을 들어 글을 써 내려 가던 그의 입가에는 희미한 웃음이 걸렸다.

‘말로 나를 이겨보려 하다니, 자기가 답답해 죽을걸! 자, 이제 얌전히 대정국에 남아 있겠지.’

후원의 대추나무가 바람에 따라 흔들리며, 나뭇잎들이 솨솨, 음율에 맞춰 흔들렸다. 나뭇잎이 내는 규칙적인 소음은 계연이 글을 써 내려 가는 리듬과 딱 맞아 들어서 종횡으로 획을 긋는 계연의 동작에는 자연히 힘이 실렸다 약해지길 반복했다.

조금 전 늙은 거지와 대화를 나눌 때, 계연은 이 기회를 이용해 속세의 온갖 자질구레한 일을 듣고 싶어 했다. 노인의 눈을 통해 듣는 이야기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와 큰 차이점이 있었다.

계연은 노인이 방방곡곡을 걸어 다니며 그가 만났던 요괴부터 선인들에 관한 이야기, 자연재해와 인재(人災)를 마주하며 찾아낸 어떤 규칙들, 각 지방에서 느껴지는 다른 기운들에 대해 들었다. 그의 관점으로 이야기를 듣는 것은 계연에게도 큰 도움이 되었다. 이는 계연이 천하의 형세에 관해 일부분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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